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공연예술 종사자들이 모여 공연예술의 창작에서 유통까지의 단계를 논의하고 아이디어를 나누는 장인 서울아트마켓이 열리고 있다. 특히 올해 서울아트마켓은 아시아 권역을 포커스로 하여 다양한 세션과 프로그램으로 진행되고 있다. 웹진 [weekly@예술경영]은 주요 프로그램의 리뷰와 7년차를 맞이한 서울아트마켓의 흐름을 짚는 특집을 마련했다. 연재순서 ① 연극

거대담론이 사라진 이들의 작품은 서구와 한국, 전통과 현대와 같은 이분법적 구도는 부재한다. 대신, 문화적 혼재, 경계 지을 수 없는 삶의 유희, 극대화된 신체표현과 이미지, 도발적 상상력으로 육화되고 있을 따름이다.

한국연극이 세계를 만나는 방식은 다양하다. 우리 연극의 미학적 특성과 담론을 담아내는 비평적 기록․출판을 통한 간접적 만남은 소통의 첫걸음이다. 보다 실질적 단계로서, 공연은 국제교류의 생산적 관계를 촉구하는 유용한 기제로 작용한다. 따라서 공연예술축제의 문호를 통해서, 혹은 글로벌 시대의 열린 채널을 통해 확산되고 있는 후자는 가장 보편적이요, 선호되는 만남의 방식이다. 이러한 선상에서 서울아트마켓(PAMS)은 아시아의 대표적 공연예술 국제교류의 장이자 팸스초이스(PAMS Choice)는 이를 제도화한 한국 최초의 공적 유통구조이다.

언어장벽을 극복할 수 있는

(1동 28번지 차숙이네)
 (내가 그랬다고 너는 말하지 못한다)

▲▲ (1동 28번지 차숙이네)
▲ (내가 그랬다고 너는 말하지 못한다)

2005년부터 금년까지 지난 7년간 팸스초이스는 연극분야에 총 32편의 작품(매해 평균 4~5편)을 선정해 세계 공연예술시장에 선보였다. 이 작품들은 대개 국내 무대에서 작품성이 검증된 공연들로, 해외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고려해 선정되었다. 동시에 그것은 우리 문화를 알리는 선도적 기여에의 기대와 한국인의 동시대 삶을 고하는 순기능을 감안한 선택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것은 미학적 완성도를 근간으로 수월성을 일별하는 공연예술의 일반적 기준과는 다른 입장에 선다. 다시 말해, 팸스초이스의 작품은 해외 관객들에게 수용가능성이 높으며, 단기 유목일 수밖에 없는 순회공연의 특성을 고려한 선택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보면, 팸스초이스의 선정 목록은 2000년대 한국연극의 발전을 요약하는 데 있어 나름 설득력을 지닌다. 이는 일단 작품성을 기반으로 우리 문화의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연극의 형식적, 내용적 다양성에 대한 공감 때문이다. 또한 타문화 관객의 이해에 유리한 양식적 특성을 공유하는 것들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즉 언어장벽을 극복할 수 있는 신체적, 물리적 표현기제를 통해 시·청각적 이미지 구현성이 뛰어난 작품들이라는 점이다. 이를 실증해주는 예로서 가장 비근한 2011년의 팸스초이스를 상기해보자. 거기엔 집을 짓는 행위 자체에 대한 건축적 사유와 축조 과정을 연극개념으로 확대시킨 (1동 28번지 차숙이네)(극단 놀땅), 그리고 여행자와 함께 팸스초이스의 최다 선정단체(각각 3회)로서 환경친화적이며, 창의적 감성으로 주목받아 온 젊은 앙상블의 셰익스피어 광대극 (내가 그랬다고 너는 말하지 못한다)(공연창작집단 뛰다)가 있다. 또한 배우의 신체성을 극대화하는 작업에 집중하며 고골의 (검찰관)을 남사당놀이와 맞물려 국악연주, 움직이는 설치미술로 역동적 다원화를 꾀한 (비밀경찰)(극단 동)과 셰익스피어의 시어를 강력한 신체에너지로 전환시킨 한국형 ‘활극’ 버전 (칼로막베스)(극공작소 마방진)가 있다.

올해 ‘팸스초이스’라는 브랜드를 달고 세계 공연예술 관계자들의 주목을 기다리고 있는 이 네 편의 작품들 역시 그간의 팸스초이스의 방향성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들 중 무려 세 편이 지난 해 주요 국내 연극상들을 ‘독점’한 공인작품들이다. 시즌 후반 출현으로 상대적으로 조명 기회가 적었으나 (하륵이야기)(노래하듯이 햄릿)으로 이미 검증된, 물론 역량뿐 아니라 원작의 주제와 함께 (맥베스) 자체에 대한 패러디로 셰익스피어에 재도전한 뛰다의 공연 또한 근거가 있는 선택이라 생각한다. 이 작품들의 공통분모는 각기 독자적 공연양식을 개발함으로써 기존 연극문법 내지 형식적 논리와는 차별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 주제 혹은 내러티브의 보편성도 눈에 띈다. (1동 28번지 차숙이네)를 제외한 재창작의 세 작품은 모두 서구 고전 및 모던 클래식 텍스트로부터 영감을 받아 출발한 경우이다. 이른바 원작에 대한 관객의 기본적 이해를 바탕에 두면서도 포스트드라마틱스 시대의 자유로운 발상을 접목시켜 한국적 재창작을 기한 것이다. 거대담론이 사라진 이들의 작품은 서구와 한국, 전통과 현대와 같은 이분법적 구도는 부재한다. 대신, 문화적 혼재, 경계 지을 수 없는 삶의 유희, 극대화된 신체표현과 이미지, 도발적 상상력으로 육화되고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유일한 창작극마저도 건축적 사유의 물질화 과정으로 변모된 내러티브에 방점을 찍고 있다.

새로운 지원방식도 필요

(비밀경찰)
(칼로막베스)

▲▲ (비밀경찰)
▲ (칼로막베스)

2011 팸스초이스의 상기 경향은 시계바늘을 뒤로 돌렸을 때도 다르지 않다. 그리하여 지난 7년의 역사는 화석화된 전통이기보다는 진행형으로 발전하고 있는 과정이다. 그 흐름을 거칠게 반추해보자면 다음의 분류가 가능할 것이다. 첫째, 그리스비극으로부터 셰익스피어, 졸라, 입센, 고골, 브레히트, 쥬네 등 서구 고전의 한국적 재창착이다(한 여름 밤의 꿈 외 15편). 둘째, 한국전통 문화에 뿌리 내린 일련의 창작극들이다(이리와 무뚜 외 8편). 셋째, 기타 유형들로써 현대극(해무 외 3편), 어린이극 (시계 멈춘 어느 날), 번역극(그린벤치 외 1편 )이다.

흥미롭게도 이 세 가지 유형들의 유통 현황 또한 상기 순서와 거의 흡사하다. 즉 팸스초이스 선정 이후 해외순회의 급물살을 타기 시작해 여전히 진행 중인 (한 여름 밤의 꿈)(극단 여행자), (보이첵)(사다리움직임연구소)을 비롯, 유럽권의 집중 러브콜을 받고 있는 이자람의 (판소리 브레히트 ‘사천가’)(판소리 만들기 자), 지난 9월 중국 지난에서 개최된 베세토연극제를 통해 첫 해외 경험을 한 이래 터키, 벨라루스의 순회일정이 늘어선 (칼로막베스), 소박한 토속적 감성으로 어필하는 (하륵이야기) 등이 유통 면에서의 성공 케이스로 상기된다.

반면, 전통에서 소재나 영감을 취한 창작극과 기타 장르는 국내에서의 평가와 기대와는 달리 해외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이는 근본적으로 작품의 풀이 제한된 연극현실과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 허나 더욱 중요한 것은 작품 선별의 주체인 서울아트마켓이 해외시장의 수요를 정확히 읽어내고, 전망해야 하는 입장에서 팸스초이스 역시 기존 작품의 풀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즉, 커미션을 통한 맞춤제작, 국제간의 네트워킹을 통한 공동제작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방식으로의 전환도 고려할 수 있다. 이는 곧 동시대 공연예술의 흐름을 파악하는, 동시에 팸스초이스 7년의 경향을 읽는 하나의 방식이 될 것이다.



[2011 PAMS 특집2] 팸스초이스, 지난 7년의 경향 다른기사 보기
② 무용 ③ 음악(예정) ④ 복합(예정)

허순자 필자소개
허순자는 서울예술대 연극과 교수이자 연극평론가로 한국연극평론가협회 및 한일연극교류협회 회장, 한국연극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90년대 전반부터 국제극예술협회(ITI) 한국본부 사무국장을 역임하며 베세토연극제 창립, ‘97 ITI 서울세계총회 및 세계연극제의 실무를 수행, 한국연극의 국제화에 관심을 가져왔다. 『국제화시대의 한국연극』『연극人 10』등의 저서 외 공저, 역서, 논문 등이 있다. soonjahu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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