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10년 10월 13일(수) 오후4시 장소 국립극장 패널 기홍로_싱가포르아츠페스티벌 총책임자 에드위나 룬_호주 다윈페스티벌 총잭임자 이규석_남산예술센터 극장장 주드 건 호주 멜번 아츠하우스 예술감독 사회 오세형 경기문화재단 문화정책팀 본지 편집위원
좌담중인 기홍로, 이규석
좌담중인 오세형, 주드 건, 에드위나 룬

2010 서울아트마켓(이하 PAMS)의 주제포럼 ‘극장과 축제, 역할의 확장을 논하다’가 10월 13일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개최되었다. 이날 포럼은 구자흥 명동예술극장 극장장의 기조발제에 이어 LIG아트홀 제작사례, 프로스페로 프로젝트, 넥스트스텝의 사례발표와 토론으로 진행되었다본지 98호 리뷰'재정지원이라는 필요조건, 공동작업이라는 충분조건'기사 참조. PAMS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다시 테마세션의 주제를 ';창작에서 유통까지';로 정하고 창조적 협업에 대한 모색을 제안하고 있다.

[weekly@예술경영]은 서울아트마켓의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아시아 권역 4명의 패널들과 함께 극장과 축제의 확장된 역할을 요구받고 있는 공연예술의 새로운 흐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다른 사회 문화적 맥락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들의 실천과 고민에서 좀 더 풍성하고 구체적인 모색을 발견하기 바란다.

새롭게 전개되고 있는 공연예술의 현실

오세형(이하 오) 서울아트마켓은 지금까지 줄곧 공연예술 유통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던 것이 작년부터 “창작에서 유통까지”를 테마로 내세우면서 역방향으로 아트마켓의 과제를 설정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한편으로 국제적 공연예술마켓의 변화와 맞물리는 것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유통시스템으로 운영되어오던 극장과 축제에서 제작에 대한 관심과 시도가 커지고 있는 최근 한국공연예술계의 관심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오늘 오전에 진행된 2010 서울아트마켓 주제포럼 ‘극장과 축제, 역할의 확장을 논하다’를 보면서 제작에 기반하여 시작된 유럽의 극장, 축제와 한국 및 아시아의 상황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국의 공연예술 현실이나 각자의 작업에 비추어 주목되었던 점이 다를 것 같다.

기홍로(Kee Hong LOW, 이하 로) 유럽이 갖추고 있는 인프라는 아시아와는 매우 다르다. 특히 정부의 역할이나 영향력에서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특히 호주를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정부는 재정지원을 넘어서 예술가들의 태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를 들어 기존의 축제, 새롭게 역할을 확장하고 있는 극장 그리고 정부 3자 관계(nexus)로 이 문제를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관계에서 창출되는 새로운 공간, 새로운 기회가 예술가가 좀 더 자유롭게 상상하고 창작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지만, 실제로 전개되는 과정이 우리의 바람대로인 것은 아니다. 특히 전문적 지식이나 정보가 권력과 직결되면서 커미셔닝한 예술가의 작업이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을 때, 후원기관도 명성을 함께 얻게 된다. 그 때문에 쥐고 있는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심리도 작용한다.

개인적으로 그러한 파워게임에 관심이 없지만, 그 과정에서 손해를 보는 것은 예술가이기 때문에, 경계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페스티벌을 큐레이팅 하면서 늘 끊임없이 근본적인 질문을 한다. 우리가 예술과 예술가에게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이 복잡한 구조 속에서 맵핑(mapping)을 하고, 다양한 기관, 다양한 개인, 각 주체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잘 이해해야만 전략을 세울 수 있다. 모든 자원과 플랫폼을 적시에 제공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아시아에서의 맵핑 역할에 관심이 많다.


아시아의 극장, 축제의 입장이 너무 다양하고 천차만별이다. 제정구조, 정치 지형, 지향 등이 모두 다르다. 그러다 보니 공통의 비전, 역할은 존재하지도 않고, 모색도 불가능하다. 아시아에서 제대로 성공할 수 있는 모델을 찾는 작업은 그런 다양성을 인정할 때 가능하다. 기홍로-싱가포르아츠페스티벌 총책임자

슈퍼마켓의 역할을 넘어서기 위한 고민들

이규석(이하 이) 오늘 주제포럼에서 주목했던 점은 유럽의 극장 제작방식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유럽적 전통에서는 극장이나 축제가 창작과 제작의 역할을 전담해왔다. 그것이 이전에는 개별적으로 창작과 제작의 역할을 전담하던 방식에서 유럽통합이라는 사회정치경제적 이유 때문에 극장간 축제 간 협력적 모델로 전환되는 시점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공연단체, 예술가들이 창작은 물론 제작의 책임까지를 다 떠맡고 있다. 예컨대, 본인이 추구하는 미학적 목표에 맞게 작품을 창작하는 것은 온전히 예술가의 몫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현하는 제작 역시 예술가가 주체가 되어 진행한다. 그 과정의 극히 일부분에 공적 자금이 수혈되는 식이다. 그렇게 완성된 다음 단계에서야 극장이나 축제가 개입을 한다. 장소를 제공하거나 완결된 프로젝트를 사오는 것이다. 그러던 것이 최근 들어 비로소 극장이나 축제가 ‘제작’에 최소한으로 관여하기 시작하는 단계이다. 이러한 상황은 비단 한국만이 아니라 아시아로 확장해도 크게 무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반면 창작과 제작이 결합된 유럽에서는 극장이 농장의 역할을 한다. 씨를 뿌리고 성장할 수 있는 터전을 닦아주는 출발점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한국공연예술이 여전히 고전하는 것은 극장과 축제가 여전히 슈퍼마켓이기 때문이다. 제작이 완료되면 사오거나, 최종단계에 선택하는 입장으로 유통에 개입한다. 제작의 핵심을 도와주지 못하는 방관자적 태도가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

에드위나 룬(Edwina Lunn, 이하 에드) 한국에서 이런 구조가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했다고 얘기했는데, 그러한 변화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그런 구조적인 모순을 정책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공공극장의 제작역할, 축제의 제작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공연단체, 예술가들이 창작은 물론 제작의 책임까지를 다 떠맡고 있다. 작품이 완성된 다음 단계에서야 극장이나 축제가 장소를 제고하거나 완결된 프로젝트를 사온다. 그러던 것이 최근 들어 비로소 극장이나 축제가 '제작'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아시아로 확장해도 크게 무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규석_남산예술센터 극장장

“예술가의 창작과정에서 큐레이팅의 영감을 받는다”

에드 호주는 워낙 큰 나라이다 보니 지역편차도 심하고 축제마다 운영방법이나 프로그램 등이 매우 다르다. 내가 일하고 있는 혹은 일했던 다윈이나 멜번의 축제는 어떤 때는 이미 완성된 작품을 유치할 때도 있고, 아니면 예술가, 단체가 표방하는 정신이 마음에 들어서 축제에서 작품을 위촉해 제작하기도 한다. 그런 경우 축제가 열리는 장소, 문화적 특성과 함께 그 지역 예술가들과의 협업을 고려해달라고 제안한다. 좋은 작품을 공연하는 것만이 아니라 지역 예술가들에게도 다음 작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체적인 것이 남기를 바란다.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호주의 대부분의 축제들은 커미셔닝이나 직접 제작을 한다. 또한, 호주에는 엠에프아이(Major Festival Initiative)가 있다. 여기에는 호주예술위원회뿐 아니라 주요 축제가 일 년에 3~4차례 모여 프로젝트를 고르고, 제작을 함께 지원한다. 한 개 이상의 축제에 공연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축제도 제작을 해야 한다는 전제 하에서 이런 이니셔티브가 탄생했다.

주드 건(Jude Gun, 이하 주드) 아츠하우스는 호주예술위원회 소속이다. 복잡한 구조이긴 하나 7~8개 공연장이 체인처럼 존재하며 모두 예술감독들이 직접 운영을 한다. 이들 공연장은 공연자에게 극장을 제공하는 것만이 아니라 현대, 실험, 비주류 공연을 제작할 수 있도록 물리적 환경을 마련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모든 대도시마다 이러한 극장이 있기 때문에 장기적인 의지, 계획을 가지고 비주류적인 공연예술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그 과정을 통해 제작된 작품의 프리젠팅 역시 우리 같은 극장이 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대규모 상업적 극장과는 다른 방식이다.

아츠하우스는 가진 여러 전략적 관계를 통해 예술가의 창작에 관여하기도 하고 제작도 하고, 공연장이 있기 때문에 프리젠팅도 한다. 창작과정을 예술가와 함께 하면서, 예술가의 예술세계를 보다 가까이서 관찰하게 되는데 거기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 훨씬 더 민첩하게 반응하고, 위험을 감수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동력이 된다. 각종 축제나, 엠에프아이와도 관계를 갖고 지속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런 관계들이 궁극적으로는 예술가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예술세계를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유럽사례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네트워킹을 통해 세계적 작가라는 상징적 지위가 부여되고 그러한 제도적 틀이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확장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창작의 과정을 진행하는 것을 넘어 상상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 네트워크의 역할이 아닐까 한다. 오세형-경기문화재단 문화정책팀

과정 지원에서 프리젠팅까지 다양한 역할 필요

주드 이규석 극장장이 한국이나 아시아에서 극장이나 축제가 좀더 창작이나 유통단계에서 일찍 개입하고 지원하려는 것이 공공적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좀 시니컬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극장, 축제가 창작과정에 일찍 개입하는 것은 극장, 축제로서도 큰 이득이 있다. 그런 개입이나 지원을 통해 통제력을 갖게 되고, 큐레이팅을 통해 내부적 역량이 쌓인다. 극장으로서도 예술가나 예술세계에 관심을 갖는 새로운 관객을 잡을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지금 한국과 같은 변화가) 아무 사심 없이 예술가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전략적이고 영악한 접근이 아닌가 생각한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의견이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순수한 후원, 지원은 없으니 그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성립될 수 있느냐는 질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고 본다.

균형의 문제인 것 같다. 모든 극장과 축제가 제작을 할 수는 없을 것이고, 대관 중심, 기획 중심, 적극적 제작 중심 등 다양한 위상을 갖고 예술가들의 창작, 제작 부담을 완화시켜줄 수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으로 극장과 축제의 역할이 재정립되어야한다는 차원에서 말한 것이다. 모두가 제작을 할 필요는 없다. 지금까지는 너무 방관자적, 소극자적 입장이었다는 의미이다.

에드 프리젠팅하는 극장도 예술가들에게 얼마든지 지원할 수 있다. 프린지 등을 통해 막 데뷔한 예술가를 위해 사이드프로그램이나 레지던스를 함으로써, 그들이 작품을 할 수 있게 장소와 마케팅을 지원하면 극장을 통해 더 많은 관객을 만나게 되는 기회를 갖게 된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너무 결과에만 포커스를 맞추면 안 된다는 점이다. 극장이나 축제에서의 상연에만 매몰되다 보면 예술가가 자유롭게 사고하고, 작업하고, 시행착오를 겪을 기회를 빼앗는 꼴이 된다. 예술가 지원은 결과물뿐 아니라 과정 그리고 커리어를 개발하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기관 등에서 재정지원을 받을 때 가시적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과정에 의미가 있어서 투자가 필요하다고 설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내가 보기에 창작에서 유통까지의 과정 속에서 축제가 당연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축제는 기존의 경계를 확장하고 밀어주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예술가들과의 접촉이 필요하고 창작에 개입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축제는 프로듀서가 아니고 제작극장도 아니다. 프로듀서와 굉장히 많은 작업을 하고 관계를 맺고 있지만, 페스티벌이 직접 프로듀서로 나서는 것은 본질적으로는 본연의 임무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작에서는 프로듀서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축제는 기존의 경계를 확장항고 밀어주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예술가들과의 접촉이 필요하고 창작에 개입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페스티벌이 직접 프로듀서로 나서는 것은 본질적으로 본연의 임무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작에서는 프로듀서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에드위나 룬-호주 다윈페스티벌 총책임자

구체적 현실과 다양성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해야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네트워킹, 창작에서 유통까지를 논하는 것은 활동의 장을 넓히고 심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앞서 포럼에서 발표된 유럽사례에서 흥미로왔던 점은 그들의 네트워킹이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는 것에 대한 지원을 넘어, 그러한 네트워킹을 통해 세계적 작가라는 상징적 지위가 부여되고 그러한 제도적 틀이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확장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창작의 과정을 진행하는 것을 넘어 상상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 네트워크의 역할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사회문화정치적 맥락이 유럽과 다른 아시아에서 어떤 네트워크가 가능할까 궁금하다.

기능이 아니라 역할을 주목해야 한다. 주제포럼에서 언급됐던 아시아공연예술축제연맹AAPAF, Association of Asian Performing Arts Festivals은 아시아의 축제들이 창작교류 측면에서 어떤 역할을 같이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창설되었다. 초기에는 이 연맹을 통해 아시아의 축제들이 아시아 유망 예술가들을 공동으로 발굴, 기획, 제작 지원하는 역할을 시도했지만, 이후에 많이 주춤했다.

그것은 아시아지역에서 공연예술이 교류할 수 있는 기본적인 네트워크는 갖고 있지만, 그 안에서 극장과 축제가 어떤 실질적 역할을 서로 기꺼이 분담할 것인가, 적극적인 연대감을 가질 수 있느냐는 태도의 문제에서 기인했으리라 본다. 오전에 언급했던 문제의식들이 기존 네트워크의 활동방식이나 일국의 차원이 아니라 아시아 차원에서 공연예술에 가진 여러 문제의식들이 활동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충분한 동기부여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극장의 입장에서는 극장들이 아시아 지역에서 작가나 작품의 발굴에 대한 공통의 관심, 고민이 있다면 그런 극장 간에 프로젝트를 만들어 내거나 직간접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가능성이나 제안의 자리가 많아질 수 있게끔 하는 것도 고민의 방식일 것 같다.

우선 각각의 극장, 축제가 가지고 있는 상이한 출발점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시아의 극장, 축제의 입장이 너무 다양하고 천차만별이다. 캄보디아, 시드니, 상해 지역에서 열리는 축제들이 같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이라고 해도 모두 너무 다르다. 재정구조, 정치 지형, 지향 등이 모두 다르다. 그러다 보니 공통의 비전, 역할은 존재하지도 않고, 모색도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유럽에 대해 너무 강박관념을 갖거나 마냥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유럽과 우리는 너무 지형이 다르기 때문에 유럽에서 성공해도 아시아에서 성공할 수 없을지 모른다. 아시아에서 제대로 성공할 수 있는 모델을 찾는 작업은 그런 다양성을 인정할 때 가능하다. 나도 답은 없지만, 그것을 찾기 위해서는 다양성부터 인정해야 한다. 그런 후에 극장이나 축제가 우리 지역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우리 포지셔닝은 어떤지, 예술이 사회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하는 근본적인 의미에서의 이해가 선행되어야 극장과 축제의 역할 등에 대해 말할 수 있다.

모든 것은 개인과 개인 간의 관계에서 출발하지 않나 생각한다. 여기서 서로를 알고 서로의 국가 예술가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축제 자원을 투자하고 그 과정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비전, 내 축제의 비전을 먼저 실현하는 것이다. 아시아공연예술축제연맹에서 해야 하는 역할이 축제나 극장 담당자들이 인적 교류를 하고 서로를 탐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시아인들끼리 다양성을 탐구하고, 조사하고, 그래서 프로젝트를 탄생시키게 된다고 생각한다.


아츠하우스는 가진 여러 전략적 관계를 통해 예술가의 창작에 관여하기도 하고 제작도 하고, 공연장이 있기 때문에 프리젠팅도 한다. 창작과정을 예술가와 함께 하면서, 예술가의 예술세계를 보다 가까이서 관찰하게 되는데 거기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 주드 건-호주아츠하우스 예술감독

쉽진 않지만,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

개인적 만남, 작은 실천이 큰 비전을 만들어간다는 말이 굉장히 와 닿는다. 자리를 마무리 할 시간이다. 남은 이야기를 부탁한다.

아시아 공연예술계에 대해 서로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최근에 아시아공연예술 실태조사, 디렉토리를 만들어 정보공유를 하는 작업을 했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도 당위성이 아니라 아시아의 공연예술들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거나, 아시아에서 공연예술 관련해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런 것을 만나게 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는 역할을 극장이나 축제가 맡을 수 있다면, 공유점을 찾고 더 나아갈 수 있는 출발점, 채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에드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아시아 각국마다 문화적 맥락이 다르다. 이런 식의 토론이나 논의를 통해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쉽지는 않겠지만. 물론 행정가들이 이렇게 모여 대화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하루아침에 획기적인 변화를 일굴 수는 없지만, 대화가 중요하다고 인식한다.

주드 이런 대화를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더 많은 대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대화에 극장과 축제로서 참여해서 더 많은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데, 그 기회에서 상상할 수도 없었던 매칭도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프랑스 현대무용가인 제롬벨과 타이 전통무용수인 핏쳇 클런천의 작업처럼. 그런 큰 영향을 만드는 작품이 이런 대화의 씨앗을 통해 이루어진다 생각한다. 그 결합에 기관이든, 단체든, 예술가든 함께 참여해서 기발한 재정지원방식, 제작방식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 기회를 더 촉발하는 역할을 극장과 축제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화와 공론의 장, 작더라도 지속가능한 대화의 장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이런 자리가 더 많아져서 바라는 그림을 그리고 실현해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한다.

정리 _ 김소연 편집장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 URL 복사하기
정보공유라이센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