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가치를 생산해 내는 소셜벤처

기업은 비즈니스를 통해 존재한다. 기업은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제시하고(마케팅), 제시한 가치를 실제 만들어 내며(생산), 이것을 고객에게 전달(판매)함으로써 수익을 얻는다. 그리고 얻은 수익을 다시 새로운 가치를 제안하고 생산하는데 활용(투자) 한다. 가치 제안-가치 창출-수익 실현이라는 구조는 비즈니스 모델이라 부른다. 이 모델의 원리가 순환하며 기업은 유지되고, 경제적 이윤을 축적한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 마땅히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 노동 착취라거나 무분별한 자원 소비와 환경오염을 일으키지 않는다거나, 소상공인을 비롯한 지역사회와의 상생 등이 그것이다.

회사의 유지와 경제적 이윤을 얻는 데 그치지 않고,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는 기업들을 이른바 ‘소셜벤처’라고 한다. 이들 기업은 비즈니스 모델 일부에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 낼 메커니즘을 심어 놓는다. 고객에게 사회적 의도를 담은 제품 가치를 제안하거나(예를 들어 장애인/비장애인이 함께 쓸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 제품), 고객에게 제공하는 제품 및 서비스는 타사와 같더라도 그것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회적 이로움을 추구하거나(친환경 원료의 사용, 취약계층 근로자의 고용 등), 벌어들인 수익을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식이다(“이 제품 수익의 10%는 환경보호를 위해서 쓰입니다”와 같은).

예술기업도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까?

예술에는 크게 두 가지 가치가 있다고 한다. 심미적(본래적) 가치와 도구적 가치이다. 심미적 가치는 독창성, 조화로움, 희소성, 동질성 또는 흥미로움 등에서 발현되는 미학적인 즐거움이다. 이는 여타의 교육, 복지, 의료 서비스 등에서 얻는 편익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예술 고유의 특성이다. 반면 도구적 가치는 예술이 갖는 사회적, 공익적 역할에 따른 편익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을 통해 사람들의 내외적인 치유가 일어나거나, 사람들의 행동이 효과적으로 변화하거나, 지역 사회의 안전이 강화되는 것 등이다. 심미적 가치와 도구적 가치는 상호 대립적이거나 배제적인 관계에 있지 않다. 많은 경우 이 둘은 상호 복합적인 형태로 발현된다.

이러한 예술의 가치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예술기업도 소셜벤처가 될 수 있을까? 우선 예술 소셜벤처는 예술의 심미적 가치를 많은 사람이 보편적으로 향유할 수 있도록 촉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소위 ‘문화의 민주화’와 ‘문화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이다.

‘문화의 민주화’는 오페라, 클래식, 미술, 창극 등 심미적으로 높게 평가받는 예술을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최근 많은 예술 분야 벤처기업들이 국악, 뮤지컬, 전시, 공연 등 가격 장벽이 높거나 사전 경험 없이 진입하기 어려운 예술 콘텐츠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팬덤을 형성하는 등 대중의 접근성을 높이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문화 민주주의’는 개인의 창조성을 존중하고 그 역량을 확대해야 한다는 이념이다. 국민 누구나 문화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자발적이고 상향적(bottom up)인 접근이다. 예술 기업들은 예술교육 또는 창작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예술 콘텐츠를 고안하여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예술 활동을 경험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예술산업이 이미 상당한 규모로 형성되어 있고, 경제적 수준도 높아진 우리나라에서 국민 일반을 예술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자체가 사회적 가치로 수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다만, 여전히 경제적, 사회적, 지리적인 한계로 예술적 경험이나 학습에 참여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사회적 가치로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을 통하여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 내는 소셜벤처

필자의 관점에서 예술의 사회적 가치가 드러나는 순간은 사회문제를 해결하거나 공공의 이익을 증진하는 방법으로써 문화 예술이 도구적 가치를 발휘하는 때인 것 같다. 예술 분야의 소셜벤처는 바로 이러한 영역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찾는 것이 필요하겠다.

첫째, 우선 문화 예술을 통해 사회문제를 직접 해결하거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다른 대안적인 체계가 더욱 효과적으로 작동하도록 기여하는 것을 문화 예술이 창출하는 사회적 가치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낙후된 지역사회 환경에 공공예술 기업의 문화적 환경개선 사업을 통해 범죄를 예방하거나, 사고 위험이 큰 교통사고 위험 지역에 시청각 장치를 부착하여 교통사고를 줄이는 옐로 카펫이나 터널 내 음향장치 등은 기존의 사회서비스 전달 체계에 부가적으로 문화 예술이 기능하는 사례로 들 수 있다. 또한 문화예술 활동을 통한 스트레스, 우울증 감소 같은 예술의 치유적 효과를 통하여 사회 보건 수준을 향상시킬 수도 있다1).

둘째, 예술 활동을 통해 우리 사회 전반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강화시키는 것 또한 예술 소셜벤처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사회적 가치일 것이다. 독립영화를 발굴하고 상영함으로써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사회에 전달하는 경우나 발달장애인들의 작업물을 제품으로 만들어 시장에 새로운 관점의 아티스트가 등장하게 하는 경우가 그렇다.

셋째, 예술 소셜벤처는 지역사회의 자산을 증대시키고 지역공동체의 유지와 번영을 위한 역량을 강화시킬 수 있다. 지역 내 복합문화 예술공간을 형성하거나 창작자들의 창작공간을 형성하거나, 지역 정체성을 보존할 수 있도록 지역 문화 유산을 재해석한 디자인 제품을 생산/판매하는 활동부터 우리에게 익숙한 도시재생까지 그 범위는 무궁무진하다. 문화 예술을 기반으로 한 경제조직이 형성되거나, 문화 예술과 관련된 관광, 여행 등의 관련 사업에 영향을 끼쳐 지역 경제를 활성화한다. 프랑스 낭트 섬에 버려져있던 조선소 부지를 활용해 지어진 ‘섬의 기계들(Les Machine de l'Île)’이 독특한 콘셉트로 한 해 6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관광지가 된 것처럼 말이다.

끝으로 지구 생태계 및 환경보전 또한 예술 분야 소셜벤처들의 도전이 기대되는 영역이다. 예술은 이를 접하는 대상에 대한 소구력이 높기 때문에, 기후 위기나 생태계 보전 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을 강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 창작품을 만들고 전시하는 과정에서 친환경적인 소재나 제작 방식 등을 고안하여 비즈니스로 연결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술 소셜벤처, 사회문제에 한 걸음 더 다가서길

최근 문화 예술 분야의 소셜벤처를 표방하며 등장하는 기업들의 비즈니스 모델을 살펴보면 이미 만들어진 예술 콘텐츠를 고객에게 연결해 주는 유통형 또는 정보제공형 플랫폼 비즈니스에 편중되는 경향이 있다. 앞서 이야기 한 대로 예술적 경험이 보다 많은 국민들에게, 특히 이러한 예술 콘텐츠를 접할 수 없는 여건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에서 소셜벤처가 어느 정도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속을 들여다보면 예술이 갖는 도구적 가치와 예술 특유의 힘을 이용해 사회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예술 콘텐츠 자체를 거래하는 IT 기업에 가깝다는 생각에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소셜벤처를 고민하는 예술가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문제 안으로 들어가 비즈니스 기회를 탐색해 보길 기대한다.

  • 필자소개

    2010년 사회적 기업의 SROI 성과측정 개발을 시작으로, 사회성과 인센티브(SPC), ESG 성과측정체계, 21년도 문화예술기업 성과측정체계 고도화 연구 등 기업과 조직이 창출하는 사회적 가치를 가시화 할 수 있는 측정평가방법론 개발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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