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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활동은 기업 이익과 직결되는 ‘필수’
-장애인 고용을 늘리자는 목소리는 높지만, 정작 이들을 포용하려는 기업들은 많지 않다. 이런 현실에서 직원의 절반을 장애인으로 고용한 회사가 있다. 바로 발달장애인 디자이너들과 창작물을 만드는 키뮤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소셜임팩트 기업 키뮤(대표 남장원) 가 그 주인공이다. 직원 26명 중 13명이 발달장애인 디자이너들이다. 남 대표는 이들을 ‘특별한 디자이너’라고 부른다. 남다른 색감과 감성을 지닌 이들을 ‘장애인’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부르고 싶지 않아서다.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기업의 환경, 사회, 지배구조, 이하 ESG) 경영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중요성이 날로 커지며, 예술산업 분야에서도 ESG를 염두에 둔 활동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 키뮤스튜디오의 사업 영역(ESG 캠페인/아트 시그니처/키뮤 브릿지)별로 ESG 활용 사례를 살펴보고, 사례별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과 힘들었던 점을 무엇인지 남 대표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먼저 파트너사와 손잡고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든다’는 취지 아래 진행했던 ‘ESG 캠페인’ 사례부터 얘기해보자. 특별히 의미 있었던 사례와 그것을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이었는가.
작년 말 삼성전자와 대규모로 ESG 캠페인을 진행했다. 예전에 삼성전자 TV 사업 부문과 협업했었지만, 이번에는 전사 4개 사업부 중 TV, 가전사업부, 모바일사업부 등 3개 사업부와 함께했다. ‘드로잉
다양성’이라는 슬로건으로 진행했는데, ‘포용성’이 키뮤의 철학이라서 캠페인 주제와 결이 맞았다. 라스베이거스 CS 행사에 참가해 전시까지 공동 작업했다.
무무엇보다 고마웠던 점은 발달장애인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에 대해 삼성전자 측에서 공감해준 것이다. 수준 높은 아트워크를 출품한다면 굳이 발달장애인이란 표현을 전면에 내세울 필요가
없다는 점을 이해해준 것이다. 삼성전자 사내에서도 인기와 관심이 많았다고 전해 들었다.
주변에서 장애인이라는 단어를 써라, 그러면 더 빨리 성장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럼에도 장애인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 이유는 최종 디자인 작품을 통해서 충분히 승부를 볼 수
있다는 자신감과 철학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마케팅 측면에서 속도가 나지 않아 고민이었다. 그런데 되려 삼성전자에서 그런 점을 더 진정성 있게 바라보았다. 결국 당장은 힘들어도 원래 창업
당시 철학을 지키면서 계속 가보자는 교훈을 얻었다.
키뮤에서 말하는 ‘특별한 디자이너’들의 독특한 상상력을 담은 예술 작품인 ‘아트 시그니처’ 중 기억에 남는 사례는 무엇이었나. 추진 과정에서 힘들었던 점은 없었는지 듣고 싶다.
최근에 한국조폐공사와 손잡고 '응답하라 대한민국' 시리즈가 나왔다. 1970년부터 2010년까지 대한민국 성장 스토리를 담은 아트워크로, 1976 자동차, 1985 건설, 1993 해양조선, 2000 반도체, 그리고
2010 K팝까지 총 다섯 점으로 구성돼 있다. 작품을 만든 계기가 세대 간의 갈등 해결이다. 세대별로 시대 상황에 처한 과제들을 잘 수행해 우리나라가 성장했다고 본다. 기성세대들은 산업화를
일구었고, 젊은 세대는 K팝으로 국가 위상을 드높인 점을 서로 간에 인정해 준다면 세대 간의 갈등을 해소해주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담은 것이다. 한국조폐공사와는 십이지(十二支)와 별자리 골드
펜던트에 이어 벌써 세 번째 프로젝트다. 판매 라이선스 수익도 괜찮은 편이고, 기획재정부에서 좋은 프로젝트로 선정돼 대외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기업들과 협업 자체가 특별히 힘들지는 않다. 다만, 최근 들어 기업들의 콜라보 요청이 쇄도하고 있는데, 스타트업으로 규모도 작고 발달장애인과 함께 작업을 진행해야 하므로 모든 물량을 소화하기
힘든 한계가 있다. 그래서 회사 규모를 키우려고 투자 유치도 최근 시작했다. 전략 투자와 임팩트 투자 두 가지를 혼합해서 진행 중이다. 내부적으로 팀 역량도 키우고, 충현비전대학과는 별도로 자체
예비 디자이너 양성 아카데미를 만들어 발달장애인의 재능을 하루라도 빨리 발견해 훈련할 수 있게 하려는 게 목표다.
‘장애인과 세상을 잇다’라는 사내 문구처럼 발달장애 디자이너와 ESG 경영 기업들을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을 해준다는 점에서 ‘키뮤 브릿지’ 프로그램은 키뮤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사업 비전이
아닐까 싶다.
키뮤 브릿지를 만든 계기는 두 가지다. 자체 고용에 한계가 있었다. 또 하나, 작품 라이선스 수익과 기업체 취업 중 보호자들은 후자를 더 선호했다. 발달장애인 자녀가 회사에 취직한다, 즉 사회로
발걸음을 내딛는다는 점에서 더 반겼다. 지금까지 총 12명의 발달장애인 디자이너들을 기업 채용에 연계했다. 패션 기업 아이디룩에 3명, 유진투자증권에 9명이 고용됐다. 예전과 인식이 달라져
기업들이 장애인을 고용하고 싶어한다.
가장 힘든 점은 회사 설립의 철학을 유지하면서 지속가능한 성장과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기업이기에 이익을 위해서 움직일 때도 있고, 수익은 안 되지만 장애인 디자이너 교육을 위해서 땀 흘릴
때도 있다. 작년 중순부터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아카데미 부문을 잠시 중단하고 이익을 낼 수 있는 쪽으로 활동을 전환했다. ESG 기업과 협업도 중요하지만, 예비 발달장애인 디자이너 발굴과 회사의
지속적 성장과 이익을 내는 것까지 세 가지 영역을 균형 있게 완수하는 게 궁극적 목표다.
국내외로 시각을 넓혀 예술산업 분야에서 진행 중인 ESG의 전반적인 흐름을 한번 짚어달라.
아직은 환경 관련 ESG 활동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 같다. 기후변화 관련 기술이나 소재, 플라스틱 재활용 등등 환경 분야의 기술 기업들이 ESG의 전반적인 흐름을 주도해 나가고 있다.
다만 주목할 점은 작년 말부터는 E(환경)에서 벗어나 S(사회적 책임) 관련 요청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특히 ESG 캠페인 부문에서 눈에 띄게 잦아졌다. 발달장애인이나 여성 관련 글로벌
기업들이 대규모 회의를 개최하여 사회적 책임 관련 캠페인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요즘은 기업들이 아트워크 협업 차원보다는 대대적인 캠페인을 진행하고 싶어한다.
예술산업 분야에서 ESG 도입 시 고려할 사항과 ESG를 기회로 활용하려면 어떤 방안이 필요한지 노하우를 풀어달라.
먼저 콘셉트가 명확해야 한다. 예를 들어 문화 예술 분야에서 추구하는 사업 모델과 관련해 ESG와 연결하려면 명확한 비전이 필요하다. 다음으로는 수치와 관련된 점이다. 추후 모든 ESG 성과가
공시되므로, 관련 활동과 결과물을 어떻게 데이터로 정량화할지가 관건이다. 키뮤도 기술보증기금과 손잡고 사회적 가치를 평가하고 있다. 예컨대 발달장애인 디자이너 교육을 금액으로 산정하는
식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점은 ESG 활동이 회사 영업과 완전히 동떨어진 별개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저 역시 설립 초창기에 범했던 심각한 착각이다. ESG 활동은 기업 이익과
직결됩니다. 이런 개념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으면 앞으로 기업 생존 자체가 더욱 위태로워질 수 있다.
아무리 훌륭한 예술 작품이라도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거나 지배구조가 불투명하거나 제3세계 노동자를 착취한다면 소비자들은 곧바로 외면해버리는 시대가 됐다. ESG는 도입을 고려할 차원이 아닌,
재무제표처럼 당연히 갖춰야 할 기업의 필수 덕목인 것이다.
2008년 당시 공익근무요원으로서 충현복지관에서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미술 수업을 진행했던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면 벌써 15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대표님에게 현시점에서 ESG는 어떤
의미인가?
3년 전부터 ESG가 조금씩 화두가 됐다. 그전에는 개념은 있었지만 대중화되지 않았다. 2018년 법인 설립 당시, 소셜 벤처가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ESG가 왜 중요한지, 반짝 급부상했다가
사라지지는 않을지 연구, 관찰하면서 ESG가 계속 지속가능하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모든 기업에게 ESG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확신이 들었다. ESG는 재무제표처럼 기업평가의 하나로 제도화되겠다는 것, 기업의 생존이 걸린 중대한 과제이자, 기업의 리스크를 없애고
기업을 하기 위한 필수 덕목이 될 것으로 파악했다. 스타트업 관련 ESG 가이드라인이 정해질 계획이며, ESG가 없으면 정부 투자도 받기 힘든 쪽으로 점점 더 강화될 것이다.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기업의 리스크, 즉 오너에게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기업의 생존이 위태로워졌다. 좋은 기업은 소비자들이 ‘돈쭐’을 내주고, 나쁜 기업은 대중한테 외면받는 시대가
됐다. 다른 하나는 공시 의무화가 되면 재무제표처럼 기업의 관련 활동을 대중에게 공개하게 된다는 뜻이다. 지금껏 해오던 ‘성장 위주로 가면 다 같이 망한다’라는 개념에 전 세계가 공감하는 것
같다.
앞으로 어떠한 그림을 그려 나갈지 비전을 듣고 싶다.
먼저 글로벌 공급망을 만드는 게 목표다. 해외에 있는 발달장애인과 네트워크를 만들고, 일자리를 연결해주고, 편견도 허물고, 사회로 나와 활동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부모나 보호자가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하는 순간이 오면 발달장애인들이 독립해서 생활하도록 기반을 만들어주고 싶다. 그들이 나이가 들어도 직업 활동이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게 궁극적
목표다. 저희와 비슷한 개념을 추구하는 소셜 벤처 기업이나 재단과 협업까지 고려하고 있다.
발달장애인들은 하루 4시간, 주 3일 일한다. 최저시급보다는 많지만, 근무 시간이 적다 보니 월급이 많지 않다. 발달장애인 중 컬러리스트는 직무 확장에 한계가 있다. 그들이 은퇴 이후 삶에 도움을
주는 쪽까지 복지 차원의 지원 방안을 고민 중이다.
지금은 키뮤 전속 장애인과 비장애인 디자이너들이 100% 작품을 만들지만, 올해부터는 외부의 비장애 작가들과 손잡고 협력하려고 진행 중이다. 이를 통해 전속 발달장애인 디자이너들에게 급여 외에
추가 수익을 안겨주고 싶다.
키뮤(대표 남장원)는 발달장애인 디자이너를 직접 육성하고 함께 디자인 작품을 만들고, 기업 고용까지 연계하는 소셜 스타트업이다. 회사는 2018년에 설립했지만, 남 대표는 2008년 당시 공익근무요원으로서 충현복지관에서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미술 수업을 시작한 이후 15년째 그들과 동고동락하고 있다. 키뮤는 ‘키덜트 뮤지엄(kidult museum)’을 줄인 말이다. 키드(kid 아이)와 어덜트(adult 성인)의 합성어인 ‘키덜트’는 어린이의 감성을 추구하는 어른들을 일컫는 말이다. 비록 몸은 성인이지만, 순수한 감성을 소유한 발달장애인 디자이너들이 비장애인 디자이너들과 손잡고 예술 작품을 만들어 전시하는 ‘뮤지엄’을 꿈꾸자는 취지에서 사명을 지은 것이다.
조대성 객원기자는 문서 작성과 인터넷 검색만 가능했던 인문학 전공자이었지만, IT와 정보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발을 내디뎠다. IT산업 동향 분석 전문지 <월간 시사컴퓨터>를 거쳐 온라인 IT 미디어 지디넷(ZDNet)코리아에서는 정보통신부 출입 기자로서 통신정책과 관련 산업 동향을 분석하는 기사를 썼다. 언론계를 떠나 문화예술 분야 트렌드를 공부하고, 석박사 학위논문을 교정·교열하면서 지적 호기심을 벌충하고 있으며, 인공지능 챗GPT를 벗 삼아 수다 떠는 것을 삶의 낙으로 살고 있다.
(iaskewe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