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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예술회관연합회(이하 서문연)와 마포문화재단이 공동주최한 ‘지역문화재단의 새로운 역할과 방향을 위한 정책 컨퍼런스’는, 서문연이 주관한「지역문화재단의 역할과 과제: 서울지역 문화예술회관의 새로운 역할과 운영방향성에 관한 연구」(이하 연구보고서)를 통해 제기된 문제의식과 고민을 현장 실무자들과 연계해 확인해 본다는 의미에서 개최되었다. 지역문화재단은 지역문화예술회관의 전문적인 운영 관리의 편의에서 출발하였지만 최근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환경 변화로 문화시설 자체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영할지의 문제와 더불어 변화하는 환경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과 해법을 모색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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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문화개념 설정
한국사회가 지식기반사회로 진입하면서 지식의 생산방식 또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된 생산방식의 두드러진 특징은 개인주체가 향유와 생산이 동시에 가능한 ‘생비자’로서의 역량을 갖춰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발제자 정경운(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 교수)은 생비자로서의 개인들의 다양한 문화적 욕구와 흐름들을 어떤 방식으로 조직화하고 자원화하여 생산력화할 것인가에 대한 정책적 고민들이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한편, 최근 들어 사회전반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다른 방식의 접근, 더 근본적으로는 문제 상황에 대한 제대로 된 질문과 인식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으며 그 대안으로 문화적 개입이 떠오르고 있다. 삶의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으로서의 문화에 대한 접근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문화를 영역으로 사고하는 것을 넘어 ‘원리로서 문화’를 사고하는 새로운 문화개념의 설정이 필요하다. 그동안 우리는 문화를 예술이나 문화유산 등 특수한 영역으로 이해해 왔고 이로 인해 개인, 지역, 국가의 발전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문화적 과제들을 종합적으로 보지 못하는 한계를 갖게 되었다고. 그래서 문화가 삶에 영향을 주는 제 영역을 정책 대상으로 설정할 수 없게 만듦으로서 문화적 접근이 절실한 교육, 노동, 보건복지, 여성, 환경, 도시설계를 포함한 공간 등의 문제에 문화정책이 관여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협의의 문화 개념은 문화가 국가적, 지역적 차원에 미칠 수 있는 다양하고 적극적인 기능들을 축소함으로써 문화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할 수 없게 만들었고 궁극적으로 개인, 지역, 국가의 발전에 문화가 기여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의 상실을 가져왔다.
‘지역’ 사유하기
국가나 지역의 발전정책을 펴나가는 데 있어 문화적 개입의 중요성에 토론자들도 많은 의견을 덧붙였다. 토론자 정희섭(한국문화정책연구소장)은 구체적으로 서울시 지역발전정책/문화발전정책의 수립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지역문화발전정책이 아닌 지역발전문화정책으로 개념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박승현(성남문화재단 문화기획부장) 또한 현재의 문화 개념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면서도 정책 영역화가 가능한 새로운 문화 개념 설정이 필요함을 역설하면서 이에 대한 방안으로 성남문화재단이 실천하고 있는 ‘커뮤니티 문화발전’이라는 개념을 미국의 문화단체들의 활동 흐름을 중심으로 소개하였다. 핵심은 이들 단체들의 활동이 단순한 예술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넘어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문화적 삶을 고양시키고 발전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으며 전문 예술활동뿐만 아니라 인종문제, 청소년문제, 경제발전, 범죄예방, 환경, 가정폭력, 홈리스 등 매우 포괄적인 지역사회 이슈들을 취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글로벌시대에 시대적 난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으로 지역을 사유하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지역이 주민들의 일상적 삶이 이루어지는 현실적인 장소이기 때문일 것이다. 즉 지역은 생산과 소비, 구상과 실천이 이루어지는 현장이며 지역민들은 일상생활을 통해 지역민의 감정, 정서, 경험을 축적한다. 정경운은 시대적 난제를 풀어 나가기 위해 국가차원, 거시적 차원으로 움직일 수 있지만 실제 거시적 차원에서 움직였을 때 일상의 난제들은 너무나 체감되기 어렵기 때문에 규모로서의 지역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지역이라는 규모 자체는 정서적, 감성적으로 가족, 관계, 커뮤니티, 소집단 간에 친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생활단위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닥친 난제들을 해결하는 출발점으로 지역을 사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희섭 또한 지역(자치구)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나 문화활동가들이 대부분 교육, 의료, 생태, 환경 등과 같이 부문으로 나뉘어져 있지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지 않다며 좀 더 지역단위로 내려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커뮤니티아트라는 것이 ‘커뮤니티를 위한 예술’이 아니라 ‘커뮤니티 안의 예술’이 되어야 하며 구체적인 삶과 관계 맺는 문화를 사고하는 것이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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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대전제
그렇다면 문제 해결을 위한 해법의 중요한 두 가지 키워드를 담고 있는 지역문화재단은 어떠한 변화의 지향점을 가져야 할까? 이를 위해 이번 컨퍼런스에서는 연구결과에 기초하여 지역문화재단에 세 가지의 새로운 역할을 제안하고 있다.
먼저, 지역문화예술 역량강화와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한 중간지원자로서의 역할이다. 이를 위해 지역문화재단은 직접사업보다는 지역 내 다양한 문화활동과 문화주체들을 지원·촉진하고 지역의 인적·물적 문화자원들을 연결하는 촉매자, 네트워커, 코디네이터로서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지방자치체 실시 이후 관이 해야 할 정책사업들이 민간의 창의성과 역량을 활용하는 민간주도 사업방식으로 변화해가면서 민간과 행정 간의 소통 문제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데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 방안으로 행정과 민간의 중간적 성격을 가진 지역문화재단의 개입과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다음으로, 지역문화정책을 위한 싱크탱크로서의 역할이다. 지역문화정책의 세계적 흐름이 문화시설 하드웨어 운영 중심에서 지역의 문화자원을 활용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지역의 문화정책을 제언·개발하고 지역자원을 연구·조사하는 지역문화싱크탱크로서 문화재단의 역할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역공동체·지역문화경제의 인큐베이터로서의 역할이다. 지역공동체 해체, 지역경제붕괴, 실업문제, 노인문제, 사회안전망 해체 등의 지역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해법으로 최근 커뮤니티비즈니스, 마을만들기 사업들이 여러 정책단위에서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사업들이 단기적 성과 위주로 추진되다 보니 정작 중요한 기초적 토대와 소프트웨어적인 인프라 구축이 간과되어 사업의 지속성과 실효성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보다 사업의 주체인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창조적 충동을, 그것이 어떤 것이든, 이끌어내고 북돋는 조건과 환경 마련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창조성이야말로 지역사회의 변화와 혁신을 위한 강력한 도구이며 인간의 자발성과 지속성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지역문화재단은 이를 위한 인큐베이터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지역문화재단이 공연장 시설 운영이라는 기존의 역할과 기능을 넘어 지역주민들의 삶의 문제 및 지역공동체의 발전에 개입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쉽게 되는 것도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지역문화재단이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질문들을 가지고 변화해야 한다는 대전제가 필요하다. 변화에 대한 스스로의 노력과 의지 없이 지역문화재단이 자동으로 새로운 권한을 위임받는 것은 아니며, 변화를 위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과 해법을 찾는 과정 속에서 지역문화재단의 주체역량이 변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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