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기준, 국내에 등록된 장애인은 265만여 명. 국민 20명 중 1명꼴로 가족이나 친지, 친구 중에서 장애인을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얘기다. 더욱이 88%는 선천적 요인이 아닌 질병이나 사고와 같은 후천적 장애에 속한다. 결국 누구나 살면서 장애를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배리어프리(barrier-free), 즉 ‘장애물 없는’ 서비스는 그래서 보편적 복지에 해당한다. 건축에서 시작된 배리어프리 개념은 단순한 신체적 이동권 보장을 넘어 최근에는 비장애인과 같은 수준의 문화생활을 향유하는 것까지 그 영역이 확장되면서 용어 또한 ‘접근성’(accessibility)으로 바뀌어 자리매김했다. 영화나 공연 관람은 인간다운 삶은 물론이고, 타인과의 교류를 낳는 문화 행위이다. 자칫 고립될 수 있는 장애인들에게 콘텐츠에 대한 접근성이 중요한 이유다. 문화예술 콘텐츠 접근성 분야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다져온 주인공이 있다. 바로 국내 1호 음성해설 전문가로 불리는 한국콘텐츠접근성연구센터 대표 서수연 작가다. 음성해설 영역에서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며 국내 콘텐츠 접근성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내려가고 있는 그녀를 만나 공연물을 중심으로 접근성의 현황과 접근성 강화를 위한 제작 방안 등을 들어봤다.

아직 일반인들에게 익숙지 않은 측면이 있는데, 음성해설 작가는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가.

음성해설은 시력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시각 정보와 모호한 청각 정보를 언어로 번역해 콘텐츠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번역가이자 작가다. 음성해설은 비단 시력이 불편한 사람을 위한다기보다 다양한 콘텐츠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요즘에는 콘텐츠를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이들(어르신, ADHD 환자 등)도 이용하고, 언어를 배우는 학습자에게도 도움이 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화면해설’이라는 용어와 음성해설은 어떻게 다른가.

음성해설은 1999년 미국의 공연장에서 처음 만들어져 AD(Audio Description)라고 불렸다. 이후 미국 방송사에서는 음성해설을 DVS(Descriptive Video Service)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에서 DVS를 그대로 번역해서 사용하면서 ‘화면해설’이라는 용어가 국내에 알려진 것이다. 결국 미국과 반대로, 한국은 방송의 ‘화면해설’이 먼저 시작되고, 나중에 공연물로 범위가 확장된 것이다. 공연은 TV나 영화관처럼 화면이 아니므로 음성해설이라는 용어로 통일됐다. 쉽게 정리하면, 방송 쪽은 화면해설, 공연 쪽은 음성해설로 혼용되고 있는 게 현실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확장 가능성의 용어인 음성해설이 널리 사용되길 바란다.

화면해설은 너무 제한적 개념이고, ‘자막해설’과도 헷갈린다. 자막해설은 주로 청각장애인이 크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음성해설은 다른 여러 요소를 포괄하는 일종의 ‘상위어’(umbrella term)에 해당한다. 어떤 콘텐츠를 만들더라도 음성해설은 반드시 들어간다. 간혹 공연물에서도 화면해설이라는 용어를 쓰는데, 이는 잘못된 쓰임이다.

배리어프리와 접근성이라는 용어도 여전히 섞여서 쓰이는데 개념을 명확히 구분해달라.

요즘 들어 배리어프리라는 용어가 유행하는데, 장벽(barrier)이라는 용어를 떠올리는 순간부터 장벽을 생각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마치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코끼리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도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사람들은 ‘장벽’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될수록 피로감만 쌓일 뿐이고, 나와는 무관한 것으로 치부하는 쪽으로 흐르면서 본래 지향하려는 선한 의도는 희석되고 만다.

배리어프리는 알려진 것처럼 건축물에 대한 이동권 보장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해외에서는 물리적 장벽을 없애는 분야에 한정해서 배리어프리라는 용어를 사용할 뿐이다. 학문적으로도 문화예술 콘텐츠의 음성해설 등을 언급할 때는 전 세계적으로 접근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영상물의 음성해설은 그나마 알려진 데 비해 공연물 작업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영상물과 공연물의 어려운 점은 각기 다르다. 영상물도 콘텐츠에 따라 음성해설 양이 상당히 많다거나 장르에 따라 모호한 내용이 있다. 또 영상 언어와 달라서 매끄럽게 번역이 안 될 때, CG를 이용한 화려한 영상에 대응되는 언어 찾기가 힘들 때 등 여러 애로사항이 있다.

공연물은 공연의 특성상 매 회차 공연이 미묘하게 달라지는 경우가 있어서 가변성 있는 음성해설 능력이 요구된다. 저는 대본을 쓰고 직접 낭독까지 하기에 대응이 빠른 편이다. 실제로 공연 현장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져서 임기응변으로 음성해설을 수행한 적도 있다.

공연물이라도 장르(연극/뮤지컬/무용)별로 작업 방식이 다를 것 같다.

일단 음성해설의 기본 출발점은 똑같다. 시청각 정보를 분석해 콘텐츠의 이해를 돕는 것이다. 먼저 공연물의 내용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장르별로 추구하는 바에 맞게 음성해설의 대본을 구상한다. 다만, 사실주의 연극이라면 무대와 조명 등 몰입을 위해 연극적인 전문 용어를 극도로 제한한다. 뮤지컬은 아무래도 음악과 노래, 춤이 많아서 해설 공간을 확보하고자 무던히 애를 쓴다. 무용은 안무가의 동작 위주로 진행되지만, 안무가는 동작뿐 아니라 호흡, 음악, 소품 등 다양한 것들과 교감한다. 그런 것들을 파악하고 움직임을 어떻게 언어로 번역해 감상할 수 있게 할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공연물 음성해설의 경우, 방식(개방형, 폐쇄형)에 따라 작업 과정이 어떻게 달라지는가.

공연에서 음성해설은 전달 방식에 따라 개방형과 폐쇄형이 있다. 개방형은 관객과 배우 모두 음성해설을 들을 수 있다. 음성해설가(낭독자)가 무대 한쪽에 따로 나와서 한 명의 배우처럼 대사와 대사 사이에 마이크를 잡고 낭독한다. 스피커를 통해 낭독자의 목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다. 음성해설이 무엇인지 가장 빠르게 알려줄 수 있는 인식 개선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폐쇄형은 낭독자가 낭독실에서 모니터로 무대 상황을 보면서 낭독한다. 관객은 FM 수신기를 들고 객석에 앉아서 이어폰으로 혼자 들으며 공연을 관람하게 된다.

문화예술 콘텐츠의 접근성을 강화하고자 국내에 새롭게 도입한 방안이 있다고 들었다.

콘텐츠의 접근성을 강화하고 이해를 돕고자 모든 장르에 ‘음성소개(audio introduction)’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편이다. 음성소개는 2017년 영국 영상번역대학원에서 이론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분야다. 귀국 이후, 2019년 국내 공연계와 (사)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를 중심으로 음성소개라는 개념을 널리 알린 덕분에 현재는 음성해설을 돕는 훌륭한 보조 수단이자 하나의 콘텐츠로 십분 활용되고 있어서 뿌듯하다.

이 밖에도 통합형(integrated audio description) 방식이 있다. 통합형에는 개방형도 포함된다. 음성해설가가 낭독자가 아니라 한 명의 배우처럼 무대 위에 등장하거나, 지문을 읽어주어 연극 속에 음성해설을 녹이는 것이 통합형인데, 현재 공연계에서 관심을 많이 보이고 있다.

국내 문화예술 콘텐츠에 대한 접근성이 어느 정도 진척돼 있는가.

2020년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을 중심으로 국립극단 등 여러 기관에서 장애 예술인을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하고, 공연물의 접근성을 높이고자 노력 중이다. 특히 국립극단의 경우 접근성 높은 작품을 만들고자 명동 예술극장과 홍대 대학로아트센터 두 곳에서 상연되는 모든 연극에 음성해설, 자막해설, 수어통역을 제공한다. 더불어 국립극단 온라인 극장에서는 음성해설 서비스를 결합한 연극을 안방에서 언제든지 편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또한 터치투어, 3D모형 터치투어, 음성소개, 스마트 글라스 등 다양한 접근성 수단을 제공하고자 현직 프로듀서들이 관심을 보이며 연구 중이다.

공연계뿐 아니라 전시 분야에서도 접근성을 높이려는 움직임은 어떠한가.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시도는 공연이나 미술관, 박물관 등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국립극단과 최근에 작업한 연극 <이 불안한 집>은 5시간에 달하는 긴 공연에 제가 음성해설을 제공했다. 국내에서는 최초로 시도된 작업이다. 또 지난 9월 토탈미술관에서 문을 연 뉴미디어아티스트 그룹 방앤리(BANG & Lee) 개인전 <어둠 속의 예언자>에서 시각장애인들을 초대해 가이드 투어를 직접 진행했는데, 이 또한 시각예술 전시 관람 접근성 분야에서 최초라고 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협업한 최우람 작가님의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작은 방주>는 음성해설 영상을 만들고자 직접 스토리보드부터 참여해 가이드를 했다. 또한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는 도슨트의 접근성을 높이고자 특강을 진행한 이후, 전시 가이드 투어나 다양한 접근성 방법을 함께 알아보려고 현재 논의 중이다. 이렇듯 언급된 곳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 안팎에서 콘텐츠의 접근성을 높이고자 많은 관계자들이 노력하고 있다.

접근성 캠페인은 대중의 인식 제고나 전환의 계기가 중요한 것 같다. 관련 정부 부처에 바라는 점은.

접근성과 관련해서 법과 제도도 필요한데, 일단 해당 전문가들의 말부터 들어주길 바란다. 실제로 현장에서 일하는 전문가를 불러 접근성 작업이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이러한 일은 특별한 서비스도 운동도 아니며, 왜 다양한 선택지 중 하나로 남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먼저 들어주고 이해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어느 기관이나 단체가 독점해 이익을 취하는 시스템으로 변질되지 않게 관련 법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질적인 평가도 무척 필요하다. 질적 수준을 평가할 평가서를 만들어 음성해설 서비스의 질적 수준도 높여야 한다.

작가님이 대표로 있는 한국콘텐츠접근성연구센터는 어떤 곳인가.

지난해 6월에 설립된 한국콘텐츠접근성연구센터는 음성해설을 포함해 다양한 접근성 서비스물을 제작함과 동시에 해당 분야를 심도 있게 연구하는 곳이다. 관련 분야의 용어(접근성 음성해설/자막해설/음성소개)를 정립하고, 개발하며(접근성 매니저/접근성 프로듀서), 해외 최신 동향(개방형/폐쇄형/통합형 음성해설)을 연구해 국내에 널리 알리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음성해설 작가 양성에도 앞장서고 있다. 터치투어음성소개 제작 방법도 연구해 공개했다.

서수연 작가가 대표로 있는 한국콘텐츠접근성연구센터의 슬로건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는 음성해설 전문가는 어느 정도인가.

영상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는 50명도 채 되지 않는다. 공연 쪽은 인력이 더 부족한데 10명도 안 될 것이다. 국내에 도입된 지는 좀 됐지만, 그만큼 음성해설 작가라는 직업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탓이 크다. 영상이나 공연 등 문화예술 전문 음성해설 작가는 앞으로도 많이 필요하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매회 공연마다 음성해설 아카데미를 연다. 제가 첫 회부터 올해까지 진행해왔다. 배출된 작가들이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한국콘텐츠접근성연구센터에서도 내년에 영상 분야 음성해설 작가 아카데미를 준비 중이다.

끝으로, 문화예술 콘텐츠 접근성과 관련해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은.

감각 중 시각에 의존하는 콘텐츠가 상당히 많다.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접근성 콘텐츠는 ‘번역이며 의사소통’이다. 많은 이들이 시각과 청각을 통해 콘텐츠와 의사소통을 하는데, 시력이나 청력, 이해도에 어려움이 있는 이들은 많은 단절을 느낀다. 외국 콘텐츠를 볼 때 번역 자막을 당연히 제공하듯이, 접근성 수단을 당연히 제공해 필요해 따라 선택할 수 있게 자리매김하면 좋겠다. 시혜적인 태도가 아니라, 다수의 이해나 양해를 바라고 불편함을 감수하는 서비스가 아니라, 당연히 제공해야 하는 서비스로 안착했으면 좋겠다. 대중의 관심과 지속성을 담보하려면 연대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로 인식될 수 있도록 보편적 서비스의 하나로 접근성을 바라보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 ▣ 서수연 작가 소개

    서수연 작가는 2003년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걸렸네>의 화면해설 대본을 쓰는 것으로 접근성과 첫 인연을 맺었다. 이후 <대장금>, <불멸의 이순신>,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마이 네임>, <수리남>, <마스크걸>, <퀸메이커>, <더 존: 버터야 산다>, 제1회 배리어프리영화제 영화 <블라인드>, 첫 화면해설 뮤지컬 <영웅을 기다리며>, 첫 그림 동화책 해설 <팥죽 할멈과 호랑이 이야기> 등 드라마와 영화, 연극, 뮤지컬 7,600여 편에서 접근성 대본을 작성했다. 2017년에는 접근성 분야를 더 깊이 공부하고자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시티대학교에서 영상번역 석사과정을 수료, 이듬해에는 뉴캐슬대학교에서 미디어와 저널리즘 석사과정을 밟고 돌아와 2020년부터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번역학과 박사과정 수료 이후, 음성해설 분야를 계속 연구하고 있다. 현재 한국콘텐츠접근성연구센터를 이끌고 있으며, (사)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와 넷플릭스에 음성해설을 제공하고 있는 글로벌 콘텐츠 자막 제공업체 아이유노(Iyuno), 국립극단,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두산아트센터, 대전예술의전당 등 공연, 미술 등 다양한 문화예술계와도 협업을 진행 중이다.

  • 필자 소개

    조대성 객원기자는 문서 작성과 인터넷 검색만 가능했던 인문학 전공자이었지만, IT와 정보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발을 내디뎠다. IT산업 동향 분석 전문지 <월간 시사컴퓨터>를 거쳐 온라인 IT 미디어 지디넷(ZDNet)코리아에서는 정보통신부 출입 기자로서 통신정책과 관련 산업 동향을 분석하는 기사를 썼다. 언론계를 떠나 문화예술 분야 트렌드를 공부하고, 석박사 학위논문을 교정·교열하면서 지적 호기심을 벌충하고 있으며, 인공지능 챗GPT를 벗 삼아 수다 떠는 것을 삶의 낙으로 살고 있다.
    (iaskew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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