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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함께 우리는, 예술의 역사를 어떻게 써 나가야 할 것인가?
-가난한 예술가의 삶을 산 많은 미술가와 달리, 생전 대저택과 성을 소유하면서 평생을 귀족으로 산 화가가 있다. 17세기 유럽 바로크 화가 루벤스(Peter Paul Rubens)는 화가로서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며 미술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벨라스케스(Diego Rodríguez de Silva y Velázquez)와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가 롤 모델로 삼았던 그는 이탈리아에서 유학한 후 상업주의 미술 메커니즘을 잘 이용했다. 거대한 공장형 작업실에서 각 분야에 특화된 분야별 전문 조수들을 고용하여 그림을 그리게 한 그는 자신의 서명이 담긴 3천여 점의 작품을 팔았고, 심지어 아트 딜러 역할을 하기도 하면서 부를 축적했다. 그는 부유층을 초대하여 관계 유지에도 힘쓰며, 페인팅뿐만 아니라 섬유, 인테리어, 판화, 책 표지 디자인 등도 자신을 알리는 마케팅 수단으로 적극 활용했다. 그럼에도 귀족으로 묘사한 자화상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데 능숙했던 그는 당시 많은 이들의 비난을 받았다.1)
한편, 산업이 성장하면서 예술이 빠르게 상업화되던 광고 시장에 특별히 관심을 가진 인물이 있었다. 앤디 워홀(Andy Warhol)은 대량 생산, 소비 사회로의 이런 변화를 간파하며 대량 생산 매체인 실크스크린을 예술적 무기로 삼았다. 기존 예술 작품처럼 노동 집약적 수고를 덜고, 기계적 정확함을 통해 대량 복제를 하며, 앤디 워홀이 만든 스튜디오 ‘앤디 워홀 팩토리’의 조수들은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사진을 활용하여 작품을 대량 생산했다. 철저한 공장 분업 시스템 속에서 각 팀원은 앤디 워홀의 지시를 따랐고, 조수들은 이따금 작품에 즉흥적으로 개입도 했다. 심지어 그의 어머니는 작품에 최종 서명을 대신하기도 했다.2)
위 사례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이슈가 있다. ‘창작의 고유성’과 ‘창작의 윤리성’이다. ‘창작의 고유성’이란, 창작 행위 주체의 문제이고, ‘창작의 윤리성’이란 사회적 관습과 도덕적 규범의 문제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늘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다닌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개 ‘창작의 가치’가 훼손되면 ‘윤리적 기준’이 함께 훼손된다고 믿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작의 가치’는 단지 ‘고유성’만을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루벤스나 워홀이 선택한 방법은 그 시대의 사회, 문화, 경제 환경이 만들어 낸, 혹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일종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윤리성’ 역시 시대가 요구하는 도덕적 규범의 일부이지만, 이 두 가지가 언제나 대응 관계에 있지는 않다.
최근 대학생들이 챗GPT를 과제 혹은 시험에 활용하는 것을 두고, 공부를 열심히 한 학생에 대한 상대적인 피해를 이유로 도덕적 해이를 문제 삼는 비판적 여론이 일고 있다. 또한, 사고능력 향상에 문제를 초래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에 서둘러 챗GPT 활용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대학도 늘고 있다. 하지만 연습 위주의 단순 반복 학습에는 챗GPT가 유용할 수 있어도 창의성과 정확성이 필요한 경우, 넘어설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그럼에도 챗GPT의 목표 달성 결과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정교해지고 있다. 단 2분 만에 원하는 이미지를 생성하거나, 웹사이트 포맷을 제시해 주거나, 음악을 작곡하는 등 다양한 AI 활용 서비스가 빠르게 결과의 정확도를 높여가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 만들어진 오픈소스 기반의 오토GPT는 인간이 프롬프트를 작성하고, 질문하고, 답변 받는 과정을 원하는 결과를 얻을 때까지 반복해야 했던 기존의 챗GPT를 뛰어넘어, 이 프로세스에서 인간의 역할을 제거했다. 다시 말해 텍스트는 GPT-4 모델을, 이미지는 GPT-3 모델을 활용하여 AI가 스스로 쓰기 프롬프트를 반복, 완수할 수 있도록 했다. 프로세스 중간에 인간의 개입 없이 사용자가 설정한 목표를 AI가 자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스스로 실시간 웹에 접속하고 검색하여, 작업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개선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수집한 정보에 대하여 장기 기억과 단기 기억 장치를 활용하면서, 코드를 직접 작성하고 실행할 수 있게 했으며, 음성 서비스 기능 또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이런 배경 위에서 심지어 작년 가을 미국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에서는 AI로 생성한 그림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Theatre D'opera Spatial)’이 디지털아트 부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로봇이 올림픽에 나가 우승한 꼴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3).
이처럼 인간 인식론의 역사는 늘 기존의 가치와 질서를 흔드는 것들을 부정해 왔다. 문자 언어를 음성 언어의 대리 보충으로 평가절하했던 인식의 역사4), 또는 인간의 정신을 신의 오성을 대리하는 유일한 것으로 바라보고 육체성과 몸의 감각을 평가절하했던 인식의 역사가 이를 잘 설명한다.5) 그러나, AI가 앞으로 예술뿐만 아니라 우리 삶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은 불 보듯 뻔하다. 인류는 기술 발전에 예술적 상상력을 더해 진보해 왔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고, 역사적 인과 관계는 중요성이라는 측면에서의 선택 과정이기 때문이다.6) 진보를 향한 인간의 욕망은 결코 AI로 인한 인류의 진보를 멈추게 하지 않을 것이다.
AI를 대하는 우리의 예술적 태도는 더 전향적이어야 한다. AI의 잠재적 가능성을 더 적극적으로 탐구해야 한다. AI를 어떻게 창작 과정으로 수용할 수 있을지 더 적극적으로 탐색해야 한다. 창작의 가치 판단 기준과 도덕적 가치 판단 기준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꾸준한 사회적 논의와 협의 과정이 필요한 대목이다. 물론 ‘법적 장치와 기준’은 필요하다. 타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여러 가능성들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소 뜬금없다고 여기는 독자가 있을 수 있겠다. 그럼에도 창작의 가치, 도덕적 규범, 그리고 법적 판단이 뒤섞인 한 가지 사건이 떠오른다. 충동 해방과 표현에 대한 강한 열망을 품었던 작가이자 교수 마광수는 1992년 그의 소설 「즐거운 사라」의 ‘외설 논란’으로 강의 도중 음란문서 유포 혐의로 검찰에 연행, 구속되었다. 1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대법원도 유죄를 확정했다. 1998년 사면된 그는 우울증에 시달리며 해직과 복직을 반복했고, 2017년 9월 자신의 자택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7)
창의적 가치를 도덕적 규범 혹은 사법적 판단에 의존할 때, 인간은 자기 자신의 얼굴과 자기 자신의 가정만을 보게 된다. 그 결과 인간은 객관적으로 대상을 본다는 착각 속에서 신념화된 자신의 기준만을 보게 된다. 하나의 관찰자가 모든 현실을 한 가지 방법으로 바라보는 전략 속에서 예술적 잠재성과 창의성을 기대할 수는 없다.
AI와 함께 우리는, 예술의 역사를 어떻게 써 나가야 할 것인가?
안병학은 홍익대학교에서 타이포그라피와 그래픽 디자인을 가르친다. 2002년부터 작업실 ‘사이사이’를 운영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타이포그라피와 그래픽에 중점을 둔 방식을 주요 작업 방법론으로 활용해 왔다. 아이디어 매거진, 아틀라스 오브 그래픽 디자인 등에 그의 작업이 소개되었고, 감각과 직관에 관심을 두고 ‘타이포잔치 2017’ 총감독을 맡아 ‘몸과 타이포그라피’라는 주제를 다양한 워크숍과 전시의 형태로 선보였다. 사회, 문화, 정치적 입장에서 디자인의 미래 역할을 다시 설정하는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