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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지적 관점의 정책환경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2019년 문화체육관광 분야 성인지 현황 조사 분석 연구최근 언론에는 세계적 재난인 코로나19 관련 이슈와 함께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굵직한 이슈로 채워지고 있다. 이 사건을 보도하는 기사에서는 ‘성인지’라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성인지(性認知·gender-sensitive)’는 일상생활의 성별 차이로 인한 배제와 차별, 유불리 또는 불균형을 감지해내는 능력을 의미한다. 1995년 북경 유엔여성대회에서 성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각종 정책의 주요 근거와 기준으로 ‘성 주류화(Gender mainstreaming)’를 제도에 적용하는 방법으로 성인지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1996년 시행된 <여성발전기본법>에서 이에 대한 기본 개념이 법제화되었고, 2015년 이 법을 전부 개정하여 탄생한 <양성평등기본법>에서 ‘성인지’에 대한 개념을 본격적으로 공식 용어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성인지는 사실 우리에게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낯선 단어였다. 이러한 사실은 빅카인즈를 활용한 뉴스 빅데이터 키워드 트렌드 분석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1995년부터 현재까지 뉴스에서 언급된 ‘성인지’ 키워드의 빈도수 추이를 살펴보면, 최근 1~2년 사이에 해당 단어의 언급 빈도가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다. 이는 2018년 성희롱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문에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표현이 인용되면서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시점과 거의 비슷하기도 하다. 이제 성인지 감수성은 가족, 직장, 교육, 정치, 과학 등 사회의 전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문화 분야에서도 성희롱·성폭력 문제, 성 불평등 문제, 여성/남성 혐오 문제 등이 특정한 소수의 개인이 겪은 일회적인 문제가 아니며, ‘늘’ 존재해왔다는 사실이 미투 운동(me, too)을 통해 알려졌다. 이를 통해 이러한 사건이 터지기 전에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공감대가 형성되었으며, 문제의 본질에 다다르려는 정책적 노력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전통적인 가부장적 사고로 인한 성별 역할의 고정관념이 존재하며 문화예술계 역시 이러한 차별적 요인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오히려 더욱 성차별적 피해를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미투 운동을 계기로 2018년에 ‘문화예술계 성희롱과 성폭력 사례에 대한 특별 신고·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그 결과에 대한 분석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보고서는 ‘남성적 문화, 문화예술계의 고유한 성 윤리, 그리고 독과점화된 성별화된 권력’이라는 3가지 특징을 문화예술계 반인권적 성 문화의 원인으로 제시하였다.
이는 현장의 위계 문제와 더불어 입시제도, 교육 시스템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도제식 사제 관계 등으로 인하여 일방적 권력관계가 형성되고 이러한 특수성으로 인해 권력의 불균형이 생기고, 성희롱이나 성폭력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문화예술계 종사자가 대부분 프리랜서 즉 독립 예술가이기 때문에 업무나 고용 관계로 포섭하기 어려워 정책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현실이 무엇보다 중요한 지점이다.
놀라운 것은 해외의 경우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서 문화예술 전공에 여성 졸업생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저임금, 임시 종사자 형태의 직업에 더 자주 고용된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의사 결정 권한이 있는 보직자나 대표자의 경우는 남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2019년 문화체육관광분야 성인지 현황 조사분석 연구」에서는 정책 환경을 성인지적 관점에서 조명할 수 있는 지수 개발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문화 분야 젠더 구조 지수(이하 CGSI)를 제시하고 있다. 국내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성평등 지수 등은 국가 혹은 전체 산업을 대상으로 집계된 포괄적인 형태의 지수로 문화 분야의 산업적 특성을 바탕으로 종사 환경을 확인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CGSI는 주로 문화 분야의 고용 형태, 직제별 종사자 등의 항목에 남성의 비율 대비 여성의 비율을 지수화하여 성평등 수준을 측정한다. CGSI는 1에 가까울수록 종사 환경이 평등함을 나타내며, 값이 1보다 작을 경우 남성 편향적인 환경, 1보다 클 경우에는 여성 편향적인 환경임을 의미한다. 2019년 기준으로 기관 설문조사 등의 문항별 결과 값을 토대로 임시 적용한 결과는 0.65로 나타났다.
CGSI는 지표 구성 체계에 대한 추가적인 논의를 통하여 세부 지수 발굴 등 확대 적용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 단계이나, 성인지 관점에서 정책을 평가할 수 있는 기초 지표 체계로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해 말 한국예술위원회 비상임위원 최종후보자 전원이 남성으로 선정되어 논란이 일었다가, 제도를 개선하고 선임 절차를 다시 시작했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선임 절차를 진행하는 측의 낮은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지적이 있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의 성인지 감수성은 이전보다 훨씬 높아진 것을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정부위원회의 여성 참여율이 지난 3년간 꾸준히 증가하여 40%에 육박하고 있는 결과 또한 긍정적인 시그널로 볼 수 있다. 정부도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해 8개 부처에서 양성평등정책담당관을 신설하고 분야별 성희롱, 성폭력 방지 정책을 진행하고 있으며, 일상생활에서 성평등을 체감할 수 있도록 지역양성평등센터를 확대하는 등 변화를 만들어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다만 성인지적 관점의 정책 환경은 노동인구 중 여성 비중이 증가하는 단순한 결과적 수치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새롭게 정책 사업을 설계하여 추진한다고 해서 만들어질 일도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창작 및 생산 구조뿐만 아니라, 문화 소비 및 향유 활동까지 모두 포함한 문화 분야 전체에 걸쳐 성인지적 관점이 크로스커팅(cross cutting)되어 반영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례적으로 문화 분야 성인지 통계 DB 구축이 우선되어야 하겠다. 연구보고서 전반에서도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부분은 현재 수집하여 활용되고 있는 통계 DB 종류 및 내용의 한계와 생산 DB의 분류 기준, 범주 표준화 및 호환성 제고 등에 대한 실질적인 개선이었다. 개별 차원이 아닌 남녀로 분리되어 있는 통계를 통해 문화 분야의 여러 측면에서 성별로 인한 불평등한 상황을 점검할 수 있으며, 실제적 차이를 제시하여 국민과 정책 입안자의 이해를 촉진하고, 성 평등 사회로 가는 이정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연수현은 뉴욕에서 평범한 은행원으로 일하다가, 음악가인 배우자를 만나 예술행정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대학원에서 공연예술행정과 비영리회계 실무과정을 마치고, 75년 역사를 가진 극장 뉴욕시티센터 회계 팀에서 근무를 하다가 한국으로 건너왔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입사한 후, 문화비 소득공제, 문화예술 분야 사회적경제 등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현장 밀착형 정책 연구자가 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