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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주의와 예술을 생각한다
국제학술저널 ‘한국의 문화정책’ 특집호를 반기며얼마 전 어느 교수가 “예술가들은 행정은 너무 몰라 문제”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행정은 시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문화예술행정은 시민과 예술인에게 맞추는 것이 당연하다. 맞춰진 행정을 따르라니, 적반하장도 유분수란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런데 망발에 분노하기에 앞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현상에 대한 고민이 커졌다. 예술이 행정에 맞춰야 된다고 여기고, 정부가 하는 일만 공공으로 인식되는 노골적인 예술행정에서의 관료주의, 급기야 처참한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이어지는 선상의 고리가 무엇일까? 나 역시, 이러한 행정 우선주의 경향이 굳어지는 데 일조한 것을 반성하고 머리 싸매며 고민하던 차에 아주 반가운 글 아니 글 뭉치를 만나게 되었다.
국제 학술지인 『International Journal of Cultural Policy』는 2019년 2월 발간한 25호에서 특별 주제로 ‘한국의 문화와 정치: 국가주의 문화정책의 결과(Culture and Politics in Korea: the consequences of statist cultural policy)’를 선보였다. 홍기원 교수는 특별 호의 발간문을 통해, 대한민국의 상황에서 과거 민주주의와 문화정책 관련 연구들은 있었는데 ‘국가 중심주의와 문화정책’에 대한 연구는 미흡했다고 지적한다. 특히 촛불혁명으로 이어진 현시점에서 본 연구들이 ‘국가주의 문화정책의 효과와 한계’에 중심을 두고 연구 필요성이 제기되고 발표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특집 호에는 모두 8편의 논문이 포함됐는데, 각 논문마다 국가주의를 바라보는 관점의 다양성이 있다는 것을 명시하면서도 한국의 문화정책에서 국가주의를 연구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관료주의 분석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발간문을 읽으며 우선 반가웠다. 지금까지 많은 국외 학술지의 한국 문화예술정책 관련 논문이 정부 발간 보고서나 백서를 기준으로 설명하는 데 그쳤던 아쉬움이 해소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논문들에서 시작해 국가주의와 문화예술정책의 고리에 대해 깊게 파고들어야 할 시점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 자, 이제 논문들을 간략히 살펴보자.
첫 번째로 홍기원이 발표한 ‘한국문화정책의 역사적 궤적: 문화정치에서 문화정책으로 전환에 대한 연구(A historical trajectory of cultural policy in Korea: transforming cultural politics into cultural policy)’를 본다. 이 논문은 예술 장르, 특히 음악을 가지고 조선시대에 유교적 이론과 이것이 바탕이 된 정치적, 규범적 사상이 문화예술정책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을 살펴보고 있다. 이 논문이 재미있는 것은 현대 대한민국의 문화정책이 온갖 서양의 사례들을 몰아넣어서 만들어졌지만, 이미 조선시대부터 정치 이론과 국가 통합이라는 수단으로 예술이 이용되고 정책이 수립되었던 데에서 그 연원을 밝히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의 기원은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사상에 있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논문에서 살펴본 역사적 고찰은 예술이 정치의 수단이 되는 것이 근대를 넘어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많은 벤치마킹을 시도해왔지만, 한국의 문화정책은 이제 겨우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문턱을 통과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로 노승림의 ‘1960-1970년대 남한과 북한의 음악정책 비교연구(Cultural Policies for national music in south and North Korea, 1960s-70s, a comparative study)’를 소개하고자 한다. 음악이라는 장르의 동일성 차원에서 홍기원의 논문과 비교하자면 조선, 그리고 남한과 북한으로 이어지는 예술 정책의 변화와 국가주의를 살펴볼 수 있어 매우 흥미롭다. 특히 북한의 민족음악과 남한의 국악이 국가 정책과 관계를 맺는 부분에 대한 분석이 관심을 끈다.
세 번째로는 특별 호의 가장 핵심 논문이라고 볼 수 있는 육주원의 ‘불완전한 민주주의하에서의 검열: 한국 블랙리스트의 사례 연구(Cultural censorship in defective democracy: the South Korean blacklist case)’이다. 이 논문은 박근혜 정부에서 발생한 블랙리스트 사건을 영화 및 영상 검열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한다. 박정희 독재 정권 아래 1962년 제정 공포된 영화법에서 시작하여 유신헌법/유신 독재와 함께 출발한 공연윤리위원회(1976년 설립)의 검열과 심의 등 영화 정책의 어두운 시기에 대한 설명과 분석이 이어진다. 이어 1995년 영화진흥법과 1998년 영상물등급위원회 발족 등의 변화를 언급한다. 그리고 다시 어두운 시대, 즉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새로운 영화 검열과 국가주의적 관료행정의 탄압으로 역사가 회귀하는 사건을 분석한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좋은’ 콘텐츠 ‘좋은’ 영화라는 개념의 전근대성과 과거 독재로의 회귀를 언급하면서 영화진흥위원회가 정치와 관료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을 강조한다. 여기에서 블랙리스트와 검열이 가능할 수밖에 없는 현재까지 존속하는 시스템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영화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 분야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 이 논문을 통해 정책에서 해결할 부분이 아닐까 생각하게 만든다.
이 외에 정종은은 문화산업정책에 있어 영국의 창의산업정책이 대한민국에 들어와서 새로운 국가 관료주의 신개발 정책으로 변환하는 과정을 ‘한국의 신개발주의 문화정책: 절충주의 정책으로서의 논거와 함축점(The neo-developmental cultural industries policy of Korea: rationales and implications of an eclectic policy)’이라는 논문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이 논문에서는 한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귤이 탱자로 변화하는 과정을 분석하고 있어 정책의 다양한 수용 양상에 대한 생각을 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한편 이혜경은 ‘한국의 새로운 예술후원: 문화정책, 민주주의, 시장경제의 관점에서(The new patron state in South Korea: cultural policy, democracy and the market economy)‘ 논문에서 한류 등과 같은 문화 산업, 나아가 예술 분야에서 개발중심 정책을 편 아시아 국가들을 다룬다. 이를 통해 국가 중심의 후원정책이 시장경제와 상호작용 해 온 과정과 역사, 현상을 분석하고 있다.
이 외에 김세훈과 김세준의 ‘문화와 개발을 다시 생각하다: 한국의 문화 주도 지역개발 정책(Rethinking culture and development: the culture-led community development project in South Korea)‘, 장웅조와 이다현의 ‘비영리 예술단체의 개념과 한국에서의 적용(The nonprofit arts organization concept and its transformation in Korea)’ 등 지역문화 및 문화공동체 정책과 예술 단체 관련 정책에서의 한국의 특수성 및 국가 주도 사례에 대한 논문이 소개되고 있다.
여기까지 매우 짧게 7개 논문을 반가운 마음으로 간단히 소개했지만, 어쩔 수 없이 나의 경험과 고민에 맞추어 의역을 한 부분들은 저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어쨌든 국외에 소개된 특별 호의 8개 글들은 지금 촛불혁명 이후 시스템상에서 우리 문화예술 정책의 판을 바꾸는 움직임과 노력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며, 밑바닥부터 바꿔야 한다는 당위성에 날개를 달아 주고 있다. 이후의 노력은 이제부터 모든 현장에서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번 호에도 역시 빠짐없이 소설을 소개한다. 이번에는 영국의 젊은 (1979년생) 작가 톰 롭 스미스(Tom Rob smith)의 ‘차일드 44’ 시리즈 마지막 편 『에이전트 6』다. 작품에서는 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며 소련 정보국 요원인 냉혈한 ‘레오 데미도프’의 폭발하는 갈등이 그려진다. 소련 체제를 동경하는 미국의 진보적인 포크 가수와 뉴욕의 자유에 놀라는 레오의 아내인 소련 국가 음악가의 삶과 죽음이 겹쳐지면서, 국가주의 예술의 과격한 답답함과 자본주의 국가 저항 가수의 힘든 삶이 소설 내내 펼쳐진다. 이 두 예술가가 뉴욕의 UN센터에서 죽음을 맞게 되면서 소비에트 국가 체계의 신봉자인 레오 데미도프가 자신의 신념과 자신이 종사했던 국가관을 뒤집고 반발, 복수를 실행하며 3부작 시리즈를 마무리한다. 냉전시대를 관통하며 살았던 소련 정보원 레오의 삶과 불행한 죽음을 맞게 되는 가까운 두 예술가의 극단적인 스토리에서, ‘수단으로서 예술’ 혹은 ‘본질적 가치로서의 예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김규원은 현재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콘텐츠산업경제연구센터장으로, 프랑스에서 지리학을 수학하고 축제에 대한 논문을 쓰다가 한국문화정책개발원에 입사하였다. 초기에는 축제 관련 연구를 진행했고, 이후 문화도시, 문화시설 관련 다소 하드한 연구를 지속했다. 또한 전통공연예술, 지역문화에 관해 20여 년간 다양한 연구 경험을 축적하였으나 콕 집어 내놓을 전문 분야라고 내세울 것은 없는 실정이다. 단, 국악 관련 정책 연구는 운이 좋아 여러 번 하였으며 초기에 당인리, 광주아시아문화전당 관련 연구에서 사람과 인생에 대하여 많이 배운 것을 아직도 써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