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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하고, 정리하고, 넘나드는 MZ세대 문화기획자
김해리_필로스토리 공동대표, 독립문화기획자“『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될 수 있을까』라는 책을 내고 제일 좋았던 점은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이 책을 보고 그렇게 울더라. 정작 나는 이게 눈물이 나는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사실 나의 힘들었던 시간들을 기록 한 책이기도 해서 그런지, 그 너머의 감정을 이해하는 분들이 계시는 것 같다. 정말 장문의 DM이 올 때도 있었고,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는 그런 경험이 좋았다. 단순히 저자가 되고 이런 것보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세상에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그 사람들을 직접 만나지 않았는데도 연결되는 경험이 정말 좋았다.”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와 연결되는 일이 좋다.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의 자기소개서를 대신 써 주는 일이 많았는데, 내가 생각하는 그 친구의 매력이 자기소개서에 잘 표현되지 않는게 아쉬웠다. 그 사람만이 가진 특성을 발견해서 언어로 정리하고, 지난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을 자연스럽게 하게 됐다. 취업할 때가 되면 스스로를 자주 의심하게 되지 않나? 그러다보면 스스로도 발견하지 못했던 가치를 내가 발견해준 게 고맙다며 친구들이 꼭 울곤 했다. 그 때부터 이상하게도 사람들을 울리는 재주가 있었다.”
“브랜드 컨설팅을 할 때에도 놀랍게도, 우시는 분들이 많다. 자기만 생각하던 깊은 이야기를 꺼내 정리를 하는 일이 그런 감정을 주는 것 같다. 사실 나도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할 곳이 없어서 이 작업을 일로 하기 시작한 것도 있으니. 이런 건 누구랑 얘기해야 할까? 정신과 상담까지는 받지 않아도 될 것 같지만 뭔가 불안하고 이야기는 하고 싶을 때, 내 안의 이야기를 나누고 풀어내고 계속 나아가고 싶을 때. 그럴 때 동료를 만나고 싶은 마음 같은 게 들었던 것 같다.”
김해리는 사람을 울리는 재주가 있다. 사람을 울리는,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움직이게 만드는 그녀의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그녀 스스로가 남달리 성숙하고 강한 인격체이기 때문일까?
“나는 좀 ‘애매한 사람’이었다. 이 쪽도 저 쪽도 아닌. ‘나는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많이 조급했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무엇을 할 수 있고 잘 할 수 있을지 몰랐다. 예술단체, 미술관, 극장, 홍보회사까지 다양한 곳에 지원해봤지만 다 떨어졌었다. 예술단체에서는 ‘비즈니스에 더 적합한 사람인 것 같다’는 말을 했고, 비즈니스 조직에서는 ‘너무 예술적이라 회사에 적응하지 못할 것 같다’는 말을 하더라. 혼란스러웠다.”
“원래 예술전공자가 아니고, 일반대학을 졸업한 후 진로를 바꿔서 예술경영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예술학교라는 굉장히 새로운 환경에 가게 됐는데 너무 불안해서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나를 바꿔줄 수 있는 많은 사람들과 환경들이 있는데 그 안에 나를 푹 담그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먹고 살 수 있을까?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을까?’ 이런 것에 더 많이 곤두서서 그 시간을 즐기지 못했다는 사실이 취직하고 회사에 앉아 있으면서 끊임없이 생각이 나고 아쉽더라.”
“어느날 ‘아쉬워하지만 말고, 다시 한 번 일 실험을 해 보자’고 결심했다. 아직 가족도 없고, 아이도 없고, 특별히 책임져야 할 것이 없을 때였으니까. ‘이번에는 불안해하지 않을 것’이 스스로 정한 규칙이었다. 새로운 걸 많이 시도해보고 싶었고, 스스로를 새로운 영역에 던져보는 걸 하고 싶었다. 시간을 정해놓고 ‘일부러’ 방황을 했는데, 정해놓고 방황한다는 게 좀 이상할 수도 있지만, 나라는 사람은 그게 없으면 너무 불안해하는 사람인 거다. 그렇게 다짐하고 그만뒀는데도 한 달 뒤에 구직 사이트를 보고 있더라. 적어도 육 개월 동안은 불안해하지 말고 무조건 새로운 데 다 가보고 해보고 싶었던 거 다 해보자며, 정말 다 해봤다.”
“지금도 사실 불안은 항상 가지고 산다. 어렸을 때는 불안이 사라지기를 바라고 ‘언젠가는 사라지겠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불안했던 것 같다. 근데 세상에 나와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내 눈에 너무 멋있는 언니 오빠들도 자기가 너무 불안하다는 거다. 그때 이상하게 되게 마음에 안정을 찾으면서 ‘아 불안은 안 끝나는구나! 우리는 계속 불안하구나.’하고 인정하게 되었다. 인정하고 나니까 조금은 괜찮아지더라. 자기만의 그런 불안을 다스리는 방식 같은 걸 좀 찾은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예전보다는 불안하지 않은 것 같다.”
인터뷰 중에 김해리가 두 번째로 많이 언급한 단어는 ‘불안’이었다. 김해리가 지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끊임없이 자신의 불안과 마주하고 그 불안의 원인을 스스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자신을 ‘애매한 사람’, ‘조금은 이상한 사람’, ‘경계에 서있는 사람’이라 표현했다. 자신을 중심에 놓지 않는, 자신을 정상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 마음이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자신의 다른 시선으로 그 사람을 생각할 수 있게 하고, 자신의 다른 의견을 그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전달 할 수 있게 만든 건 아닐까?
“학창 시절에도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내용을 이야기하면 친구들이 ‘너 되게 정리 잘한다. 요약을 잘한다.’ 이런 얘기를 했었는데 그때는 그냥 무심코 지나쳤던 그 이야기를 뒤돌아보면서 꿰맞추는 것 같다. 여러 가지 일들을 하다 보니까 ‘정리’가 나의 키워드라는 것을 알게 됐다. 정보를 정리하거나 스토리를 구조화하거나 그런 일들을 잘하고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정리를 나의 키워드로 쓰고 있다. ‘이때도 내가 했던 일의 중심에 정리가 있었네.’하는 식으로 되짚어보면서 깨달았다.”
“언제 어디에나 떠돌아다니는 좋은 이야기들을 포착해서 정리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러다 보니까 잘하게 된 것 같다. 여러 일 경험을 통해서 스스로가 조금 더 본질적인 것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요즘은 브랜드 정리 컨설턴트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실제로 요즘 하고 있는 일도 대부분 본질을 정리하는 일이다. 주로 생각을 정리하고 싶거나, 지금 할 일이 너무 많은데 우선순위를 모르겠다고 하시는 분, 일단 하고는 있는데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헷갈린다고 하는 분들이 많이 찾아오신다. 생각을 명료하게 하고 싶거나 자신의 일을 객관화하고 싶은 분들의 이야기를 함께 정리하고 있다.”
“공동창업해서 운영하고 있는 필로스토리는 전문적으로 스토리를 개발하는 회사다. 우리는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을 3단계로 정리해놓았다. 첫 번째 단계는 ‘비 어 컬렉터(BE A COLLECTOR)’, 내가 내 이야기의 수집가가 되어서 가치 판단이나 검열을 하지 않고 나의 이야기 자산을 일단 다 모아보는 단계다. 2단계는 ‘비 어 큐레이터(BE A CURATOR)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스스로의 이야기를 편집하는 과정이다.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나의 이야기를 어떤 키워드로 전달할 것인지 결정하는 거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인 ‘비 언 아티스트(BE AN ARTIST)’는, 아티스트처럼, 나의 이야기를 세상에 선언하고 표현할 것을 제안하는 단계다. 필로스토리가 만드는 도구나 컨설팅, 스토리 개발 작업이 대부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인터뷰 중 김해리가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정리’였다. 인터뷰를 진행하기 전까지 내 머릿속에 존재하는 ‘정리’라는 개념은 더하기(+)보다는 빼기(–)에 가까웠다. 필요 없는 물건을 정리하거나 프로세스를 정리하는, 어찌 보면 더해나가는 느낌인 기획과 상충하는 개념이었다. 하지만 본질을 정리하고, 목적을 정리하고, 상대적인 중요도를 정리하는 김해리의 작업과정을 듣는 동안 ‘정리’가 기획의 중요한 부분임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김해리는 자신을 어떻게 문화기획자라고 정리하게 되었을까?
“사실 나는 스스로가 되게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문화기획자라는 이름을 작년까지도 쓰지 못했다. 왜냐하면 너무 멋있는 사람들이 많고, 문화기획자라고 하려면 ‘이 정도는 돼야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스스로 경계를 그었던 셈이다. 그런데 용기를 내서 ‘나는 문화기획자야’라고 이야기를 하고, 뭔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문화기획자로 살고 싶다’라고 얘기한 것. 그게 가장 컸던 것 같다. 나는 별로 바뀌지 않았는데 내가 그렇게 얘기를 하니까 사람들이 ‘쟤는 문화 기획자구나’라고 생각해주시고, 주변에서 비슷한 분을 연결해 주시거나 하는 일들이 생겨났다.”
“10년 전, 20대 초반 때부터 문화기획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고민했는데 지금 여전히 스스로를 그 때의 나로 생각하고 있더라. 여전히 방황하고 있고, 혼란스럽다고만 생각했는데 어쩌다가 우연히 20대 초반의 친구들에게 짧게 강의를 할 일이 있었다. 예전의 나 같은 친구들이 와서 ‘선배님!’하면서 ‘너무 불안해요. 뭘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라고 하는 걸 듣고 좀 놀랐다. 어느새 10 년이 지났고 나는 이미 문화기획을 하고 싶어 하는 또 다른 친구들의 선배구나. ‘나는 저들한테 줄 수 있는 게 뭐지?’ 이런 생각이 들면서도 내가 뭐 대단한 건 줄 수는 없을 거 같고, 그냥 나의 상황이나 내가 해왔던 고민이나 이런 거를 기록하는 것은 할 수 있을 것 같더라.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고 문화기획자라는 정체성으로 이런 일도 할 수 있다는, 어떤 사례나 레퍼런스 같은 걸 공유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그렇고 사실 되게 낯부끄러울 때도 많다. ‘내가 뭐라고 이런 걸 쓰나?’라고 생각할 때도 있는데 문화기획자라고 스스로를 믿으면서 사는 한 사람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꼭 문화재단이나 아트센터, 예술기관에서 일하는 것, 공연을 만들거나 전시를 하는 것 말고도 세상에서 할 수 있는 또다른 일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요즘 하는 생각은, 결국엔 ‘문화’는 ‘삶의 방식’이지 않나. 그렇다면 아직 만들어지지 않는 삶의 방식이나 이제 새롭게 만들어지는 문화 같은 것도 있을텐데 어쩌면 문화기획자들은 그런 것에 관심이 더 많은 사람들, 그런 걸 자기가 먼저 해보고 일정한 경험이나 콘텐츠의 형태로 나누는 사람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런 관점으로 보면 누구나 문화기획자가 될 수도 있고 그래서 문화기획자가 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내가 문화기획자로 살겠다’는 마음 같은 게 아닐까 한다. 누군가의 인증을 받거나 어떤 직장에 가지 않아도, 그냥 그렇게 살면 되지 않을까? 그래서 혹시나 문화기획자가 되는 법을 고민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먼저 스스로 문화기획자라고 믿는지 물어보면 좋겠다.”
“예술이나 문화와 관련된 활동을 참 좋아했는데, 회사를 다니다 보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더라. 체력적으로 지치고, 일도 너무 많고 점점 책임도 커지다 보니까. 문화예술을 기획하고 만드는 게 내게 되게 큰 에너지였는데, 그 상황에서 그것을 하고 싶어 하는 것 자체가 동료들한테 민폐처럼 여겨졌다. 약속을 못 지키니까. 그래서 그런 일을 못하게 되면서 너무너무 많이 우울해졌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공연이나 어떤 자리를 만드는 일이 나한테는 일종의 창작 욕구의 해소였다.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혼란이 오던 시기에 빈티지샵에서 나름 거금을 주고 사온 인형이 하나 있었다. 뒤집어 보니 엉덩이에 무슨 각인이 있었고, 그걸 단서 삼아서 인형의 정체를 찾다 보니 너무 많은 스토리가 있고, 너무 다양한 인형들이 있고, 그게 너무 재미있어서 거의 몇 년 동안은 인형 덕질만 했다. 생각해 보면 인형 수집을 하는 행위는 저만의 테마를 가지고 뭔가를 모으며 규칙을 찾는 일이었던 것 같다. 인형을 수집하면서 블로그에 정보들을 기록하고 아카이빙하다 보니 사람들이 블로그를 보러 오더라. 그런 것에서 또 새로운 재미를 찾은 것 같다. 나의 콘텐츠를 만든다는 개념도 좀 이해하게 된 것 같고.
집에서 혼자 전시를 하고 놀았다. 사실 전시는 집에서도 할 수 있으니, 그 때 그 때 테마를 바꾸면서 나만의 전시를 했다. ‘이번에 문구점 테마야’, ‘이번에는 시대별 전시야’ 이렇게 혼자 집에서 전시를 하고 그걸 또 온라인에 공유하면 사람들이 그걸 보고 즐거워하고. 그런 걸로 창작의 욕구를 풀었던 것 같다. 당시에 이런 것은 일상에서는 감추는 정체성이었다. 회사와 딱 분리해서 덕질하는 그 영역에 가두었기 때문에 ‘이걸 좀 확장해보고 싶다.’라는 욕구가 어느 순간 생겼다고 본다. ‘이렇게 즐거운 일을 내가 취미의 영역에서만 해야 할까?’ 하는 마음이었다.”
“크리에이터는 나의 여러 정체성 중 말하기 가장 어려운 정체성이었다. 왜냐하면 늘 ‘크리에이터를 돕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크리에이터’라고 말하는 것에 대한, 어떻게 보면 ‘공포’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런 걸 좋아하지 않아. 나는 그런 사람들 도와주는 사람이야.’라고 더 많이 생각했다. 책을 만들고 또 콘텐츠를 만들어서 직접 세상에 내놓으면서 사람들과 만나는 경험이 스스로에게 굉장히 좋은 경험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이런 일을 계속 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독일에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친구가 ‘여기는 모두가 작게나마 창작을 하는 사회라고 느꼈다.’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이 계속 기억에 남더라. ‘사실은 내가 원했던 것도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창작을 한다는 건, 위대한 작품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자기를 계속해서 표현하는 일, 무언가를 꺼내서 사람들과 나누는 그런 일인데 왜 내가 어렵다고, 또는 나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크리에이터의 정체성을 계속 가져가고 싶어서 요즘엔 스스로를 ‘크리에이터’라고도 소개한다. 상상하는 일이 좋아서 예술을 시작했는데, 스스로의 가능성에는 제한을 긋는 게 이상하지 않나?”
“기존에 없는 일과 사례가 없는 프로젝트, 또는 스스로의 커리어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상상하며 만들어나가는 것이 요즘 나의 일이다. ‘창업’ 또한 일(業)을 창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기존에 일하던 방식을 재편하고 새롭게 구성하는 일, 세상에 없던 종류의 서비스나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에도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창업 또한 본질적으로는 창작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예술인은 아니지만,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스스로가 생각하는 예술의 맥락에서 하고 있다.”
“현재 여러 개의 일을 동시에 하면서 다양한 정체성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이쪽에서 해소되지 않은 욕망은 저쪽에서 풀고, 저쪽에서 해소되지 않은 욕망은 이쪽에서 풀면서 나름의 균형을 만들고 있다. 그동안 생각해보지 못한 일의 방식이다. ‘일’이라는 건 누군가가 주는 것,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만 골라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 않나.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해왔고. 그런데 어떤 일은 세상에 없는 일일 수도 있고, 내가 만들어서 할 수도 있고, 동시에 여러 가지 정체성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새로운 전환점이 찾아온 기분이 든다. 나 말고도 모든 사람들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일 이야기를 만들고, 세상에 보여줬으면 좋겠다. 우리의 수식어는 모두 다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크리에이터와 문화기획자 중 무엇이 더 넓은 개념일까?’, ‘문화기획자와 크리에이터의 경계는 어디일까?’와 같은 질문들이 잠시 머릿속에 스쳤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 경계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이 생길 때 그 경계는 희미해지고, 경계를 넘는 사람이 많아졌을 때 그 경계는 사라지게 될 테니 말이다. 김해리의 작업은 나를 포함한 이전 세대 문화기획자들이 넘지 못한 경계들을 즐겁게 넘나들고 있었다. 공공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은 때마다 다르지만 30% 정도라고 했다. ‘동양가배관’이라는 커피 브랜드를 만들고 최근에는 인천의 배다리에 공간도 오픈했다. 2년이 걸렸다. ‘필로스토리’라는 스토리 개발 전문 기업을 창업해 개인과 기업 그리고 공공 영역에서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으며, 앞서 잠시 언급한 스토리 툴킷을 포함한 스스로 개발한 상품들을 온오프라인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김해리는 ‘이상하고 재미있는 일들을 벌이는 문화기획자’이자 ‘스토리로 브랜딩을 말하는 스토리 디렉터’이며 ‘소소한 일상, 오래된 물건,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 인터뷰의 출발은 MZ세대 기획자와 예술가에 대한 기획특집 논의였다. MZ세대의 특성을 이야기하던 중 세대의 특성을 하나로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인데, 우리가 지면을 통해 정리하려는 시도가 합당한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래서 기획특집 대신 사람을 통해 한 명 한 명의 MZ세대를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나누고자 했다.
만약 신이 나에게 어떤 특정 집단을 완전히 이해하게 해 줄 테니 대상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아마도 나는 ‘문화기획자’와 ‘MZ세대’를 뽑을 것이다. (20년 전이라면 특정성별을 선택했을 확률이 높겠지만) 문화기획자에 대한 관심은 내 자신과 또 나와 유사한 사람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면, MZ세대에 대한 관심은 나와 유사하지만 다른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다. 때문에 MZ세대 문화기획자 김해리를 만나고 읽는 일은 나에게 큰 즐거움이었다. 그녀의 글을 읽고 대화를 나누면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고, 내가 욕심냈지만 하지 못했던 일들을 누군가 이렇게 즐겁게 잘 해나가고 있구나 하는 위안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나는 울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만남을 글로 옮기는 일은 어려웠다. 짧은 글에 그녀의 삶과, 내가 느낀 감정을 담아내어 ‘사람 읽기’가 가능하게 하기에 나의 생각과 글이 얼마나 부족한지 깨닫는 시간이었다. 부족하나마 김해리라는 한 사람의 목소리를 충실히 전하고, 많은 이들이 이미 주목해온 그녀의 수많은 성취보다 그 밑에 깔려있는 그녀의 생각의 흐름을 나누고 싶었다. 이런 이유로 충분히 소개하지 못한 김해리의 활동은 ‘정리의 달인’이 직접 정리한 온라인 포트폴리오를 통해 확인해보시기 바란다.
주성진은 (주)메타기획컨설팅에서 8년간 배우고 일하며 조직을 덜 고상하게 변화시키고자 노력하였다. 이후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명칭을 고민하다가, 용역으로 가득한 프로필을 보며 스스로를 <문화용역 주성진>으로 칭하였다. 최근에는 공공사업을 덜 고루하게 만드는 일과, 문화기획 교육과정에 관여하며 멘토를 사칭하고 청년들에게 문화기획을 배우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모든 것에 쉽게 중독되며 특히 맛있는 것과 즐거운 것에 광적으로 집착하여 도파민 분비 체계의 이상이 의심된다. 여전히 매년 20%씩 일을 줄여 50살에 은퇴하고 탁구로 전국을 제패하겠다는 꿈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