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2014년 제정된 「지역문화진흥법」을 근거로 전국에 많은 ‘지역문화재단’이 설립, 운영되고 있다. 설립된 지역문화재단들은 대체로 기존에 있던 공연장, 미술관, 생활문화센터 등을 수탁하여 운영하는 형태가 대부분인데, 서울의 기초문화재단은 앞서 말한 시설 외에도 구립도서관까지를 포함하여 운영하면서 다른 지역문화재단들과는 다른 운영 형태를 보인다(2021년 10월 말 현재 서울시 기초문화재단 22개, 도서관 운영 재단 총 17개). 이는 다른 시·도에서 대부분 직영으로 도서관을 운영하는 것과 달리 서울시는 도시관리공단이나 다른 수탁 기관 등이 도서관을 운영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기도 하다. 1)서울의 재단 소속 도서관들은 운영 주체가 변경되면서 전에는 접하지 못한 생소한 과제들을 부여받게 되었고, 도서관 현장에서는 많은 고민과 도전이 필요하게 되었다.

성북구 도서관의 실험: ‘마을로 나간 도서관’

성북문화재단은 2012년 설립되어 서울의 대다수 기초자치단체와 마찬가지로 기존 성북구도시관리공단에서 운영해오던 도서관, 영화관, 미술관 등을 수탁하며 운영을 시작했다. 재단으로 운영 주체가 바뀌면서 도서관도 재단이 가진 지역문화진흥이라는 사명과 재단의 운영 방향인 공유생태계 구축, 거버넌스, 문화재생 등에 따른 새로운 변화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후 도서관은 재단의 많은 사업이 거버넌스로 진행되면서 각각의 경계가 사라지고, 영역이 확장되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공유성북원탁회의(성북의 민관참여거버넌스)에 참여하면서 지역의 문제들이 거버넌스 구조를 통해 적극적으로 공론화될 뿐만 아니라 해결되는 것을 보았다. 그간 주로 도서관에 오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해왔던 도서관 운영에서 '지역'을 만나고 '문화예술'을 만나고 '거버넌스'를 만나면서 이제 지역에서 도서관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갖게 된 것이다.

성북구립도서관 내부 구성원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기 위해 2015년부터 도서관 직원 전체 회의를 통해 공론을 벌이기 시작했고, 도서관의 역할을 확장하기 위해서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은 ‘마을을 파악하는 것’이 시작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2017년 1월부터 약 3개월간 9개의 도서관 사서들이 직접 마을로 나가 지역조사와 요구조사를 시작했고. 이어서 다시 약 3개월간 지역의 214단체, 526명을 만났다. 이 과정에서 지역사회가 요구하는 도서관의 모습, 그리고 도서관이 당면한 과제들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성북구 사서들은 지역주민들이 도서관에 원하는 것은 지역의 정보 공유와 자원의 연결, 지역 현안을 공유하고 솔루션을 논의할 수 있는 공론장이며, 무엇보다 도서관이 개인과 단체 활동의 장이 되어 지역과 개인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함께 하기를 바란다는 것을 확인했다.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지만, 실제로 이 지역에 필요한 게 뭔가. 그리고 만약 이 지역에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에 대한 솔루션이 어디에서 나올 수 있는가. 그걸 찾아주는 역할이 도서관 사서분들의 역할이라 생각하거든요.”

-지역문화예술기획자 인터뷰 中-

“동네가 낙후되어 있다고, 교육환경이 안 좋다고, 아이가 크면서 교육환경이 좋은 곳으로 많이들 떠나요. 이사 갈 생각을 하기보다 아이들이 자라기 좋은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하면 좋을 텐데…. 제가 도움이 될지 모르나 마을을 위한 일이라니 힘을 보태보겠습니다.”

-지역 민간단체 인터뷰 中-

출처: 성북문화재단 2017 공공도서관 동행원탁
출처: 성북문화재단 2017 공공도서관 동행원탁

지역 문화가 모이는 공간, 거버넌스 중심으로서의 도서관

성북구립도서관은 지역사회 요구를 파악한 후 도서관별로 지역의 독서회, 작은도서관, 새마을문고, 복지관, 통장, 상인, 예술가, 교사, 마을코디네이터, 보육 반장 등이 참여하는 도서관 정기모임 ‘도서관마을네트워크’를 조직해 지역의 문제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하고 해결해 나가는 거버넌스 구조를 만들었다. 거버넌스 구조를 바탕으로 지역사회와 도서관의 현안들을 도서관 공론장 ‘마을in수다’를 통해 함께 해결해 나가면서 도서관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첫째, 신규 도서관 건립을 주민들과 함께 준비하기 시작했다. 성북구는 도서관 건립 약 6~12개월 전에 사서를 채용하여 건립될 지역과 주민들의 요구를 직접 조사하고 마을 간담회를 통해 도서관 건립을 공론화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도서관의 역할을 새롭게 고민하면서부터는, 운영 방향을 지역 주민, 단체들과 함께 결정함으로써 지역 요구에 맞는 도서관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월곡꿈그림도서관은 원래 어린이도서관으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사서들의 지역과 요구조사를 통해 그 지역에 청소년도서관이 필요함을 확인하고 계획을 변경, 청소년도서관을 건립해 청소년들이 직접 운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다.

둘째, 도서관에서 다양한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성북정보도서관은 주민 공론장과 총회를 통해 잘 사용하지 않던 지하 세미나실을 블랙박스형 극장으로, 개인이 독점하여 사용하던 독서실을 어린이미술관으로 바꾸면서 일상의 공간인 도서관에서 문화예술활동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도서관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도서관마을네트워크의 주체들과 예술가들이 도서관에서 작은 축제를 개최하기도 한다.

셋째, 도서관에서 대안적 삶의 방식에 관해 이야기 나누기 시작했다. 도서관 공론장 ‘마을in수다’를 통해 도서관이 개인과 지역의 삶과 동떨어진 곳이 아닌 지역의 문제들을 함께 논의하고 학습하면서 솔루션을 찾아 나가는 곳으로 변화했다. 석관동미리내도서관은 최근 기후 위기를 주제로 전문가와 지역의 단체, 개인들이 모여 학습하고 개인과 지역사회가 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 나가고 있다.

넷째, 시대와 지역을 읽는 사서들이 등장했다. 사서들이 도서관마을네트워크, 공론장 ‘마을in수다’를 진행하면서 그리고 지역의 다양한 거버넌스 활동 등에 참여함으로써 시대와 지역의 문제를 읽고 그와 관련한 자료와 정보를 수집ㆍ연결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들이 쌓이면서 도서관과 사서는 지역 정보의 중심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도서관을 통해 지역의 문제를 더 관찰하게 되고 문제해결을 위한 생각을 깊이 하게 되었어요. 또한 문제해결을 위해서 전문가나 전문 단체들과의 도움이 필요한데 그 자리를 도서관에서 마련해 주다니 너무 놀라워요”

-‘공공 공간 마련’을 위한 2017 도서관 마을in수다 참여자 인터뷰 中-

“청소년공간마련을 위해 도서관을 중심으로 많은단체들이 모여 이를 공론화하고 공간마련을 위해 행동했더니 석관동에 청소년 공간이 생긴다고 하네요. 이런 일들이 불가능하지 않았어요”

-청소년공간만들기(청공만모) 회원 인터뷰 中-

도서관마을네트워크 운영 사진(좌), 정보서비스 홍보물(우)
도서관마을네트워크 운영 사진(좌), 정보서비스 홍보물(우)
도서관 로비에서 진행한 마을 축제 전경
도서관 로비에서 진행한 마을 축제 전경

나가며

성북구립도서관의 다양한 실험과 도전은 우리의 삶터인 지역을 아는 것이 최우선이어야 한다는 것, 주민들이 다양한 기회를 통해 삶의 주체가 될 때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더불어 다양한 분야에서 경계를 넘는 협업은 각 분야의 영역과 역할을 확대하며, 이를 통해 주민들에게도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도서관과 문화예술은 다른 영역이지만 사실 분리할 수 없는 몸체이다. 사람들의 삶을 담고 있다는 점, 일상에서의 비일상적 자극이 새로움을 통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힘이 된다는 점에서 이 둘은 그 궤적을 같이 하고 있다. 도서관은 시민들의 일상에 만남과 질문, 발견으로 변화를 만들어내고, 문화예술은 비일상적 자극을 통해 새로움과 변화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일상과 비일상은 구분될 수 없는 합치를 이뤄 나와 이웃과 지역을 변화시키는 힘으로 확장된다. 이것이 문화예술이 도서관과 만나야 할 이유이다.

1) 이용구·김선아(2021), 「한국의 공공도서관 통계에 대한 분석 연구: 도서관 기본 정보 및 시설 현황을 중심으로」,
『정보관리학회지』.

  • 김주영
  • 필자소개

    김주영은 대학도서관과 공공도서관에서 25년 동안 사서로 근무하며, 도서관 현장에서 다양한 실험과 도전을 통해 ‘도서관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가는지’를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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