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르소나에서 제작한 〈비밥〉 투어 모습(순서대로 서울, 인천, 대구, 베이징, 나고야) |
대학로 연극의 지방투어 공연, 지역 축제의 현장 진행 등에서 자그마한 경험들을 쌓고 있던 나는 2002년 피엠씨프러덕션에 입사하게 되었다. 대학 시절 배우, 스태프, 연출, 기획 등 제작 전반에 대한 경험을 토대로 난타의 제작 PD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이 시기에 오픈런 공연의 시스템에 대한 노하우를 많이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항상 같은 공간에서 같은 사람들과 작업을 하면서 점점 매너리즘에 빠져가고 있을 때, 내 인생에 절대 잊을 수 없는 작업을 만나게 되었다. 극작 단계부터 수많은 회의와 고민들을 같이 했던 뮤지컬 ‘호두까기인형’이다. 당시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숨은 내공이 엄청나던 스태프들과 다듬어지지 않은 보석 같은 배우들을 만나서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작품을 만들어가면서 배우들과 스태프들과 부대끼고 고민했던 기억들은 영원히 잊을 수가 없는 소중한 기억들이다. 이때 만났던 분들로 인해 공연에 있어 중심은 바로 사람이라는 중요한 가치에 눈을 뜨게 되었다.
진실된 공연의 가치
사람에 대한 가치에 눈을 뜨면서 뮤지컬 ‘달고나’에 이어, 피엠씨프러덕션에서 진행하던 대형뮤지컬을 모두 맡게 되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성급했던 것일까? 진실한 가치보다는 그 외적인 부분들로 포장된 모습들에 현혹되어 동 시기에 진행되었던 ‘젋음의 행진’과 ‘대장금’을 하면서 작품과 사람 모두를 잃는 크나큰 실수를 하게 되었다. 그동안 큰 경험들을 얻으며 성장은 했지만 내 것으로 소화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2007년 7월 31일 회사를 관두고, 바로 다음 날 자전거 전국 일주를 떠났다. 잠은 텐트에서, 식사는 점심을 제외하곤 직접 취사를 하면서 다녔던 여행은 작게 보였던 사람의 가치를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볼 수 있는 크나큰 선물을 주었다. 대도시에서, 공연장과 그 주변에서 비슷한 사람들만을 바라보며 나만의 착각에 빠졌던 나는 중소 도시와 시골에서, 다양한 일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연극이라는 건 아니 공연 예술이라는 건 내가 보고 싶고 얘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전체의 모습을 보여주고 얘기해야 그 본연의 가치를 갖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폭넓은 경험이 최고의 자산
2007년 말부터 2011년까지 4년간 다양한 기획사, 제작사에 다니면서 연극, 뮤지컬, 국악, 오페라, 가족극, 축제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공연 예술이라는 형태로 표현되는 다양한 장르에서 경험을 쌓으면서, 내가 중요시하게 된 가치를 어떻게 무대에서 표현하고 관객들에게 전달해야 할지 현장에서 실험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들을 얻었다. 이런 경험을 쌓다보니 그동안에는 공연계에서 다양한 장르와 사람을 만났다면, 이젠 세상의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보다 큰 실험과 도전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다양한 모임에 가입을 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공연계의 많은 선배님들이 세상과 훨씬 큰 교류들을 하고 있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폭넓은 경험이야말로 최고의 자산이 아닐까?
2012년 초 지금 다니는 페르소나에 입사하게 되었다. 10년 만에 다시 돌아온 넌버벌퍼포먼스, 그리고 오픈런 공연. 10년간의 경험과 내가 중요시하는 가치들을 바로 녹여내기에는 현실이 녹록지 않다는 걸 느끼면서도, 조금씩 그 가치들을 내가 작업하는 공간과 작품에 녹여내려고 애쓰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다양한 모임 활동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 속에서 공연 예술이 세상에 보여줘야 할 가치와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 〈비밥〉 공연을 본 관객들이 후기를 남기는 ‘낙서장 비밥’ 모습
공연 기획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하자면 공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사실과 세상을 보는 눈을 넓히는 노력을 아끼지 말라는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시야를 넓히되 사람이 많다고 가벼이 여기지 말고 하나하나 소중한 마음으로 대하면 진실된 공연이 만들어지고, 당신이 하고자 하는 공연에 사람들이 열광할 것이다.
사진제공_필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