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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 삶의 조건과 창작 여건에 주목하라
UNESCO <문화와 예술인을 위한 노동환경> 보고서 분석지난 2019년, 유네스코(UNESCO)는 <문화와 예술인을 위한 노동환경: 1980년 예술인의 지위에 관한 권고의 실행(Culture & working conditions for artists: Implementing the 1980 Recommendation concerning the Status of the Artist)> 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1980년 10월 27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제21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한 ‘예술가 지위에 관한 권고(Recommendation concerning the Status of the Artist)’를 그동안 전 세계 국가가 어떻게 실행하고 있는지 조사하고 사례를 공유하기 위한 연구였다. 분석 보고서는 2015년에 발간된 <1980년 예술인의 지위에 관한 권고의 실행에 관한 종합 분석 보고서(Full Analytic Report on the implementation of the UNESCO 1980 Recommendation concerning the Status of the Artist)> 의 후속으로 진행되었으며, 2015년 보고서를 작성한 캐나다의 국제 문화정책 전문가인 개리 네일(Garry Neil)이 집필하였다. ‘예술가 지위에 관한 권고’는 문화예술이 우리 사회에서 꽃피우고 사회에 긍정적 에너지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생산하는 예술인 개인의 안녕(well being)한 삶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유네스코는 창립 초기부터 예술인의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가치에 주목해왔고, 특히 ‘표현의 자유’ 문제에 집중해왔다. 이 권고에서 예술인이 가진 삶의 조건과 창작 여건에 주목하고 이를 개선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임을 주장하고 있다. 보고서의 구성은 ① 예술인의 지위 개선을 위한 정책과 입법 체계, ② 예술인과 디지털 환경, ③ 예술인의 초국가적 이동성, ④ 인권과 기본적 자유로 나누어 분석하고 있다. 특히 이번 보고서에는 최근 전 세계에서 일어난 ‘미투(me, too)운동‘ 등의 영향과 문화예술계의 성 평등 이슈를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문화예술계에서 성 불평등이 일어나는 맥락과 이에 대응하는 관점의 변화 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더불어 이민 및 난민 문제 등 최근의 국제 이슈가 예술인의 초국가적 이동성, 표현의 자유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다각적으로 분석하였다. 2019년 보고서의 주목할 만한 점은 한국 사례가 비교적 자세하게 소개되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은 예술인 지위에 관한 법률 제정, 예술 분야 디지털 활용 촉진 정책, 성희롱과 개인 안전보장 등의 내용이 사례로 자세히 소개되고 있다.
보고서는 가장 먼저 전 세계 국가들이 예술인의 지위 향상을 위한 정책적 지원을 위해 어떤 법·제도를 마련하고 있는지를 조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보고서에 소개된 예술인 지위 향상을 위한 각국의 정책 진행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뉠 수 있는데, ① 예술인 지위 및 복지에 특화된 법의 제정, ② 조세법, 사회복지법 등 다른 법·제도에 예술인 특별 조항의 마련, ③ 다른 문화예술 정책에 예술인 지위 향상을 위한 이슈를 다루는 방식으로 나뉜다. 모로코의 경우 2003년 「예술인 지위법」을 제정했는데, 이 법은 서면계약 의무화, 최소임금 보장, 예술인 등록 등을 포함하고 있다. 스페인의 경우 2019년 9월 예술가와 문화 분야 종사자들의 지위 향상을 위한 75가지 조항을 채택, 비활동 기간의 예술인의 사회분담기여금 조정과 경력 단절 여성 예술인을 위한 사회적 안전장치를 마련하였다. 한국의 경우 첫 번째 경우에 가까운데, 「예술인 복지법」을 제정, 실행 기관인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을 설립하여 운영하는 사례가 본 보고서에 자세히 소개되기도 했다. 성 평등을 위한 각국의 정책 지원 방안에도 한국을 비롯한 다양한 사례가 소개되었는데, 스웨덴의 경우 모든 예술가에게 보조금을 줄 때 특정 성별 비율이 60:40 이상이 되면 안 된다고 규정하기도 하였고, 영화 재정기금도 남녀 동등하게 지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말리공화국에서도 모든 예술 영역에서 국가성별정책(gender policy)이 적용되도록 하여, 2016년 예술인의 지위에 관한 법령에 예술 작품들의 보호 및 예술인의 사회적·경제적인 권리의 실행에 있어서의 성 평등을 보장 포함하기도 하였다. 한국은 예술인 지위 개선을 위한 법·제도 마련 부분에 특히 자세히 소개되는 만큼 타 국가들에 비해 제도 구성 면에서 뒤처지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보고서에 소개된 국가들에 비해 아직 세부 내용 구성에서는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특히 예술인을 위한 ‘사회적 편익’ 관련 조항이 빈약하였는데, 현재 「예술인 복지법」의 ‘사회보장’ 관련 내용은 산업재해보험과 관련한 사항만 규정되어 있는 반면, 프랑스나 케냐의 경우 상해보험뿐만 아니라 최저임금, 휴가 보장, 출산휴가 등 다양한 예술인을 위한 사회보장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벨기에는 가족 혜택 외에도 연금이나 직업병에 대한 수당 등을 제공하고 있었다. 성 평등 문제에 있어서도 니카라과나 스웨덴과 같이 보조금 지원 등에 있어 성별 비율을 설정하는 등은 향후 고려해볼 만한 사례이다.
보고서에 소개된 많은 국가들은 공정하고 안정적인 고용 보장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제시하고 있었다. 한국의 경우 입직 단계 예술인을 위한 양성 프로그램에 치중된 데에 반해, 보고서에 소개된 다른 국가들은 다양한 단계의 예술인을 위한 경력 개발 프로그램을 제공하였다. 스페인의 경우 경력 단절 여성 예술인을 위한 사회적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특별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프랑스는 예술인의 출산휴가를 보장하는 제도를 운영하기도 하였다. 국내에서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 등이 예술인의 고용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제공되고 있지만, 안정적인 노동환경 구축을 위한 다각적인 종합 계획이 마련되어 있지 못하다. 예술인을 위한 전략적인 노동 정책이 부재한 것이다. 많은 예술인들이 특히 중견 단계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예술 활동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의 경력 주기를 고려한 다양한 직업 역량 개선 정책 프로그램의 개발이 마련되어 있지 못하다. 예술인의 근본적인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다양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보고서에 소개된 많은 국가들은 예술인을 위한 별도의 법·제도 구축을 진행하는 한편, 다른 정책 영역에 예술인의 노동 방식의 특수성을 반영한 특별 조항을 마련하고 있었다. 특히 많은 국가에서 예술인의 불규칙한 소득 변동성을 고려해 ‘특별 조세제도’를 적용하고 있었다. 예술인은 작업의 단계에 따라 해마다 그 수입에 큰 변화를 겪는다. 예를 들면 문학 작가의 경우 집필 기간에는 거의 소득이 없지만, 작품을 출판한 후 일시적으로 소득을 얻는다. 이렇게 작업 단계에 따라 해마다 변화가 큰 예술인의 직업적 특징을 반영해, 호주, 불가리아, 체코,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독일, 헝가리,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페인, 영국 등은 소득평준화(Income averaging) 제도를 적용, 비정형 방식으로 소득이 발생하는 예술인들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고 있었다. 또한 아일랜드나 캐나다 퀘벡주, 리투아니아, 스페인 등은 일정 수준까지 예술인의 창작 활동으로 인한 수입에 면세 혜택을 적용하여 저소득 예술인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예술인을 위한 특별 조세 조항의 도입은 간접적인 방법으로 예술인의 활동을 지원하고 노동환경을 개선해 줄 뿐만 아니라, 단기적으로 추진되는 사업이 아닌 지속 가능한 정책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 보고서에 소개된 많은 국가들은 예술인 복지를 위한 별도의 기금 운영을 도입하고 있었다. 기금은 예술계 내부에서 예술인과 이들의 고용인의 기여금에 의해 조성되고 국가가 여기에 추가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즉 예술계 스스로의 사회분담금이 지불되고, 여기에 국가가 일부 재정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별도의 예술인 사회복지 기금의 설립은 예술인 지위 향상을 위한 지원을 더욱 폭넓게, 지속 가능하게끔 한다. 그러나 이는 예술계 종사자들의 ‘사회분담금 지불’이 전제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많이 소개되고 있는 프랑스의 엥테르미탕의 경우도 예술인과 이들의 고용인, 그리고 국가 및 공공기관의 사회분담금을 바탕으로 기금을 운영하고 있다. 혜택을 제공하는 대상도 사회분담금을 납부한 사람에 한정되어 제공되고 있다. 국내 예술계의 경우 4대 보험 납부에도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어서 아직 이러한 분담금의 지불에 대해 초기에는 거부감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지속 가능한, 그리고 더 확대된 예술인 복지를 위해서는 현재와 같은 국고 지원만으로는 재정적 한계가 있으며, 예술계 내부로부터 조직된 별도의 지금 마련이 필요하다. 장기적인 차원에서 재정 기반의 다양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한 예술계 내외부의 인식 개선 활동이 필요하다.
차민경은 ㈜크레디아에서 클래식 공연기획자로 예술경영 분야에 처음 발을 디뎠다. 영국 런던시티대학(City University London)에서 예술경영(Arts Management) 석사를 취득한 후에는 CJ문화재단에서 예술단체 지원, 문화예술교육 등의 업무를 진행하였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꿈의 오케스트라’ 사업을, (주)MBC에서 ‘뉴욕 필하모닉 평양 투어’ 등을 진행하기도 했다. 2013년 성균관대학교에서 공연예술학 박사(예술경영 전공) 취득 후에는 연구에 집중하며 숙명여자대학교 문화관광학부 초빙교수, 성균관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등을 역임하였고 경희대, 서울예대 등에 출강했다. 현재는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예술정책연구실 부연구위원으로 주로 공연예술, 예술경영, 예술인복지 등의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