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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라는 질문 속에 의식을 드러내는 무대로
-올해로 23회를 맞은 서울국제공연예술제(Seoul Performing Arts Festival, SPAF 이하 스파프)의 주제는 ‘경계 없는 질문들’이다. 안무가 강요찬은 경계 없는 질문을 던질 한 명의 주체로 초청돼, 경직된 사회 구조에 물음표를 찍는 ‘구조와 의식’을 선보였다. 그런 그의 커리어엔 애초부터 경계가 없었다. 한국무용을 전공하다가 돌연 피나 바우쉬의 나라 독일로 떠났다. 이탈리아에서 무용수 생활을 하고 독일에서 레지던시를 했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실험무용학교(SEAD)에 들어가서 “안무는 배워서 되는 게 아니다.”라는 걸 깨달았다. 이후 자기 것을 찾아 나가며 개념예술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직업을 물으면 ‘무용가’가 아닌 ‘예술가’라고 답한다. 집을 짓기 위해 망치만이 아니라 어느 도구든 집어 들 수 있는. 메시지를 풀어내기 위해 가장 적합한 수단을 무대에 풀어놓는 것. 경계는 그래서 넓어진다. 목적이 아닌 사고(Thinking)의 부산물로서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가는 강요찬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자신을 소개하면?
유연하거나, 유연하지 않은 사람이다. 예술 작업을 대할 때는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만, 방식에서는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 예컨대 연습실이 무대와 똑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있다 치고’, ‘했다 치고’는 있을 수 없다. 이번 스파프(SPAF)에선 안개 효과를 사용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포그머신을 직접 구매했고, 다른 무대 장치도 연습실용으로 만들었다. 무대 완성도와 연결되는 부분은 대체로 양보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삶에 관해서도 ‘왜?’라는 질문을 늘 던지는 편이다. 스스로 납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린 왕자 같은 ‘질적’ 소개가 인상적이다. 예술적으로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나?
과거엔 남들 하는 대로 따라가야 살아남는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좋은 대학교에 가고, 바로 대학원에 가고, 예고 강사가 되는 과정을 밟아나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걸 왜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유학을 결심하고 모든 걸 내려놨다. 미국에 가기엔 돈이 없었고, 이왕이면 피나 바우쉬를 키워낸 독일의 교육 시스템 안에 들어가 보고 싶었다. 무작정 떠나서 독일어만 2년을 배우며 준비했지만, 입학시험을 치르면서 한국과 비슷한 분위기에 실망하기도 했다. 조건이 안 맞는 경우도 있었다.
갑자기 춤이 추고 싶었다. 인터넷 공고를 보고 이탈리아 볼로냐로 가서 ‘레제레 스트루투레(Leggere Strutture)’에 들어가 1년 정도를 활동했다. 대표가 윌리엄 포사이드 무용단 출신이었지만 다양한 안무자를 초청했기에 발레 기반의 모던댄스부터 컨템퍼러리까지, 다루는 스펙트럼이 넓었다. 12개국에서 온 18명의 댄서와 함께하면서 영어도 배우고, 다른 나라 사람과 소통하는 두려움을 없앴다. 무엇보다, 움직임엔 이유가 필요하고, 그 움직임이 어떤 카테고리 안에 있을 필요는 없다는 걸 배웠다. 한국무용으로 춤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전공이 없다고 답하곤 한다.
작년 국립현대무용단 공모에 선정된 ‘우리는(We are)’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실험무용학교 시드(SEAD)에서 초연했다. 그때부터 “이건 무슨 장르야?”란 질문을 들어왔다고.
한 미술 전시회에 캔버스 겸 퍼포머로 들어갔다가 베를린 북쪽의 비츠토크 예술인마을 입주 제안을 받고 2년간 레지던시를 했다. 그곳에서 솔로 작품을 만들어내고 독일, 폴란드를 비롯해 무대를 찾아다니며 정보를 모았다. ‘시드’라는 안무 학교가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커리큘럼을 찾아보니 ‘이거다!’ 싶어 오디션을 봤다. 그 합격 소식이 유럽에서의 첫 행복이었다. 한국을 떠날 때 하고 싶었던 걸 6년 만에 찾았다. 그런데, 여러 형태의 안무 방법을 공부하고 고민했지만, 사실 안무는 배우는 게 아니라 찾아가는 것이었다. 학교는 좀 더 빨리 가는 길을 알려줄 뿐이었다. 그걸 깨달으면서 만든 작품이 국립현대무용단에서도 했던 ‘우리는’이다.
오스트리아 생활은 학교 수업 아니면 집이었다.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급급하게 반복되는 생활을 하다 보니, 길에서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은 친구들과 맥주 한잔하고 똑같은 길을 걷는데 비슷한 장면을 보면서 그들이 별로 즐거워 보이지 않은 것이다. 그냥 내가 재밌었다. 문득, 지금 이 기분을 작품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크게 들었다. 특별한 것도, 특별하지 않은 것도 없다는 것을. 그래서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무대에 올리려고 했다.
학교에선 12명의 친구들이 서로 다른 직업을 맡아서 만든 움직임을 퍼즐처럼 맞춰나갔고, 국립현대무용단에선 실제로 태권도 선수, 왁킹 댄서, 연극배우 등 무용수를 비롯한 다양한 ‘표현자’를 캐스팅했다. 움직임은 두 번째 문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을 표현하는 일이다. 물론 캐릭터도 중요하다.
출연자를 ‘표현자’라고 부르는 점이 독특하다
사람은 부르는 대로 행동하게 된다. ‘댄서’라고 하면 춤을 잘 추는 방법을 고민하겠지만, ‘표현자’라고 하면 메시지를 어떻게 표현할까를 고민하게 된다. 한 사람이 한 가지 방법만 쓰란 법 없으니 춤도 추고, 말도 하고, 노래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돌아보면 최신 기술이나 기계는 사용한 적이 없다. 음악, 의상, 사람, 소품으로 표현하는 아날로그를 선호해 온 것 같다.
스파프에서 선보인 ‘구조와 의식’은 무대 위에 관객석을 만들어, 또 다른 의미에서 틀을 깼다. 기존 객석과 무대 위 객석, 공연이 이뤄지는 영역까지 서로 다른 높이와 구분은 극장 안에 사회 구조를 재현하려 한 것인가?
사회 구조에 대한 불만이 어릴 때부터 있었다. 그게 싫어서 유럽에 갔다 왔는데, 10년 가까이 흘러도 그대로였다. 슬프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이젠 나도 그 구조를 이용할 수 있으니까. 모순되지만 또다시 한편으로는 그 구조를 없애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무슨 수로. 그렇다면 이야기라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사회 구조에 대한 의식을 드러내는 작품을 만들었다. 초연은 작년에 했지만, 올해 스파프에 초청되면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 맞추어 수정을 거치고, 출연자도 모두 새롭게 구성했다. 특히, 프로시니엄 무대 양쪽에 객석을 만들고 그 관객을 기존 1층 객석에서 올려다보도록 한 것은 한국 사회의 계층 구조를 투영하려는 의도였다.
직접 만든 ‘월간아트페스티벌’도 거침없는 면모를 담고 있는데…….
1년에 한 번 하는 공연으로는 갈증을 풀 수가 없어서, 그럼 페스티벌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한 달에 한 번 새로운 작업을 선보이자는 뜻에서 ‘월간아트페스티벌’이다. 음악, 영상, 피아노 등 다른 예술을 하는 분들과 연락해 뜻이 맞으면 서로 페이 없이 스튜디오 공연을 한다. 2021년 시작해 첫해는 8개의 작업이 나왔고, 점점 외부 활동이 많아지면서는 여유 있을 때만 모이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결과물을 내면서 숙련도가 많이 늘었다.
기존 문법을 파괴하는, 공연예술의 다양성을 위해선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나?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하는 데 있어 무섭거나 두려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냥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모든 표현 수단이 공연에 들어올 수 있다. 그림을 그리는 것도, 나아가 정치도, 전쟁도 내 공연의 일부가 될 수 있다.
구조적으로 접근하면, 대학 체제가 아닌 컨서바토리(conservatoire) 혹은 아카데미 체제가 돼야 한다. 어떤 학교, 어떤 교수님 밑에서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개인의 스타일을 찾는 게 아니라 오히려 교수님의 스타일을 따라가게 되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삶에 도전하면 작품도 같은 결이 된다. 결국 원하는 작업을 하려면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여하튼, 더 많은 지자체에 예술 아카데미가 생겨나서, 부의 가치에 따라 재능이 커지는 게 아니라 재능 있는 사람을 지역별로 지원하고, 자연스럽게 대학 무용과가 예술학교로 대체되는 날이 오면 좋겠다.
유연하거나 유연하지 않은 사람. 한양대학교에서 한국무용을 배우고 2014년 유럽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탈리아 볼로냐 ‘레제레 스트루투레’ 단원, 독일 비츠토크 예술인 마을 레지던시 상주예술가를 거쳐 오스트리아 시드(SEAD) 안무자 과정을 졸업했다. 2019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국내 초청작 ‘The answer’로 한국에 돌아와 2020년 서울무용제 최우수상 ‘집 속의 집’ 연출, 2021년 ‘The table’, ‘직선과 곡선’, ‘The ball’, ‘Foot note’, 2022년 서울문화재단 지원 ‘구조와 의식’, 국립현대무용단 스텝업 지원 ‘우리는’ 안무 및 연출을 하며 자신만의 장르를 만들어가고 있다.
윤대성(월간 댄스포럼 편집장)
심리학과에서 뇌를 들여다보다가 운명의 장난인지 무용 신(Scene) 한가운데 착지했다. 그래서 외부자로, 때론 내부자의 시선으로 공연예술을 바라본다. 한국춤평론가회 최연소 회원이자 월간 <댄스포럼> 편집장이다. 저서로는 서울시 무형문화재 기록화 도서 ‘한량무’, 국립무용단 발행 ‘국립무용단 60년사’(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