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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공연예술계가 아시아를 주목한다’는 말은 더 이상 과장된 헤드라인이 아니다.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구의 공연예술축제나 극장에서 ‘아시아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빈도는 급증했고, 서울아트마켓(PAMS)을 찾는 비아시아권 프리젠터의 숫자도 ‘주목’을 입증한다. 그 이면에는 권역 내에서의 이동과 협업이 자유로운 유럽이 더 이상 새로운 소재, 방식, 작품을 찾을 수 없게 되자 여전히 신비로운 동양으로 눈을 돌렸다던가, 경제불황의 여파로 문화예술 부문의 예산이 급감하자, 상대적으로 자국 재원조달의 가능성이 높은 일부 아시아 국가 때문에 아시아를 찾는다는 가설도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진다.
‘아시아’라는 단일 집합명사로 표현되는 서구적 시각을 경계하되 무조건 환영하거나 무조건 배척할 것이 아니라, 아시아가 주체가 된 ‘아시아’의 정의에 대한 고민과 이해가 필요하다는 서울아트마켓의 판단은 이러한 맥락에 기인한다. 서울아트마켓은 매년 포커스권역을 설정, 집중적인 정보제공의 기회를 마련하고 있는데, 2006년에 이어 다시 올해 ‘아시아’를 포커스로 삼았다. 다만, 2006년에 아시아의 공동작업에 중점을 둔 데 비해, 올해는 오히려 앞 단계로 돌아가 아시아를 보는 내외부의 이야기를 듣는 프로그램으로 기획되었다.
아시아를 사는 개인의 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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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굴링실험극장의 야오리춘
▲▲ 방갈로르 영화드라마센터의 프라카쉬 벨라와디
▲ 독립프로듀서 오자와 야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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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포커스세션인 ‘아시아를 말하다’는 아시아에서 일하는 공연예술 전문가들이 꼽는 ‘현재 자국 공연예술계의 화두’를 공유하는 구성으로, 2011 서울아트마켓의 첫날인 10월 10일 국립극단에서 진행되었다. 각 발제자의 화두는 때로는 공연예술 자체에 대한 화두이기도, 예술계를 둘러싼 사회의 화두이기도, 더 나아가 사회가 가진 과거, 즉 역사와 연결된 화두이기도 했다.
한국과 대만의 발제자는 ‘극장’이라는 직접적인 화두를 제시했다. 남산예술센터의 이규석 극장장은 최근 공공에서 운영하는 중극장의 활성화가 역으로 대학로 등 민간의 소극장이나 극단의 독립성 등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를 전하며, 공공극장을 통한 지원과 더불어 민간 연극계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균형감 있는 지원정책을 제안했다. 대만의 소극장인 굴링실험극장의 야오리춘 프로듀서는 80년대 후반부터 대만에서 일어난 소극장 운동이 종언을 고한 현재 대만에서 여전히 실험적, 전위적, 다원적인 작업들을 통해 기존 주류 문화를 도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굴링실험극장의 활동을 소개했다.
아시아의 화두는 극장에서 사회로 나아간다. 인도와 일본의 발제자는 나란히 성장의 후폭풍을 예술과 연결하여 이야기했다. 세계경제의 평균적 발전 속도와는 비교할 수 없는 빠른 성장이 특징인 아시아 (일부)국가는, 경제적으로는 공고한 입지를 다지게 된 반면, 순리를 거스른 과도한 속도전은 많은 폐해를 내포할 수밖에 없었고, 이제 그 폐해가 가시화되는 시기에 이르른 것이다.
인도의 방갈로르 지역에서 영화드라마센터를 설립∙운영하고 있는 연극연출가 프라카쉬 벨라와디는 급속한 시장경제의 발전과 도시화로 인해 인도의 문화적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인도는 한국과 더불어 IT산업의 첨병으로 꼽히는 국가이며, 그중에서도 방갈로르는 IT심장부라 불리는 지역이다. 그만큼 산업자본이 집중됨에 따라, 농촌이 해체되고, 지역을 기반으로 전통예술을 계승하며 생활했던 예술가들이 도시로 새로운 직업을 찾아 떠나는 상황이라고 그는 전한다. 또한, 공용어가 16개에 이르는 인도의 특성상 언어별로 다양한 대중매체가 생겨나고 있지만, 동일한 상업자본이 매체를 잠식하며 획일적인 문화를 주입하는 첨병 역할을 한다거나, 다양한 컨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젊은 인력이 부재한 것도 큰 우려의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프라카쉬는 정부가 예술을 지원하기보다는 개입하고 관리∙감독하는 현재 인도의 상황에서, 예술인들이 기술, 산업과 나란히 예술의 역할을 정의하여 인식시키고,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지켜나가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며 발제를 마무리했다.
‘3.11 대지진과 원전사태 이후 일본의 공연예술’이라는 주제로 발표에 나선 독립프로듀서 오자와 야스오는 발제문을 통해 “최근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모든 정치와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독립프로듀서로서의 스스로의 자세와 신념을 더욱 확고히 했다”고 밝혔다. 그는 ‘문명이 사고를 발명했다’는 프랑스의 사상가 폴 비릴리오의 말을 인용하며 3.11 이후 지진이나 원전을 소재로 만들어지는 서구-특히 유럽-의 공연에 우려감을 나타냈다. “아직 사태는 진행 중이며, 흥미로운 예술적 소재로 보기에는 삶 자체와 직결된 위험한 사태”라고 전제한 뒤, 다만 현재의 사태를 직시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로부터 새로운 자세와 관점이 탄생할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현재로 이어지는 무거운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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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오창디 워크스테이션아트센터의 우원광
▲ 큐레이터 게오르기 마메도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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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각국은 ‘현재’보다도 무거운 ‘과거의 기억’이나 ‘역사적 상처’를 안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가 식민지나 전쟁 등의 참혹한 근대적 경험을 갖고 있는 아시아에서 개개인이나 국가가 가진 과거에 대한 트라우마는, 현재에도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암리타퍼포밍아츠의 대표로 14년간 캄보디아에서 활동해온 미국 출신의 예술가 겸 기획자 프레드 프럼버그본지 인터뷰 보기는 본인이 하고 있는 캄보디아 현대공연예술 작업의 세 단계를 설명했다. 현재의 젊은 예술가들은 캄보디아의 잔혹한 역사를 배우지 못하고 자란 세대인데, 그들에게 과거와 역사, 캄보디아의 전통을 알게 하고,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자본주의 사이의 간극을 메울 수 있는 실마리를, 젊은 예술가들의 전통과 언어를 현대화하여 찾도록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활동을 통해 국내외의 캄보디아에 대한 선입견을 해체하고자 한다. 비극적 역사를 가진 나라가 아닌 새로운 차원의 국가 정체성을 갖도록 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프레드는 과거의 기억에 머물지 않고 그것을 통해 캄보디아가 배운 것, 잃어버린 것을 스스로 찾아가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자신의 활동을 소개했다.
과거와 만나는 보다 구체적인 실천을 소개한 것은 중국의 차오창디 워크스테이션아트센터의 공동대표인 우원광이었다. 그가 이끌고 있는 중국 최초의 독립공연단체이자 차오창디 워크스테이션의 창설주체인 리빙댄스스튜디오는 94년 창단 이래 정부나 민간으로부터의 지원을 전혀 받지 않고, 자립적으로 아트센터 운영은 물론 교육 및 워크숍, 페스티벌 개최 등의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는 80년대 이후 출생한 젊은 예술가들과 진행한 (기억 프로젝트)를 소개했는데, 이 프로젝트는 농촌지역 주민들에게 60년대 중국의 문화혁명, 대기근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독립적인 재정운영은 아트센터로서는 어려운 과제이지만, 그만큼 지원의 반대급부인 제약이나 간섭이 없기 때문에 예술가들이 보다 현실을 반영하고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작품을 만들 고 있다고 우원광은 설명했다. 중앙아시아 타지키스탄에서 온 큐레이터 게오르기 마메도브 역시, 2011 베니스비엔날레의 중앙아시아 통합 파빌리온의 사례를 들며, 구소련으로부터 독립은 했지만 중앙아시아 5개국은 여전히 과거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채, 정체성의 혼란과 소통의 문제를 겪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발제에 나선 아시아의 기획자들은 이처럼 다양한 이야기를 가진 아시아가 ‘공통’의 문화성을 가진 권역으로 구분되는 것에 우려를 표하며, 아시아라는 구분은 지정학적인 구분이어야 한다는 데 입을 모았다. 또한, 자신들 역시 각 국가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으로서의 의견임을 매 발표마다 덧붙이며 아시아에 대한 성급한 정의에 대해 거리를 두는 모습이었다. 다만, 협업 등의 구체적인 작업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이번 논의처럼 아시아 내에 공존하는 다양한 이야기, 관점을 알고 이해하는 과정이 특히 ‘아시아’이기 때문에 더욱 필요하다는 사실에 공감하며 자리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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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고주영은 2006년부터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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