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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에 따라 축제 또한 변하기 마련
파브리지오 그리파시(Fabrizio Grifasi)_로마유로파 페스티벌 예술감독1990년 중반부터 2000년대까지 지난 10년간 공연예술 축제는 시민들에게 문화 향유의 기회를, 창작자들에게는 새로운 작품 창작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뿐만 아니라 국제교류 및 관객개발에도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그리고 그 역할을 2000년 중반 이후부터는 공공 및 민간 극장 그리고 다양한 창작 센터들이 대체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국내 축제 분야에서 다원예술축제 ‘페스티벌 봄’의 중단과 과천 축제의 축제 방향성의 변화와 같은 이슈들이 있었고, 최근에는 안산국제거리극축제의 예술감독 선임 문제,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와 서울아트마켓(PAMS)의 통합운영과 같은 크고 작은 이슈들 또한 있었으며, 현재 변화의 과정에 있기도 하다. 지난 15년 간 축제 현장에 있던 나에게는 공연예술 축제의 역할과 나아갈 길에 대해 많은 안타까움과 책임감이 동시에 드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플리아 쇼케이스(Puglia Showcase 2018)의 초청으로, 같은 기간에 열리고 있는 REF 축제를 보기 위해 로마를 방문하였다. 유서 깊은 역사의 도시 로마를 대표하는 로마유로파 페스티벌(Romaeuropa Festival, 이하 REF 축제)은 스폴레토(Spoleto)와 나폴리(Napoli Teatro)축제와 함께 이태리의 삼대 축제 중의 하나이다. 전통과 역사 관광의 도시인 로마에서 유럽의 대표적인 현대공연예술 축제로 성장하기까지, REF 축제는 동시대의 이야기를 주제로 다양한 형태의 예술로, 다음 세대의 새로운 목소리를 지난 32년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인터뷰의 말미에 ‘한국의 공연예술축제의 동시대적 역할과 책임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떠오른 파브리지오 예술감독과의 인터뷰를 정리해보았다.
축제가 한참 진행 중인 바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뷰 시간을 내 주셔서 먼저 감사드립니다. 언제 REF 축제에 합류하셨는지, 또 예술감독으로서의 본인의 역할과 축제의 역사에 대해 간략하게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는 REF 축제의 예술감독이자 총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1991년 이 축제에 합류하게 되었고, 이와 함께 저의 커리어도 성장해왔다고 할 수 있죠. 프로그래밍, 즉 축제의 전체적인 방향을 결정하는 일과 조직운영, 파트너십의 개발과 지속이 저의 주된 업무입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스폰서십과 재원을 마련하는 일까지, 세 가지 캐릭터를 동시에 병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 전에는 라디오 방송과 기획·마케팅 분야에서 일하기도 했습니다. REF 축제는 1986년에 ‘빌라 메디치 가의 친구들(the Associazione degli Amici di Villa Medici)’이라는 프랑스-이탈리아 기관으로 시작됐습니다. 초기에는 음악과 무용장르를 중심으로 하여 로마의 유러피안 아카데미와 함께 축제로 성장하게 되었고, 1990년에는 현재의 축제 조직과 같은 재단이 설립되었죠.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 축제는 예술을 통해 로마와 유럽의 담론을 이야기하는 장입니다. 프랑스·독일·영국·스페인·네덜란드 등의 다양한 유럽 문화예술기관(Cultural Agencies)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어요. 현재는 이탈리아의 외무부·문화부·문화재청·로마시 그리고 라치오(Lazio) 지역구 등에서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로마의 다양한 극장들과 공간, 그리고 기관들로 이루어진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있지요. 그러나 민간 영역, 그것도 비영리재단이다보니 아쉽지만 아직 우리 소유의 건물이나 공간은 가지고 있지 않아요.
올해 축제의 주제와 방향, 그리고 축제를 통해 관객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우리는 3년마다 큰 주제를 가지고 그 주제에 따라 매년 다른 작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올해부터 2020년까지, 3년간의 축제 주제는 ‘세상의 사이에서(Between Worlds)’에요. 축제를 통해 우리가 느끼고 있는 지금의 시간을 다른 세계, 다른 지역, 다른 목소리, 그리고 서로 다른 관점의 미학을 통해 공유하고자 합니다. 즉 테크놀로지과 인간 사이, 대중성과 순수예술의 사이, 현대 극장과 문화재와 같은 역사적인 건축물·공간의 ‘사이의 미학’을 공유하자는 취지이지요. 축제를 통해 다른 세계를 함께 공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서로 다른 언어와 예술작업을 통해 다른 세대의 목소리를 전하는 것이 동시대 축제의 책임이 아닐까 합니다.
대도시에는 많은 이야기가 존재하고 있죠. 여기서 이주민(난민)과 유럽의 경제 위기를 예술로 표현하는 것과 어린이와 가족 단위의 관객들에게 동시대의 예술작품을 관람하게끔 하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모든 공연이 사회적 이슈와 관련 있는 것은 아니지만, 축제가 동시대의 주제에 반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들에게 90세가 넘은 피터 브룩(Peter Brook)의 작품과 젊은 세대의 극단을 대표하는 30세의 아나고어(Anagoor)의 <오레스테아(Orestea)>를 소개하는 것은 세대의 다른 목소리를 공유하는 것과 다를 바 없지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세대의 다른 관점과 미학을 보여주는 것도 REF 축제의 중요한 측면이니까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축제가 이를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셨는데요. 1991년 REF 축제에 합류한 때부터 지금까지, 이 축제가 어떻게 변화해왔다고 생각하시나요? REF의 기본 미션인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듣고, 동시대의 이야기를 예술가와 예술의 눈을 통해 관객들과 이야기하는 것’ 자체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 미션은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해요. 더 나아가 세상의 변화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고 관객들과 대화할 다음 세대의 예술가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축제에서 젊은 예술가를 등용하고 그들이 새로운 관점을 세상과 이야기 할 기회를 제공해야 하구요. REF축제는 매년 전체 작품 규모의 60%를 새로운 예술가의 초연작품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물론 아크람 칸(Akram Khan), 로메오 카스탈루치(Romeo Castellucci) 등 꾸준히 지원하는 예술가들도 있지만요. 또한 매년 10건의 공동제작을 진행하고 있는데 올해에는 유럽 외에도 아시아·아프리카 등 24개국의 예술가가 참여했습니다.
우리 축제의 중요한 프로그램으로는 ‘로마대학과의 팔라디온(Palladium Universita Roma Tre) ‘이 있습니다. 2003년부터 2014년까지 10년간 운영한 협력 프로그램인데, 세계적인 예술가들과 로마 3대학과 연계해 워크숍·레지던시·공동창작으로 이루어진 다채로운 교육 프로그램이었어요. 이곳에서 아방가르드 연극, 단편영화, 문학 그리고 대학생들을 위한 예술경영 프로그램 등 여러 교육 협력 프로그램을 개발했습니다. 또 하나, 2010년부터 시작한 ‘디지털 라이프(Digital life)’는 동시대 기술과 예술 간의 협력 프로그램으로 시각·공연·음악·무빙이미지(moving image)와 과학과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다양한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고 있어요. 그 외의 큰 변화라면, 2개월 동안 이어지는 축제이고 여러 협력 파트너와 함께하다 보니 인력 및 파트너쉽 협력 구조에서의 변화도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아시아 혹은 한국인들이 ‘이탈리아’나 ‘로마’에서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는 ‘유서 깊은 역사 도시’, ‘웅장한 고대 건축물’, ‘관광’, ‘음식’ 정도 입니다. 예술분야로도 르네상스 미술이나 디자인, 그리고 오페라와 같이 전통의 이미지가 강하죠. 이러한 환경에서 동시대 예술을 지향하는 REF 축제가 갖는 어려움이나 과제는 무엇일까요?
하하(웃음) 사실 이탈리아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해요. 로마는 너무나 아름다운 도시이자 그 자체로 문화유산이죠. 곳곳에 벨리니(Belini)의 오페라, 카라바죠(Caravaggio)의 미술작품 등 도시 곳곳의 유서 깊은 건축물이 있다보니 동시대 공연예술이 로마에서 자리잡기는 그다지 쉽지 않아요. 실제로 현대 공연예술 작품을 올릴 무대공간이 항상 문제시 됩니다. 공연장 자체가 문화제보호법이 적용되는 문화유산이다 보니 안전문제와 사용제한 사항이 걸림돌이 되죠. 공간에 제한을 두다보면 예술가의 상상력 또한 제한될 텐데 말입니다.
그러나 또 다르게 생각해보자면, 동시대의 예술을 통해 역사적 장소를 새롭게 조명하는 것 또한 뜻깊은 일입니다. 매우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로메오 카스탈루치의 <율리시스(Ulysses)>와 아나고어의 <오레스테아>와 같이 역사적 장소에서 현대 공연예술 작품을 발표해 멋진 장소성(site-specific)을 발현할 수도 있지요. 즉 보존을 위한 규제가 문제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유의미한 도전과제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관객 개발이 매우 중요하겠네요. REF 축제의 주요 관객은 누구이며, 관객 개발은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기본적으로 제일 중요한 관객은 바로 로마 시민들입니다. 그 외에는 매년 축제에서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어떤 작품을 올리느냐에 따라 변하게 됩니다. 각 프로그램들을 기획할 때 서로 다른 관객층을 고려합니다. 예를 들면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은 그들 세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니 젊은 관객층을 타깃으로 하는 식입니다. 그런데 젊은 예술가의 작품을 선보이는 건 티켓을 판매하는 입장에서는 많은 위험성을 내포하는 일입니다. 관객들은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예술가나 예술작품을 쉽게 선택하지 않겠지만 그것 또한 축제가 감수해야 할 리스크가 아닌가 생각해요. 처음 아나고어의 <오레스테아>를 1,000석 이상의 대극장에 배치한다고 했을 때 관료들이 경고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감독의 입장에서 티켓 판매와 관객개발은 책임감이 막중한 요소이기도 하구요. 그러나 20대와 30대의 젊은 관객들이 유서 깊은 공연장에서 같은 세대, 새로운 세대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경험은 두말할 것 없이 중요합니다.
축제의 이름이 로마유로파이지만 아시아 컨템포러리 예술에 대한 소개도 많이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국 공연예술에 관심을 갖고 계신건가요? 아시아의 현대음악, 디지털 테크놀로지 관련 작품, 그리고 현대무용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 동안 피쳇 클런천( Pichet Klunchun)과 제롬 벨(Jerom Bel)의 공동협력 작품뿐만 아니라 료지 이케다(Ryoji Ikeda)·류이치 사카모토(Ryuichi Sakamoto)·덤타입(Dumb type) 등 많은 일본 예술가를 소개해 왔어요. 아직 한국 작품을 소개하진 못했지만 한국 현대 예술작품을 제안해주신다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서울아트마켓을 알고 있지만 축제와 시기가 거의 같아 직접 방문하지는 못했어요. 그리고 아직 의논 중인 단계지만 안은미 안무가와 2020년 이탈리아 학생들이 참여하는 작품을 고려하고 있기도 합니다.
물론 이미 많이 말씀하셨지만, 마지막으로 동시대의 공연예술 축제의 역할에 대해 아주 짧게 이야기 해 주신다면? 축제는 사람들과 만나는 모멘텀이며, 예술은 그 순간을 더욱 더 특별하고 잊지 못할 기억으로 만들어주는 존재입니다. 덧붙이자면 축제는 동시대의 한 부분, 일부이므로 시대의 변화에 따라 축제 또한 항상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석규는 축제감독, 프로듀서, 리서처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영 상호교류의 해 2017-18 ‘창의적인 미래’와 안산국제거리극축제에서 예술감독, 춘천마임축제에서 부예술감독으로 일했다. 2005년에는 아시아 동시대 연극, 무용, 그리고 다원예술 작품개발을 중심으로 작업하고 있는 아시아나우 (AsiaNow)을 설립하여 한국현대 연극과 무용 국제 교류 작업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아시아 프로듀서들의 다양한 프로젝트 개발을 위해 2014년부터 시작한 협력 네트워크 Asian Producer’s Platform 의 한국 기획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