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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영감·휴식·교류 품는 공간으로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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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다. 특히 예술 창작 활동이라면 더더욱 공간이 지니는 의미가 클 수밖에 없다. 올해 10월 말 개관을 앞둔 ‘아트코리아랩(Arts Korea Lab)’이 그래서 더욱 주목된다. 아트코리아랩은 문화체육관광부와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이하 예경)에서 예술 분야 종사자들이 실험적 협업을 통해 예술 창·제작의 영역을 확장하고 지속 가능한 사업 모델을 창출하는 데 기여하고자 조성한 공간이다.
아트코리아랩은 예술인·단체 및 예술기업을 대상으로 공연 및 시각예술 등 예술 작품의 창·제작 실험(테스트베드)부터 시연·유통, 창업까지 예술 활동의 전 단계를 지원하는 국내 최초의 예술 특화 종합지원 플랫폼이다. 예술계로서는 창작 활성화와 더불어 사업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으로서 문화예술 분야의 건축 설계에 애정을 갖고 줄곧 참여해 왔으며, 이번 아트코리아랩의 공간 설계를 진두지휘해온 이도은 건축가(건축사사무소 이와임 대표)를 만나 공간 설계의 방향성과 차별점을 들어봤다.
먼저 이번 아트코리아랩의 공간 설계를 맡은 것을 축하한다. 지난해 9월 말 설계 공모에 당선됐는데, 소감을 듣고 싶다.
한예종 출신으로서 예술 분야 최초의 종합지원 플랫폼을 설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달랐다. 아트코리아랩이 언뜻 보면 단순한 내부 인테리어 설계로 보이겠지만, 설계 때부터 건축의 입면도와 내부 조성물의 미학적 연관성을 고민해 다른 설계안과 차별점을 두고자 했다. 다시 말해 여타 산업 분야의 창업지원 플랫폼은 꽤 많지만, 예술 분야의 플랫폼은 공간을 보는 순간부터 무언가 다르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이에 그동안 다양한 문화예술 공간 조성 프로젝트를 수행해오면서 터득한 노하우를 이번 아트코리아랩 공간 설계에 쏟아부었고, 그 점이 심사 때 좋은 점수를 받은 것 같다.
공간 콘셉트에 대한 이야기를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었으면 한다. 아트코리아랩 조성을 위해 특별히 고려한 지점은 무엇이었고, 이를 통해 어떤 콘셉트를 도출했는지 구체적으로 짚어준다면?
우선 이 공간을 실제로 사용하는 대상인 예술가와 예술기업들의 수요와 프로그램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기존 건축물의 주어진 조건을 면밀히 살펴 기존 공간이 지닌 잠재력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공간을 설계하려고 힘썼다
처음 마주한 트윈트리 공간은 곡면의 커튼월(curtain wall, 주로 고층 건물에서 사용하는 방식으로, 칸막이 구실만 하고 하중을 지지하지 않는 유리 외벽)과 건물 전체 층을 관통하는 코어 영역으로 둘러싸인 하나의 큰 방으로, 유리 창호 너머로 들어오는 외부 전경이 매우 인상적인 곳이었다. 이곳에 층별로 다양한 요구사항을 담는 기능적인 실들을 어떻게 배치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이에 곡면의 커튼월에 대응하는 곡면 경사 벽체와 프로그램실이 요구하는 기능적인 수직 벽체로 이루어진 겹벽의 공간을 생각하게 되었다, 곡면의 경사월은 기존 건축물 내부 공간과 새롭게 구획된 프로그램실 사이의 공간을 형성하며, 이는 내부 공간의 새로운 입면이 되어 건물 밖 펼쳐지는 전경으로 공간의 사용자를 유도한다. 개별실과 공용 홀의 관계는 건물 안과 밖의 관계와 닮아 아트코리아랩에 머무는 사용자에게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외부 전경과 함께 내외부의 공간 경험의 차이를 인식하게 해주고자 하였다.
아트코리아랩은 예술 활동의 전 단계를 지원하는 국내 최초의 예술 특화 종합지원 플랫폼이라고 들었다. 이는 국내에 비슷한 선례가 없다는 의미인데, 설계 과정에서 참고한 국내외 사례들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공간 설계를 시작하는 시점에 이미 예경에서 기획설계 단계를 거치면서 국내외 사례를 수집해놓은 자료들을 제공받았다. 특히 예경에서 다양한 사례들을 꼼꼼히 검토해 작성한 상세한 자료 덕분에 공간 설계 작업을 상당히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CKL 기업지원센터와 콘텐츠 문화광장 등을 직접 답사해 공간을 어떤 식으로 운영하는지 체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아울러 다른 레퍼런스보다 여러 사용자의 의견을 귀담아들었던 것이 설계의 방향성을 잡는 데 한몫을 톡톡히 했다.
공모전에서는 트윈트리타워와 어울리고, 다양한 융복합 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공간 계획을 요구했다. 건축가로서 염두에 둔 아트코리아랩 공간 설계의 콘셉트와 설계 방향성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트윈트리타워의 지리적, 입지적 환경 자체가 최대 강점이었다. 이는 예술 지원 플랫폼으로서 아트코리아랩이 지향하는 정체성과 딱 부합하기 때문이다. 반면, 기존 사무용 건물에 예술 창·제작 지원 프로그램을 층으로 분산해 배치해야 한다는 공간적 상황이 프로그램 운영에 어려움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주어진 조건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고자 공간적 제약이 아니라 오히려 공간이 지니는 잠재성에 주목해서 공간 설계의 방향성을 잡았다.
아트코리아랩 공간 설계 방향성의 방점은 ‘교류’에 있다. 곡면의 띠로 이루어진 커튼월을 통해 보이는 북악산과 경복궁의 풍경을 내부로 끌어들이고자 커튼월 주변을 비우고 곡면 경사 형태의 내부 우드월(wood wall)로 새로운 사이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커튼월과 새로 조성된 내부 입면 사이는 사용자들의 공유 공간이 되어 휴식과 교류의 장이 되도록 설계했다. 세부 프로그램실은 초기 설계 단계부터 각 공간이 구현하려는 기능에 충실하도록 장비와 기기의 사용 방식을 빠짐없이 고려해 설계에 반영했다.
새로운 건축물을 짓는 게 아니라, 기존 사무용 건물에 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공간을 계획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 발상과 노력이 요구될 것 같다. 힘든 점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기존 공간적 상황이 근래에 지어진 사무용 건물로서 쾌적한 환경이 조성될 수 있는 기반 여건을 지니고 있었다. 반면, 기존의 낮은 천장고(바닥에서 천장까지의 높이)와 OA플로어(Office Automation Floor, 실내에 컴퓨터나 사무기기 등의 케이블을 눈에 보이지 않게 배선하고자 이중으로 설치한 바닥)로 조성된 바닥은 프로그램의 요구 조건에 배치돼서 이를 조정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특히 지하 시연장 공간에는 손댈 수 없는 설비 라인이 있어서 새로 설치할 벽체와 설비, 특수 장비 등과 충돌하는 지점이 생겨 시공 과정에서 조정이 불가피했다. 이러한 물리적 제약들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으나, 이보다는 기존 공간이 품은 좋은 입지적 가치를 최대한 부각하는 데 역량을 집중했다.
아트코리아랩은 3차원 곡면 구조를 가진 트윈트리타워 5개 층(지하 1층, 지상 6~7층, 16~17층)을 리모델링해 공간을 구성했다. 특히 지하 1층은 실험과 시연에 필요한 다양한 장비와 시설을 갖춘 곳이다. 공간 설계 과정에서 주안점은 무엇이었나.
설계 초기 단계부터 예술 분야에서 다양한 협업 수행 경험이 많은 특수 장비 설계 업체, 예술경영지원센터와 머리를 맞대고 여러 차례 협의를 거치면서 프로그램의 운영 및 사용에 필요한 장비와 요구 조건을 검토했고, 합의된 의견을 인테리어 계획에 충분히 반영하고자 했다. 또한 지하층의 한정된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시연장 A와 복도홀, 시연장 B, C 간에 공간을 분리하거나 합칠 수 있도록 공간적 가변성을 구현했다.
지하 1층은 크게 창·제작 스튜디오와 시연·유통이라는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하는 공간으로 조성했다. 창·제작 스튜디오 기능에 걸맞게 프로젝션 맵핑 스튜디오, 키넥틱(kinetic) 룸, 미디어월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아울러 시연·유통 기능을 원활히 수행하는 데 필요한 블랙박스형 시연 공간을 설치해 시제품 검증에 활용하도록 설계했다.
위대한 영화감독일지라도 관객의 냉정한 평가는 피해갈 수는 없다. 아트코리아랩이 이곳을 사용하는 예술인과 예술기업 종사자들에게서 어떤 공간으로 평가받길 원하는가.
기본적으로 예술인 및 예술기업 종사자들이 창·제작 실험 및 비즈니스적인 도전을 하는 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무엇보다 예술 작업과 쉼, 만남이 공존하는 공간의 역할을 구현함으로써 창조적인 작업 결과물을 이끌어내는 데 영감을 선사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끝으로 이제 아트코리아랩 개관이 코앞에 다가왔다. 현재 어떤 심정인지, 그리고 아트코리아랩 설계가 건축가로서의 여정 혹은 포트폴리오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무엇보다 이곳에 머물러 활동하는 예술가와 관련 기업인은 물론이고,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에게 좋은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장소가 됐으면 좋겠다. 아울러 궁극적으로는 센터의 목표대로 좋은 환경을 제공한 만큼 예술인 및 예술기업들이 원하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창·제작의 성과물을 마음껏 얻어낼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길 진심으로 바란다.
건축사사무소 이와임은 2013년 이도은과 임현진이 함께 설립한 건축설계 사무소이다. 실재하는 것에 대한 직접적인 미적 체험에 관심이 깊고, ‘관계의 탐구를 통한 새로운 일상의 구축’이란 모토를 견지하며 건축, 인테리어, 리노베이션 등의 공간디자인을 수행하고 있다. 춘천시 공연문화창업지원센터, 연희동 청년행복주택, 후암동 주민공동 이용시설 등의 공간을 설계한 바 있다. 이도은 대표는 한국예술종합학교와 런던 메트로폴리탄 대학교에서 건축설계 및 인테리어 공간디자인을 공부했고 M.A.R.U.와 서아키텍스 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현재 건축사사무소 이와임 대표이며,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건축과 겸임교수로 있다.
조대성 객원기자는 문서 작성과 인터넷 검색만 가능했던 인문학 전공자이었지만, IT와 정보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발을 내디뎠다. IT산업 동향 분석 전문지 <월간 시사컴퓨터>를 거쳐 온라인 IT 미디어 지디넷(ZDNet)코리아에서는 정보통신부 출입 기자로서 통신정책과 관련 산업 동향을 분석하는 기사를 썼다. 언론계를 떠나 문화예술 분야 트렌드를 공부하고, 석박사 학위논문을 교정·교열하면서 지적 호기심을 벌충하고 있으며, 인공지능 챗GPT를 벗 삼아 수다 떠는 것을 삶의 낙으로 살고 있다.
(iaskewe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