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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과 협력 위에 쌓아가는 부추김의 미학
예술행정가들이 말하는 예술행정③예술행정과 예술현장의 바람직한 관계설정은 어떻게 가능할까. 전통적인 예술지원 외에도 문화예술교육, 지역문화, 예술경영, 예술인복지, 장애인예술, 문화도시를 비롯한 문화예술분야의 영역확대에 따라 수많은 중간지원조직들이 생겨났다. 지역분권과 자치 확산에 따라 지역문화재단 역시 100여개를 훌쩍 넘겼고, 지금도 여러 지자체가 문화재단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현장에서 들려오는 파열음은 여전하다. 예술현장과 행정이 상호 불신을 걷어내지 못한다면 결국 그것은 전체 문화예술계의 정체로 이어질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한편에서는 예술행정을 혁신하려는 시도도 계속되고 있다. 예술행정에 대한 고민을 오랫동안 이어 온 관계자들과 함께 예술행정이 서 있는 자리와 견지해야 할 태도, 나아갈 방향을 짚어봤다.
일시/장소: 2021. 4. 1.(목) / 온라인 화상회의 |
예술행정이라고 했을 때, 기관별로 고유한 이슈들이 있을 것 같다. 우선 하고 계신 일들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를 먼저 해주시는 게 좋겠다.
고윤정(부산영도문화도시센터장, 이하 고윤정)
부산영도문화도시센터에서 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도시가 본래의 기능을 회복하고 시민이 본질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게끔 문화가 어떤 기여를 할 것인지, 회복성과 회복력을 촉진할 수 있게끔 계속 질문하고 있다. 마을, 행정, 이웃에 대한 본질에 대해 묻고 고민하는 것이 문화도시센터의 역할인 것 같다. 스스로에게 가장 큰 화두는 ‘문화적’이다. 문화적 행정, 문화적 도시, 문화적 주거라고 흔히 말할 때 그에 대한 본질적인 의미를 물어보는 것이다. 매일매일 공무하며 그 의미와 역할을 영도라는 자치구 안에서 생각하고 만들어가는 일을 하고 있다.
자기 일에 대해서 어떻게 가치를 매기거나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도 행정의 중요한 파트라고 생각이 든다.
오세형(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전략기획부장, 이하 오세형)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전략기획부 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고윤정 센터장님이 장소성을 짚어주셨다면, 내가 일하는 기관은 사회적으로 소외받거나 부진한 영역을 위한 곳이다. 문화적 현상들이 활성화되고 다시 읽기(re-reading)되는 영역 중에서도 장애인에 해당된다. 문화는 차치하고 복지, 교육, 경제 등 사회 전반에서 소외 받아왔고 조명된 적 없는 분야다. 그러나 가능성을 발견하고, 사회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메시지가 있겠다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다.
예술현장에서 예술행정과 예술가 간 긴장과 협조관계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고민하고, 이야기해왔던 주제이다. 예술행정가는 예산 주체(지자체, 국가, 공공기관)-현장 예술가-시민 사이에서 일종의 ‘번역’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기본적으로 가치관과 이데올로기, 지향점이 다른 상이한 두 체제가 만나 대화 채널을 만들고,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외계어를 쓴다. 공공의 영역에서 예술성을 발휘하는 예술가들과 그것을 예산과 행정 절차 사이에서 매개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그 사이에서 쭉 갈등이 있어왔는데, 행정 제도의 과대화, 비대화를 거치면서 갈등이 점차 공고해져왔다고 체감한다. 그동안 현장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나 시민들의 숫자는 크게 변화가 없는데, 다만 그걸 분화해내면서 다양한 목적의 제도나 기관이 생겨났다. 현장에서는 그 논리 자체를 이해하기 쉽지 않은데도 예술행정이 예산으로 예술가들을 현장 훈련시키고 길들이는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조직이나 예산의 논리에 맞춰나가는 흐름이 강해지고, 행정가들이 번역가이자 매개자 역할에 주도성을 상실하면서 현장과의 원활한 소통 동력이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고 본다. 이러한 관행과 수동화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민을 다들 하실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거대한 시스템을 바꾸기는 어려운 일이라, 개인적으로는 일이나 일터를 바꿔나갔던 것 같다.
서두인데 핵심을 찌르고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는 얘기들을 많이 던져 주셨다. 예술행정의 정의에 대해 짚어 주셨는데, 김주희 팀장님 말씀을 먼저 들어보고 예술행정의 정의에 대해서는 염신규 소장님께 말씀을 부탁드린다.
김주희(전주문화재단 예술놀이팀장, 이하 김주희)
전주문화재단의 예술놀이팀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금껏 해왔던 일들이 문화예술교육의 흐름을 따라다녔다는 생각이 든다. 문화의집에서 전북의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로, 그리고 문화재단이 생겨 센터 업무가 재단으로 옮겨가면서 전북문화재단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광역에서 문화예술교육과 문화사업 업무를 작년까지 하다가 기초문화재단에서 일하고 있다. 재단 공간이 팔복예술공장 시설 안에 입주해있는데 이곳은 중앙 정책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공간이다. 그러다보니 재단이 지향하는 문화예술교육이나 예술놀이의 정체성이 확고해지기 전부터 이미 하드웨어, 소프트웨어가 조성된 환경에서 일하려니 고민이 많다.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 기반, 예술 전공자인 행정인력이 아닌 입장에서 예술가들을 공모나 지원사업의 틀 안으로 자꾸 들어오게끔하는 과정에 회의감을 많이 느끼고 있다.
염신규(한국문화정책연구소 소장, 이하 염신규)
한국문화정책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전에 다른 패널분들처럼 공공기관에 속해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현장을 대변하는 역할은 아니라는 전제를 두고 싶다. 예전에는 자바르떼 등을 포함한 예술단체, 예술 사회적경제 조직에서 일한 적이 있지만, 그 이후에는 예술현장 한복판에 있다기보다는 예술 관련한 제도, 행정, 정책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R&D 역할을 해오고 있다.
사전적 의미에서 행정이란 입법과 사법을 제외한, 국가가 통치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그리고 포괄적으로 ‘예술행정’이란 예술에 관련된 국가가 개입할 수 있는 일들을 통치 수단을 활용해 만들고 지원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지난 20여년 간 국내에서 예술행정의 영역이 크게 증가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지금의 문화체육관광부의 업무 영역이 작고 단순해 문화예술교육, 지역문화, 예술인복지 등 지금 여러 기관에서 나누어 하는 일들이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21세기 이후 분야가 넓어지고 사업이 늘어남에 따라 행정 업무 종사자들도 크게 늘어났다.
정책 사업들이 많고 다양해진 것, 수혜자가 늘어난 것은 장점이다. 그러나, 국가 주도, 행정 주도로 이루어지는 바람에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이뤄졌던 일들에 국가 개입이 과도해지는 점, 예술행정에 의존하지 않고서 자생하기 힘들어지는 점이 아쉽다. 이러한 변화를 일방적으로 좋다거나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20년 전쯤에 비해서 예술현장과 행정의 접점이 많아졌고 그만큼 기대도 아쉬움도 늘어났다.
예술행정이 많이 분화하면서, 관계들도 복잡해졌고 관련 기관들이 많아졌는데 어떻게 평가하고 계신지 궁금했다. 특히 시작한지 몇 년 안 된, 문화도시 같은 경우 지역과의 관계를 맺는 방식이 좀 다를 것 같기도 하다. 또, 지역문화재단에서는 전통적으로 관계를 맺어온 방식들이 있지만, 이 문제를 어떻게 판단하고 계신지 김주희 팀장님과 고윤정 센터장님이 먼저 말씀해주시면 좋겠다.
고윤정
중앙 정부의 정책이 지역에까지 내려오게 하기 위해 정책적·제도적으로 보완이 많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반면 새로운 정책의 방향과 이슈가 왜 현장까지 전달되지 못하는지를 생각해보면 지역에 오랫동안 주류로 활동해온 조직들이 그 요인이다. 새로운 정책 담론은 대체로 지역의 주류 세력과 배치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 지역 중간 조직들이 열린 구조를 갖고 폐쇄성을 극복하는 과정을 갖고 새로운 시각과 상황을 열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문화도시 사업의 경우 기존의 토착 세력, 주류화세력과 시민 조직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이 판을 흔드는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김주희
중앙 정책이 지역까지 도달하는 방식에 혁신이 필요하다. 기본적인 사업의 원칙이나 방향성에 맞춰 지역 사업을 설계하다보면 그 안에서 온전한 지역의 특색이란 게 있을까 싶다. 우리 모두가 바텀업(bottom-up) 형태에 익숙하지 않고, 어떤 경로를 거쳐 누구와 상의해야 하는지, 필요한 것을 어떻게 요구해야 하는지에 대해 무지하다. 예를 들면 기초단위 문화재단이 새로운 뭔가를 하기에는 자체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 공모 사업에 뛰어들자니 재단이라는 조직 형태가 발목을 잡고, 민간과 경쟁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닌 형편이다. 예전에는 문화예술교육 관련 예산이 중앙에서 광역으로, 광역에서 기초로 내려오는 방식이었다면, 요즘은 광역문화재단에서 기초 문화예술교육 거점들과 협업을 할 수 있도록 일부 예산을 배정하고 있어 자율적인 기획이나 매개 역할을 할 수 있어 고무적이다.
정책이나 사업 기획 프로세스 중 사전 간담회, 공유회, 설문조사 등의 이름으로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장치는 언제나 있어 왔다. 그러나, 실제 실행 단위에서 아쉬운 소리가 늘 들리고 왜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지에 의문을 갖는 이들이 많다. 중간지원조직의 입장에서는 시간·예산·인력 등의 이유로 최선의 선택을 하기 힘든 한계가 분명한 측면도 있다. 이 둘의 간격을 어떻게 좁히느냐가 행정의 중요한 고민 중 하나일 것이다. 담당했던, 혹은 담당하고 있는 사업에서 유사한 사례들을 공유해주신다면?
오세형
문화예술교육, 장애인예술, 예술인복지 등 문화예술 안의 다양한 분야 안에도 예술가, 문화기획자, 기관 또는 협회들, 문화체육관광부, 국회까지 각자의 이해관계 속에서 그룹화 되어있고 상황에 따라 균열과 갈등을 겪는 원리 구조는 다 비슷한 것 같다. 초점을 행정 기관으로 두면, 결국 조직에 비전과 목표가 확실히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예를 들면 ‘청년 문화 활성화’라는 단어를 두고도 서울 홍대와 부산 영도구의 체감은 각기 다를 것이다. 그런데 중앙 주도로 사업 컨셉과 예산 책정 방식까지 평균화된, 균일한 방식으로 지역마다 특성화를 시키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일단 모순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실행 기관이나 조직들은 악전고투를 하게 되는데 이럴 때 목표나 비전이 뚜렷하고 예리하지 않으면 소모되고 지쳐서 타협하게 되며, 최초의 의도가 희석되고 평범해져버리는 것을 봐왔다. 결국은 기관과 기관의 사람들이 주어진 사업이나 일을 자기 방식으로, 창의적으로, 독특하게 끌어내지 않으면 안된다. 각자의 미션과 목표를 뚜렷하게 갖고, 사업에 담아내야 비로소 소통할 의욕과 활력이 생길 것이다.
고윤정
구체적이고 명확한 목표 의식을 어떻게 갖고 갈 것인가가 관건이다.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얽혀있는 현장에서 갈등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무엇을 이루어나갈지에 대한 명확한 목표의식들과 논의 전달이 가장 중요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지역에서 빈 집을 활용하는 사업을 진행한다고 치면, 이 공간에 기대하는 바가 각기 다르다. 행정은 일단 이 집을 어떻게든 채웠으면 좋겠고, 예술가는 작업 공간으로, 주민들은 커뮤니티 공간으로 기대한다. 처음부터 목표를 정확하게 공유하지 않으면 오해로 인해 갈등이 생기고 싸움판이 된다. 거버넌스에는 조정자에 의한 목표 설정과 공유, 접점을 찾아가는 시간들이 필요하다.
목표도 지역과 대상에 따라 사용하는 언어 정리가 필요하다. 또 예를 들어 ‘생활 문화 활성화’를 어떤 기관이 비전으로 설정한다면, 그걸 실현하기 위한 목표 의식이나 내용은 더 구체적이고 명화해야 한다. 문화도시의 과제는 이 비전과 목표들을 실질적인 언어, 삶의 언어로 바꾸고 시민들과 예술가의 눈높이에 맞게끔 전달하는 것이다. 그 전달력에 사업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염신규
넓은 차원에서 한국의 행정 문제는 민주주의 문제와 깊이 관련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처럼 빠르고 편리하게 행정 서비스가 이루어지는 곳이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그럼에도 예술행정이 불편하고 일방적이란 인식을 받게 되는 것은 일종의 공민권 의식, 문제가 발생했을 때 민간 차원에서 스스로 참여해 해결할 수 있다는, 권리와 의무 양 측면의 의식이 형성되지 않아서라고 본다. 그러다보니 여전히 사람들을 모아놓으면 이해관계를 둔 갈등이 일어나는 경우가 잦으며, 자치의 룰 안에서 이를 스스로 조정하고 공공선을 찾아 개선하는 역량이 아직은 부족하다. 국민성의 문제가 아니라 경험 자체가 너무 부족했다. 제도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이런 경험이 축적될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던 탓이 크다.
김주희
질문에도 포함된 것처럼, 사업을 실행하기 전에 간담회나 수요 조사 같은 것들을 많이 한다. 그런데 현장의 소리를 듣겠다는 핑계로 설계를 허술하게 해놓고 시작하는 경우가 다수 있다. 문화예술교육에서도 자율성을 갖기 위해서는 기획 자체에 기획자나 예술가가 촘촘하게 설계하고 시뮬레이션해보는 치밀한 준비가 필요한데, 그 자율성을 잘못 해석해 방임이 되어버린다. 수요자 측에서 기획에 과도한 여지를 남겨놓을 경우, 수요에 응하는 이들이 같이 방향성을 잃는 경우이다. 그러다보면 의견 수렴의 자리가 결국 불평불만이 오가는 자리로 끝나버리게 된다.
행정과 현장의 언어가 서로 다르다는 말들을 한다. 문화예술교육은 그 대상이 전국민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필요성이나 성과를 정리하는 행정 문서는 현장에는 쓰이지 않는 언어들이 가득하다. 광역문화재단에서 일할 때 지원사업 공고문을 쓰면서 고민이 많았다. 공고문은 지극히 행정적인 언어로 예술단체에게 따뜻한 문화예술교육을 기획할 것을 요구한다. 생각 끝에 그들에게 요구하는 사업 계획서의 양식과 용어, 단어들을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그래야 같은 목적과 방향성을 가진 사람들끼리 파트너십이 생기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현장의 요구가 구체적이고 끊임없이 분출되며 행정과 의견을 나눌 수 있으면 그나마 좁힐 수 있는 간격이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현장이 정책이나 행정에 대한 불신이 높아 자포자기 상태에 이르는 경우가 없지 않다는 것이다. 앞의 질문과 유사한 내용이지만, 현장의 불신을 불식시키기 위해 어떤 일들이 가능할까. 한편으로는 행정 단위에서 예술가와 예술단체에 대해 갖는 불신 또한 존재한다.
오세형
행정 측면에서는 이나라도움을 예술의 미션이나 불확실함에서 생기는 불안요소를 해소하는 안전장치라고 생각하는 면도 없잖아 있다. 그런데 이 시스템에 접근하기 어려운 이용자들, 예를 들면 시각 장애나 언어 장애가 있는 분들은 전화를 하고 직접 찾아온다. 그럴 경우에 작성, 정산, 결과보고서 제출까지를 내부 직원이 돕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우리 입장에선 행정 서비스를 더 포용적으로 열어두어야 하는 부담이 있고, 그분들 입장에서는 정산의 투명성 같은 건 의미가 없어지는 셈이다.
두 번째로, 현장의 불신은 공정성, 평등성, 투명성에서 온다. 체감상 한 십년 전쯤으로 회귀한 것 같은데, 심의 자체를 믿지 않고, 공공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의사소통과 결제, 보고체계를 거쳐 문제를 해결해나간다는 것도 믿지 않는다. 그 불신을 해소하려 절차를 강조하고, 서로 안전장치를 많이 만드는 쪽으로 일이 진행되니 피로감이 쌓이는 것이다. 이해관계가 간의 갈등이나 해결관계로 경직화되는 모습을 많이 본다. 어쨌든 예술가가 존재해야 기관이 존재하는 거고, 기관은 공공의 장치를 통해 예술가에게 활로를 모색해주는 상호보완적 역할을 위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
고윤정
첫째, 지원사업을 주로 담당하는 기관들의 경우 데이터 통계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공정성을 두고 큰 불신이 있다. 지원 사업이 왜 이렇게 설계되었는지, 심사활동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정보 공개들이 없기 때문이다. 문화재단에서 정책 기능 강화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그것이 담론 정책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 이전에 훨씬 강조해야할 것은 앞서 말한 데이터를 정리·오픈하는 기능이다. 이 자료가 공유되는 것 자체가 공정성이라고 본다.
둘째로는 지원 행정 조직이 담론을 만들거나 해결해나가는 과정에 언제나 새로운 사람을 호명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세 번째는 예술 장르간, 참여자간 다양한 주체들이 모여 직면하면서 협업의 경험을 갖는 것이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
마지막으로는 예술가들의 가치, 그들의 작업에 대한 존경을 담아 그들을 지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행정 업무 만으로는 그 과정이 좀 약하지 않나 싶다. 기관 입장에서 보자면 사업 목표나 성과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행동이 부족할 수도 있다. 지원 받은 예술가들이 그들이 해낸 역할, 결과를 데이터로 만들어 발표해 알리는 것도 공공의 중요한 역할이다.
염신규
한국의 재정 부처부터 행정 기관들은 대체로 문화예술 예산을 소모성 예산이라고 여기는 인식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것 같다. 산업 부처나 기업 대상 예산에는 산업적 낙수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반면, 문화예술 분야에는 그냥 써버리는 돈이라 여기는 경향이 강하고, 그 자체에 대한 존중이 없다. 그런 구조 속에 짜여진 사업들이다보니 앞서 언급된 것처럼 틈을 허용치 않는, 건조한 행정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는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문화예술계에서 성과라고 이야기하는 향유자 수 같은 계량적 수치는 재정 부처 단위에서 보기에는 미미하다. 한마디로 성과를 그런 식으로 증명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니 성과를 입증하는 방식 자체에 대해 정성적인 방법과 사회학적 분석 등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근본적으로 다시 고민할 필요가 있고, 예산 집행 흐름 자체를 바꾸는 작업도 어렵지만 필요하다.
김주희
예산을 받는 입장에서는 항상 받아온 예산을 공정하게 재분배하는데 치중하고,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에 매몰되다보니 수요가 무시될 수밖에 없다. 전주에는 전북 전체 예술인의 50%가 거주하고 있는데 공평함을 우선해 수치나 수요가 무시된 채로 동일하게 예산을 배분하는 식이다. 마치 예술인복지를 사회복지 수준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사업계획서의 참신함이나 창작활동의 독창성보다는 폭넓은 지원, 평등한 지원의 양적 문제에 매몰된다. 또 예술인 교류 지원사업에서는 지역별 제한을 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사업 특성이 교류에 있으면서도 행정 관할이란 이유로 지역의 예술인이 우리 지역으로 진입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공공성, 공정성, 투명성 같은 것들이 과연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지도 문제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낯선 용어였던 거버넌스가 이제는 거의 모든 사업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남발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술행정에서 거버넌스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어떻게 기능할 수 있을까.
고윤정
문화도시사업을 진행하다보니 거버넌스의 폭과 깊이가 달라지는 지점이 있다. 이를테면 이전에는 구·시청의 문화과, 문화관광과, 문화예술과와 만나는 정도였다. 그런데 문화도시란 이름으로 유례없이 160억, 200억 단위의 예산이 오가고 지역 간 경쟁이 붙다보니 도시 사업과 정책에 관련된 모든 과들과 만나고 있다. 해양수산과, 도시안전과 그리고 각 과들과 연관된 중간지원조직들까지, 이들과 협력 플랫폼을 만들어내는 게 정말 신선하고 설레는 경험들이다. 서로의 언어를 번역해 이해시키면서 서로의 풀을 교체적으로 만들어는 면에서 나름대로 성과가 있을거라 생각한다.
김주희
거버넌스 외에도 차이점은 분명히 있지만, 의도나 의미에서 비슷한 역할을 하는 네트워크나 플랫폼을 어떻게 다르게 정의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거버넌스는 예술행정 일을 할 때 너무나 당연하게 부여되어 있고, 그렇다면 예술행정 자체로서 거버넌스를 하고 있는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해보니 거버넌스의 역할을 꼭 공공이 주축이 되어야하나 싶다. 행정도 현장이 기반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행정이 최대한 유연성을 발휘를 할 수 있을 때 현장과의 거리가 좁혀지고 동일시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술에도 행정이 필요하고 현장과 행정이 어떤 반대어나 반의어가 아닌 것처럼 공생할 수 있는 어떤 지점이 있을 텐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고민이 많이 됐었다.
예술행정 인력들의 직무 유입경로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체감하는가? ‘세대론’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으나, 예전에는 예술전공자-민간 활동-공공기관으로의 프로세스가 대부분이었다면 최근에는 예술행정인력이 ‘준공무원’에 가깝다는 인식 때문에 비예술전공자의 문화예술 공공기관 입직 케이스가 많아진 것 같다. 단순히 현장의 문제의식이 희석된다는 것만이 아니라, 새로 유입되는 인력들을 어떻게 성장시킬지의 문제가 동시에 제기되는 셈이다. 각각의 조직별로 어떻게 대응하고 계신지, 혹은 어떤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 말씀을 부탁드린다.
고윤정
비교적 최근 세대들과 일하면서 느끼는 건 그들이 공정성, 명확한 목표, 목표에 대한 피드백을 원하는 세대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조직이나 관리자 입장에서는 그 일이 어떤 역할을 하는거고, 목표가 무엇이며, 어떤 기대를 할 수 있을지를 명확하게 토의하고 제시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는 이 과정을 위해 서류 양식을 바꾸었다. 사업계획서 작성에서부터 일을 설계하기 위해 사전에 진행한 리서치와 결과, 동료들과의 논의 결과 등도 적게 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일이 무엇인지, 역할과 기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보게 한다. 조직 차원에서도 변화와 혁신을 위해서 조직 운영 계획과 같은 조직문화를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 문화 기관들 사업 계획에 앞서 조직 문화에 대한 고민을 당해 연도 경영 계획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세형
직업이 객관적으로는 개인의 삶을 유지시키는 수단이긴 하지만, 문화예술계 안에서 직업을 보자면 행정이라는 말로 분화시키지 않았으면 한다. 어쨌든 현장을 부추기고, 예술가나 기획자, 담론을 만드는 사람들을 모으고 의욕을 내게 해 화학 작용이 일어나게 하는 일도 예술행정의 중요하고 생산적인 일면이다. 개인적으로도 이런 면에 관심이 제일 많다. 그 외에 행정 업무, 즉 프로세스를 정비하고, 예산을 받고 집행하는 일들은 비교적 단순 업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감각과 감수성을 바탕으로 미적 체계화를 이루는 일이라는 면에서 예술가와 행정가들이 다르지 않다. 이런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과 구성원들이 일을 잘 배분해서 해내고, 조직이 그것을 구성해내면 요즘의 인력 체계 변화에도 대응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전공자와 비전공자로 구분하기보다는, 일에 대한 이해정도, 관심, 애정, 전문성에 대한 열의, 친화성이 우선인 사람들이 친화적인 행정가라 생각한다.
김주희
재단에서 최연소 팀장이다보니 직원들과 약간 스타트업 회사같은 분위기로 일하고 있다. 팀장이 된 후 예술놀이팀의 근무 공간을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별도의 장소로 옮겼다. 환경을 바꾸고나니 외부에서 오는 예술인도 쉽고 편하게 만날 수 있고, 팀 고유의 업무 환경을 갖출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근무 환경이 유연한 생각과 발상을 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염신규
예전에 예술 사회적경제조직에서 일했을 때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모두가 출신으로 따지자면 예술가나 기획자로 구성되어있었는데, 조직이다보니 누군가는 경영, 총무, 회계 업무를 해야만했다. 그러다보니 그 일을 하는 사람은 약간의 피해의식을 느끼기도 하고, 업무 특성상 누군가를 관리하고 챙겨야하는데서 오는 경직성과 압박이 있었다. 문화예술 기관이라해도 경영이란 요소가 있고 특히 공공성을 띠고 있으니 누군가에게는 그런 입장도 있을 것이다. 새롭게 이 분야에 진입하는 분들은 자기 권리, 노동 환경에 인지가 강한 측면이 있다. 그것이 전문인력으로서의 자세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예술행정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나 혁신해야 할 지점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
고윤정
조직 내에서 직업 윤리를 같이 만들어보려 한다. 예술행정 분야에서 일하는 우리의 직업 윤리는 무엇인지 만들어나가는 게 조직문화라는 생각이 든다. 앞서 말한 예술인들을 대하는 존경과 지지의 태도, 자세를 직업윤리화 시키는 것이다.
김주희
예술이라는 영역이 비정형의 영역인데, 우리의 업무가 정형적으로 성과를 내고 관리해야 되는 업무이다 보니 어려움이 많은 것 같다. 계속 배우면서 일하고 있는 입장이다 보니 행정에서 해볼 수 있는 최대한의 실험들을 시도를 해보려 한다. 앞으로도 현장과 밀착할 수 있는 일과 경험을 계속 쌓아서 현장성 있는 행정가가 되어보고 싶다.
오세형
요즘 국가 차윈에서 기금으로 문화예술의 활성화를 도모하는 기금이나 예산이 유례 없을 정도의 규모라는 생각이 든다. 그 결과로 기관이나 행정 분야가 많아졌는데, 그 안에서 기관 간 영역 중복, 기능 중복, 목적이 불분명한 사업 영역들을 조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큰 규모의 공공사업과 행정의 비대화로 인해 비판과 견제는 계속될 것이니, 기관 입장에서는 본인들의 정체성과 미션을 더욱 구체화하고 단련해야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예술행정 안에서도 문화 영역과 예술 영역이 다르고 그에 따른 업무가 무척 다르다. 같은 공공 기관 안에서도 큐레이터, 공연기획자, 문화재단 행정 담당자는 역할과 접하는 지식, 용어, 전문성이 다르고 그 영역을 넘나들 수 없다. 문화예술 행정가의 포지셔닝과 역할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왔고 앞으로도 그래야하나, 현실적으로 그럴 탄력성이나 에너지가 많이 부족한 요즘이다. 이 논의의 불씨를 어떻게 다시 살릴 수 있을지 고민이 된다.
염신규
해방 이후, 특히 1970년대 이후 지금까지 한국 정부가 문화 예술에 대해서 가졌던 입장은 헌법상 문화 국가의 원리, 그러니까 예술에 대해서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가치를 중심으로 했고, 그 기반 위에서 제도가 만들어졌다. 사실 이상적으로는 그렇지만, 제도적인 이상과 현실 사이의 불일치 속에서도 그 프레임 안에서 정책이 논의되어왔는데 그게 한계에 부딪쳤다는 생각이다. 공과 사의 영역이 어떻게 조화롭게 관계 맺을 것인가를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그리고 예술행정 전문가 중 간혹 ‘예술인도 행정을 알아야한다’는 이야기를 당연한 듯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 역시 상당히 과도한 발상이라고 본다. 세상에 다양한 직군이 있지만 그 이들이 다들 각자 자기분야 행정에 그렇게 해박한가? 그건 행정이 자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을 어쩌면 현장에 과도하게 요구하는 측면이라고 본다.
안태호는 한국문화정책연구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 민예총 활동가를 시작으로 웹진 ‘컬처뉴스’ 편집장, 부천문화재단, 제주문화예술재단 팀장 등을 거쳤다. 함께 쓴 책으로 『나의 아름다운 철공소』, 『노년예술수업』 등이 있다. 스무 살 무렵 빼어난 재능들에 주눅 들어 창작에서 도망친 후, 예술 동네 근처에서 얼쩡거리며 문화정책과 기획 관련 일을 해왔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왕성한 문화 소비자가 꿈이며, 여전히 만화를 보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