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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현실, 어떻게 읽어낼까
『2018 예술인 실태조사』 추적하기“예술은 그들의 업이었다. 그러나 그 이상이기도 했다. 그래야만 했다.” 루이즈 페니(Louise Penny)는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로 알려진 캐나다의 추리소설 작가이다. 그의 작품 『빛의 눈속임』은 퀘벡의 작은 마을에 ‘클라라 모로’라는 중견 화가가 오랜 무명작가 시절을 끝내고 몬트리올 미술관 전시를 하루 앞둔 시점에서 시작된다. 전시 오픈 전날 베르니사지(vernissage) 파티가 거나하게 끝나고 다음 날 아침 기사 비평을 기다리던 모로의 남편은 정원에서 처참하게 죽은 시신을 발견한다. 시신의 주인은 클라라의 미대 동문이자 절친한 친구였지만 현재는 결별한 미술평론가. 소설은 그때부터 클라라의 작품 창작과 그에 대한 비평, 마을에서의 삶에 대해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일들을 이끌어내기 시작한다. 끝은 아직 읽는 중이라 모른다. 단, 추리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한 예술가와 그의 업인 예술의 ‘실태’를 추적하여 샅샅이 드러내면서 진행된다.
지난 4월 4일 『2018 예술인 실태조사』가 발표되었다. 예술인 실태조사는 현재 통계청의 승인을 받은 국내 유일의 ‘예술인 대상’ 전국 단위 조사이다. 물론 앞의 작품처럼 정밀하고 정치하게 예술인의 실태를 드러내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현재까지 우리 예술인의 삶과 활동을 보여 줄 수 있는 중요한 조사이다. 이 조사는 1988년부터 3년 주기로 실시되었던 ‘문화예술인 실태조사’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2015년부터는 전체적으로 크게 바뀌어 실시되었다. 2015년 예술인 실태조사부터 ‘예술인 복지법 제4조의2 제1항’에 의거 실시된 법정 조사가 되면서 명칭도 ‘문화예술인’에서 ‘예술인’으로 바뀌고 조사의 틀도 바뀌었다. 본 글에서는 이러한 변화에 대하여 간단히 알아보고 2018 실태조사에 대해 몇 가지 살펴보고자 한다.
일단 조사 대상 및 대상 선정 방식이 크게 바뀌었다. 1988년부터 2012년까지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예총)의 회원협회,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협회의 회원을 대상으로 하여 문학, 미술, 사진, 건축, 국악, 음악, 연극, 무용, 영화, 대중예술 10개 분야 각 200명을 대상으로 하여 조사되었다. 반면 2015년 조사부터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진흥기금 사업 참여 예술인, 30여 협회/단체 가입예술인, 예술 활동 증명을 신청한 예술인 대상 모집단(2015년 약 13만 명, 2018년 약 18만 명) 중 약 5,000명을 표본으로 추출하여 조사하게 되었다. 기존 분야에서 공예, 방송, 만화, 기타(다원예술 등) 4분야가 추가되었고 2012년의 대중예술이 2015년에는 대중음악, 방송으로 나누어졌다. 또한 2018년에는 방송이 방송연예로 변경되었다. 즉, 2015년부터는 분야도 달라졌지만 과거와 달리 모집단을 기준으로 분야별 예술인 분포가 측정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2018 조사의 경우 미술, 기타, 문학, 연극, 음악 순으로 활동하는 예술인의 규모가 조사되었다.
또한 조사 항목도 변화하고 조사 설계도 다른 체계로 구성되었다. 2009년부터 문화예술인 실태조사에 사회보험 가입 여부가 추가되어 2012년의 경우 ‘창작활동 여건과 만족도’, ‘단체참여 및 자원봉사활동’, ‘디지털환경과 문화예술 활동’, ‘교육과 직업’, ‘의식과 문화예술 정책’(의식조사에는 예술적 가치와 사회적 책임, 성공 조건 등의 항목, 문화예술정책 만족도, 의사 반영 정도, 정부의 역할 등이 포함), ‘4대 보험의 형식과 가입여부’의 6개의 대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2015년에는 이를 예술인 복지법에 기반하여 ‘예술 활동 분야’, ‘예술 활동 내용’(2018년의 경우 예술 활동 분야 및 내용으로 통합), ‘고용형태 및 근로 환경’, ‘생활 및 복지’로 구분하였다. ‘예술정책 및 만족도(과거 예술인의 의식 및 정책)는 통계청 승인통계 대상이 아니라서 2015년 보고서에는 실려 있지만 2018년의 경우 제외되고 별도 정책보고서에만 기재되게 되었다.
조사 방식의 변화를 보면 2012년까지는 우편, 전자 우편을 중심으로 하고 있었으나 2015년부터는 일대일 방문 면접 조사를 원칙으로 하였고 대신 응답자가 방문을 꺼리는 경우 편의를 위해 전자 우편 팩스를 일부 활용하고 있어 보다 충실한 실태조사가 되도록 바뀌었다. 사실상 이전(2012까지) 조사 결과와 현재의 결과를 단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향후 지속적인 조사 결과를 기다릴 필요가 있는 까닭이다.
2018 예술인 실태조사에서 모집단은 178,540명으로 전국 14개 분야 예술 활동 증명 신청 예술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사업 참여 예술인, 64개 예술 관련 협회 및 단체의 회원 가입 예술인으로 구성되었다. 2015년의 경우 131,332명으로 구분은 같으나 34개 예술관련 협회/단체 회원이 두 배로 늘었고, 특히 예술 활동 증명 신청 예술인의 경우 약 1만 8천여 명에서 2018년에는 4만여 명으로 대폭 늘었다. 즉 통계상으로 5천 명을 표본으로 조사하여 전국에서 예술인 활동 실태를 크게 바라보기에는 적절하나 모집단 규모가 안정적으로 정착되기까지 아직 정확히 추이를 비교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점이 있다고 하겠다.
조사 항목을 보면 2015년과 달리 소항목에 있었던 ‘프리랜서 활동여부’가 별도 항목으로 추가 신설되고, 겸업 및 전업 예술 활동에 대한 보다 세부적인 조사가 시작되었다. 또한 고용 형태 및 근로 환경에서 ‘지난 1년간 체결한 실제 계약 내용(형태, 기간, 금액 및 연습기간 포함여부)’ 등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예술 활동 분야 및 내용’ 대항목이 이전의 ‘활동’과 ‘내용’이 분리된 것을 통합하고 몇 개 항목(수입 관련)이 ‘생활 및 복지’ 대항목에 포함되는 등 변화가 있었다.
2015년까지 조사 결과가 리서치 업체 중심의 수행 결과였다면, 2018년부터는 연구원에 통계평가센터가 신설되고 전문적인 통계 전문성을 갖추게 되어 보다 정확하고 개선된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는 기반을 갖춘 후 진행된 첫 조사이다. 이러한 실태조사 개선의 기초는 오랜 기간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다음에는 2018 예술인 실태 조사 결과를 몇 가지 살펴보자.
‘현재 활동하고 있는 예술분야 및 주 활동분야’, 그리고 ‘현재 활동하고 있는 예술분야의 직업 및 주 활동 직업’을 함께 보게 되면 장르로서의 분야와 직업으로서의 구분의 차이를 살펴볼 수 있다. 분야를 보면 ‘미술, 대중음악, 연극’ 순으로 나타나고(2015년은 미술, 문학, 연극 순), 직업을 보면 화가 및 조각가/디자이너, 음악실연자, 작가/평론가 순으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저작권(저작인접권) 보유 현황은 전체 25%로 2015년의 17.8%에 비해 증가하였으며 보유 분야는 대중음악, 만화, 문학 순으로 나타난다. 외국 예술 활동 경험도 증가하였으며 이 분야는 공예, 미술, 무용, 기타, 국악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
고용 형태의 경우 전업 예술인이 15년 50.0%에서 2018년 57.4%로 증가하였고 특히 만화, 방송연예, 건축 분야가 상대적으로 많다. 반면 겸업의 경우 응답자의 42.6%로 15년의 50%에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겸업의 종류로는 예술 관련 직업(교수, 강사)과 비예술 직업을 수행하고 있지만, 이 중 일부를 병행하거나, 모두 수행하는 경우도 있다. 모두 기간제, 계약제, 임시직, 시간제가 많아 어려운 여건에서 겸업 활동과 예술 활동을 병행하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게다가 겸업 예술인의 73.6%는 소득 문제로 예술 활동에 전념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예술 활동에 전념할 수 있기 위해서는 정책적 방안의 지속적인 모색과 추진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언론 등에서 가장 관심 있어 하는 ‘수입’ 부분을 보자. 우선 예술인의 가구 총수입(예술인이 포함된 가구의 총수입)을 보면, 평균 4,225만 원으로 조사되어 국민가구소득 평균(2018년 가계금융‧복지조사: 5,705만 원)과 천만 원 정도 차이가 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순수 예술 활동을 통한 ‘예술인 개인 수입’을 보면 평균 연간 1,281만 원(15년 조사 1,255만 원)으로 나타났다. 이 중 월 100만 원 미만 즉 연간 1,200만 원 미만 수입의 비중은 72.7%로 2015년 72.5%와 거의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예술 활동’ 수입에 포함되는 항목은 출연료, 급여, 작품 판매료, 보조금 및 지원금, 저작권 및 저작 인접권 수입, 원고료, 기타 등이다. 이 중 보조금 및 지원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7.3%이며, 건축 분야 1.2%에서 영화 분야 11.0%까지 각 분야(장르)별 편차가 크게 나타난다. 예를 들면 문학의 경우 ‘예술 활동 주 수입원’에서 평균 보조금 및 지원금 비율이 8.1%, 저작권(저작인접권)이 8.2%, 원고료가 44%로 나타나고 있다. 반면 미술 분야는 작품 판매료 비율(50.5%)이 가장 높고 보조금 및 지원금이 7.1%, 급여 10.7%로 나타나 분야별 특성이 뚜렷하다.
이는 순수한 예술 활동에 국한한 것이고 개인 수입 중 예술 관련 직업(교수, 강사 등) 수입은 평균 연간 754만 원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500만 원 미만이 가장 높은 18.3%로 나타난다. 또한 개인 수입 중 비예술 직업 수입은 평균 772만 원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역시 500만 원 미만이 13.1%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한편 2018년 조사는 2015년 조사에 비해 예술인활동증명신청인의 비율이 급격히 높아졌는데 이 항목에 속한 예술인의 경우 연령대가 대부분 낮아 평균 수입이 낮게 나타나고 있다. 향후 이 비율이 현재 비율로 증가할 경우 어느 정도 표본이 안정적이 될 때까지 시계열로 분석하는 데는 다소 애로가 있다. 즉 ‘이전 조사보다 전체적으로 예술가의 수입이 더 낮아졌다.’고 단언하기는 아직 어려운 여건이다(2015년보다 2018년이 높게 나타나긴 했다). 이러한 문제는 향후 개선 방안으로 연계되는데 다음과 같다.
조사에서는 우선 정확한 통계를 위해 ‘예술인 모집단 구축’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관련 협회 및 단체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나아가 정확하게 예술인의 현실을 반영하는 지속적인 지표의 개선이 필요하다. 병행하여 현재 실태조사에 나타난 바와 같이 공공에서는 지속적으로 예술인이 예술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며 또한 창작과 예술 활동의 가치가 제도적으로 인정받고 보장받을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한 정책이 강력히 추진되어야 하겠다.
앞서 이야기한 소설에서 클라라 모로는 퀘벡의 산골에서 일생 동안 작품 활동을 하며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도 계속 창작 활동을 하고 결국 중요한 전시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술인의 의지와 함께 예술인의 위상을 존중하는 마을 공동체와 최소한의 경제적 환경이 바탕이 되었다. 이러한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 서로 다름의 아름다움과 세상에 없는 새로운 것을 도전하는 예술과 예술인의 가치를 국가가 보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두꺼운 실태조사 결과를 다시 한번 바라본다.
김규원은 현재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콘텐츠산업경제연구센터장으로 프랑스에서 지리학을 수학하고 축제에 대한 논문을 쓰다가 한국문화정책개발원에 입사하였다. 초기에는 축제 관련 연구를 진행했고, 이후 문화도시, 문화시설 관련 다소 하드한 연구를 지속했다. 또한 전통공연예술, 지역문화에 관해 20여 년간 다양한 연구 경험을 축척하였으나 콕 집어 전문 분야라고 내세울 것은 없는 실정이다. 단, 국악 관련 정책 연구는 운이 좋아 여러 번 하였으며 초기에 당인리, 광주아시아문화전당 관련 연구에서 사람과 인생에 대하여 많이 배운 것을 아직도 써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