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에 개봉된 영화 ‘로망(2018, 이창근 감독)’은 동반 치매(dementia)를 겪는 노부부의 삶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우리에게 제시하였다. 2022년, 우리는 ‘우영우 신드롬’에 열광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2022, ENA)’는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 스펙트럼을 동시에 가진 신입 변호사 우영우(박은빈 분)의 대형 로펌 생존기를 그렸다. 2023년에는 학교 폭력이라는 무서운 이슈를 던진 ‘더 글로리(2022~23, 넷플릭스)’가 큰 인기를 끌었다. 치매 환자, 장애인, 학교 폭력 등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사회 문제가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아픔이 더 이상 나와는 무관하지 않음을 함께 공감하고, 함께 해결해야 하는 우리 모두의 숙제임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이 바로 ‘문화 예술’이 가진 힘이라고 본다.

지금까지 예술 분야와 ESG를 접목한 활동은 많은 기업에서 추진되어 왔다. 기업이 문화 예술을 지원해 사회에 공헌하고 국가 경쟁력에 이바지하는 활동을 뜻하는 ‘메세나(Mecenat)’라는 용어를 한 번쯤 접해 봤을 것이다. 대부분이 사회 공헌과 같은 ESG의 S(사회) 측면의 활동으로 볼 수 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공공문화예술기관에서는 사회적 책임(S)의 중요도가 60% 정도로 가장 높게 나왔다고 한다. 특히 최근 기후위기와 환경 오염 등의 영향으로 환경(E)은 일반 사기업에서 매우 높은 중요도를 보이지만, 문화 예술 분야에서는 가장 낮은 중요도로 인식되었다. 이는 공공문화예술기관의 서비스 산업적 특성 혹은 공공 행정의 특성에 의해 사회 공헌과 사회적 책임이 강조된 것으로 해석되며, 문화 예술을 통해 환경에 관한 책임을 강조하는 것도 포함된다는 점을 의미한다. 따라서 공공문화예술기관에 대한 ESG 경영평가는 기존 사기업 평가 체계와는 다르게 사회적 책임(S)을 중심으로 기관의 지배구조(G) 개선 노력과 환경(E)의 중요성 및 개선 활동을 평가하는 체계의 필요성을 확인하였다고 한다.1)

그러나 필자의 관점은 다르다. 문화 예술 분야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사회적 책임(S) 영역에서 접목할 기회가 많았을 뿐, 환경(E)이나 지배구조(G)의 중요성과 추진의 기회가 낮다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예술 분야에서 ESG 경영을 균형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사례를 통해 시사점을 모색하고자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인식 전환’과 ‘협력’ 통한 탄소발자국 감축

국립현대미술관(윤범모 관장)은 지난 2022년 8월부터 2개월간, ‘미술관-탄소-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오늘날 현대미술관이 기후변화라는 인류세에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하는 성찰을 담은 프로그램이다. 그동안 미술계는 전시를 미학적 결과나 미술 생태계의 파급효과, 관람객 수와 만족도 등으로만 평가하고, 그것이 만들어지기까지 환경적 영향에는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온실가스에 의한 기후변화 문제가 전 지구적으로 중요해진 오늘날, 전시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적 영향을 간과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어떠한 관점과 태도로 이 문제를 대면해야 하고, 어떻게 판단하고, 무엇을 담론화해야 하는지 논의의 장을 만든 것이다.

ESG를 오랫동안 연구하고, 컨설팅을 수행한 입장에서 해당 프로그램은 대단히 놀라운 시도이자, 위대한 합의로 판단된다. 일반 기업도 쉽지 않은 탄소배출량을 예술 분야에 적용한다는 것은 상당한 고민의 결과로 보인다. 또한 전시 공간, 작품 운송 과정, 홍보, 전시에 따른 에너지 소비량, 심지어 관람객 이동 등 비즈니스 밸류체인 전반에 걸쳐 탄소발자국을 측정하려는 것은 매우 선도적인 활동의 과정이자 결과물이다.

여기서 필자가 주목할 점은 바로 ‘인식의 전환’과 ‘협력’이다. 기관에서도 제시했듯이 예술이라는 분야를 접했을 때 지금까지 우리는 미적(美的) 우수함만을 고려해 왔다. 탄소배출과는 무관한 분야이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왔다. 작품에 대한 본연의 예술적 가치에 열광했을 뿐, 그 과정에서 환경 영향성, 인권, 노동 관행 등 삶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떠한 분야도 기후변화, 인권 등 ESG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본 프로젝트를 통해 화두를 제시한 인식의 전환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협력적 사고와 활동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을 중심으로 환경 컨설팅 전문 기관, 다양한 예술 기관 및 전문가가 함께 만들어 낸 결과다. 많은 전문가의 역량이 결집되고,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을 활용한 활동은 이처럼 위대한 담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보여줬다. 혼자의 시도는 지나갔다. 이제는 협력의 시대다. 더욱이 ESG와 같은 다양하고, 복잡한 접근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더욱더 협력이 필요하다. 예술 분야는 다양한 이해관계자(stakeholder)로 구성되어 있다.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더 나은 우리의 삶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 고민한다면, 또 다른 우수 사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 ‘플랫폼’ 통한 ESG 생태계 조성

다수의 공공기관이 ESG 경영을 추진하고 있다. 물론 ESG 경영은 조직이 속한 산업과 업종, 조직의 규모, 성격과 관계없이 모든 조직이 이행해야 하는 책임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역시 기관의 ESG 경영 추진 체계를 구축하고, 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 측면에서 다양한 노력을 이행하고 있다.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기관 자체의 ESG 경영이 아닌 바로 ‘플랫폼’의 역할이다.

환경 영역에서는 콘텐츠 산업의 친환경화를 위해 친환경 제작 및 서비스 가이드를 개발하여 제공하고 있다. 다양한 콘텐츠 행사에 친환경 요소를 접목하고 있으며 게임, 만화 등 친환경 적용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사회 영역에서는 산업 내 종사하는 많은 이해관계자의 권리를 보장하고자 공정 거래 표준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콘텐츠에 대한 저작권 보호의 노력은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 필수적인 활동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콘텐츠 전반의 생태계가 ESG 경영을 추진할 수 있도록 플랫폼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기관의 목적과 성격을 고려한 ESG 경영을 촉진하는 좋은 예로 설명할 수 있다.

지금까지 공공 영역의 기관에서 추진하고 있는 ESG 경영 사례를 살펴봤다. 여타 조직에서 추진하고 있는 활동과 유사한 측면도 많다. 이는 ESG 경영이 어느 특정 집단만이 아닌 현시대에 살고 있는 모든 조직이 이행해야 하는 활동으로 경영의 패러다임이 변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 분야만이 해야 하고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필자는 본고를 활용하여 예술 분야에서 ESG 경영을 추진하는 데 검토할 수 있는 개념으로 ‘인식의 전환’, ‘협력적 활동’, ‘플랫폼의 역할’을 제시하였다. 지금도 누군가는 예술을 활용하여 더 나은 삶을 만드는 데 선구자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것이다. 더 많은 사례가 생성, 활용되어 예술 고유의 가치를 더욱 확장하는 데 ESG 경영이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필자 소개

    이기환 대표는 현재 ESG 컨설팅 전문 기업인 위드밸류 대표이며, ESGPRO(주) 공동창업자이다. 신한대학교 ESG 연구교수이자, 인덕대학교, 루터대학교에서 ESG 교과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비영리단체인 한국가치융합협회를 운영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사회적 가치 창출에 매진하고 있다.

각주 1) 공공문화예술기관의 ESG 경영에 대한 인식과 태도에 관한 연구(2023, 오지현, 류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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