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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치, 운이 좋아 터지는 것은 없다
장영규 음악감독2019년 1월 20일 홍대의 채널 1969에서는 이날치의 데뷔를 알리는 공연이 진행되었다. 장영규가 이끌었던 대세 밴드 ‘씽씽’이 해체된 아쉬움, ‘판소리’를 중심으로 꾸려진 신상 밴드에 대한 기대감으로 공연장을 찾았다. 소리꾼 5명, 2대의 베이스, 드럼 구성으로 들려주는 수궁가는 조금 낯선 것이었지만 분명 반가운 것이었다. 낯선 선율과 긴 사설에도 불구하고, 흥도 나고 춤도 출 수 있겠다 싶었다. 조용히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이날치는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 서울인기페스티벌, 잔다리페스타, 국립중앙박물관, 남산국악당, 홍대 주요 라이브클럽 등에서 부지런히 활약했다. 네이버 온스테이지를 통해 소개된 ‘범 내려온다(with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 라이브 클립은 조회수 80만을 넘었다. 얼터너티브 팝(Alternative Pop)밴드 이날치의 음악은 판소리의 대중화, 국악의 현대화, 한국음악의 월드뮤직화와 거리가 멀다. 재미난 옛 이야기는 조금 특별한 현재의 댄스 뮤직이 되었다. 사람들은 ‘범 내려온다’를 떼창하고 그 음악에 맞춰 스텝을 밟는다.
이날치의 중심에 장영규가 있다. 영화음악 감독으로 잘 알려진 장영규는 한국형 아방가르드 음악의 상징인 ‘어어부 프로젝트’, 불교음악, 가면극 음악, 궁중음악을 소재로 새로운 사운드를 선보였던 ‘비빙’, 민요를 접목시킨 록킹한 사운드와 화려한 퍼포먼스가 돋보였던 밴드 ‘씽씽’을 이끌었다. 2019년 장영규는 다시 이날치를 왜 결성했을까? 그를 직접 만나 이날치 결성에서부터 2020년 계획에 대해 물었다.
이날치는 2018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공연된 애니메이션 음악극 <드라곤킹> 프로젝트를 계기로 결성된 팀이라 알고 있다.
양정웅 연출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의뢰를 받아 음악극 <드라곤킹>을 만든다고,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내가 음악을 맡았다. 작업을 시작하며 ‘안이호’가 떠올랐다. 수궁가에 대한 애정이 많고 그 공연을 실제 해오기도 한 터라 함께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소리꾼들이 배역, 역할을 맡거나 하는 음악극은 하고 싶지 않았고, 노래하는 사람들이 주가 되었으면 해서 조금 다른 식의 작업을 진행했다. 그에 적합한 소리꾼들을 찾았고 그 소리꾼들이 바로 현재의 이날치 멤버인 권송희, 박수범, 신유진, 안이호, 이나래다.
판소리의 성부를 나누고 주고받고 쌓고 하는 것들 또한 소리꾼들에게 익숙한 형태가 아니다. 게다가 2대의 베이스와 드럼만으로 음악을 만들어가는 것 또한 쉽지 않고, 드문 발상이다. 어떠한가?
다섯 명이 함께 부르는 노래를 고민하면서 방법을 찾아 나가기 시작했다. 전통 판소리 수궁가는 3시간이 넘는다. 이 중 주요 대목들만 추려서 같이 부르기, 나눠 부르기를 연습하면서 만들었다. 소리꾼들이 다양한 유형의 작업을 경험해봤겠지만 이런 방식은 또 낯설어 초반에는 힘들어했다. 지금은 익숙한 단계가 되었다. 같은 노래여도 혼자, 둘이, 셋이, 다섯이 부르는 힘이 다 다르다.
이날치는 소리꾼 다섯이 모여 있다. 판소리는 화성이 원래 없는 음악이고, 밴드 음악이어도 화성이 없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전통 판소리가 소리와 고수의 반주로만 진행되듯, 리듬과 소리로 조합한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 베이스도 큰 의미에서 리듬악기다. 소리꾼 다섯과, 리듬악기 셋이 함께하는 조합이다.
이날치와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이하 앰비규어스)가 함께 작업한 온스테이지 ‘범 내려온다’ 영상이 화제가 되었다. 조회수도 압도적이었고, ‘힙하다’는 평이 수두룩했다. 최근 발표한 이날치 싱글 앨범 수록곡 ‘어류도감’ 뮤직비디오에도 앰비규어스가 등장하더라. 앰비규어스와의 작업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나?
앰비규어스를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 작업을 본 것은 2016년 LG아트센터에서였다. 당시 한·불 상호 교류의 해를 맞이하여 LG아트센터와 프랑스 파리의 유명 공연장인 '떼아트르 드 라 빌(Theatre de la Ville)'이 새로운 개념의 무용대회인 당스 엘라지(DANSE ÉLARGIE)가 개최되었다. 앰비규어스도 참여했다. 경연 진출은 하지 못했지만, 앰비규어스 춤을 보면서 규격화된 공연장에서보다 다른 공간에서 더 잘 어울리는 춤이라 생각했다. 다른 무용단하고 확실히 다른 지점이 보였다.
그러다 2019년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의 스페셜 공연인 노동당사 공연의 연출과 음악감독을 맡았다. 군가, 빅밴드 그리고 춤을 특징으로 <우정의 무대> 공연 제작을 구상하고 있었고, 앰비규어스가 떠올랐다. 함께 하자고 제안했고 흔쾌히 허락을 했다. 재밌는 시작이었고, 작업도 흥미로웠다.
장영규와 앰비규어스의 시작이 이날치로도 이어진 건가? 이날치와 앰비규어스와의 작업 방식은 어떠한가?
이날치 작업을 할 때도 앰비규어스가 떠올랐다. 본격적으로 작업을 함께 해봐야지 하면서 그들의 작업을 찾아봤다. 앰비규어스가 하고 싶어 하는 것들이 이날치가 하려고 하는 것들과 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특별히 만나서 연습을 하면서 만들어가지 않아도 같이 놀면서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이날치 음악 전곡을 넘겼더니, 앰비규어스에서 재밌다고 했다. 그래서 이날치 작업도 함께 하게 된 거다.
이날치와 앰비규어스의 첫 공연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시리즈 <위대한 유산, 오늘과 만나다> 개막공연이었다. 앰비규어스에 대해 그냥 믿음이 갔고, 사전 연습 없이 공연 당일 조금 일찍 만나서 리허설을 했다. ‘이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고 상상했던 것들을 제대로 보여줬다. 그 확신이 온스테이지까지 같이 가게 되었다.
때마침 앰비규어스가 본인들 레퍼토리로 전통과 관련한 작업을 준비하고 있는 단계여서 같이 할 수 있는 부분들도 많았고, 영상에 등장하는 특별한 의상도 본인들 작업에 활용하려고 이미 만들어 놓은 옷이기도 했다. 앰비규어스와 작업하면서 어떻게 해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곡 설명을 하고 음원을 전달해주면 알아서 잘 만들어오고, 그게 잘 합쳐지는 것이다. 2020년에도 함께하는 공연을 기획하고 있다.
이날치의 경우 디자인이나 비주얼 디렉팅도 함께하는 파트너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들과는 어떻게 작업하나?
4인의 그래픽 디자이너로 구성된 ‘오래오스튜디오(Ore-Oh!studio)’와 함께 하고 있다. 베이시스트 정중엽의 소개로 2019년 3월 곱창전골에서의 공연 포스터를 오래오스튜디오가 맡았다. 이후 공연 포스터, 굿즈, 앨범 커버 디자인, 뮤직비디오 디렉팅 등 오래오스튜디오와 의견을 모아 함께 만들어 가고 있다. 오래오와 오래오래 협력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들이 제안하는 작업 방식들을 믿고 따르고 있다.
컬래버레이션이 흔하다. 크로스오버는 철 지난 말처럼도 들린다. 이제는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런 것들이 만들어지고, 그런 작업들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컬래버레이션은 특별하지 않게 일어나야 한다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치 특별한 것처럼 조명되는 것이 낯설다. 음악활동을 막 시작하던 시기에는 장르와 지역에 크게 구분 없이 작업하는 사람들끼리 자주 모이는 공간이 많았던 것 같다. 술집이나 카페 등에 여러 장르의 사람들이 모여 놀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함께 작업하기도 하고 누군가의 작업에 도움을 보태기도 했다.
장영규가 생각하는 컬래버레이션은 무엇인가?
협업이다. ‘협업’과 ‘협력’은 의미가 다른 거 같다. ‘협업’은 공동의 목표를 만들고 같이 걸어가는 것, 전체의 책임을 같이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안은미와 내가 하는 작업은 ‘협력’이다. 안은미와의 작업에서는 안은미가 원하는 음악적 역할에 충실하고, 다른 부분도 조언을 하지만 그 결과에 대해 내가 책임지지 않는다. 그건 협업 방식과는 다르다. 그렇게 치면 앰비규어스와 이날치도 협력인거다. 이날치가 목표를 향해 가기 위해 필요한 부분에 대한 제안과 협력의 의미가 크다.
협력의 중심은 ‘사람’이다. 누구와 만나느냐에 따라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달라진다. 과정은 다 비슷하다. 함께하는 사람과 똑같은 목표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다 해결이 되는 것 같다, 바라보는 지점이 다르기 시작하면 엄청나게 힘들어진다.
만나고 싶은 작업자를 원한다고 다 만나서 작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협력을 할 수 있는 파트너들은 어떻게 찾고 만나야 할까?
‘시선’이 중요하다. 평소에 살면서 어느 정도를 바라보고 무엇에 관심 갖느냐에 따라서 누구를 만날 수 있고 못 만날 수 있다. 어떠한 장르 안에서는 그 안에서의 어울림이 익숙하고, 그것들을 또 주입한다. 극장이나 공연 흥행을 위해 ‘누구×누구’란 식으로 매칭하는 것이 조금 안타깝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와 타인을 탐색하고 협업을 시도해보는 방법으로 감각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장영규의 무한한 ‘협력’과 ‘협업’으로 이날치가 탄생했고, 또 지금 트렌드와 감각에 맞는 행보를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날치를 조금은 특별한 댄스 음악을 하는 얼터너티브 팝 밴드로 소개한 것도 인상적이다. 이날치는 무엇이 하고 싶은가?
‘어어부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는 그냥 음악으로 예술이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수입과 그에 따른 재생산 자체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 다음에 ‘비빙’을 만들면서는 국내에서 활동을 하고 싶었지만 신(Scene)이 없었다. 혹시 우리가 음악을 잘 만들면 전 세계에 있는 수많은 신 중 어느 한 곳에 가서 활동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생각보다 빨리 해외 공연이 만들어졌고 투어도 꽤 했다. 그러나 재공연을 요구하는 곳도 없었고, 돈을 대줄 곳도 없었고, 지원금이 없이는 활동이 불가했다. 그 순환이 계속 반복되는 느낌이었다. 시장이 없는 건 아닐까 고민했다. 분명히 음악은 시장이 있는데, 그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음악이 있어야 진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씽씽’을 만들고 2-3년 잘 하면 작게나마 어느 시장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생각보다 빠른 시간 안에 시장의 문턱에 도착했다. 들어가려고 하다가 팀이 해체되긴 했지만. 이날치도 마찬가치로 그런 시장에 도전하고 싶다. 한 번 더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시장에서 살아남아 지속가능한 음악을 하는 것, 또한 팀원 개개인의 생활이 유지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시장에서의 방식에 걸맞은 행보가 반갑다. 한편의 좋은 공연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음원으로, 영상으로, 굿즈로, 연결되는 것이 요즘 시장에서의 방식이다.
공연을 본 뒤에 관객들이 음악이 듣고 싶은 타이밍에 음원이 출시되고, 이후 영상이 출시된 그 순서가 잘 맞아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공연에만 그치지 않고 시장에서 많이 노출되고 소비될 수 있는 방식의 콘텐츠를 만들려했다. 운도 엄청나게 따랐다. 영향력 있는 채널에 소개되고, 함께 협력할 수 있는 다양한 세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이날치를 도와주고 있다.
앞으로 이날치의 계획은?
지난 12월 31일 공연을 끝으로 이날치는 1집 <수궁가> 정규 앨범 준비에 매진하고 있다. 정규 앨범 발매는 6월인데 지난 12월부터 싱글 앨범으로 2곡씩 차례로 발표 중이다. 4곡이 이미 공개되었고, 나머지 곡에 대한 녹음과 뮤직비디오 제작 작업을 하며 상반기를 보낼 예정이다. 앨범 발매가 되는 6월 이후 본격적인 활동을 재개하고 해외 공연도 염두하고 있다. 수궁가 이후에 판소리의 다른 바탕을 시도해 볼 계획이다.
운이 좋아 터지는 것은 없다. 소위 말하는 ‘힙’이라는 것도 쫓는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다양하게 감각하고 성실하게 쌓인 것들이 ‘툭’ 하고 절묘한 타이밍에 수면 위로 올라온다. 장영규는 어어부 프로젝트가 데뷔했던 1997년 이후 지난 24년간 쉬지 않고 밴드 활동을 해왔다. 영화, 무용, 공연, 전시 등에서도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시선으로 협업하고 협력해 왔다. 장영규의 쌓아온 시간과 감각을 배경으로 이날치의 멤버, 그들의 작업에 동의하거나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이 차곡차곡 쌓여져 만든 결과가 오늘의 이날치다.
이날치가 지금의 멤버로 오래도록 젠체하지 않고, 오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꼭 지금의 영리한 방식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지고 불리면 좋겠다. 부디, 시장에서 잘 살아남기를 바란다. 상반기 발매된다는 이날치의 앨범을, 공연을, 굿즈를 한 장 더 사야겠다.
김미소는 사단법인 피스트레인 상임이사,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총 감독이다. 국악을 전공했으나, 일찍이 공연 기획자로 우회해 대중음악, 전통예술, 축제 분야에서 활동해 왔다. 키네틱국악그룹 옌 프로듀서를 시작으로 울산월드뮤직페스티벌, APaMM, 잔다리페스타, 플랫폼창동61에서 공연과 축제를 기획하고 운영했다. 건강한 문화예술 생태계 조성에 관심이 많고, 독립적이고 대안적인 기획자가 되길 꿈꾼다. 최근 난데없이 찾아온 피스트레인 덕에 ‘평화’에 대해 고민하고 탐색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