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서의 영역은 어디까지일까?’ 요즘 나의 가장 큰 고민이자 숙제다. 기획 의도와 예술가의 창작 실험, 그 중간 어디쯤에서 마치 고장 난 GPS처럼 부지런히 경로를 재탐색하고 있다. 그 무렵 눈에 띈 예술산업아카데미의 ‘공연예술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 양성과정’ 모집공고는 무척 흥미로웠다. 해외연수와 실무교육이 결합된 프로젝트 중심 학습(Project-Base-Learning)으로 국내 공연의 해외 진출 및 유통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국제 공동 창·제작 사업의 전문성을 갖춘 차세대 프로듀서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 사업이다.

다수의 유사한 프로그램들의 형태가 해당 분야 전문가의 강의식 워크숍을 통한 간접경험이었다면, 이번 프로듀서 양성과정은 현장 중심의 직접경험에 중점을 두었다. 총 4개월간의 교육과정은 3주간의 예비교육, 7박 9일간의 해외연수 프로그램, 10주간의 국내 실무교육으로 진행된다. 경력 5년 미만의 공연 기획자를 대상으로 모집한 이번 교육은 무려 8:1의 경쟁률이 대변하듯 뜨거운 관심이 쏟아졌다. 지난 6월 서류심사와 인터뷰 심사를 거쳐 10명이 최종 선정되었으며, 연극, 무용, 인형극, 서커스, 국악 등 공연예술의 전방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차세대 프로듀서들이 모였다. 교육 전문가로는 한국 문화원장을 역임한 한국예술종합학교 최준호 교수, 김철리 연극연출가, 2023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최석규 예술감독이 참여하였다. 또한 아비뇽 페스티벌의 공동 프로그래머인 마그다 비자로(Magda Bizarro)의 마스터 클래스까지 마련되었다.

2023 예술산업아카데미 공연예술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 양성과정 참여자들

필자는 PAMS (서울아트마켓) 협의체로 이번 사업의 해외연수 프로그램인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Festival d’Avignon)1)에 함께 참여하였다. 기억에 남는 축제의 현장과 교차되는 국내 공연예술시장의 변화와 관객개발을 중점으로 풀어보고자 한다.

77년의 역사, 축제를 넘어 문화가 되다.

우리가 도착할 무렵, 프랑스 남부의 소도시 아비뇽은 축제의 서막을 알리는 공연 포스터들의 도배가 시작되고 있었다.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건물들을 휘감는 형형색색의 포스터들은, 축제의 화려한 라인업을 대변하듯 도시 전체에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아비뇽의 메인 거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OFF 공연 출연자들의 버스킹으로 채워졌고, 날을 거듭할수록 축제를 찾는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도시 전체가 들썩였다.

포스터로 가득한 아비뇽 거리

공간을 해석하는 새로운 방법

아비뇽에서의 일주일은 매일같이 새로운 작품을 만나는 설렘의 연속이었다. 특히 도시 전체에 숨어있는 색다른 공간(공연장)을 찾아가며 공연을 보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아비뇽을 상징하는 교황청, 수도원, 체육관 등의 일상 공간은 곧 극장과 무대가 되었다. 마치 커다란 예술 작품의 일부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신비감과 가까이에서 느끼는 역사의 흔적은 감상의 깊이를 더해주었다. 공간의 해석이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일명 ‘7시간’으로 불렸던 ‘Paysages partagés’였다. 장장 7시간에 걸친 이 공연은 이전에 경험한 장소 특정형이자 관객참여형 공연의 확장판 같은 느낌이었다. 아비뇽 외곽의 언덕 위에 넓게 펼쳐진 숲은 곧 무대이자 객석이었다. 티켓팅과 함께 양손에 들린 VR체험용 고글과 담요, 그리고 휴대용 접이식 의자까지, 편안한 복장 착용을 강조한 이유를 점차 알게 되었다. 우리는 눕고, 앉고, 서고, 걸으며 끊임없이 숲속을 누볐다. 공연은 비건 도시락을 먹는 잠시의 휴식과 함께, 깜깜한 어둠이 찾아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렇게 온몸으로 관람한 공연은 적지 않은 피로와 함께 깊은 잔상을 남겨주었다.

Paysages partagés 공연 객석 전경

접근성, 관객이 경험하는 모든 것

공연 혹은 축제의 정보를 접하는 그 순간부터 관객의 접근성 평가는 시작된다. 공연에 대한 정보는 충분한지, 얼마나 편리한 예매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 약자에 대한 차별은 없는지, 모두가 공감하기에 불편함은 없는지 등등 우리는 끊임없이 평가한다. 더군다나 같이 간 사람들 모두 극장과 가까운 탓에 일종의 직업병이 도지며 격한 공감을 하기도 했다. 아비뇽 페스티벌의 경우, 전년도에 비해 영어권 관객을 위한 영문 자막과 공연 정보 제공이 약 80%까지 확대되며 언어 접근성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하였다. 실제 공연 예매 앱에서는 ‘프랑스어를 사용하지 않는’이라는 카테고리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이는 대부분 무용, 음악, 서커스 등 쇼를 중심으로 하는 공연 또는 영문 자막이 포함된 공연으로 분류해주어 매우 편리하게 사용하였다.
그에 반해 장애 접근성은 다소 미흡하였다. 지역문화를 활성화한 축제의 특성상 정식 공연장이 아닌 경우가 많고, 오랜 역사를 지닌 건물을 공연장으로 개조하여 만든 곳이 많다 보니, 휠체어의 진입이나 자막 해설 등의 지원은 부족하였다. 또한 폭염에도 시원함을 넘어서는 국내 공연장과는 달리 별도의 냉방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 더위가 공연 관람의 가장 큰 방해 요소가 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이처럼, 작품을 담아내는 공간과 그를 둘러싼 유·무형의 수많은 요소는 곧 간접 관람으로 이어지며, 나아가 작품 감상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지속성과 전문성을 겸비한 관객개발

예술과 지역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뿌리내린 그들의 견고한 커뮤니티는 축제의 지속성을 함께 고민하고, 전 세계 공연예술시장의 흐름을 제시하는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치열함을 느끼게 하였다. 이를 통해 국내의 공연과 축제가 예술을 넘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가에 대해 객관화하여 살펴보고, 그에 따른 안정적인 자본과 조직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공연예술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 양성과정’과 같은 전문인력 육성사업을 통해 전문성을 쌓은 기획자들이 국내외 공연예술시장 곳곳으로 수혈되어, 시장 전체의 네트워크 규모가 확장될 수 있길 바란다. 그에 앞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현재진행 중인 오늘의 공연에 충실하며, 미래의 관객을 맞이할 준비에 진정성을 더하는 것이다.

  • 필자 소개

    서현재는 현대무용과 무용이론을 공부하며 성장통을 겪었다. 무용 매체를 중심으로 글을 쓰다가 2022년부터 서울남산국악당 프로듀서로 일하며 전통예술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현재는 전 장르의 공연예술을 골고루 경험하는 즐거움을 동력 삼아 극장을 누비고 있다.
    present6779@gmail.com

각주 1) 1947년 Jean Vilar에 의해 설립된 세계적인 예술 축제로, 매년 7월에 열리는 오늘날 가장 중요한 현대 라이브 공연 국제 행사 중 하나이며 다양한 역사적·현대적 건축물에서 공연 진행을 진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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