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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음성해설, 어디까지 왔냐구요?
한국 무용음성해설가 도입의 과정과 현재전문무용수지원센터는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무용수들의 복지 환경 조성과 은퇴 후 직업 전환을 지원하기 위한 단체입니다. 무용인들이 은퇴 후 진출할 수 있는 분야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의 새로운 직업 분야를 개발하는 것도 전문무용수지원센터의 주요한 업무 분야 중 하나입니다. 그동안 센터에서는 ‘Dance for PD’, ‘Dance for Dementia’라는 두 프로그램을 운영해 무용수들이 강사로 활동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 왔습니다.
‘Dance for PD’는 파킨슨병 환자를 위한 무용 프로그램으로 서울 대학로 댄스 스튜디오 마루, 양산 부산대병원, 인천 라이온 요양병원 등에서 상설 운영 중이며, ‘Dance for Dementia’는 치매 예방 무용 프로그램으로 서울시의 각 구별 치매지원센터 및 환우 커뮤니티와 연계하여 강사 파견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두 프로그램은 의학계와도 지속적으로 협력하여 연구 결과를 내고 있으며, 의학과 무용의 융복합을 통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사례로 센터에서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의 무용 공연 접근성 확대를 위한 ‘무용음성해설’은 센터에서 추진하고 있는 또 다른 직업 분야입니다. 센터에서는 새로운 직업 분야를 모색하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2018년 초,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있던 기자를 통하여 ‘무용음성해설’에 대한 정보를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무용음성해설가’는 시각장애인들이 무용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무용수의 움직임, 스토리 등을 말로 표현해내는 직업입니다. 말 그대로 무용을 말로 해설함으로써 무용수의 몸짓을 읽어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직접 춤을 춰본 무용수에게 유리하고, 해외에서는 무용수 출신들이 이 분야에 많이 진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은퇴 무용수를 위한 직업 전환의 일환으로 의학과 연계한 프로그램들이 성공했던 것처럼 무용을 통해 새로운 직업을 창출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생겼고, 바로 센터 내부 회의를 거쳐 추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새로운 직업 분야의 경우 관련 정보를 찾기 힘들기 때문에, 해외 성공 사례를 찾고, 해당 기관과 협력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이에 센터에서는 먼저 미국과 유럽의 무용음성해설에 대한 자료 조사를 시작하였습니다.
2018년에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IOTPD(전문무용수 직업전환 국제기구 국제 총회)에 저희 센터가 참여하여 유럽 무용음성해설가 교육프로그램, 교육기관, 서비스 수요, 극장과 무용음성해설 서비스 협력 관계 그리고 무용수 직업 전환 사례 등에 대해 다각적인 조사를 진행하였고, 지속적으로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영국 무용수직업전환센터인 DCD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입수하는 등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영국 출신의 무용음성해설가인 엠마-제인 맥헨리(Emma-Jane Mchenry)가 ‘한영 상호교류의 해’에 한국을 방문해 최초로 ‘공·空·Zero’의 무용음성해설을 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엠마-제인 맥헨리는 센터에서 공동 주최한 워크숍 및 심포지엄에 직접 참여하여 스코틀랜드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의 무용음성해설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공유해 주었습니다.
또한 영국의 배리어프리(Barrier-Free) 전문 기업인 보컬아이즈(Vocaleyes)의 무용음성해설가와 새들러스 웰스 극장(Sadler's Wells Theater)의 무용음성해설 서비스 담당자와의 교류를 통해, 영국의 무용음성해설가 현황과 인력 양성 프로그램 및 수요에 대한 정보를 얻고 선진화된 시스템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제가 놀라웠던 것은 새들러스 웰스 극장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시각장애인만을 위한 공연 예약 서비스와 터치투어(Touch Tour)가 대표적인데, 터치투어는 시각장애인들의 사전 작품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서 의상, 세트, 소품 등을 직접 만져 볼 수 있게 하고, 무용음설해설가가 자세한 해설을 제공하는 서비스였습니다. 시스템을 보면서 느낀 것은, 배리어프리 서비스를 위해서는 극장과 단체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고 관계자들의 인식 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국내 무용음성해설가 양성을 위해서는 직업 개발의 차원을 넘어서 근본적으로 공연계 전체에 배리어프리가 도입되어야겠다는 생각에 고민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무용음성해설가 양성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중요한 부분인데, 영국에도 전문적인 프로그램은 없었습니다. 연극이나 영화 위주의 단기 양성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대다수가 자신들의 경험을 토대로 다양한 방법 등을 연구해 무용음성해설에 대입해 나가면서 경력을 쌓았다고 했습니다. 무용음성해설가가 되기 위해서는 이들이 많은 실습을 할 수 있는 여건 또한 마련되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국내에는 생소한 분야이기 때문에 실습이 어려운 점이 있어, 이 부분 또한 센터의 숙제로 남게 되었습니다.
영국에서 만난 또 한 명의 무용음성해설가 브리짓 크라올리(Briget Crowley)는 30여 년을 일해 온 전문가였습니다. 그녀 또한 무용수 출신으로 영국의 매튜 본, 노던발레단 등 다양한 안무가나 무용단들과 무용음성해설 작업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브리짓 크라올리는 대본이 있는 영화나 연극에 비해 무용음성해설은 정말 어려운 분야라며, 무용 동작에 대해 완벽한 이해가 있어야 무용을 말로 표현해 낼 수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무용음성해설가의 요건은 기본적으로 무용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토대로 스크립트 작성과 해설 능력까지 3박자를 갖춰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녀도 처음에는 미술과 연극계에서 음성해설가로 경력을 쌓다가 무용 분야로 옮겨왔다고 했습니다. 특히 현대무용은 새롭게 창작된 동작을 말로 전달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 안무자와 창작 단계부터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안무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음성해설 스크립트를 작성해야 하기 때문에 고난도의 창작 영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맨체스터 노던발레단의 수석 무용수 피파 무어(Pipa Moore)는 발레단과 무용음성해설가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해오다 숨은 재능을 발견해 브리짓의 개인 지도 아래 무용음성해설 트레이닝을 거쳐 노던발레단의 무용음성해설가로 활동하게 된 좋은 사례였습니다.
우리 센터는 무용계 전반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과,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도입하는 분야라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무용음성해설 직업개발 프로그램은 장기적 관점에서 추진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배리어프리 공연에 대한 인식 변화가 선행되어야 하고, 무용단과 극장 시스템 등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우리 센터뿐만 아니라 공연계 관련 부처들의 관심과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최근 공연예술계에서 배리어프리 서비스가 조금씩 확장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연극 분야에서는 이미 이러한 공연들이 실험적으로 도입되고 있습니다. 이 분야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아시아 나우 최석규 대표의 제안으로 2020년 여름 ‘무용음성해설 워크숍’을 공동 주최하게 되었습니다. 이 워크숍은 전문무용수지원센터, 국립현대무용단, 프로듀서그룹 도트와 아시아 나우가 공동 주최하고 프로듀서그룹 도트와 아시아 나우가 기획주관을 담당했습니다. 수강생 모집 초반에는 사람들이 무용음성해설가 양성 과정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보일지 미지수였지만, 20명 모집하는 입문 과정에 현직 무용수, 안무자 등 90여 명의 지원자가 몰리면서 무용계의 관심을 체감했습니다.
2020년 10월에는 무용음성해설 국제 심포지엄을 열어 배리어프리 개념 전반과 무용 분야의 음성해설을 비롯해 무용수의 직업 전환 사례를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심포지엄에서 무용음성해설가 엠마-제인 맥헨리가 기조 발제를 맡았고, 영국 노던발레단 수석 무용수에서 무용음성해설가로 성공적인 직업 전환을 한 피파 무어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영상 인터뷰에 참여했습니다. 최석규 대표가 ‘예술의 접근성과 한국에서 무용음성해설의 현재’에 대해, 정희경 변호사가 ‘배리어프리 공연의 법적 함의’에 대해 각각 발제를 했습니다. 정재왈 고양문화재단 대표, 심정민 무용평론가, 김길용 와이즈 발레단 단장이 토론자로 참여해 열띤 토론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무용음성해설 워크숍’ 전문가 과정을 이수한 이경구 안무가가 ‘마이너스 16’ 하이라이트와 ‘빌리 엘리어트’ 인트로 무용음성해설 시연을 했습니다. 이 심포지엄은 무용음성해설의 현실적인 사례를 듣고 무용계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함께 고민하는 자리였습니다.
전문무용수지원센터는 무용계와 관계 부처 등과 협력하여 무용음성해설 수요 개발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지속할 계획입니다. 그동안 저희 센터에서 진행한 활동들로 무용음성해설에 대한 각계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무용음성해설가 양성 프로그램의 확대 계획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계획들이 계획에 그치지 않고 무대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관련 기관과 협력하여 무용수에게는 새로운 직업의 세계를 열고, 그동안 문화예술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있었던 계층에는 무용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민문기는 금호문화재단과 국립발레단을 거쳐 현재 전문무용수지원센터에서 대외협력팀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