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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쓰기와 원고료
-가끔 ‘비평이란 무엇인가?’를 내게 묻는 사람들이 있다. 질문을 조금 바꿔서 ‘비평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묻기도 한다. 이 질문은 비평의 가치를 묻는 것이며, 동시에 그것의 동시대적 가능성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이 질문은 간혹 내가 쓴 비평의 글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누군가에게 요청해야 할 때, 내 (글의) 권리를 말하기 위해 상대에게 요구하는 나의 첫 번째 물음이기도 하다. “당신은 비평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나는 전업 비평가다. “전업”이라는 말이 뜬금없어 보이지만, 굳이 말하자면 나는 비평가라는 직업을 가진 한 개인으로서 사회적 관계 안에서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미술 비평가로서 당대의 미술 현장에서 비평적 글쓰기를 하는 게 나의 주된 일이고, 그것과 함께 강의와 심의 등 다양한 비평적 말하기의 활동을 하고 있다.
동시대 미술 현장에서 비평적 담론에 관한 관심은 지난 세기의 신미술사나 시각 문화에 대한 지적 토대와 맞물려 당대성에 주목하는 비평적 성찰로 계속해서 확대됐다. 한국 미술 현장에서 비평의 역할은 특히 2000년대 동시대성의 확대와 2010년대 신생 공간의 출현으로 상징화되는 각각의 세대교체 전환점에서 나름의 문턱을 함께 넘으며 새로운 문제의식을 공유함으로써 주목을 받아왔다. 그 과정에서 많은 비평가들이 등장했으며, 그 현상을 두고 최근 얼마간은 “비평의 부재”와 “비평의 과잉”을 둘 다 우려하는 역설적인 상황도 공존했다.
한편, 비평계 내부에서는 비평이라는 예술 실천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인식과 대우를 요구하는 비판적 목소리들이 (비로소) 등장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비평가들이 소속 없이 개별적으로 활동하는 데다 전체 예술 인구에서 매우 적은 비율의 분야이다 보니, 부당한 원고료 산정과 지급 방식에 대한 폭로에 가까운 비판은 그 비판의 대상에 가서 닿기도 전에 소멸하기 일쑤였다.
그중 하나가 공공기관과 민간단체의 원고료 산정 기준에 대한 현실적인 재조정을 요청하는 목소리다. 비평가들이 겪고 있는 보이지 않는 갈등은 현재 문화예술 사업을 담당하는 국가, 지역 기관의 비평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인가를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지표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지역 미술관이나 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레지던시의 비평 프로그램은 대부분 레지던시 운영 기간에 맞춰 정기적인 연간 행사로 기획되며, 유사한 방식으로 수년간 진행됐다. 보통 입주 작가와 비평가가 1:1로 매칭돼 한두 차례 스튜디오 미팅을 가진 후 비평가의 글이 그 결과물로 나오게 되는데, 이것이 창작 지원이라는 공적 명분으로 레지던시 기관이 입주 작가들을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의 진행 방식이다.
한편, 국공립 및 사립 미술관부터 상업 갤러리에 이르기까지 많은 기관에서 전시를 기획하면서 비평적 토대와 방향성을 함께 제시하기 위해 전문 필진을 섭외해 원고를 의뢰하는 경우도 많다. 주로 전시를 기획하는 단계에서 기획 의도와 방향을 공유하며, 전시 준비 과정에서도 기획의 비평적 관점을 설정하는 여러 부분에 연결되곤 한다. 최종적으로는 도록에 글을 싣는 것으로 비평문이 전시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다.
이러한 두 가지 글쓰기의 방식은 비평가로서 내가 현재 하는 활동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글쓰기라는 노동의 성취에 비해 이 일에 대한 원고료는 내게 빈곤을 불러온다. 미술계의 구조 안에서만 살펴보더라도, 비평에 대한 원고료는 적합하고 정당한 기준으로 책정되어 있지 않고 지급의 절차도 다소 부당하게 이루어져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다.
구체적인 사례를 한번 살펴보자. 조금씩의 차이는 있지만 레지던시 비평 프로그램은 진행 기간이 제법 길다. 기관으로부터 의뢰가 올 때는 대략 스튜디오 방문과 비평문 마감 일정이 어느 정도 확정되어 있으며, 나는 그 기간에 레지던시를 직접 방문하여 작가의 스튜디오에서 작가와 작업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첫 업무를 수행한다. 이 행위는 하나의 증거 자료로서 사진으로 기록된다. 간혹 어떤 공공 기관에서는 이 증빙 사진을 제출하지 않으면 방문을 했더라도 (심지어 방문자 기록에 직접 서명을 했는데도) “사례비”가 지급되지 않는다는 무서운 통보를 전달하기도 한다.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의 미팅을 한 두 차례 마치고 나면 짧게는 1~2개월에서 길게는 5~6개월 후 정해진 분량의 비평문을 작성하여 기관에 제출하는 것으로 일이 끝나며, 결과물로서의 글은 그해의 레지던시 결과보고집에 실리는 게 보통이다.
자, 위의 과정은 주최 측인 기관에서 설계한 일정이고, 비평문을 의뢰받은 내 입장에서의 진행 과정을 살펴보자. 나는 스튜디오에 방문하기 전, 내용을 미리 구성해야 한다. 작가가 제공해 준 자료를 중심으로 사전 조사를 충분히 마친 후, 작가와의 대화를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스튜디오 방문을 통해 몇 시간의 인터뷰를 마치면, 비평적 관점을 구체화하기 위한 나름의 연구를 거쳐야 하며 때때로 추가 인터뷰가 진행되기도 한다. 기존 자료와 나의 비평적 시각을 재맥락화하는 비평문 작성도 책상 앞에서 쉬지 않고 오래달리기를 하는 것과는 다르다. 단거리와 장거리 달리기를 반복하다 중간에 걷기도 하고 잠깐 멈춰 서기도 한다. 그렇게 여러 날에 걸쳐 쓰고 고치기를 거듭한 후 탈고한 글을 보내게 된다.
이렇게 기나긴 글쓰기의 여정이 끝나도 원고료는 바로 지급되지 않는다. 그동안 나는 밥도 먹고 커피도 사 먹고 책도 사 보고 인터넷 요금도 내지만, 원고료는 수개월 후 모든 (용역) 필자들의 글이 수합되고 번역되고 감수를 거쳐 책으로 제작된 다음 결과보고를 마쳐야 지급되기 일쑤다. 행정 편의에 의해 개인의 몇 푼 안 되는 원고료는 최대한 미뤄진다. 레지던시뿐 아니라 국공립 미술관이나 (지원금을 집행하는) 개인에 이르기까지 원고료 지급 방식은 대부분 비슷한 행정상의 절차를 공유하고 있다. 그럼, 원고료는 적절한가? 그렇지 않다.
공공기관의 원고료 지급 기준은 대부분 정부 및 지자체 강사 수당에 근거한 원고료 지급 규정을 따르고 있다. 분야별 세칙이나 규정이 따로 마련된 것도 아니고, 대부분 공무 집행의 획일적인 행정 기준에 가깝다. 현재 국내 창작 레지던시의 원고료 책정은 상당한 모순을 가지고 있다. 스튜디오 방문은 일종의 강의에 해당하며, 강의 자료에 해당하는 것이 최종 결과물로 여겨지는 비평문이다. 따라서 원고료는 전적으로 비평문에 대한 경제적 대가가 아니라 일종의 강의 자료로 취급되어 비용이 책정된다. 분량에도 크게 제약이 있다. 통상 원고료는 A4 1페이지에 10,000원에서 14,000원 정도, 200자 원고지로 환산하면 원고지 1매의 원고료는 3,000~4,000원 정도다. 스튜디오 방문에 대한 사례비는 별도 항목으로 지급된다. 이것은 비평문에 대한 공공기관의 정확한 이해와 인식이 수립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현재의 원고료는 강의료, 번역료와 같이 해당 작업에 대한 정당한 산정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음을 뜻한다.
국공립 미술관도 마찬가지다. 200자 원고지 기준 10,000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최근 국립현대미술관이 국내 필자에게 200자 원고지 기준 20,000원을 지급한다)의 “국내 필자” 원고료를 산정하여 비평가 역할에 비해 무색한 원고료를 사업 종료에 맞춰 지급하는 게 현실이다. 국내 저널의 경우는 200자 원고지 기준 6,000원부터 10,000원까지 약간의 차이가 있다.
몇 해 전, 한 상업 갤러리의 요청으로 그 기관의 전속 작가 인터뷰 원고를 쓴 일이 있었다. 일련의 사전 연구를 마치고, 나는 작가 스튜디오를 비롯해 전시장에서 두 차례 긴 인터뷰를 가졌다. 녹음 파일을 텍스트 변환하는 일을 거쳐 인터뷰의 흐름을 재구성한 원고를 쓰고 작가와 최종 감수의 과정을 마친 후, 갤러리가 정한 비평가 “등급” 기준에 따라 A4 9페이지 인터뷰 원고에 대한 원고료 500,000원(세전)을 지급 받았다.
지역의 한 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레지던시에서는 스튜디오 방문에 대한 사례비를 제외하고 순수하게 비평 원고료로 지급된 비용은 원고지 800자 한 매 당 14,000원이었으며, 이를 통상적인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환산해 보면 한 매당 3,500원이다. 나는 두 명의 작가 비평문을 각각 200자 원고지 20매 분량(각각 A4 2페이지)으로 쓰고, 총 141,400원을 받았다. 사전에 수차례 공식적인 원고 청탁서를 요청했고 스튜디오 방문 때 계약서에 서명을 하는 동안에도 원고료에 대한 항목만 빈칸으로 두었고, 나는 그들 스스로 “운영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하소연을 들으며 비평가로서 글쓰기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모두가 꺼리는 “이의제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회에서 전문 분야의 경제 활동을 하고 있는 전업 비평가인 내가 왜 국가 기관이 키워온 운영 체계의 부조리를 헤아려줘야 하나?
게다가 나는 비평 활성화와 정상화를 위한 사업 일환으로 기획된 공공기관의 요청을 받아 지난 여름 내내 더위와 싸우며 A4 5페이지 분량의 작가론 두 편을 써서 제출했지만, 계약서에 표시된 대로 감수와 번역과 게재를 모두 마친 11월까지 원고료를 기다려야 한다.
반면, 오래 전의 일인데 한 상업 갤러리에서 기획전 도록에 글을 쓰고 갤러리 측으로부터 원고료를 말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일군의 젊은 작가들을 소개하는 기획전으로, 나는 기획 초기부터 작가들과 작업의 맥락을 공유하며 전시에 “참여”했다. 원고 제출일에 맞춰 갤러리는 내게 원고료 정산을 요청했고, 내가 제시한 원고료에 대해 갤러리 측에서는 상향 조정을 제안하며 그 전시에서 비평의 역할과 가치를 올바르게 인식하며 대우하기 위한 입장을 내게 알렸다.
각 기관과 매체에서는 필자에게 글을 청탁하고 일련의 사용권을 허가받는 일에 대한 정당한 원고료와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미술 현장에 관행처럼 팽배한 원고 도용 및 무단 사용 또한 비평에 대한 인식 결여에서 온 부당한 행위임이 분명하다. 심지어 새롭게 기획된 출판물 등에 기존의 원고를 수록하여 판매하는 경우에도, 필자에게 동의만 구할 뿐 사용료와 저작권료에 대한 인식은 누구에게도 없다. 따라서, 비평계의 올바른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원고료와 저작권료에 대한 산정 기준을 새롭게 정비해야 하며, 그에 앞서 공공기관에서의 정확한 현장 실태 조사가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