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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활동과 타기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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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활동을 하시는 분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에서 내가 제일 먼저 묻는 말은 “당신이 만드는 것은 작품입니까, 상품입니까?”이다. 그러면 표정들이 묘해진다. 작품(作品)은 자기가 좋아서 만든 창작물이다. 구매자 한 명만 좋아해도 된다. 그러나 상품(商品)은 대중에게 팔기 위해서 만든 창작물이다. 다만 예술을 얹은 것이다. 사실 현장에서는 많은 이들이 이걸 혼동한다.
상품으로 팔기 위해서 만든 것이라면 몇 가지 결정이 따라야 한다. 나는 “이 상품을 1) 왜 만들었나, 2) 누구한테 팔 것인가, 3) 그들이 무엇이라고 나 또는 내 상품을 기억하길 바라나?”이다. 이것을 마케팅 용어로는 S.T.P라고 부른다.
S는 시장 세분화(Market Segment)를 뜻한다. 라면 시장을 예로 들면 크게 컵라면과 봉지라면 시장으로 나뉜다. 이는 또 맛별로 매운 라면, 순한 라면, 카레 라면, 치즈 라면 등으로 나뉘어 여러 개의 시장으로 구성된다. 고급 라면으로 차별화해 틈새를 노리는 시장도 있다. 이렇게 시장을 쪼개는 것이 시장 세분화다. 다음은 이 중에 어디에 내 상품을 팔 것인가를 정해야 한다. T는 타기팅(Targeting)을 뜻한다. 치즈 라면을 만들어서 50대 남성 시장에 들어가면 판매는 쉽지 않다. 치즈 라면을 선호하는 타깃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에 맞게 팔 곳을 정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제품을 팔 곳을 정했다면 다음은 소비자가 내 제품을 어떻게 기억하고 평가해주기를 바라는가를 결정해야 한다. 이를 포지셔닝(Positioning)이라고 하며, 이것이 S.T.P 중 P에 해당한다. 소비자 마음속에 어느 특정한 이미지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뜻한다. 같은 핸드폰이라도 아이폰은 혁신/스티브 잡스/최초, 갤럭시는 가격 대비 품질 우수/국산/AS/아저씨 등으로 포지셔닝이 되어 있는데, 그래서 10~20대는 AS가 좀 불편하더라도 아이폰을 구매하는 경향이 있다.
경험이 많은 마케터라도 가끔은 시장을 헷갈리고 한꺼번에 여러 타깃을 잡으려다가 낭패를 당한다. 시장 세분화와 타기팅에 고객 데이터가 중요한 이유이다.
중국의 알리바바 마윈 회장이 이제는 오직 데이터만이 중요한 시대라고 선언한 적이 있다. 오늘날 우리는 많은 데이터를 OTT나 SNS, 구매 여정에 남긴다. 교보문고에서 내가 어떤 책을 고르고 나면 다른 책을 추천하는데 이는 고객의 평소 구매 데이터에 기반한 추천이다. 유튜브도 내가 어떤 콘텐츠를 몇 번 보면 그런 콘텐츠만 먼저 화면에 띄운다. 이것이 다 데이터에 기반한 타깃 또는 데이터베이스 마케팅이다. 이런 데이터가 쌓이면 그 고객이 신규 고객인지, 재구매 고객인지, 충성 고객인지, 싸구려만 사는 고객인지 프리미엄 고객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고객 리스트가 확보되면 보통은 감사 편지, 뉴스레터 등을 보내고 신상품 안내나 초대 등의 타깃 마케팅을 전개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고객 분류다. 뜨내기 고객(한두 번 사고 마는)인지, 체리피커 고객(무료 이벤트만 따 먹는 얌체)인지, 충성 고객인지를 알아야 한다. 마케팅에서는 20:80:30 법칙이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통용된다. 20%의 충성 고객이 80%의 이익을 창출하고 뒤에 30%의 악성 고객이 80%의 불만을 드러낸다는 법칙이다. 이런 분류가 잘 되어 있으면 담당자가 교체되어도 마케팅 연속성이 타격을 받지 않으며 신규 고객을 찾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충성 고객이 좋은 것은 이들이 주변에 자발적인 추천을 해주기 때문이다. 이를 고객 ‘순 추천지수(NPI)’라고 한다.
과거 그 추천지수가 가장 높았던 기업은 애플 등이 아니라 뜻밖에도 미국의 온라인 신발 판매회사인 자포스였다. 아마존이 이 회사를 인수할 때 겨우 신발 회사임에도 아주 비싼 비용을 지불했는데 이는 자포스의 고객 순 추천지수가 압도적으로 높았기 때문이다.
왜 추천지수가 높았을까? 그 기업은 영업을 진정으로 했기 때문이다. 상품은 온라인에 진열하더라도 주문은 전화로만 받는다. 전화로 회사 직원은 구매자와 교감을 한다. 어느 직원이 8시간을 통화하고도 한 켤레도 팔지 못했는데도, 회사는 그 직원에게 포상했다. 짓궂은 고객이 자정에 회사에 전화해서 피자 가게를 알려달라고 황당한 요구를 했는데, 그 직원이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근처에 영업하는 피자 가게 네 군데를 알려준 일화가 있다. 또 신발을 주문한 어떤 여성이 반품해 달라고 요청한 적도 있었다. 알고 보니 고객이 어머니 것으로 주문한 신발이었으나 어머니가 신어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신 것이다. 그러자 자포스는 반품은 물론이고 조화와 따뜻한 위로 편지를 보내줬다. 이에 감동한 여성 고객이 그 사연을 SNS에 올렸고 그 피드는 삽시간에 미국 전역에 퍼졌다. 이런 것이 말하자면 진정성 데이터 마케팅이다.
최근에 게임 회사 등을 중심으로 퍼포먼스 마케팅이나 그로스 해킹(Growth Hacking) 마케팅 방법 등이 새로운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는데 이는 고객 데이터를 모아서 계속 다양한 설정의 정보(가격/할인/메시지 등)를 단계적으로 보내 고객의 구매를 조작 유도하는 방식이다.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겠지만 이것이 지속되면 고객은 피곤해진다. 오로지 조회와 매출뿐이며, 영혼도 없다. 그러면 고객 순 추천지수는 점점 낮아진다. 예술은 진정성을 기반으로 해야 지속성이 오래가는 산업이므로, 나는 퍼포먼스 마케팅이나 그로스 해킹 빅데이터 마케팅은 추천하고 싶지 않다.
오늘날 예술경영은 쉽지 않다. 볼 것이 너무 많아졌으며 젊은 소비자들이 해외로만 가고 게임, 넷플릭스, 쇼핑몰, 메타버스 같은 현란한 기술에 쏠리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날치 밴드, K-컬쳐, 빛의 벙커 같은 곳은 성공한다. 여러분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하나는 “요즘 소비자는 예술에 관심이 없어”라고 포기하거나 비난하지 말라는 것이다. 박물관을 운영하는 큐레이터가 “돈 들여서 이 멋진 걸 해 놨는데 이것밖에 안 오네. 야구장이나 게임, 맛집은 그렇게 많이 가면서.”라고 한숨 쉬는 것과 같다. 이것은 사실 요즘 대부분 기업도 마찬가지다. 출판사는 거의 1/10로 매출이 줄었다. 예술을 사랑한다면 소비자를 비난할 시간에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믹스&매치(예: 이날치 밴드와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 콜라보)’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차라리 더 낫다.
공연장 공간은 늘 그렇게 써야 하는 건가? 전통 음악에서 전통은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이에 관심이 있다면 츠타야 서점 성공으로 일본 유통의 신이 된 마스다 무네아키의 <라이프스타일을 팔다>를 읽어 보길 바란다. 지방 소도시 사람도 별로 없던 곳에 커피숍이 있는 다이칸야마 도서관을 리모델링해 도서관 신 라이프스타일을 창출했고 100만 명 이상이 찾도록 만들었다.
둘은 데이터베이스의 소중함을 알고 ‘고객 분류 데이터’를 활용(이것은 반드시 만들어 두어야 한다)하더라도 그 본류는 앞서 언급한 자포스 같은 진정성임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내가 마케팅 자문을 하던 스카이72 골프장은 고객 데이터가 정말 잘 되어 있는데, 골프장 사장은 “물론 데이터베이스가 훌륭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주말에 골프 치러 오는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하는 동심의 철학을 잊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셋은 고정관념을 깨는 과감한(Salient) 마케팅을 시도하라는 것이다. 나는 2004년에 혁신 아이콘 서태지와 함께 국제 유람선 배 두 대에 800명을 태워 동해를 건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공연하는 깜짝 기획을 했었다. 다 미쳤다고 했지만, 그 결과 지금 그 회사는 상상 컴퍼니로 기억된다. 남들 다 하는 교과서 같은 마케팅으로 주목을 얻기는 어렵다.
위에 말한 스카이72 골프장은 나름 비싼 골프장인데 남들 다 운영하는 비싼 그늘집 대신에 포장마차에서 붕어빵을 구워 무료로 제공하는 파격을 선보이며 ‘붕어빵 골프장’으로 먼저 유명해졌다. 그것은 사장이 스코틀랜드 등 골프 원조 나라를 탐방하면서 배운 동심 철학이라는 진정성에서 나온 것이다. 붕어빵은 골프와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골프를 치러 오는 사람들의 기억에는 과거 못살던 시절의 회한과 따뜻한 추억이 있었던 것이다. 젠틀 몬스터의 첫 프로모션 프로젝트는 선글라스가 아니라 홍대 앞 1호 매장의 벽을 깨고 1층에 노란 잠수함을 설치한 퀀텀 프로젝트였다. 그래야 소비자 마음에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멋진 포지셔닝이 생긴다. 그럼 그들은 주변에 예술을 추천할 것이다.
현재 ㈜구루미 화상사회연구소장, 경동나비엔 마케팅 수석 고문, 말글 컴퍼니 고문. 제일기획, KT&G를 거치며 광고와 문화 마케팅, 상상마당 등 상상 콘텐츠를 만들어 문화 마케팅 1세대로 불린다. 춘천마임 축제 총감독, 서울혁신센터 센터장, 경희사이버대학원 겸임 교수도 역임했다. 저서로는 <컬처 파워>, <꿈꾸는 독종>, <동심 경영>, <빅샷 황인선의 마케팅 ALL>, <레디 네 개의 세상>, <변시지- 바람이 전하는 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