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분권과 문화자치. 권한을 나누고 역할을 만드는 일은 지역문화의 중요 과제로 문화재단 정책 포럼 단골 주제이다. 포럼의 내용은 대체로 예산을 무기로 문화정책을 지역에 일방향으로 전달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권력, 칸막이 관료제에 대한 비판과 지역 주체들이 스스로 권한을 가지고 역량을 키워가며 의무와 책임을 다 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요구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정작 문화재단의 조직문화와 조직풍토는 어떠한가?
조직은 권한과 역할을 나누고 자발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는가?

지역문화재단 조직문화와 조직풍토1)에 던지는 질문

문화재단은 지역에 근거하는 이유로 각 지역마다 조금은 다른 사정과 결로 일한다. 일하는 환경은 제도와 시스템, 법과 규정에 더하여 의사결정자의 리더십 등에도 영향을 받는다. 여기에 함께하는 사람들의 공유된 지각과 감각으로 조직의 풍토가 형성되고, 무형식의 학습을 거쳐 문화재단 특유의 조직문화가 형성되는 것이다.

최근 재난과 위기 속에서 다시금 유연한 조직문화가 이슈이다. 위기에 강한 조직으로, 예술의 가치와 공공성에 기반한 문화 활동으로 이해관계자들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예술가들의 창작활동, 시민들의 심리 방역, 문화활동의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도 시급하다. 이러한 과제 해결에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 바로 문화재단 직원들이다. 그런데 일 속에서 쉼 없이 돌아가는 이들의 서식지는 과연 문화로울까? 하루에도 수많은 생각과 감정이 교차하는 가운데 분권과 자치의 기반 위에 다양성과 자율성, 창조성의 가치가 우리 삶터에 조화롭게 실현되도록 부단한 노력을 하는 실무자들은 조직문화에 대한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이런 고민을 내부적으로 가지고 있었을 무렵 예술경영 웹진에 실린 ‘문화재단은 좋은 직장일까?’라는 글을 읽었다. 늘 여기저기서 그렇다더라 통신을 통해 알고 있던 일들이었다. “인터뷰에 참여한 사람이 아는 ‘사람’ 같고 우리 조직의 ‘문제’ 같다면” 이라는 이야기 끝에는 10여 년 전 내가 보였다. 부당하고 비합리적인 문제에 맞서 ‘문화재단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으로 밤을 보내고, ‘나는 어떻게 일할 것인가?’에 대한 답으로 아침을 맞이하던 청년의 내가.

그 당시부터 지금까지 늘 궁금한 것이 있다.

왜 지역문화재단은 끊임없이 하향평준화 되고 있는가?
좋은 사람들은, 일 좀 하는 사람들은 왜 조직을 떠나는가?
우리는 왜 행복하게 일하며 그렇게 가치로운 일들에 몰입할 수 없는가?
우리 모두 문제가 무엇인지 아는데, 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가?
알고 있지만, 왜 누구도 잘 말하지 않는가?

지역문화재단의 서식지와 그곳에 사는 부족들

이 쏟아지는 물음들을 담아 이번 「2021 전국지역문화재단 지식공유포럼」은 ‘우리 모두의 서식지, 재단을 문화롭게’를 주제로 누구든 도태되지 않고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터전이 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지 우리의 일터이자 삶터를 들여다보고자 했다. 다양한 지역 곳곳의 현장에서 기획자로, 활동가로, 매개자로, 행정가이자 관리자로 자신의 역할과 영역을 넘나들며 고군분투하고 있는 실무자들이 계속해서 꿈꾸고 가슴 뛸 수 있는 조직문화는 어떤 모습으로 가능할지에 대한 해답을 함께 찾기 위해, 전국에서 99명의 실무자와 관리자들이 지난 11월 4일 춘천에 모였다.

2021 전국지역문화재단 지식공유포럼 행사 사진
〈2021 전국지역문화재단 지식공유포럼〉 행사 사진
출처: 춘천문화재단

김희정 춘천문화재단 사무처장의 모두발언에서는 ‘변화하는 지역문화재단의 환경과 이에 따른 조직문화 혁신’의 동력을 찾고자 했다. 우리 서식지의 주요 쟁점으로 ‘독립성’, ‘재정 자율성’, ‘고용 불안감’, ‘거버넌스’ 영역에 대한 사안을 공유했으며, 모두의 서식지를 위해 정책 지향(지역 문화 담론을 리드하고 현실화하는 정책 그룹), 역할 지향(주체가 성장하는 지역 문화예술 생태계 구축), 조직 지향(전문성과 유연성을 갖춘 지지와 환대를 받는 공조직) 관점에서의 시도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지역문화재단 서식지는 어떤 토양 위에 있을까’를 주제로 장석류 시드앤파트너스 이사는 입법이라는 토대와 예산이라는 물줄기의 지형 속에서 정책과 사업, 조직으로 터를 잡고 있는 문화재단의 서식지를 설명하며, 「문화예술진흥법」, 「도서관법」, 「문화예술교육지원법」, 「지역문화진흥법」 등의 관련 법을 통해 문화재단의 주요 유형과 역할이 결정되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는 구성원들을 행정인, 기획인, 예술인 등의 부족으로 분류하고, 각 부족의 기질과 특징 차이로 야기되는 갈등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우리들의 자세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족 간 조직문화의 주요 특징 요약
부족 간 조직문화의 주요 특징 요약 행사 사진
출처: 장석류,「문화행정의 공공성 가치충돌에 관한 실증연구-행정인, 기획인, 예술인 집단 비교분석」,
한국예술경영학회, 2020

즉, 각자의 서식지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거나 대응하기 위해 어떤 노력과 협업이 필요한지 공유하고, 행정인, 기획인, 예술인 부족의 서로 다른 기질과 특성을 바탕으로 공동의 목표를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는 것 그리고 이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부족 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중치가 다르기에 상대의 언어와 감각 세포를 존중하자는 것이다.

발표이미지
‘지역문화재단 서식지는 어떤 토양 위에 있을까’를
발표한 장석류 시드앤파트너스 이사
‘〈문화재단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
제작발표’를 진행한 문화용역 주성진 대표

사람을 담는 그릇, 문화재단 육성

주성진 문화용역 대표는 재단과 일하면서 느꼈던 조직문화와 변화 필요성에 대해 ‘문화재단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 제작발표’라는 형식을 빌려 재미있는 상상의 경험을 열어주었다. 문화적 시각에서 직원 육성이 아닌 문화재단 육성이 필요하다며, 현재 문화재단과 연관된 조직문화를 ‘사회적 응집력의 높고 낮음’, ‘교류 밀도’, ‘경험적 경영 VS 체계적 경영’을 기준으로 한 8개의 유형으로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프로젝트 중심형 사고를 하는 실무자, 성과 중심의 관리자, 목적 중심의 결정자 등의 캐릭터로 재단 구성원들을 설명하며 문화재단의 일상을 유쾌하게 풀어냈다.

실무자는 사업 돌리기, 듣기(관계 맺기), 정산, 내규 동원의 공격 스킬과 워라밸 사수, 사업 뒤에 숨기, 민원 내성 등의 방어 스킬, 그리고 특수 스킬로 이직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관리자는 공격 스킬로 실무자의 사업을 성과로 포장하는 기술과 네트워크 동원, 방어 스킬로 영토 사수, 전문가 뒤에 숨기, 민원 사전 감지가 있으며, 결정자는 모든 직원의 이야기를 다 듣고 원래 자기 생각대로 하는 ‘듣고 안 듣기’의 버그가 급격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부분은 참여자의 호응을 얻었다. 또한, 이러한 구성원 캐릭터 특징을 통해 조직문화의 변화를 고민하는 과정에서는 문화와 조직의 가치, 조건, 문화 충돌 경험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하여 감각적 판단과 이성적 판단을 결합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요즘 문화재단 이렇게 일(안)합니다

조직문화와 조직풍토를 바꾸기 위한 각 지역의 문화재단 활동 사례도 공유되었다. 관악문화재단은 재단 출범 전후 결합한 직원들의 소통과 네트워크를 직군 이동과 파트제 도입, TF 운영 등을 통해 해결해 가며 조직문화의 유연성을 확보한 사례를, 담양문화재단은 군 단위 문화재단의 한계를 극복하며 촌 동네에 활력을 불어넣은 담양국제예술축제의 실행 과정을 통해 얻은 조직의 자신감을 보여 주었다.

성북문화재단은 후원이라는 플랫폼을 매개로 지역과 밀착하여 변화를 만들어 간 사례를 공유했다. 문화재단 직원으로 잘 먹고 잘 살 궁리를 팀원들과 함께 놀이로 만들어 가며 건강한 일터와 삶터를 가꾸어 가는 전주문화재단 예술놀이팀의 사례는 실무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한편, 재단의 직원이 아닌 문화도시콘텐츠PD가 발표한 춘천문화재단의 일하는 방식은 문화재단이 협력주체들의 활동 플랫폼으로, 우리 지역 모두의 서식지로도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 좀 더 시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하여 역할을 나누고 일을 만들어 갔던 경험을 공유했다.

우리 서식지의 가치는 유연성과 자율성

‘우리가 가꿔나갈 서식지를 위한 질문’으로 이동욱 ㈜컨설테크인터내셔날 수석연구원은 포럼을 준비하면서 진행한 4개 재단의 조직문화 인식조사 결과를 통해 재단 규모가 커질수록 유연과 혁신의 요소가 감소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는 재단 구성원들이 조직의 유연성과 자율성의 가치가 높을수록 조직문화를 긍정적으로, 조직의 안정성과 통제의 가치가 높을수록 조직문화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4개 재단 조사 참여자들이 공통으로 기대하는 조직문화 유형은 “관계지향” 문화였으며, 다양한 문화적 가치들이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는 균형 잡힌 조직문화를 희망했다.

포럼  행사사진
포럼 행사사진

현장 토론에 참여한 실무자들은 수평적인 의견 제시와 토론이 가능한 환경, 체계적인 업무 분장과 인력 관리, 합리적인 의사 결정과 일하는 방식은 개선이 필요하며, 개인·부서 간 소통 부족, 시도하는 것은 많지만 끝은 흐지부지되는 사업 관리, 과도한 업무량과 성과주의, 적당주의와 의욕 저하를 부르는 상황을 제거해 가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재단 대표자들의 역량과 전문성도 건강한 조직문화의 중요 요소로 부각되었다.

모두의 문화재단을 위하여

이번 포럼에서는 우리의 조직문화가 무엇으로부터 기인했는가에 대해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자 했으며, 앞에서 던진 질문을 춘천이 아닌 각자의 서식지에서 구체화하고 그 답을 각 지역에서 찾아가기 위한 시작이었다. 다행히 참여자들은 스스로 묻고 답하기 시작했다. 포럼이 끝난 이후 참여했던 재단을 중심으로 자신의 서식지를 들여다보기 위한 작은 움직임들이 일고 있다.

‘서식지’에 대한 참가자들의 이야기
문화재단 구성원들의 일터이자 삶터인
‘서식지’에 대한 참가자들의 이야기 모음

모두가 상생하고 원하는 서식지, 다양한 문화적 가치들이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는 조직문화를 위해서는 느낌이 아닌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정보와 자료를 바탕으로 우리 재단과 현상을 객관화해야 한다. 구성원들은 객관화된 자기인식을 바탕으로 현실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변화의 방향과 가치를 함께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조직문화의 실질적인 개선은 리더의 의지와 수용력이다. ‘리더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라고 강조에 강조를 하던 한 발표자의 말이 뇌리에 남는다. 공유된 가치를 기준으로 문화를 개선해 가며,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변화를 추동해야 한다. 모두가 함께 공존하며 조직의 미션을 문화롭게 수행하고, 그 안에서 우리 모두의 성장까지 문화롭기를 바란다.

1) 조직문화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학습·공유된 기본이라면, 조직풍토는 일하는 환경에 대한 조직원들의 공유된 감각과 공통으로 느끼는 생각과 감정들을 말한다. 즉, 조직문화는 우리의 토양으로 일하는 방법과 태도, 이를 결정하게 되는 지식, 규약 등을 말하며 조직풍토는 우리의 하루를 지배하는 날씨와 온도로 우리 조직의 상태, 조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라 할 수 있다. 2) 주성진, ‘문화재단은 좋은 직장일까?’, 예술경영 웹진 467호(2021.6.10)

  • 강승진
  • 필자소개

    강승진은 교육기업에서 사업기획과 문화체험사업 등의 경험으로 춘천문화재단 정책기획팀장, 원주문화재단 지역문화실장 등을 거쳐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며 자발적 백수로 잠시 살았다. 히든어셈블의 대표로 잠시 창업의 길을 걸을 뻔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다시 춘천문화재단으로 들어가 문화도시사업에 몸과 마음을 갈아 넣고 있다. 주 고민은 사업담당자 역량 강화와 문화재단의 혁신, 그리고 유연한 조직문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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