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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에어] 비엔날레와 아트페어 : 동시대미술의 두 개의 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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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8-10-22 조회수 5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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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에어]

비엔날레와 아트페어 : 동시대미술의 두 개의 축

유진상 (계원디자인예술대학 교수/ 미술비평)

오늘날의 미술전문가는 두 가지 주기를 경험하면서 살아간다. 하나는 2년, 3년 혹은 5년마다 열리는 비엔날레, 트리엔날레, 도큐멘타 등의 대형전시의 시기가 꾸준히 돌아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매년 열리는 아트페어들을 월 별로 체크하면서 일 년이라는 시간을 바쁘게 쪼개나가는 것이다. 약 90%가 2년 마다 열리는 비엔날레로 이루어져 있는 대형 국제전시의 경우 아시아 지역 비엔날레가 짝수 해에 열리고 유럽지역 비엔날레가 홀수 해에 열리는 것을 감안하면 매년 대규모 비엔날레 군(群)의 도래를 치러내야 한다는 것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최근에는 이런 전시 군(群)들이 점점 더 같은 시기에 열리고 있는 추세라고 볼 수 있다. 일종의 마케팅 전략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시기적 조정을 통해 더 많은 관객과 전문가들을 유치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비엔날레 군(群)들의 시기적 조정 현상과 함께 아트페어가 그 성격이나 목적이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패키지처럼 같은 시기에 묶여 진행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베니스 비엔날레와 바젤 아트페어는 같은 시기에 오프닝을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광주, 부산, 서울미디어아트 비엔날레와 비슷한 시기에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와 서울국제판화사진아트페어(SIPA)가 열렸다.

 2008 상하이비엔날레가 열린 상하이미술관

[그림 1. 2008 상하이비엔날레가 열린 상하이미술관] 비엔날레와 아트페어가 연동하여 개최됨으로써 얻게 되는 효과는 무엇일까. 비엔날레의 목적은 첫째, 동시대미술의 현 상황을 드러냄으로써 예술이 현재에 대해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를 전시하고, 둘째, 새로운 재능과 역량을 지닌 중견 예술가들을 발굴하여 세대의 갱신을 이루어내며, 셋째, 이를 통해 시민들에게 예술에 대한 안목과 비평적 관점, 일반적 정보들을 제공하는 것이다. 비엔날레의 기능이기도 한 이 세 가지 목적은 곧 바로 아트페어의 작동방식과도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다시 말해, 아트페어는 시장의 목적에 맞게 대규모 전시행사를 기획하는 한에서 비엔날레의 목적과 기능을 공유한다. 첫째, 동시대미술의 흐름을 읽고 그것을 즐기는 시민들에게 최선의 작품들을 제공하여 소장케 하고, 둘째, 새로운 작가들의 발굴을 통해 미술시장에 끊임없이 새로운 피를 수혈하며, 셋째, 뛰어난 예술에 대한 홍보와 마케팅을 통한 시장의 존속과 확장을 기도하고 신뢰를 얻는 것이다. 비엔날레의 목적과 기능이 큐레이터와 평론가, 예술정책 입안자들에 의해 실행된다면, 아트페어의 작동방식은 갤러리스트, 컨설턴트, 미술시장 전문가들에 의해 실현된다. 그리고 이 두 영역을 이어주는 지점에 큐레이터와 갤러리스트의 협력체계가 있다. 다시 말해 최근에는 큐레이터와 갤러리스트의 협업이 늘고 있다. 비엔날레에서 아트페어를 부대행사로 실시하겠다는 기획이 제안되기도 하고, 아트페어에는 비엔날레와 유사한 부대행사들이 열린다. 후자, 즉 아트페어에서 비엔날레와 유사한 부대행사를 개최하는 경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표적인 아트페어인 아트바젤이 언리미티드, 스테이트먼트와 같은 기획형 전시를 이미 오래 전부터 실행해 온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국내 아트페어들도 반드시 기획전시, 신진작가 소개, 강연, 축제, 퍼포먼스 공연 등을 실시하고 있으며 이런 행사들이 보다 효과적인 아트페어의 홍보 및 매출에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전자, 즉 비엔날레가 수반하는 아트페어는 아직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는데, 그 이유는 비엔날레가 갖는 상징성, 공공성, 교육적 의미, 평가기준들 때문이다. 비엔날레의 성공은 대중성의 확보나 미술시장 인프라에 대한 기여보다는 첨예한 예술적, 인문학적 관점의 확보와 전시의 질적 우수성에 의존하고 있다. 사실상 비엔날레는 대중적 평가보다는 보다 지적이고 전문적인 집단의 평가에 더욱 크게 좌우된다. 이것은 아트페어가 대중들의 관심과 매출의 성공여부를 훨씬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과 대비된다. 비엔날레와 아트페어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시민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예술의 양면성이기도 하고 공공의 양면성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두 종류의 대규모 전시행사는 마치 서로를 안 바라보는 것처럼 하면서도 서로에 대해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요코하마 트레엔날레 참가작 아이 아라카와(Ai Arakawa)의 <홈리스니스(Homelessness)>

[그림 2. 요코하마 트레엔날레 참가작 아이 아라카와(Ai Arakawa)의 <홈리스니스(Homelessness)>] 비엔날레와 아트페어는 시기에 따라 서로 부침의 시기를 달리해왔다. 최근 몇 년 간 아트페어가 호조를 누리면서 비엔날레가 다소 주춤했는데, 이는 80년대에 비엔날레가 거의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것을 떠올린다. 90년대 초에 미술시장이 붕괴되면서 기금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비엔날레의 시대가 열렸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이후 미술시장이 다시 살아나면서 2000년대에 중반에 나온 것이 비엔날레 무용론이다. 이런 10년 주기설을 증명이라도 하듯 지금 국제 금융위기로 미술시장이 다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 90년대 초와 다른 것은 아직은 대규모의 미술시장 붕괴로 번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비엔날레의 시기가 도래하게 될까? 하지만 비엔날레의 필요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앞에 제시한 비엔날레의 목적과 기능을 염두에 둔다면 미술이 존재하는 한 대규모 미술전시의 필요성이 꾸준히 존재할 것임을 알 수 있다. 비엔날레와 아트페어는 국제적 미술 시스템의 두 개의 축이다. 단지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글쓴이 진상 유진상 계원디자인예술대학 시간예술과 교수이자 미술비평가 KIAF 운영위원 2008 ASYAAF 전시총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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