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싱가포르 예술축제 로고
▲ 2012싱가포르 예술축제의 참가단체
공연 모습
|
예술축제와 도시, 파트너십의 이면
이제는 멀리 유럽의 에든버러, 아비뇽의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예술축제가 도시의 브랜드를 만들고 지역에 사회적, 경제적 영향을 미치는 사례는 국내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부산은 ‘부산국제영화제’의 위상 덕분에 아시아의 대표적인 영화 도시가 되었고,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은 가을의 가평을 음악과 캠핑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장소로 만들어주었다. 이외에도 ‘과천축제’, ‘춘천마임축제’ 등 도시의 예술축제는 시민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욕구를 축제를 통해 일거에 해소해줄 뿐 아니라, 외지 관광객들이 숙박과 인근 식당을 이용하면서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최근 들어 가족 단위 여가 활동과 문화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 앞으로도 국가와 지방 정부의 축제에 대한 지원과 투자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주로 긍정적인 면이 부각됐던 예술축제와 도시의 상호 호혜적인 파트너십의 이면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글이 해외 저널에 실려 소개하고자 한다. 런던대학교의 로레인(Lorraine Lim)교수는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주창했던 ‘아비투스(habitus)‘ 개념을 빌려와 싱가포르 예술축제(Singapore Arts Festival)의 프로그램을 흥미롭게 분석한 글을 발표했다(『International Journal of Cultural Policy』, Vol. 18, No. 3, June 2012). 로레인 교수는 「아비투스의 구축: 싱가포르 예술축제 속 해외 예술 경향성(Constructing habitus: promoting an international arts trend at the Singapore Arts Festival)」이라는 긴 제목의 논문에서 ’싱가포르 예술축제‘가 국가의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해외초청 프로그램을 통해 싱가포르 예술가들과 시민들의 특정 예술을 선호하는 취향과 편향성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했다.
로레인 교수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부르디외가 소개한 개념인 ‘아비투스(habitus)’ 개념을 빌려왔다. 아비투스는 본래, ‘습관(habit)’이란 단어에서 유래되었으며, 특정한 사회 환경에 따라 의식적으로 내면화시킨 인간의 성향과 행위들을 가리킨다. 현대사회에서 타자와 ‘구별’되는 모임 또는 계급의 일원이 되기 위한 의도로 주체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필요한 조건들을 학습하는 것을 일컫는다. 로레인 교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징자본으로서 기능하는 ‘예술’ 때문에 보이지 않는 계급 간 상징적 ‘구별 짓기’가 현대 사회에는 존재하며, 싱가포르 예술축제의 영향으로 지역의 예술가와 관객에게 특정한 유형의 예술에 대한 편향적 취향이 생긴 것을 우려한다.
예술 중심의 글로벌 도시를 만들기 위한 초석
싱가포르는 2000년에 10년 안에 뉴욕, 런던과 동급의 ‘예술 중심의 글로벌 도시(global city for the arts)’가 되기 위한 국가 중장기 발전 계획이 담긴 「르네상스 시티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에 따라 공연장(에스플러네이드), 학교(싱가포르 아츠 스쿨), 박물관(국립 싱가포르 박물관과 미술관)에 대한 시설 투자가 이뤄졌으며, ‘싱가포르 비엔날레’, ‘싱가포르 그랜드 프릭스’, ‘청소년 올림픽 게임’ 등 대표적 행사들을 선별해 예산을 지원했다. ‘싱가포르 예술축제’는 「르네상스 시티 보고서」가 세운 계획 중 일부로, 싱가포르예술위원회가 직접 주관하는 국제 공연예술제로 시작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으며, 싱가포르의 예술축제로서는 유일하게 독점적으로 정부 예산을 지원받고 있다.
로레인 교수는 ‘싱가포르 예술축제’가 「르네상스 시티 보고서」의 계획을 철저히 이행하기 위해 기획 초기부터 축제 프로그래밍 단계에서 축제에 ‘어울리는 작품(the ‘right‘ type of work)‘을 구별 짓고, 선별 기준을 해외 공연 예술시장, 특히 런던, 뉴욕으로 상징되는 서구 중심의 미학적 가치에 두었던 점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 2000년 ’싱가포르 예술축제‘의 작품 선정위원장이었던 버나드 탄(Bernard Tan)이 “서양에서 유입된 예술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싱가포르를 고려할 때, 시민들이 보고 싶은 작품보다 반드시 봐야 하는 작품들을 선택했다”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예술축제가 명확하지 않은, 편향적 가치를 기준으로 예술 간의 보이지 않는 위계를 만들어낸 것을 지적한다. 축제의 해외초청 프로그램은 싱가포르의 시민으로서 ’봐야 할 작품‘으로 위치시키면서, 축제 관객은 자신의 문화적 소양을 과시하고 고급예술을 향유한다는 사회적 위치를 확인하는 장소로 ’싱가포르 예술축제‘를 찾게 된 결과를 가져왔다. 관객이 본인의 취향과 선호도에 따라 축제를 찾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싱가포르 예술축제 기획자가 만든 기준에 자신의 취향을 맞추게 된 것이다. 관객뿐 아니라 싱가포르 예술가도 축제에 ’어울리는 작품‘에 속하기 위해 동료 예술가들과 경쟁하는 데 있어 싱가포르 축제의 서구 편향적 기준을 적용하는 아비투스를 만들고, 이러한 미학적 관점과 요구가 예술계 전체로 확산되어 싱가포르 예술의 다양성을 해치는 결과를 낳았다고 그는 지적한다.
로레인 교수는 2000년부터 지금까지 싱가포르 정부가 ‘국제적인 문화예술 도시’라는 브랜딩과 포지셔닝을 달성하기 위해 특정한 상징자본이 되는 예술에 기반한 아비투스를 만들어냈고, 특히 ‘싱가포르 예술축제’가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요약한다. 또 아비투스를 향유할 수 있는 특권층 관객들과 소외된 일반 시민 사이의 보이지 않는 경계가 만들어지고, 예술 취향을 중심으로 한 아비투스는 다시 사람들 간의 사회적 관계로 확대돼 다른 분야로 재생산되고 있는 문제를 지적한다. 즉, 어떤 ‘성향’의 예술을 감상하느냐에 따라 사회는 개인들에게 정형화된 사회적 위치와 감각, 사고방식을 틀 짓게 된 것이다.
|
|
국제적인 예술축제의 새 기준
관광축제와 예술축제의 가장 큰 대별점은 콘텐츠의 차이에 있다. 일찍이 부르디외가 상징자본으로서 예술의 속성에 주목했던 것처럼, 예술은 미학적 성취의 정도에 따라 ‘거장’, ‘마스터’, ‘마에스트로’ 등과 같은 서열과 위계가 존재한다. 이것이 고급예술과 대중예술, 프로페셔널과 아마추어의 경계가 만들어지는 이유다. 따라서 타자와 구별 짓는 사회적 관습과 의식, ‘아비투스’를 형성하는 데 적용하기 쉬운 측면이 있다. 반면 축제는 ‘좋은 것을 함께 나누어 모두가 행복해진다’라는 나눔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로레인 교수의 ‘싱가포르 예술축제’와 싱가포르 도시 브랜딩의 관계를 비판한 논문은 한국의 예술축제의 현 위치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을 일깨워주는 면이 있다. 도시를 기반으로 예술축제를 만드는 기획자는 예술과 축제의 대비적 속성과 특질을 잘 이해하고, 두 가치 모두를 비슷한 비중으로 실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성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행정가의 입장에서는 예술축제를 도시 브랜딩과 포지셔닝의 마케팅 수단으로 여겨 축제가 만들어낼 가시적 경제 효과에 치중할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에 대한 시민들의 욕구를 축제를 통해 충족시켜주고, 지역의 예술가들이 좋은 작품을 올릴 수 있는 기회로 여겨야 한다. 이렇게 된다면 역으로 지역에 기반을 둔 문화예술이 ‘인터내셔널 예술축제’의 새로운 미학적 기준을 만들어낼지 모를 일이다.
사진출처_싱가포르 예술축제 페이스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