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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활용 공연기획 사례
서울예술단 메타버스 공연 '잃어버린 얼굴 1895'을 중심으로창작가무극(뮤지컬)을 메타버스화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필자가 보는 공연예술에서의 메타버스는 공연을 매개로 작품의 이해와 몰입을 높이는 또 다른 예술체험 공간이면서, 새로운 형태의 창작활동이 가능한 곳으로서 작품과 배우, 무대를 연결하고 작품의 DNA가 다차원으로 확장되는 세계다. 2013년 초연 이후 꾸준히 재연되어 5년 차를 맞은 서울예술단의 대표 레퍼토리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은 단 한 장의 사진을 남기지 않은 명성황후를 해석한 작품이다. <잃어버린 얼굴 1895>은 역사적 사실에 예술적 허구가 결합된 팩션(Faction) 사극 뮤지컬로서 연출자 이지나, 작곡가 민찬홍 등 훌륭한 제작진들과 함께 차지연 배우를 비롯 대본, 음악, 안무, 무대미술까지 뛰어나 가무극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도 알려져 있다. 코로나 확진 여파로 공연이 취소되는 등 어려움을 겪었던 <잃어버린 얼굴 1895> 공연은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ifland)에서 관객과의 접점을 만들어 다채로운 시도를 이어가게 된다.
뮤지컬 <잃어버린 얼굴 1895> 전용 이프랜드(ifland) 랜드 |
메타버스 공연 기획에서는 오프라인 관극의 경험이 다차원으로 계속되기 위해 이에 맞는 공연의 형태와 경험 설계가 필요하다. 이때, 플랫폼의 선택은 하나의 기획 방향을 정의하게 된다. <잃어버린 얼굴 1895>를 SKT가 만드는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ifland)의 ‘메타버스 컬처 프로젝트’ 의 일환으로 제작하기로 하면서, 먼저 플랫폼 특성에 맞는 기획이 필요했다. 메타버스 공연은 주로 콘서트나 전시, 축제 등에 쓰였기에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상대적으로 활용이 없었던 공연예술, 나아가서는 뮤지컬 IP의 확장을 도모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3차원 가상세계로 인식되고 있는 메타버스를 단순 360도 체험이나 오프라인 공간을 가상으로 구현하는 수준의 일차원적인 접근이 아니라 가상공간을 함께 체험하게 하고 교류하는 소셜 경험으로 재탄생시켜야 했다.
우선 <잃어버린 얼굴 1895> 메타버스 뮤지컬의 형태를 배우들의 동작을 입힌 3차원 아바타가 펼쳐내는 공연으로 정하고, 웹 뮤지컬과 유사한 형태로 사전에 메타버스 내에서 공연한 것을 촬영하여 상영하는 제작 상영회 이벤트를 진행했다. 메타버스에서 실시간 뮤지컬 공연을 하게 될 경우 레이턴시(latency) 이슈가 생기는데, 이로 인한 완성도 저하를 막기 위해 동시성을 포기한 차선이었다. 이를 위해 웹 플랫폼 성격에 맞게 영상 문법을 갖고 숏폼으로 제작되는 웹 뮤지컬처럼 메타버스 플랫폼에 맞는 새로운 표현언어와 문법에 대한 고민을 하였다. 공연의 현장성을 그대로 옮겨오는 대신 창작극으로서 작품이 갖고 있는 세계관이 있었기에, 작품의 요소들을 하나씩 모아 메타버스 속 요소로 구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잃어버린 얼굴 1895> 메타버스 뮤지컬은 작품의 새로운 유니버스를 만들어 주는 것에 집중했다. 우선 3차원의 세상도 결국 현실의 공간, 그리고 공연이 가장 빛나는 물리적인 무대인 공연장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였다. 이 전제를 기반으로 <잃어버린 얼굴 1895> 메타버스 뮤지컬이 작품을 감상한 관객들이 무대의 감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함께 이야기 나누는 커뮤니티 공간이자, 관객들 스스로 새로운 놀이와 이야기를 창조해볼 수 있는 공간으로 포지셔닝 한 것이다. 이를 위해 메타버스 콘텐츠 제작에 들어가는 기술적 시도가 총망라 되었다. 작품을 사랑하는 팬들이 직접 등장인물로 부캐릭터를 꾸밀 수 있도록 캐릭터별 아바타 의상을 3D로 제작하고, 배우의 작품 속 모습은 '볼류매트릭 비디오'로 촬영했다. 직접 뮤지컬 안무를 해볼 수 있도록 아바타 모션 제작을 위한 '모션 캡처' 촬영까지 더했다. 또한 작품의 배경을 재해석하여 옮겨온 3차원 전용 '1895 대한제국' 랜드를 제작하였다.
‘이프랜드 뮤지컬’ 연습 장면(좌) 및 ‘메타버스 뮤지컬 x 잃어버린 얼굴1895’ 상영회 모습(우) |
캐스팅, 연습, 제작, 상연까지 모든 것을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작품 속 세계관이 담긴 '1895 대한제국'랜드, 의상, 아바타 모션을 활용하고, 오리지널 작품 중 일부를 각색하여 <잃어버린 얼굴 1895> 메타버스 뮤지컬이 만들어졌다. 기술과 공연 양쪽 이해를 갖춘 기어이팀이 기획과 연출 제작을 맡았으며, 배우 선발, 연습, 제작 그리고 상영회에 이르는 전 과정을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ifland) 내에서 진행하였다. 이프랜드(ifland)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뮤지컬이기 때문에 플랫폼 숙련도가 높으면서 메타버스나 기술적 트렌드에 관심 있는 새로운 수요층에게 공연을 알리는 것이 중요했다. 참여 배우는 이프랜드(ifland)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 그룹인 ‘이프루언서’ 대상 선발 공고를 통해 지원자를 받고 오디션 영상을 통해 배역에 적합한 5명을 최종 선발했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배우가 아님에도 커뮤니티가 함께 만드는 공연이라는 점에서 참여 열기가 뜨거웠다. 이미 개설된 '1895 대한제국' 랜드에 모여서 함께 대본을 리딩하고, 캐릭터를 분석하고, 함께 장면 아이디어를 도출했다. 아바타이지만 목소리 연기가 들어가기 때문에 개별 연습도 진행하고 함께 동선을 정하고 사전 음악 녹음 과정까지 거쳤다. 이는 고도로 집중화된 공연의 연습 현장과도 유사했다. 비록 물리적 공간이 아니더라도 자연스럽게 팀워크가 성장하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이는 자발성을 이끄는 동인이 되기도 했다.
뮤지컬 <잃어버린 얼굴 1895> 주요 안무 모션캡처 장면(기어이) |
현대무용과 한국무용이 접목되어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잃어버린 얼굴 1895>의 화려한 군무를 구현하는 것도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이었다. 정적이면서도 동적인 <잃어버린 얼굴 1895>의 조화로운 안무는 공연을 본 사람들의 뇌리에 박히고도 남았기에 다른 메타버스 콘서트나 드라마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대형 무대를 채우는 무용 퍼포먼스를 구현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전문적인 안무가들의 섬세한 동작을 모션캡처하여 아바타 모션으로 제작하고 모션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제공하여 메타버스 뮤지컬 내에서 일반인 관객과 함께 단체 군무를 구현하게 되었다.
주인공 차지연 배우 볼류메트릭 캡처 장면(SKT점프스튜디오) |
뮤지컬 팬이라면 무엇을 원할까? 아마도 관객과 배우가 서로 상호작용하는 기회일 것이다. 공연기간이라 배우가 라이브로 참여할 수는 없었지만, 무대의 감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메타버스 내 향유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했다. 기존의 단발성 이벤트 중심으로 기획되던 한계에서 벗어나 고품격 문화콘텐츠 향유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한 과정이 필요했다. 초점은 오프라인 공연에서 할 수 없는 메타버스 만의 실시간 관객 참여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었지만, 기존 뮤지컬 팬들을 새로운 디지털 세상으로 유입시키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다.
우선, 작품 속 차지연 배우를 SKT의 점프 스튜디오에서 볼류매트릭 캡처(Volumetric Capture) 기술로 촬영했다. 뮤지컬의 아름다운 의상과 디테일을 3차원 실사로 재현해 일명 '차황후'의 숨막히는 존재감을 담았다. '1895 대한제국' 랜드에서 무대의 황후를 직접 보고 함께 기념 사진을 촬영할 수 있도록 제작하였다. 메타버스 세계뿐만 아니라 공연장에 오는 관객도 함께 경험해 볼 수 있도록 JUMP AR로 만들어져 차황후와 함께 사진도 찍을 수 있도록 하여 공연장을 비롯한 언제 어디에서든지 우아한 자태의 차황후와 그의 명품 연기를 볼 수 있게 하였다. 배우의 '아우라'는 무대에서 재현되지만, 그 감동을 이어가고 싶은 분들을 위한 하나의 경험 기획이었고 이는 배우의 팬들에게 적중했다.
콘텐츠 향유 공간으로 메타버스가 활용될 수 있도록 '1895 대한제국' 랜드를 오픈 뒤 한달 동안 상시 운영하였다. 한달 동안 개방된 '1895 대한제국'랜드에서는 공연 행사가 아카이빙되어 방문객들에게 노출되면서 지속적으로 화제를 유지하고 공연을 알리는 새로운 유통 창구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1895 대한제국’ 맵은 3월 초 오픈 이후 누적 3만명의 이용자를 불러 모았고, ‘1895 대한제국’ 맵 오픈 행사와 ‘메타버스 뮤지컬 상영회’ 모두 개설 방 최대 정원을 채우며 만석으로 진행되었다. 뿐만 아니라, 정원 한계에도 불구하고 수백명이 참여하면서 단일 이벤트로는 여타의 케이팝 이벤트와 맞먹는 성공적인 지표를 보여줬다. 무엇보다 사용자들이 직접 맵을 개설한 회수는 5,500여건에 달하고 한달 동안 개설되었던 상설 방 참여자수도 1만여명에 달할 정도로 높은 호응을 이끌어 냈다.
이프랜드(ifland) 플랫폼에서 처음 시도된 <잃어버린 얼굴 1895> 메타버스 뮤지컬은 많은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가능성을 확인하는 기회였다. 이지나 연출은 “공연장이라는 제한적 공간에서 벗어나, 다른 공간의 확장이 가능한 공간” 으로서 메타버스의 가능성에 주목하였다. 주연 차지연 배우는 메타버스 뮤지컬을 “순간의 미학인 공연이 끝난 뒤 그 여운을 만날 수 있고 관객과 끈을 놓치 않고 계속해서 이어나가는 매개체”라고 표현하였다. 서울예술단 역시 “공연의 표현과 유통에 대한 새로운 장을 개척하는 실험의 장”으로 보았다. 이 프로젝트에서 메타버스는 발견하고 실험해보는 진행형의 플랫폼이었다.
작품의 홍보를 위해 메타버스 접목한 공연계의 시도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메타버스 플랫폼과 콘텐츠는 사용자 혹은 관객들이 직접 만들어간다는 메타버스의 순기능이 발현될 수 있을 때 영상화된 공연을 넘어서는 새로운 문화예술 콘텐츠가 되리라 생각한다. 이제 다시 오프라인 무대는 살아났지만, 메타버스 콘서트가 음악 비즈니스의 새로운 벨류 체인을 만들어 냈듯이 메타버스 공연이 공연에서 멀어지거나 경험이 없는 미래 관객을 발굴하는 기회이자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교두보로 기여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이혜원은 기술이 어울리는 이야기, 기어이 이머시브 스토리텔링 스튜디오 대표이자 프로듀서로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다. 융합공연, 아트앤테크, 콘텐츠 산업, 미국 VR스타트업 등 문화예술과 기술을 결합하는 영역에서 경험을 쌓았다. XR 실감콘텐츠매거진 ‘아이엑스아이(ixi.media)’를 운영하고, 오리지널 XR 콘텐츠 제작, 가상과 현실을 연결하는 전시, 메타버스 및 버추얼 문화 경험을 기획하는 일을 한다. 예술과 기술을 매개하고 스토리를 연결하는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rene.lee@giioii.com/ @giioii_immersive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