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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의 공진화를 위한 발견
여신동_시노그래퍼, 무대감독공연을 만드는 환경이 달라지면서 기존의 역할 구분으로는 하는 일을 모두 담을 수 없어 새로운 역할을 지칭하는 이름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어떤 역할은 작업 과정이 예전보다 세분화되면서 생겨났고, 어떤 역할은 오늘에 와서야 만들어졌다. 최근에 자주 눈에 띄는 역할 중에는 ‘시노그래퍼(scenographer)’도 있다. 새롭게 떠오른 다른 역할들에 비해서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 같지만, 정확히 어떤 일인지 한 호흡으로 단번에 설명하기 힘든 그런 역할이다. 우리 말로 정확히 옮길 수 없는 시노그래피(scenography)는 연극의 장면을 의미하는 신(scene)과 관련이 깊은 말일 것으로 자연스레 연상된다.
오랫동안 다양한 공연을 만들고 있는 여신동이 연극으로 작업을 시작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그를 시노그래퍼로 부르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시노그래퍼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사람은 여신동이다. 공연 만들기에서 그의 역할은 무대디자이너에서 미술감독으로, 때로는 연출가로, 최근에는 시노그래퍼로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 역할 명명하기를 통해서 그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온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10월 초, 그와 나눈 대화는 예술가가 자신의 예술세계와 자신을 둘러싼 예술 환경 속에서 ‘좋아하는 일’이 ‘잘하는 일’이 되고, 그 일이 또다시 ‘좋아하는 일’이 되는 과정을 어떻게 만들어나갔는지를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었다. 또한, 시노그래퍼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그를 만나볼 기회가 머지않아 오겠다는 추측도 해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시노그래피를 우리말로 옮긴다면 어떤 말이 좋을까? 무대미술에서 시작한 단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전을 찾아보니 건축용어로 원근 공법이라는 말도 있었다. 시노그래퍼로 자신의 역할을 부르게 된 계기도 궁금하다.
한국에서는 시노그래피를 번역하면 통상 무대미술이라고 할 것 같다. 중세시대 때나 오페라가 유행하던 극장 문화가 있었을 때, 무대 위에 판타지를 만들어야 하니 원근법을 많이 사용했다. 세계의 깊이를 만들고, 무대의 위와 아래를 만들어서 판타지를 창조하기 위해서였다. 시노그래피의 뜻은 이런 만들기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연극 만드는 것 이외에 다른 일을 하게 되면서 ‘난 뭘까?’라는 고민을 했다. 이를 출발점으로 적절한 단어를 찾고 골랐다. 내가 이해한 시노그래피는 극장이든, 전시든, 영화든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 이상으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 공간 안에 적극적으로 공기를 만드는 것. 그래서 찾은 단어가 시노그래피였다. 연극뿐만 아니라 전시, 음악공연, 인테리어에서도 무드를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무대미술을 전공했는데, 당시에는 판타지를 만들어내는 것에 대해서 주로 배우지 않았을까 싶다. 최근 연극 작업들을 보자면, 오랜 시간 꾸준히 작업의 결이 변화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무대미술에 건축적으로 접근했다. 시각적으로 잘 드러나는 벽, 덩어리 등을 사용했다. 연극에는 배우가 있고, 이야기가 있다. 이들을 무대 위에 드러내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다. 작업을 지속하면서 무언가를 배우고 도전하고자 하는 프로덕션을 많이 만났다. 삶,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작업들을 하면서 고민이 깊어졌고, 어느 순간 그 고민들이 나에게 와 닿기 시작했다. 극미술, 무대미술에 과연 건축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일까? 무대 없이도 공연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살아 숨 쉬고, 감정을 가진 생명체만으로 무대에서 충분히 판타지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내 안에 들어왔다.
많은 연출가들이 무대가 없어도 된다고들 하지 않나? 연습실에서 연습 공연을 보는 것이 더 좋을 때가 있지 않나? 오히려 공연이 무대에 올라갔을 때 더 이상하기도 하다. 그런 걸 느낄 때, 무대를 만드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의 시선을 작업에 어떻게 더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무대라는 것이 단순히 세트 중심이 아니라 무드를 만들어주어야 하지 않나? 빛, 사운드, 의상을 통해서도 무드를 만들어낼 수 있고, 이때 감정이나 오감처럼 보이지 않은 것들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최근 내가 작업하는 무대에는 뭔가가 많이 없다. 그렇게 변해왔다. 공간을 다루는 사람이다 보니, 오히려 동선을 긋고 큐의 호흡을 만들어야 할 때도 간혹 있다.
역할이 확장되는 순간, 계기가 있었나? 다양한 장르에서 연출 작업도 하고 있는데, 시작이 어땠나?
처음에는 시간이 흐르다 보니 자연스레 지금 여기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 안에 채워지지 않았던 무엇이 있었다는 것 같다. 무대와 무대미술을 바라보던 시선이 건축에서 다른 것으로 변하게 된 것처럼, 다른 것들에도 시선이 가게 되었다.
연출을 시작하게 된 것은 결핍 때문이었다. 한국의 모든 연극과 뮤지컬 무대를 다 하느냐는 소리를 들을 만큼 일을 많이 할 때였다. 일을 너무 많이 하다 보니 무작정 찍어 내기하는 것 같기도 하면서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도 들고, 내가 소비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 연출을 시작했다. 많은 작품을 연출한 것은 아니지만, 연출가로서 작업을 할 때는 내 안의 것을 풀어내는 살풀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나는 연출가를 직업으로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직업적인 연출은 개인 작업으로 접근하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연출은 최대한 지원 받지 않고, 개인 작업으로 남겨 두고 싶다.
나에게는 무대미술이 업인 것 같다. 연출가로 인정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연출 작업은 작가로서 내가 거치는 한 과정이다. 이런 맥락에서 내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계속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지금은 조금씩 균형을 맞춰가는 과정인 듯하다. 예술에는 유행이 있지 않나. 사라지는 것, 사라지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자기의 것이 필요하다. 그것을 찾는 방법이 중요하다.
공간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다양한 장르를 오가면서 드는 생각들이 있는지, 또한 장르 간 작업 방식의 차이가 있다면 무엇인가?
연극으로 작업을 시작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연극은 나에겐 클래식이다. 연극 작업을 하면서 드라마 분석도 하고 공부를 많이 했다. 많은 것들이 빨리 소비되고 있지만, 연극은 소비되더라도 무언가 밑바탕에 탄탄하게 쌓여있는 느낌이 있다. 타 장르 작업을 할 때는 무대미술을 하고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작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 콘서트나 디스플레이도 나는 다르게 접근하는 편이다. 연극이라는 뿌리가 없었다면 나도 없다. 한때 연극을 싫어했는데, 지금은 인정하고 벗어나지 못하는 걸 받아들였다.
콘서트를 하게 된 것은 정재일의 공연이 계기가 되었다. 정재일의 <바리 aban-doned>에 참여했다. 음악은 한 곡당 대개 3-4분 정도 길이고, 그 안에 담긴 내러티브도 길지 않다. 그것들을 엮어 전체적인 내러티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연극을 했던 것이 내러티브 만드는 데 도움이 되었다. 서사 중심의 내러티브가 아니라, 감각 중심의 내러티브로 시작과 끝을 만들었다. 음악의 진동과 오감을 가지고 논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 지점이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 신선했던 것 같다.
감각의 내러티브 이야기를 좀 더 하면 좋겠다. 작업의 밑그림을 그릴 때, 무엇을 기준으로 두고 시작하나?
무조건 사람부터다. 배우, 연출가, 음악가 등을 나의 거울이라고 여기고, 내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내가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이런 태도는 국립극단의〈비행소년KW4839〉를 하면서 생겼다. 배우들과 공동창작으로 만든 작품인데, 예전에 청소년들과 워크숍 하면서 같이 쓴 글에서 시작했다. 작업하는 과정에서 배우들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감각적으로 많은 것을 얻었다.
양손프로젝트는 배우가 어떻게 연기할지만 생각하는 집단이다. (웃음) 그래서 내가 들어갈 공간이 많은 집단이기도 하다. 그들에게서 공연에 대한 태도를 배웠고, 시노그래퍼로서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많은 실험을 할 수 있었다.
전시를 할 때도 이런 맥락이 적용된다. 에르메스라는 브랜드와 작업을 한 적이 있다. 에르메스는 1년에 한 번씩 세계 윈도 디자이너를 한 나라에 모으고 워크숍을 진행한다. 먼저 자신들의 철학을 가르친다. 작업할 내용과 주제를 설명하고 조별로 공부를 시킨다. 그래서 작업이 단순히 윈도를 꾸미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예술가가 고민해야 하는 추상적인 주제가 시즌마다 있다. 작업물의 통과 여부는 파리에 있는 한 사람에 의해 결정된다. 에르메스가 원하는 것은 대중이 지나다니면서도 주목할 수 있는 예술성에 있다. 나는 극장에서 하던 것처럼 했다. 관객이 극장에 머물러야 하는 것처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디스플레이된 것 앞에 잠깐 머물러 바라보아야 하는 것을 생각해냈다. 무대와 객석처럼 말이다.
대화를 하다 보니 감각의 내러티브를 따라가면서 무언가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시노그래퍼가 하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이 가상으로 넘어가는 지금의 모습이 무대, 무대미술과 맞닿아 있다. 가상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테크놀로지의 사용도 있겠고, 어디까지 상상할 것인지, 표현방식을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지 많은 것들을 생각해보게 된다. VR을 통해 보는 연극이 생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이 의미가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공연은 체험이 중요하다. ‘극장에 간다, 티켓을 끊는다, 기다린다, 암전 속에 있다’와 같은 감각이 중요하다.
오롯이 체험만 하는 극을 준비 중이다. 주관적인 체험이다. 무대미술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예전에 더줌아트센터에서〈pan123mE1〉이라는 여자 배우 네 명이 나오는 극을 연출한 적이 있다. 내용을 이해하기보다는 앞에서 일어나는 일을 감각하는 것이 목적인 극이었다. 관객이 스스로 감각하는 것, 관객 자체가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수행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감각이 정신을 만든다고 생각하다.
예술가의 삶은 작업 결과물과 점점 닮아가게 되는 것 같다.
일치하고, 닮는 것도, 그만큼 자신의 삶에 관심이 있어야 가능한 것 같다. 시선이 바깥으로만 향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삶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잘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느 순간, 도대체 나를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네이버에서 시노그래퍼라는 말을 찾았다. 이 말이 당시의 나에게 적당한 것 같았다. 공연을 만들면서 다양한 일을 했는데, 하나의 포지션으로만 남아있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아서 찾은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또 다른 이름을 찾아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이름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기존 역할이 어떻게 확장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공간디자이너나 전시하는 작가도 시노그래퍼라는 역할을 많이 사용한다. 어떤 이름은 누군가에게 이정표가 되어 주고 역량을 확장시키는 첫 단추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좋겠다. 모든 사람들이 무대미술로 시작해 다양한 작업을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다양한 장르에 시노그래피적으로 접근하면 아주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다. 나는 앞으로 무드를 만들어준다는 의미에서 작업자로서 나의 역할을 더 많이 고민해야겠다.
공연예술 현장에서 작업을 지속하면서 자신의 삶을 잘 꾸려나가는 방법이 있다면?
작업 초반에 상을 많이 받았고 한 4년 정도 일만 했다. 그 이후 지쳐서 1년 정도 쉰 경험이 있다. 이제는 쉬고 일하는 패턴을 지키고 있다. 그러니까 확실히 일을 지속할 수 있는 것 같다. 계속해서 달렸다면 일을 못 하지 않았을까. 일을 멈추는 요령과 거절도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스태프들은 을의 을이 될 수 있어 불안하기 때문에 쉼 없이 일한다. 공연예술계의 시스템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스스로 컨트롤을 잘해야 한다.
공연예술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게 될 것 같은가? 또 선배와 후배를 포함한 동료들을 어떻게 만나고 싶은가?
해외 나가서 공연하면 관객들을 많이 본다. 어떤 사람들이 오는지를 보면 연령도, 보는 태도도 아주 다양하다. 이런 것을 보면 극장예술은 앞으로도 희망이 있는 것 같다. 한국의 무대미술계에서도 작업자가 많이 나오려면 좋은 작업들을 후원해주는 기회가 더 많아져야 한다. 그래야 좋은 후배 디자이너들이 작업을 계속할 수 있다. 오랫동안 무대를 지킨 선배 예술가들의 공연도 많이 있어야 한다. 공연 현장의 라인업들이 좀 더 다양해지면 좋겠다. 좋은 동료, 좋은 후배, 좋은 선배들이 모두 있어야 시장이 유지되고 작업이 계속될 수 있다.
나는 앞으로 내가 잘하는 걸 하는 게 맞다. 40대 중반인 지금이 한창 일할 나이이지만, 50대, 60대에 어떤 작업을 할지 생각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욕심내는 것보다 내 안으로 더 들어가는 작업이 우선해야 한다. 그것이 결국에는 확장이라고 생각한다.
전강희는 영문학과 연극학을 전공하고 예술현장에서 공연평론가, 드라마투르그, 축제의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다. 새로운 극적 언어를 탐색하고 장르 간 해체와 협업이 활발한 공연 만들기에 관심이 많다.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의 편집인으로 활동하며 여러 장르의 신진 예술가들의 작업을 기록하고 소개했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는 서울변방연극제의 대표이자 프로그래밍 디렉터로서 축제를 만들었다. 또한 인천아트플랫폼, 우란문화재단, 광주 ACC의 레지던시에 입주작가로 참여한 바 있다. 현재는 국립극단의 창작프로젝트〈창작공감:연출〉의 운영위원으로 참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