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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닥터의 탐라표류기
페인트닥터 최유라 대표 인터뷰유난히 무더웠던 2013년 여름이 지나자 저지리의 한 유휴공간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그 공간의 이름은 탐라표류기, 예술가와 동네아이들의 즐거운 놀이터가 되었다. 현재 페인트닥터 대표 최유라는 이 공간을 운영하던 문화예술단체 ‘아테우리’의 대표였다. 예술가와 즐겁게 노는 일을 무척이나 좋아했고, 자신도 예술가였던 그녀가 이윤을 추구하는 법인회사의 대표가 되었다고 한다.
일단 회사 운영도 제게는 예술작업이라서 할 수 있었어요. 과정을 말씀드리면, 제주에서 문화공간을 운영하면서 그 공간을 지속하기 위해 고민했어요. 콘텐츠도 나름 고민했고요.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러 여기저기 안 돌아다닌 데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우연한 계기로 미장 스승님을 만나게 되면서 장인의 길을 결심했어요. 제 미장 스승님께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유럽 미장을 공부하신 분이세요. 저는 그 분의 첫 번째 제자고요. ‘재미있겠다. 내 적성에 맞는 것 같다.’고 느꼈는데, 왜냐하면 저는 계속 물성을 다루는 작업을 해왔고, 제가 몸담았던 문화예술교육 분야의 토대도 역시 전부 물질과 감각을 다루는 일이니까 오랫동안 안 질리고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예술가 하면서 그동안 먹고 살기 힘들었는데, 이건 그래도 노동의 대가를 잘 받을 수 있는 일 아닐까?’ 생각하면서 공사현장에 일꾼으로 몇 년 돌아다녔어요. 그러고나서, 이걸 사업으로 전환할 방법을 모색했던 것 같아요. 문화예술계에서의 제 목표는 청년 작가 지원이었어요. 그게 저의 유일한 목표였어요. 그런데 지원 사업의 요건이나, 행정과정에 너무 넌덜머리가 나서 어떻게하면서 벗어날 수 있나 고민했거든요. 지원사업을 할 때는 욕망에 충실한 기획서를 쓰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스스로 자유롭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어쨌든 지원사업을 떠나보려고 했어요.
엄청난 모험이에요. 이윤을 추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들을 예술경험을 통해서 만나고 교류해요. 비즈니스라는 저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영역에서 제 가치관, 욕망, 작업방식을 가지고 줄타기를 합니다. 물론 힘든 부분이 있죠. 리스크가 커요. 근데 해볼 만한 것 같아요.
경영, 이런 말이 저한테는 지금도 너무 멀고 굉장히 까마득해 보이거든요. 회계, 정산도 그렇고, 법인이라고 하는 개념은 제게는 너무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었고요. ‘회사가 인간의 법적 지위를 갖추고 나는 그 회사를 만든 대표인데, 회사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고?’ 내가 여태 알고 있다고 생각한 세상과 달랐어요. 그러면서 어떻게 해야 돈을 벌 수 있는지, 어떻게 광고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시장을 만들어야 하는지, 이런 수많은 것을 계속 배워야만 했어요.
기술자로는 살 자신이 있었는데 기업을 운영한다는 건 어마어마하게 큰일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회사 운영을 간접 경험이라도 해봐야 될 것 같고 배워야 할 것 같았어요. 그때가 2017년이었는데 제주도의 '여성공동체 창업 인큐베이팅 지원사업' 공모에 지원하게 되었어요. 공모에서 1차 서류심사 통과하고, 2차 발표할 때 심사위원들이 제대로 얘기를 해주셨어요. 가능성과 우려되는 지점을 말씀해주시더라고요. 탈락했지만 엄청 고마웠어요. 그 이야기르르 바탕으로 다듬어서 같은 해에 '소셜 벤처 아이디어 경연대회'에 나갔어요. 고용노동부 주최,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주관한 사업이었는데 지역 예선전과 서울 본선을 치르고 우수상을 받았어요.
다음해에 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가 지원하는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지원해서 선정됐는데, 제가 8기에요. 그때 배운 게 회계, 노무, 홍보, 이런 것들이에요. 다른 사람들은 기업을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 보기도 하고 이야기도 나눴어요. 각기 다른 분야의 기업 대표님들의 실질적인 고민을 들으니까 도움이 됐어요. 조언해 줄 동료들도 거기서 많이 만난 거죠. 그걸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해요.
법인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거든요. 책임이나, 추구하는 목표, 지배구조, 의사결정방식, 수익배분 등 생긴 모양대로의, 나름대로의 고충, 유연함, 이런 부분들을 공부하게 되었어요. 육성 사업은 종료하는 동시에 법인을 무조건 설립해야 했어요. 아직 덜 익었는데 출발은 해야 했어요. 그때 법인을 설립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어요.
제품 연구와 개발을 하고 있고, 그 다음에 시공, 유통, 개발, 홍보, 교육도 하고 있어요. 일이 너무 많은데 어쩔 수가 없어요. 지금은 그간의 경험이 더해져서 초기보다는 비즈니스 모델이나 회사의 비전이 좀 더 명확해진 상태에요. 사업 규모를 확장하는 일은 언제쯤으로 해야될지 고민하고 있어요. 천연 페인트와 천연 미장을 이해하는 사람들, 이 일에 투신할 사람들이 늘어나면 그때는 몸집이 조금 커져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밀크 카제인(Milk Casein) 페인트에요. 페인트가 왜 파우더인 게 훨씬 좋은지, 탄소 배출량이 얼마나 줄어드는지, 유통기한이 무한정 길어진다는 점이 얼마나 좋은 건지, 이런 것을 사람들에게 설득시키고 싶었어요.
제가 생태적 관점에서 가장 보수적인 회사의 레시피로 공부했어요. 크라이데자이트(kreidezeit)라는 독일 회사인데, 그 회사가 하고 있는 일들을 정말 유심히 봤거든요. 시골 동네 유기농 마켓에서 카제인 페인트를 복원해서 팔아보자는 생각으로 제품 하나를 만들어서 팔았던 게 환경 운동가들 사이에서 점점 입소문이 나서 설립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회사예요. 그 회사의 글 중에 이런 문구가 있어요. ‘집에 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시공하는 사람의 건강까지 생각합니다.’ 너무 놀랐어요.
그 회사는 제품 하나와 캠페인을 연결시켰어요. 고객이 해당 페인트를 구입하면, 열대 우림 난개발 지역의 땅을 구입하는 단체에 그 페인트로 칠할 수 있는 최대 면적만큼 땅을 살 수 있는 금액을 기부해요. 그러면 나무 벌목으로 쫓겨나는 원주민이 줄어드는 거예요. 저도 저희가 만든 페인트를 팔아서 페인트를 칠한 면적만큼 제주 곶자왈을 보전하고 싶지만, 곶자왈은 너무 비싸요. 그래도 수익의 10%는 곶자왈을 지키는 단체에 기부할 수 있으니까, 그런 프로젝트를 하기 위한 페인트로 밀크 카제인 페인트를 만들었죠.
처음에 비즈니스라는 것에 엄청 압도, 경직되어 있다가 살짝 편해지면서 체험 클래스를 했어요. 천연 페인트를 전시해서 보여주고, 설명도 열심히 했는데 그거로는 인식 향상이 너무 더디더라고요. 분명히 보고, 들었던 사람이 다음에 만났을 때 친환경 페인트랑 천연 페인트의 차이점을 기억하지 못하고, 막연히 더 좋은 것쯤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어요. 어떻게 해야 확실하게 기억에 남을까 고민해서 만든 것이 공기정화기능이 더해진 천연 페인트로 그림을 그리는 프로그램이에요. 그림을 그리는 과정 중에 천연 페인트의 창점을 확실히 느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일이 많아요. 전시공간에서 원리, 종류, 역사, 재료를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해드리고, 교육시간에는 재료를 다루는 방법을 알려드려요. 일회용 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씻거나 빨아서 다시 사용하는 등 공이 엄청 들어가요. 그런데 절대 이 과정을 줄이지는 못하는 거에요. 왜 그런가 생각해봤는데 제가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활동하며 추구해 온 맥락 때문이었어요. 제 마음을 들여다보고나서는 손님들을 더 기쁘게 맞이하게 되었어요. 손님들이 점점 편안해하고 몰입할 때, 자신이 예술가인 것을 알아차리고 지금, 여기를 즐기실 때 가장 보람차요.
그래서 ‘이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많이 보여주자!’ 싶어서 손님들의 그림과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SNS에서 소개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니까 사람들 사이에서 이 프로그램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어요. ‘마음 그리기’라는 이름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생겨났어요. 우리 프로그램, 정말 잘 만들었어요.
‘마음 그리기’를 경험하고 가신 학교 선생님들께서 학생들과 교실에서 할 수 있게 만들어달라고 많이 요청하셔서 교구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그런데 역시나 가격 책정에 실패했어요. 왜냐면 품질이 떨어지는 구성 물품은 못 넣겠는 거예요. 붓은 최소한 품질이 어때야 하고, 이러면서 점점 원가가 비싸지더라고요. ‘이렇게 비싼 걸 사줄까?’ 조언을 구하러 다녔어요. 그랬더니 사람들이 자신감을 가지래요. 와디즈에서 다행히 500% 달성했어요.
아까 말씀드린 처음 만든 페인트가 제 아픈 손가락이기도 해요. 제작비 지원을 받고 컨설팅과 리서치 과정 후 내놨던 제품인데 '팔리는 제품'을 만들려다 큰 걸 놓쳤어요. 이 분야에서는 누구보다 제가 전문가라는 사실을요. 다음에는 제 마음이 시키는 대로 만들어서 다시 내놓을 생각이에요.
제가 일단 대표고, 제 짝꿍은 실장이에요. '언제나 완전한 제 편이 되어주는' 사람입니다. 일에 따라 함께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요. 시민단체 출신의 친구, 예술하는 친구들, 동네 이웃들도 계셔요.
인류가 아주 옛날부터 지금까지 하고 있는 거예요. 집을 지을 때 흙, 풀, 돌과 같은 자연 재료로 짓는 게 천연 미장이에요. 천연 미장이라는 이름을 붙이려면 집을 부쉈을 때 하나도 남지 않고 100% 전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해요. 다시 말하면 자연상태에서 분해되지 않는 플라스틱과 시멘트, 석유유기화학 물질이 들어가지 않는 방식이에요. 동양에서는 주로 해초풀, 찹쌀풀, 이런 풀을 사용했고, 서양에서는 주로 우유 단백질을 이용했어요.
제가 속도는 좀 느려도 흥미가 생기면 들이파는 성향이 있어요. 공부를 하다보니 인생의 대부분을 실내에서 보내는 인류가 숨쉬고 살아가는 공간에 화학도료가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주는지 알게 되었고, 알게 된 이상 사람들한테 알려야한다는 마음이 굉장히 컸어요. 석유, 플라스틱, 시멘트 산업의 발달이, 편리와 효율이, 경제적 가치가 그동안 우리를 자연스러운 것으로부터 격리해왔다는 것을, 집을 짓는다는 것이 그렇게 전문가의 영역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좋은 재료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요. 천연 미장은 아주 단순하고 너무나 기본적인 것들이에요. 특별히 새롭게 등장한 게 아니라, 인류의 역사와 늘 함께 있어왔어요.
유화 작업을 할 때 붓을 씻거나 희석제로 쓰는 시너가 있어요. 석유화합물로 만든 시너는 건강에 굉장히 안 좋아요. 그래서 작가들에게 대안으로 제시하는 게 저희가 보유하고 있는 오렌지 오일이에요. 오렌지 껍질에서 100% 추출한 시너라서 오렌지 성분에 알러지가 없다면 굉장히 안전해요. 또 저가의 물감들 중에는 유독한 중금속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저희가 수집한 안료는 유럽 주택 기준 인증을 받은 안료들이에요. 작가들의 건강에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아요. 페인트닥터 재료를 이용해서 그림을 그리고 작업하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는 작가들이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작가들과 재미있는 컬래버레이션 작업도 하고 싶어요. 수익도 창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서 예술가들이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이 되었으면 해요.
문제가 없었던 적은 거의 없어요. 대화 중에 무수하게 많은 오해의 지점이 발생하고, 돈이라는 경제적 가치가 왔다 갔다 하는 굉장히 예민한 일이다보니 늘 많은 문제가 생겨요. 우선 자신에게 솔직해야 해요. 그러니까 무조건 '다 돼요'가 아니에요. 먼저 내가 원하는 일인지 묻고, 상대가 원하는 것을 여러모로 반복해서 확인하고, 그 다음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논의해요. 이런 문제점도 있고 이런 장점도 있는데 어떤 것을 선택하고 싶은지 확인하는 작업을 계속 해요. 그래야 문제가 닥치더라도 잘 해결할 수 있어요. 아주 훌륭하게 잘해왔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부끄럽네요.
자연 원료로 바인더를 개발하면 페인트를 더 다양하고 세분화시킬 수 있어요. 그래서 향토 자원 중에 쓸 수 있는 것을 찾아보고 있어요. 예를 들면 해마다 해조류 중 괭생이 모자반이 해마다 우리 해안으로 밀려와 문제가 되잖아요. 그걸 이용해 바인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대학 교수님들과 논의도 해보고요. 요즘 기후위기로 조릿대가 한라산 고위도까지 퍼지는 바람에 제거 작업을 하는데 그걸 식물성 섬유재 원료로 사용할 수 없나 알아보러 다니고, 먹을 수 있는 식물성 원료 같은 것도 고민하고 있어요.
점차 설비시설을 더 필요로 하고 있어요. 투자도 필요하고요. 그러나 시장이 적다보니 연구할 수는 있는데 사업화하기가 상당히 어려워요. 국내 건축자재 시장에서 천연 도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1%가 안돼요. 집계가 안되는 수준이에요. 유럽은 60%, 가까운 일본은 30%가 넘어요. 우리의 목표는 이 1%를 넘어서, 적어도 일본에게는 뒤쳐지지 않는 거에요. 저희가 하고 있는 이 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나다보면 분명히 그런 날이 올 거라 생각해요.
해양 미세플라스틱 원인 1위가 석유합성 섬유고, 도료는 7위 정도에요. 그런데 문제는 그 입자 단위가 거의 나노 수준이라는 거에요. 너무너무 미세해서 그 입자가 지구 생명체의 근간이 되는 플랑크톤이 먹고 살고 광합성을 하는 딱 거기, 바다 표층에 있게 되는 거에요. 아크릴 물감 쓰고 하수구에 버리면 안됩니다. 아크릴 페인트 이렇게 계속 쓰면 안돼요. 이런 문제를 계속해서 알리고, 지구 생명체 모두가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역할을 할 거에요.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있어요
자연에서 왔고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나는 우리의 일부이고, 나와 다른 얼굴의 그대는 우리 중 하나
우리는 하나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술가이며
이미 그대로 반짝이고 충분합니다‘
이 일이 재미없어지면 다른 것을 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지금은 열심히 재밌게 잘 작업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충분히 재밌게 잘 놀고 있어요. 같이 놉시다!
김연주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예술학을 전공했으며,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주)아트컨설팅서울 큐레이터로 근무했고, 현재 제주도에서 문화공간 양 기획자로 활동 중이다.〈장애예술 창작공간 기반 마련 : 폴리시랩 프로젝트〉등 다수의 연구 사업에도 참여했다.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지녔으며, 마을의 기억을 예술가들의 시선으로 기록하는 일과 새로운 예술 개념을 제안하고 실험적인 작품을 소개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