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산인문극장’ 공식 포스터

▲ ‘두산인문극장’ 공식 포스터

▲ ‘두산인문극장’ 강연에 참여한 관객의 모습

▲ ‘두산인문극장’ 강연에 참여한 관객의 모습

‘인문+극장’이라는 결합

이 글을 쓰기 위해 책상에 앉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2013년 3월 11일부터 6월 29일까지 3개월 남짓 진행된 ‘두산인문극장 2013: 빅 히스토리’(이하 ‘두산인문극장’) 행사에 대한 리뷰를 염두에 둔 것이니만큼, 행사의 목적과 의의, 프로그램 구성, 진행 과정 및 성과 등을 정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점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공연장이라는 공간에 굳이 인문학을 끌고 들어오게 된 계기가 어떤 것인지를 밝히는 일도 필요할 것이다. 처음엔 이쯤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지만 두 가지 생각이 자꾸만 글쓰기의 시작을 가로막았다.

첫째, 내가 이 행사의 기획자 가운데 하나라는 점이다. (&lsquo;두산인문극장&rsquo;은 두산아트센터(주)문지문화원이 공동으로 기획한 행사다.) 기획자 가운데 하나이니만큼 행사 전체의 흐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겠는가 하는 반문도 있을 수 있겠으나,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쓰는 안내문이라면 모를까 행사가 마무리된 시점에서 기획자 스스로가 행사를 공개적으로 정리하고 평가하는 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부득이 꼴사나운 자화자찬의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 물론 &rsquo;두산인문극장&lsquo;이 공연, 전시, 영화상영, 강연을 포괄하는 행사였던 탓에 특정 분야의 필자가 행사 전체를 리뷰하기가 쉽지 않으리란 점을 잘 알고 있다(이 가운데 어느 것도 &rsquo;부대행사&lsquo;가 아니었고 각각은 상이한 관심을 지닌 여러 층의 관객이 선택적으로 접근하게끔 기획되었다). 예컨대, &ldquo;오카다 토시키의 포스트 3.11 연극 <현위치>(2012)와 루시엔 캐스텡-테일러와 베레나 파라벨의 포스트 시네마 <리바이던>(2012)과 기록사진의 증거 기능을 지탱하는 지표적 계기(indexical moment)란 결국 수사적이고 담론적인 효과&rdquo;라고 주장한 존 탁 교수의 이론적 강연 사이의 거리는 - 거칠게 말해, 각각의 영역에서 급진적 혹은 전위적인 입장을 대변하는 예술 혹은 이론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 일견 쉬이 좁히기 힘들 만큼 멀어 보인다.

둘째, 동시대 인문학 열풍이 &lsquo;라이프스타일로서의 인문학&rsquo;의 가치를 설파하기 급급한 가운데, &lsquo;두산인문극장&rsquo;이 그 유행에 편승하지 않고 다른 길을 제시했다면 과연 &lsquo;어떤 모습인가&rsquo;라는 의문에 스스로 답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했다. 더불어 인문학은 예술을 교양으로 걸치려 들고, 예술은 인문학의 &lsquo;심오함&rsquo;을 빌려 위신을 세우고자 여념이 없으니, &lsquo;인문+극장&rsquo;이라는 결합은 설득력 있는 변호 없이는 지탱하기 힘든 조어라는 생각도 들었다. &lsquo;두산인문극장&rsquo; 행사의 초기 기획 단계에서 이러한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행사가 모두 마무리된 시점에서 그간의 결과들을 두고 이상의 의문에 답한다는 건 또 다른 문제다. 다만 앞서 예로 든 오카다의 공연, 영화 <리바이어던>, 존 탁의 강연 등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 &lsquo;두산인문극장&rsquo;은 인문학과 예술을 대중에게 &lsquo;알기 쉽게&rsquo; 가공해 전달하는 일에만 그치지 않고, 때로는 동시대 예술과 사유의 최전선을 곧바로 관객 혹은 청중 앞에 제시함으로써 모종의 &lsquo;충격&rsquo;을 불러일으킬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lsquo;두산인문극장&rsquo;이 통상적인 아트 페스티벌의 형식을 띤 행사였다면 이 같은 고민은 필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기획자, 아티스트, 평론가가 페스티벌이라는 하나의 숙주 내에 공동으로 기식하는 일이 드물지 않은 한국 예술계에서, 어떤 페스티벌에 대한 평가는 거의 전적으로 그 기식자들의 네트워크가 얼마나 강력한가에 따라 좌우되곤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중적 학술강연 시리즈와 &lsquo;다원적&rsquo; 아트 페스티벌이 조금씩 혼합된 (강연의 주제 또한 천문학, 생물학, 화학, 지리학, 역사학, 사진학, 네트워크 이론 등으로 다양했다) &lsquo;두산인문극장&rsquo;은 애초부터 기식이 가능한 숙주로서 기능하기엔 불충분하기 짝이 없었다. 이건 서로 상이한 영역에서 떨어져 나온 요소들이 잠시 모였다 헤어지는 장소였다고나 할까.

▲ ‘두산인문극장’ 상연 프로그램인 <현위치>(왼)와 <서울연습 - 모델 ,하우스>(오) ▲ ‘두산인문극장’ 상연 프로그램인 <현위치>(왼)와 <서울연습 - 모델 ,하우스>(오)
▲ &lsquo;두산인문극장&rsquo; 상연 프로그램인 <현위치>(왼)와 <서울연습 - 모델 ,하우스>(오)

저마다의 &lsquo;인문극장&rsquo;을 세우기 위해

지금으로서는 자평(自評)이 자화자찬에 가까워지는 걸 경계하면서 &lsquo;두산인문극장&rsquo;이 염두에 둔 &lsquo;인문+극장&rsquo;의 결합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혹은 앞으로 어떠해야 하는지를 간략히 밝혀두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 것이다. 이 결합을 위해 우선 우리는 극장이란 공연예술(만)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라는 선입견으로부터 벗어나야 했다. 그리고 극장(theater)을 그 어원에 있어 친연관계에 있음이 분명한 이론(theoria)의 장소로 끌고 가면서, 동시대 과학적, 인문학적 사유의 스펙트럼을 &lsquo;빅 히스토리&rsquo;(거대사)라는 틀 안에 다소 성기게 펼쳐놓고 각각의 사유와 느슨하게 맞닿아 있는 공연, 영화, 전시를 배치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데이비드 크리스천의 &lsquo;빅 히스토리&rsquo; 프로젝트는 애초부터 이론적, 학문적 방법론으로서보다는 대안적 교육 프로그램으로서 고안된 것이다). 각각의 프로그램들을 가로지르면서 자신만의 별자리를 짜는 작업은 전적으로 &lsquo;두산인문극장&rsquo;을 찾는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가령 이명현 교수의 빅뱅에 대한 강연과 이덕환 교수의 생명의 기원에 대한 강연은 우주적 시간과 실존적 시간 사이의 간극을 모티프로 삼은 안드레이 우지카의 영화 <현재의 바깥에서>(1999)와 오카다 토시키의 공연 <현위치>와 더불어 하나의 &lsquo;세트&rsquo;로 묶였다. 이러한 세트 구성이 적절했나 하는 물음에 대해 행사를 마치고 난 &lsquo;지금&rsquo;, &lsquo;이곳&rsquo;에 글을 쓰고 있는 내게는 답변할 자격이 없다고 봐야 옳겠다. 다만 강연 프로그램과 공연, 전시, 영화상영 프로그램 간의 연계가 보다 직관적이도록 설계되어야 했고, 강연자들이 예술 프로그램에 여러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두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드는 건 사실이다.

앞으로도 &lsquo;두산인문극장&rsquo;은 인문학적 상상력을 섣불리 공연에 끌어들이거나(기껏해야 사이비 철학에 불과한 것을 거창한 제목으로 포장한 공연들), 인문학을 유희적 퍼포먼스와 결부시키려는(&lsquo;인문학 콘서트&rsquo;에서 가장 저열하게 표출되는 인문학 대중화) 시도에는 거리를 둘 것이다. 그러한 시도들은 관객 혹은 청중 각각의 관심에 따라 시간을 두고 그들의 마음과 머리에서 서서히 이루어지게 될 이질적인 영역 간의 만남의 가능성을 믿지 못하는 조급증에서 비롯된다. &lsquo;인문학적 극장&rsquo;도 아니고 &lsquo;극장화된 인문학&rsquo;도 아닌, &lsquo;인문&rsquo;과 &lsquo;극장&rsquo;이 서로 뒤섞이지 않은 채 각자의 모습을 또렷이 간직하며 공존할 때, 오직 그 경우에만 사람들은 저마다의 &lsquo;인문극장(들)&rsquo;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사진제공_두산아트센터

관련자료
[두산인문극장2013] 강연 영상

유운성 필자소개
유운성은 서울대학교 물리교육과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전문사 과정)에서 수학했다. 2004년부터 2012년까지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재직했다. 현재 문지문화원 사이 기획부장이자 『인문예술잡지 F』 편집위원으로 있다.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 URL 복사하기
정보공유라이센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