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4’ 입구
▲ ‘1984’에서 기획한 강의 및 공연
▲ ‘1984’ 전용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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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문화의 뿌리이자 그 결과이다
"한 출판사가 만든 공간. 그런데 그 안에서 자신들이 출판한 책을 진열하고 자랑하기보다 여러 연결점에 주목하는 곳. 자체 홍보를 위한 곳이 아니라 문화적 공간으로 기능하기 위한 곳."
‘1984’는 서울시 마포구 동교동, 서교동, 연남동이 모두 맞닿아 있는 절묘한 곳에 위치해 있다. 흔히 “홍대 앞”이라 불리는 서교동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거리의 분위기도 유동 인구의 분포도 다르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근접 지역으로 뻗어갈 수 있는 강점이 있다. “책은 문화의 뿌리이자 그 결과이다”라는 문구로 시작되는 건물은 동명 출판사의 사옥이면서 1층에 카페,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는 가게, 그리고 문화 전반에 대한 강연과 행사를 개최하는 공간으로 운영된다.
‘1984’는 몇 가지 개념에서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출발한다. 첫째로 ‘출판사가 운영하는 북카페’에서 탈피하고자 했다. 출판사에서 북카페를 만들고 자신들의 책으로 채워나갈 때, 그 공간은 안식처이기도 하지만 그 책의 성곽이 강요처럼 느껴질 순간도 있다. 북카페라는 인식을 버리고 ‘1984’는 전용훈 대표의 관심사와 취향의 기준에 맞춰 여러 분야의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소품, 화장품, 의류, 액세서리, 심지어 아름답게 디자인된 도끼까지. 이를 통해 출판사가 가진 노선으로 몰아가기보다 운영진이 가진 주파수로 넓혀가는 공간을 만들었다. 또한 ‘일반적인 편집매장’에서 벗어나려 했다. ‘1984’는 기존의 편집매장과 달리 각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철학과 의미에 집중하면서, 출판 분야가 아니어도 그것이 한 권의 책을 만드는 과정과 다를 바 없음에 주목했다. 그런 이유로 ‘출판에디팅’이라는 단어를 수식으로 사용하면서 ‘편집(Selected)’ 대신 ‘출판에디팅’으로 보다 진정한 의미의 편집(Edit)을 강조한다. 즉 선별하는 태도로서의 편집이 아닌 책을 편집하는 것과 동일한 맥락으로서의 편집. 마지막으로 ‘복합문화공간’이라는 표현을 지양하는데 이것은 의식적인 전략과 태도의 일환으로 보인다. 실제로 문화 전반을 완전하게 아우를 수 없는 상태에서 복합문화공간이라는 포장으로 스스로 치켜세우기보다 규모와 가능성을 직시하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을 최대한 찾아나가는 방식이 이들의 운영 철학이다.
“어떤 책을 읽고 싶은지 스스로 몰라 읽지 않았던 독자를 이끌어낸다.”
‘1984’가 보여주는 독특한 지점은 3대째로 이어진 출판업의 변화 그 자체다. ‘1984’의 모태인 혜원출판사를 통해 외조부, 아버지의 1,2대가 직설적인 형태로 ‘무엇을 어떻게 출판할 것인가’만 생각할 수 있던,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던 시기라면 1984년생인 3대 전용훈 대표가 시도하는 2013년의 변화는 지금 이곳에서 출판이 맞닥뜨린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그는 파주출판도시가 품고 있는 가능성과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모두를 생산 일변도로 몰아갈 수 있는 공간이라 생각했고, 책에 더하여 공간 자체도 독자와 만날 수 있도록 동교동 사옥을 그 근거지로 택했다. 공간 우측에 카페를 마련해 독자와 방문자가 자연스럽게 시간을 보내도록 하면서 좌측에 소매점을 구축하여 각 공간의 독자성을 유지했다. 동명의 출판사가 차린 곳이지만 ‘1984’의 책만 열람 가능하거나 판매하지 않으며, 국내외의 서적과 더불어 다양한 분야의 상품 역시 선보인다. 뒤쪽으로는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는 부분 또한 있어서 공연, 강연, 행사에 적합하도록 했다. 결국 그의 태도는 ‘다른 출판사의 서적을 배제하지’ 않고, ‘다른 분야의 제품을 배제하지’ 않고, ‘외부의 목소리를 끌어올’ 수 있는 것으로 공간 자체에 스며 있다.
책에서 장난감으로, 장난감에서 음악으로, 음악에서 이야기로
그의 이야기 중 “모든 방향이 예상 못한 독자와의 연결점을 만든다”는 부분에 주목해보자. 국민 전체 독서율이 지속적으로 떨어질 때, 그것이 문화 다변화와 디지털화에 따른 숙명이기도 하다면, “책을 읽자”는 표어나 강요보다 자연스럽게 서로가 겹치는 지점을 만든다. 그것이 몇 단계를 거치든 관계없다. 공간과 주체가 지닌 동선으로 인해 흐르듯 서로 만나는 것. 끝내 책의 세계에 매료되기까지 많은 가능성을 숨겨놓는다. 카페로 이용하는 고객, 강연을 듣기 위해 찾은 방문자, 소품을 구매하려는 손님들이 자신들의 관심사와 책이 어우러진 모습을 인식한다. 이곳과 저곳, 그것과 이것이 쉽게 섞이되 무책임하거나 방만하지 않다. 작은 규모의 공간만이 가진 장점이다. 원하는 대로 이끌되 주체할 수 없는 수준까지 넓어질 이유나 가능성이 없다는 점. 동선이 한정되어 있어 주체가 의도한 대로 사람, 문화, 사물이 서로 충돌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충돌은 새로운 관심사로 넘나든다. 책에서 장난감으로, 장난감에서 음악으로, 음악에서 이야기로.
“유별난 인테리어, 극도로 뛰어난 커피 맛이나 어디에도 없는 메뉴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튀어서 살아남기보다는 서로 편하게 머물러서 영향을 주고받는 법. 이것은 베스트셀러라는 개념이 조금씩 무색해져가는 출판계의 현실과도 맞물린다.”
오는 9월 곧 1년째를 맞이하는 ‘1984’에 들어서면 큰 줄기를 보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책이라는 줄기를 바탕으로 얼마나 많은 가지가 뻗어 생길 수 있는지 관찰하게 된다. 그리고 그 가지들이 다시 언어와 종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지식의 형태로 되돌아오는 장면도 본다. 지역에 의해 고립되지 않고, 자발적으로 동떨어지지 않고, 타인과 호흡하지만 강요하지 않고, 이렇듯 쉽지만 어려운 이야기를 완성해나가는 공간이다. 모두가 입을 모아 자신을 감추고 “당신을 위한다”라고 소리치는 이때 주체의 영역과 취향을 놓지 않으면서 끝내 그것이 독자와도 만날 수 있다고 믿는 곳. 혁신으로 판을 뒤집기보다 크고 작은 연결 지점을 공간에 흩뿌려놓고 그것이 결국 책이라는 뿌리와 맞닿는 광경을 기대하는 공간. ‘1984’는 낯설지 않게 새롭고 산만하지 않게 다양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사진제공_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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