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람들이 모른다고 하는 반응은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 편이다. 그보다 콘텍스트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익숙하지 않고 생소한 것이지만 관객드은 곧 리듬에 반응하고, 스펙터클에 반응하고, 그들과의 인터랙션에 매료된다. 관객들은 일종의 사회적 경험을 하고 돌아간다. 그런 경험이 가능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큐레이팅' 하는 것이 내 역할이다.

빌 브래건
〈Community Cipher〉공연, 이인수무용단 공연, 음악평론가 성기완과 빌 브래건 2009 아웃오브도어즈 페스티벌
▲▲▲〈Community Cipher〉공연
▲▲이인수무용단 공연
▲음악평론가 성기완과 빌 브래건
2009 아웃오브도어즈 페스티벌

지난 10월 15일, 쌀쌀했지만 화창하기 그지없었던 금요일, 국립극장 산아래연습실에서는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기며 음악과 음악기획에 대한 생각들이 오가고 있었다. 서울아트마켓 네트워킹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열린 ‘음악기획자를 위한 라운드테이블 세션’이 진행되는 자리였다.

스웨덴, 이스라엘, 영국, 미국 그리고 한국의 음악기획자들이 모여 음악과 음악기획에 관한 토론을 벌였다. 음악은 시대가 지나면서 다양해지고 풍성해졌다는 것이 일반의 인식이지만 뮤지션과 음악기획자들은 ‘글쎄…’라는 반응을 보였다본지 99호 특집 ‘궁금해지고, 다시 생각하고, 반대하고, 공감하고’ 참조.

라운드테이블 리딩 그룹의 일원으로 참여한 미국 링컨센터(Lincoln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의 퍼블릭 프로그래밍 디렉터이자 글로벌 페스트(Global Fest)의 공동프로듀서이기도 한 빌 브래건(Bill Bragin)을 만났다. 그가 들려준 음악기획자로서의 이야기에 주목할 만하다. 당신이 진정한 예술기획자가 되려면 말이다.

“내 일은 언더그라운드에 스스로 가지 않는 관객들에게 꺼내와 보여주는 것”

한국 단체들을 뉴욕에 소개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때 공연은 어땠나?

2008년부터라고 기억한다. 글로벌 페스트와 링컨센터 여름축제인 아웃오브도어즈(Lincoln Center Out of Doors, LCOOD)를 통해 한국단체들소리, 라스트포원, 이인수댄스프로젝트를 소개했다. 공연에는 한국계 미국인들뿐만 아니라, 월드뮤직 팬들이 많이 찾아왔다. 굉장히 성공적이었다. 한국 전통에 뿌리박은 공연이었지만 젊은 에너지가 넘쳤고, 예술가들 모두가 일종의 쇼맨십, 즉 관객과 소통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링컨센터 아웃오브도어즈 프로그램을 보면 당신이 특별히 언더그라운드 문화나 실험예술에 관심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러한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나는 뉴욕 시내 이스트 빌리지에 있는 클럽 조스펍Joe’s Pub, 퍼블릭시어터에 소재한 작은 라이브 공연장. 인디음악에서부터 뮤지컬, 음악에서 무용까지 다양한 장르의 우수한 라이브 공연을 소개한다. 홈페이지 출신이다. 나의 첫 관심은 보다 실험적인 예술을 소개하는 데 있었다. 링컨센터는 이미 자리가 잡힌, 아성을 무너뜨릴 수 없는 그런 곳이다. 뉴욕과 미국 전역에 있는 대단한 예술가들이 소개된다. 하지만 (링컨센터에) 처음 왔을 때 링컨센터는 열려 있었다. 새로운 관객들을 센터로 이끌고 싶어 했다.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는 않는데, 최고 중의 최고 공연을 선보이며 무엇이 위대한 정전(canon)에 더 포함될 수 있는지 살펴보고 싶어 했다. 난 나의 역할을 일종의 통역자로 보고 있다. 하위문화(subcultures)에 기반한 다양한 예술가들, 그 틈새들을 언더그라운드에 스스로 가지 않는 관객들에게 꺼내와 보여주는 거다.

링컨센터 무대를 위해 ‘댄싱인더스트리트’(Dancing in the Street)라는 기관과 일한 적이 있다. 힙합, 비보이의 뿌리와 혁신을 살펴보고 그 혁신에 기여하자는 취지였다. 뉴욕 힙합팀을 통해 힙합의 기원, 비보이와 비걸즈의 리듬을 소개했다. 시카고를 대표하는 힙합 그룹은 뉴욕과는 다른 시카고만의 그 무엇인가가 보여줬다. 또 세계적인 추세도 선보이고 싶다. 그래서 무예를 기반으로 하는 중국팀도 소개했고, 한국에서 온 두 팀도 무대에 올렸다예술경영지원센터 보도자료(2009.8) ‘한국 힙합의 현재, 뉴욕 링컨센터 무대 위에 서다’참조.

공통적인 요소도 발견할 수 있겠지만 한국만의 특징이 드러나길 원했다. 라스트포원은 비보잉의 순수 양식을 보여줬다. 이인수는 힙합과 현대무용을 결합하며 다른 신체 움직임을 보여줬다. 아프리카에서 온 힙합팀도 있었는데 미국의 힙합을 차용했지만 자신들의 문화를 결합시켜 전혀 다른 맥락의 힙합을 보여줬다. 거기서 정치적 의미를 발견할 수도 있었다. 종합적으로 힙합, 비보이라는 양식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자신만의 방법들을 다양하게 소개하고 싶었다.

“관객들은 예술적 경험만이 아니라 사회적 경험을 한다”

링컨센터 ‘퍼블릭 프로그래밍’의 디렉터로서 프로그램에 부여하는 가치가 남다른 것 같다.

문화적인 콘텍스트와 분리된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관객들은 공연에서, 부분적으로는 예술적인 경험을 얻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공연을 통한 사회적인 경험을 얻어가기도 한다. 또, 관객 자신의 반응이 다른 관객에게 영향을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라스트포원이 링컨센터에서 공연했을 때 한국계 미국인들이나 한국계 언론은 정말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다른 미국인들에게는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생소한 팀이었다. 한쪽에게는 스타인데 다른 한쪽에는 처음 보는 새로운 예술가이기에 서로 다르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재밌는 역학 관계가 생겨났다. 아주 흥미로웠다.

다양한 전통을 가진 다양한 부류의 위대한 예술가가 있겠지만 그 배경이나 전통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새로운 예술가일 뿐이다. 내가 말하는 실험예술이라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이다. 하지만 실험예술이라고 불리던 경향도 언젠가는 전통이 되고 정식화(formalized)되기도 한다.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문화적 콘텍스트에 기반한 새로운 작업들을 관객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소개하는 일이다.


새로운 작업을 소개한다는 건 프로그래머로서는 굉장히 어려운 숙제이다. 특히 관객들이 어려워할 수도 있지 않나.

어떤 장르, 예술을 소개하기 위해 많은 것에 대한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보다 많은 것의 팬이 되는 게 중요하다. 나는 내가 먼저 팬이 된 예술가를 소개한다. 정서적으로 감동받을 때, 디렉터의 입장에서 감동받을 때, 희망사항이겠지만 그 감동을 관객들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

운이 좋게도 링컨센터 ‘퍼블릭 프로그램’은 무료거나 유료여도 상당히 저렴한 티켓을 제공하고 있다. 사람들은 돈을 쓰는 만큼 보수적이 된다. 티켓값만큼 기대하기 때문이다. 물론 애매하고 전문가가 되어야만 즐길 수 있는 그런 장르도 있다. 하지만 난 재즈를 몰라, 현대무용은 몰라, 그런 말을 한다고 해서 관객들이 식견이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모른다며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사람들이 모른다고 하는 반응은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 편이다. 그보다 콘텍스트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비트더동키(Beat the Donky)라는 브라질 그룹이 있다. 삼바와 같은 퍼커션 요소도 있고, 아방가르드 재즈 아티스트적인 면도 있고, 브라질 전통악기를 사용하고, 쓰레기, 메탈 사인, 장난감 등을 악기로 삼는다. <스텀프>(Stump)랑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익숙하지 않고 그 전통을 모르는 관객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다. 하지만 관객들은 곧 리듬에 반응하고, 스펙터클에 반응하고, 그들과의 인터랙션에 매료된다. 관객들은 일종의 사회적 경험을 하고 돌아간다. 그런 경험이 가능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lsquo;큐레이팅&rsquo;하는 것이 내 역할이다.

&ldquo;선택하고, 순서를 정하고, 나만의 의미를 부여하고&rdquo;

기획자가 팬십(fanship)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재미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획자들은 먼저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때로는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한다.

열정이 열쇠가 될 거다. 나는 페스티벌을 기획할 때 먼저 스스로가 재밌어지기를 바란다. 기획자들은 정말 열심히 일한다. 나만 해도 하루에 6시간, 가끔 8시간 정도 잠을 잔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공연을 보고, 소개하고, 무대에 올리고, 관계자들을 만나고, 서로 소통하느라 분주하다. 서울에 와서도 이메일을 체크하느라 오후가 되면 내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나가버린다. 라운드테이블에서도 잠깐 이야기가 나왔는데, 예술업에 종사한다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이다. 어떤 이들은 생계를 잇지 못해 다른 선택을 하기도 한다.

내가 어떤 페스티벌을 &lsquo;큐레이팅&rsquo;할 때 나는 내가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무대에 올린다고 했다. 하지만 공연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정말 해야 할 일이 많고 공연 도중에도 위기가 생기면 대처해야 하는 등 공연을 성공리에 마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관객들의 반응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나와 나의 팀이 공들인 작업을 관객들의 반응으로부터 평가하는 일이다. 무엇을 더 개선해야 하는지 살펴본다. 관객들은 저마다의 다양한 방식으로 공연을 받아들인다. 내가 이 공연의 팬이고 열정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관객들이 별 반응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두 번째 만들었던 페스티벌, &lsquo;한여름 밤의 스윙&rsquo;(Mid-summer night swing)에서의 일이다. 스윙은 댄서들을 위한 음악이기도 하다. 스윙 음악을 즐기러 온 관객들도 있었지만 스윙, 탱고, 살사 무용가들도 관객으로 참여했다. 콘서트 자체로서는 대단한 쇼였다. 그런데 공연이 끝나고 한 댄서가 이렇게 말했다. &ldquo;빌, 스윙댄스의 장점은 파트너를 바꿀 수 있다는 거야. 음악이 너무 길면, 엉망이 되잖아. 밴드에게 말해. 저 음악은 너무 길어. 4분 이상은 안 돼.&rdquo; 내가 배웠다. 다양한 관객들이 있고 어떤 관객들의 관점에서 보면 내 관점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내 기대나 관점을 너무 많이 부과하면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당신은 계속 프로그래밍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lsquo;큐레이팅&rsquo;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lsquo;큐레이팅은 예술이다&rsquo;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는데 그것에 대해 좀 더 설명해 줄 수 있나.

큐레이팅은 예술양식이다(Curating is an arts form), 이게 더 정확할 거다. 사실 이건 나의 개인적인 신념이다. 모든 프로그래머들이 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 미국에서도 &lsquo;비즈니스가 우선&rsquo;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티켓을 얼마나 팔 수 있을까, 얼마나 수익을 낼 수 있을까 그런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난 그런 프로그램으로는 사업적 목적은 달성할 수 있겠지만 예술적 목적은 충족시킬 수 없을 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내가 그동안 조금 특별한 곳에서 일하면서 응석받이가 되어버린 탓이다.(웃음) 대부분 (내가 일한 곳들은) 예술적 성취라는 미션이나 목적이 분명했다. 새로운 예술 양식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거나 여러 부류의 관객을 다른 방식으로 만나지게 하는 걸 추구했다.

예를 들어 콜라주 작업을 하는 시각 예술가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될 거다. 이미 존재하는 여러 예술양식을 조합한다. 디제이가 샘플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미 있는 재료로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내가 하는 &lsquo;큐레이팅&rsquo;도 마찬가지다. 예술가들은 자신이 원하는 작업을 한다. 나는 그 중 작품을 선택하고 무대에 오를 순서를 정한다. 그리고 나만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누군가 내가 만든 프로그램의 라인업을 보고, 이건 빌 브래건의 감각이 더해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lsquo;큐레이토리얼 아티스트&rsquo;(curatorial artist)라고 할 수 있다. 링컨센터가 나를 선택한 이유도 아마 이런 나의 감각을 인정했기 때문일 거다.



빌 브래건


&ldquo;이제 시작, 더 많은 탐구가 가능할 것&rdquo;

한국에 온 첫인상은 어떤가? 한국 공연은?

음악에서의 다양성을 접할 수 있었다. 전통음악에서부터 인디, 대중, 실험 음악에 이르기까지 서울아트마켓 쇼케이스 프로그램뿐 아니라 여타 제공된 일련의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 지금 현재 한국음악이 어떤지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이게 시작이다. 내가 들은 것은 적은 수의 샘플에 불과하겠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한국음악에 대한 더 깊은 탐구가 가능할 것 같다. 이전에는 듣거나 교류하는 일이 훨씬 제한적이었다.


뉴욕으로 진출하고 싶은 한국 단체들에게 줄 수 있는 팁이 있다면?

먼저 훌륭해야 한다. 전략이나 마케팅은 그 다음 문제이다. 그 자리에 있는 이유, 국제시장을 이끌어갈 만한 퀄리티를 보장해야 한다. 한국음악은 세계시장의 관객들에게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자신만의 비전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자국의 음악을 대표할 만한 수준이어야 한다.

그 다음이 자료다. 홍보나 마케팅 자료에 반드시 문화적 콘텍스트를, 배경을 짚어주어야 한다. 대부분의 홍보자료들을 보면 &lsquo;혁신했다(renovate), 전형적이지 않다(untypical)&rsquo;는 말이 들어가 있다. 그 문화나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 말이 피상적으로 들린다. 어떤 전통과 문화가 있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해당 단체를, 그리고 단체가 말하는 스타일과 혁신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사진도 중요하다. 지역 매체에 노출되거나 중요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김소연 필자소개
김소연은 현재 예술경영지원센터 기획지원부에서 인력양성과 아카데미 운영과 관련한 사업 전반을 총괄하고 있다. 예술단체 국제교류 및 해외진출지원, 해외콘텐츠 조사 등의 업무를 담당한 바 있으며,『문화예술단체를 위한 국제교류 조세제도 해설집』집필에 참여하였다. soyeon.kim@gokams.or.kr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 URL 복사하기
정보공유라이센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