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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업과 데이터 : 상형문자에서 통계까지
예술산업과 데이터①
예술과 데이터라니, 게다가 상형문자는 또 무엇인가? 기묘한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역사를 상당히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예술이 인류의 어느 선조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지만 우리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그 출발부터 삶을 예술과 함께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가장 오래된 문자인 이집트 신성문자(Hieroglyph)와 상나라 갑골문(甲骨文)의 존재가 증거이기도 하다. 우리 선조들은 매우 예술적인 방법으로 데이터(data)를 기록하여 후손들에게 전해주었다. 요즘은 데이터라고 하면 전자적인 형태만 떠올릴 수 있겠으나, 가장 오래된 데이터는 예술과 불가분의 관계였다.
이러한 예술과 데이터의 관계는 유사 이래 수천 년 이상 끈끈하게 지속되어 왔다. 우리가 암흑기(Dark Ages)라 부르는 중세조차도 중요한 사실이나 역사적인 기록들은 전문적인 예술가들이 자수나 양피지에 필사했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요, 상식이었다. 데이터가 예술에 의해서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이다.
데이터가 바로 예술 작품이던 둘의 밀월 관계는 통계학(statistics)이 등장하면서 무너지게 된다. 사진은 이미 예술의 한 분과이니 논외로 하자. 근대적인 통계학의 역사는 아무리 거슬러 올라가도 1800년 이전으로 올라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과 데이터의 괴리는 인류 전체의 역사에서 극히 최근에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상은 컴퓨터와 전자적인 데이터 저장 방식의 발명으로 말미암아 일견 극대화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필자는 통계학이 나타난 이후의 예술과 데이터의 관계가 그 이전과 완전하게 달라지거나 분절되었다고 보지 않는다. 예술과 과학은 그 차이만큼 많은 면들을 공유하고 있으며, 과거의 예술과 데이터 사이의 관계처럼 현대적인 수리 통계(mathematical statistics) 역시도 현대 미술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지면이 제한되어 있어 자세한 설명은 다음 기회를 기대하기로 하고, 주장의 요점을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의 데이터들이 매우 다양한 예술적인 방식을 통해 정보(information)를 가공하여 처리해왔다면, 통계 역시 통계적 방법론(statistical method)이라는 특정한 기법들에 의해 극도로 추상적이고 압축적으로 정보를 저장하거나 처리하고 있다. 이러한 정보 처리 방식은 추상미술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통계도 데이터를 모더니즘 예술로 표현한 셈이 된다.
예술이 단순한 몇 자의 숫자로 표현되는 상황에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이처럼 추상적인 도구를 사용하여 예술을 살펴보고자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일반적인 예술과는 달리 통계란 특정한 사안에 집중하기보다는, 여러 현상들을 평균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할 때 유용하게 쓰이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계의 생산과정에서 창의성은 상황을 독창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모두가 활용하기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작동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러한 장점은 통계를 정책 수립에 활용하는 경우 상당한 수준으로 부각된다.
예술 및 관련 산업에 대한 통계 작성이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지속적으로 승인통계를 개발하고 생산하고 있다. 현재 문화셈터에서 공개하고 있는 문화체육관광 승인통계는 총 22종에 이르며 이 가운데 문화예술 통계가 13종(문화: 8종, 예술: 2종, 문화산업: 3종)으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13종의 문화예술 통계에서 10종이 조사 통계(survey statistics)이니 대부분의 통계를 설문 조사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잘 설계된 조사 통계는 모수(parameter)의 값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사회적인 변화가 빨라짐에 따라 조사 통계가 가지는 단점이 더 부각되는 것 같다. 조사 통계는 조사를 하고 조사한 데이터를 정리하는데 상당한 금전적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므로 속보성 수치의 생산에는 필연적인 제약이 존재한다. 특히 미시적인 정책이 강조되는 최근에는 시군구 통계, 월별 통계의 중요성이 점증하고 있으나, 조사를 통해 이러한 통계들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인력 투입과 금전적 비용이 수반된다.
조사 통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존재하지만, 주목할 만한 예시로 최근 유행하는 빅데이터를 활용한 통계 생산을 들 수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서 제공하는 공연 통계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서는 전산적인 공연예술 거래의 거의 대부분을 수집하고 있기 때문에 저장된 데이터의 집계만으로 실시간 통계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속보성 강화를 위해서는 불가결한 희생도 필요하다. 전산적인 거래의 특성상 공연 이전에 거래가 이루어지며 따라서 빈번하게 결제 취소도 이루어지는데 이는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결산 통계에서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정보에 약간의 노이즈(noise)가 포함되게 된다. 또한 조사 인력의 투입은 불필요하지만 데이터 수집과 저장을 위한 전산 인프라의 운영·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상당한 수준의 금전적 지출도 요구된다. 이러한 단점들은 우리가 속보성 강화를 위하여 감내하여야 하는 비용에 해당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하나의 통계보다는 다양한 통계들이 같이 제공되어야 그 활용도가 증대된다.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는 최근 다양한 통계·데이터에서 속보성을 담보할 수 있는 대표적인 정책지표들을 모아 별도의 상황판으로 외부에 공개하였다. 그 과정에서 공연예술전산망의 결산 통계가 정책지표 작성에 큰 도움을 주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최근 통계의 활용도 향상은 직관적인 이해를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바로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활용도를 담보할 수 있도록 통계를 충분히 가공하여 제공하는 것이다. 직관적인 이해를 돕기 위한 가공은 대부분 그림의 형태가 되는데, 이는 데이터의 표현 방식이 숫자에서 다시 예술의 형태로 회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사실 정책적 판단에 중요한 정보들은 숫자 그 자체보다는 숫자의 움직임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움직임을 주어진 숫자를 가지고 가장 적은 노력으로 가장 높은 활용도를 담보하도록 하는 작업은 결국은 창의적인 예술 작업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개별 예술 산업의 현황은 과거에 비해 상당히 빠르게 파악되고 관련된 정책 수립에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예술 데이터의 속보성이 크게 강화되고 있고 예술 산업의 조감을 위한 노력들이 다시 통계·데이터를 예술과 긴밀하게 연결시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여전히 중요한 과업들이 남아있다. 우선 시급한 과업은 수집한 예술 산업 데이터들을 통해서 문화예술 산업 위성계정(arts and cultural production satellite account)을 산출하는 일이 될 것이다. 우리 예술인들이 범 지구적으로 인정받고 우수한 성과를 내고 있음에도, 현실에서는 여전히 예술 산업이 우리의 경제적 삶에 어느 정도로 기여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과업들은 예술 산업이나 활동이 창의적인 산출물이나 생산성 제고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측정하는 작업들이다. 한국의 예술인들이 계속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예술 산업 데이터와 관련 연구의 지속적인 개선 노력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