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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옥인콜렉티브(김화용, 이정민, 진시우의 협업으로 운영되는 작가 그룹)에 있어서 오피스 또는 창작 스튜디오는 각 멤버들의 일상적 이동 경로에 따라 그때그때 정해지는 도시 안의 어느 카페일 경우가 많다. 옥인콜렉티브는 현재 공동의 작업실이 없고 창작 활동에서 대부분의 시간은 다양한 주제를 둘러싼 토론과 회의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카페 안의 임시 공간도 적절한 형태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지원했던 이유들은 단지 물리적인 공간 이외에도 창작 활동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글에서는 참여했던 몇 개의 레지던시 프로그램과 그곳에서 진행했던 작업들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단 이 경험의 기록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므로 어떤 기준이 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작전명–까맣고 뜨거운 것을 위하여(2012, 금천예술공장)
옥인콜렉티브의 영상 작업 ‘작전명-까맣고 뜨거운 것을 위하여’는 작전명 시리즈 중 두 번째 작업이다. 2011년 11월 갤러리 루프에서 진행된 ‘퍼포먼스 릴레이 19금(홍성민 기획)’에서 실행했던 퍼포먼스 ‘작전명-까맣고 뜨거운 것을 위하여’와 동명인 이 영상 작업은 19분 동안 현장에서 이루어진 퍼포먼스를 단순히 기록한 영상이 아닌, 이를테면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다시 플레이되거나 배포되는 효율적인 방식과 매체를 고민하다가 만들어진 일종의 ‘영상 메뉴얼’ 작업이다.
▲ ‘작전명-까맣고 뜨거운 것을 위하여’ (싱글 채널 비디오, 왼쪽)와 2011년 11월 갤러리 루프에서 진행된 퍼포먼스 시연 모습(오른쪽)
‘작전명-까맣고 뜨거운 것을 위하여’ 영상 작업을 제작하기로 결정하면서 시작된 고민들은 제작에 발생되는 모든 경비와 퍼포머가 연습할 공간 그리고 촬영 및 편집 장비 거기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최종적으로 완성된 작업을 프레젠테이션하고 그것에 대한 피드백을 접하면서 작업의 여러 가지 가능성들을 타진하는 일 등이었는데 서울시가 운영 중인 레지던시 중 하나인 금천예술공장에 입주하면서 그 문제의 대부분을 해소할 수 있었다. 금천예술공장은 개별 스튜디오와 공동 창작공간 및 다양한 미디어 장비들을 갖추고 있었고 내부 심사를 거쳐야 하지만 제작비를 지원하며 오픈 스튜디오 및 다양한 기관들의 큐레이터 및 독립 큐레이터들과의 미팅을 진행할 수 있다. 옥인콜렉티브는 이러한 조건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기관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영상 작업 ‘작전명-까맣고 뜨거운 것을 위하여’ 제작을 마쳤다. 그리고 이 작업은 가장 최근인 제10회 광주비엔날레 ‘터전을 불태우라’를 포함해서 여러 전시에서 소개되었다.
▲ 옥인콜렉티브는 자신들의 홈페이지를 통해 그룹 동정을 수용자들과 공유하고 있다. 사진은 금천예술공장에 입주한 사실을 알리는 옥인콜렉티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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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천예술공장 3기 입주작가 오픈스튜디오 포스터 |
금천예술공장의 창작 환경은 국내외 타 레지던시 기관들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레지던시 기관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잘 갖춰진 여러 요소들이 운영되는 방식에 있어서 원활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일례로 미디어 장비 및 미디어실을 사용하고자 했을 때 담당 테크니션이 기술 자문은 차치하고 장비의 수량 확인은커녕 어디에 보관하고 있는지조차 알고 있지 못해 역으로 자문을 해주었던 기억도 있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예술기관에 상주해야 할 직원을 계약직으로 뽑아야 함과 장기 계약이 어려운 현재의 시스템에서 비롯된 근본적 문제이긴 하지만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지속되는 것은 장기적인 계획을 통해서라도 개선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예술가들에게는 제공된 환경을 잘 이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관의 미비한 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책임일 것이다.
거리의 돈키호테(2013, 바르셀로나 앙가)
현재 국내의 많은 레지던시 기관들이 해외교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금천예술공장 역시 미국, 일본, 스페인 등 해외 레지던시와 교환작가 프로그램을 통해 서로의 작가들을 소개 하고 활동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 교환작가 프로그램은 소수 인원으로 제한적이기 때문에 공모에 의해 선정된다.
옥인콜렉티브는 금천예술공장 입주 당시 이 공모에 지원하여 바로셀로나에 위치한 앙가(Hangar)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3개월간 머물수 있는 기회를 가졌었다. 앙가(Hangar)는 예술가들이 주체가 되어 시작된 아티스트 런 스페이스의 성격이었으나 지역에서의 그 기능과 역할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바르셀로나 시와 예술재단의 지원과 관리하에 안정적으로 운영 중인 국제 레지던시 기관이다. 운영 주체가 바뀌긴 했지만 앙가(Hangar)를 거쳐간 수많은 작가들과의 지속적인 교류하에 든든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이곳은 바르셀로나 중심에서 대중교통으로 30분 거리 밖에 위치한 곳으로 과거 크고 작은 공장들이 밀집해 있던 곳이다. 2012년 스페인 경제가 최악에 이르면서 바르셀로나 공장지대 및 재개발 지역은 완전한 중단 상태였다. 앙가(Hangar)가 위치한 지역은 여전히 기계음을 내뿜는 금천예술공장의 주변의 상황과 비교하면 경제 위기의 심각성이 고스란히 드러날 정도로 멈춰진 도시 같은 한적한 느낌이다. 그러나 우리가 머물렀던 2012년 여름 7, 8, 9월의 바르셀로나는 바캉스 기간으로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관광객들로 여전히 축제의 분위기였다. 자국인들과 여행객들이 뒤섞인 두 달간의 바캉스 기간이 주는 극심한 대비와 간극은 우리에게 ‘도시의 중심과 외곽’, 그리고 ‘극심한 경제난을 경험한 한국과 스페인’이라는 몇 가지 키워드에 집중하게 했다.
▲ 앙가 미디어랩 전경(왼쪽)과 미디어랩 내부(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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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가 레지던시 기간 수행했던 ‘거리의 돈키호테’ 퍼포먼스 모습 |
옥인콜렉티브의 ‘거리의 돈키호테’는 앙가(Hangar) 레지던시에 머무는 동안 수행했던 길거리 퍼포먼스의 다큐멘터리 영상 작업이다.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의 일부분을 발췌하고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발언/연기 혹은 읽기/인터뷰를 요청하는 과정을 기록한 이 작업은 스페인이 겪고 있는 극심한 경제난과 스페인 시민들이 겪고 있는 미래에 대한 불안 그리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용기 혹은 자발성과 의지는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포함한다.
시민 참여가 주를 이루는 이 퍼포먼스는 옥인콜렉티브가 선정한 바르셀로나의 특정 지역들에서 이루어졌고 실행 과정에서 스페인의 정치 경제적 난관, 지역주의 등 여러 문제들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이 모든 과정은 스페인의 상황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짐짓 길거리 캐스팅의 형식과 유사한 듯 보이는 퍼포먼스의 과정에서 시민들은 돈키호테의 소설을 통한 만남의 의도를 다양하게 이해하며 유쾌하고 때로는 매우 진지한 태도로 자신의 ‘행위’를 보여주었다.
앙가(Hangar) 레지던시는 공장 건물을 리모델링을 해서 큰 규모의 스튜디오 공간과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블랙 시어터 공간 그리고 영화, 미술, 음악, 공학을 아우르는 미디어렙과 전문 테크니션이 지원된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국가 그리고 시의 재정에 따라 그 규모 및 지원의 질이 좌우될 어려운 상황에 놓였지만 분명 내실 있는 기관임에 틀림없다. 금천예술공장의 교환 프로그램을 거치지 않고서도 직접 지원할 수 있는 곳이기에 시도해볼만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단, 바캉스 기간이 좋을지 나쁠지는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일정을 잘 고려해서 지원해보기 바란다.
▲ 앙가에 입주한 아티스트들의 워크샵 진행 모습
서울 데카당스(2013, 인천 아트플랫폼)
인천아트플랫폼은 인천광역시가 구 도심 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중구 해안동의 개항기 근대 건축물 및 인근 건물을 매입하여 조성한 복합문화예술 공간이다. 매년 12월 공모를 통해 장기(1년), 중기(6개월), 단기(3개월) 기간으로 구분하여 시각예술, 공연예술, 문학, 문화일반 분야로 선정한다. 신청 당시 희망 입주 기간을 기재하지만 프로그램 종료 시기에 다다르면 입주 작가들에게 기간 연장을 위한 신청을 받기도 한다. 어떻게 가능한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재 3년까지 연장되어 입주하고 있는 몇몇 작가들도 보인다.
옥인콜렉티브는 2013년도 3기 작가로 1년간 입주했었다. 우리는 지원 당시 인천 구 도심과 송도 같은 신도시 사이에 존재하는 복잡한 이해관계에서부터 시(市) 단위의 개발 논리가 드러내는 모순들을 걸으며 이야기하는 방식의 리서치를 진행하겠다고 지원 서류에 언급했었다. 그러나 추위와 습기를 견뎌야 하는 스튜디오에서 지내기란 쉽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왕복 3시간이라는 출, 퇴근의 방식을 취해야 했던 우리는 애초에 설정했던 작업 계획을 수정하여 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장소 특정적 작업이 아닌 다른 이야기를 하기로 방향을 수정했다. 이는 인천아트플랫폼이 자랑하는 건축물과 창작공간을 위한 건물 구성의 장점들과는 다르게 스튜디오로는 적절하지 않은 상태임을 말하고 있기도 하다. 인천아트플랫폼 개관 이전 건물 리모델링을 담당했던 건축가에게 방한 방습에 취약한 스튜디오는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말할 기회가 있었는데 내게 돌아온 대답은 "예술가는 좀 부족한 환경에서 지낼 필요가 있다."라는 궤변을 듣게 된 일화도 있었다.
2013년도의 인천아트플랫폼은 "백령도 평화 프로젝트"라는 거한 기획에서부터 특정 지역에서 특정 형태의 작업에 대한 강한 기대를 가지고 행사를 많이 만들려 했는데 옥인콜렉티브는 그보다는 내부의 관심사와 일정에 따라 작업에 집중하려 했다. 인천아트플랫폼 홈페이지에 레지던시를 소개하는 글에서 명시된 ‘창작지원과 역량강화 프로그램, 이론가 매칭 프로그램, 국제교류’는 맥락 없이 불투명한 진행 방식을 취하고 있어서 옥인콜렉티브는 전시와 행사에서 스스로를 배제했다는 편이 맞겠다. 하지만 인천아트플랫폼의 장점 중 하나인 공연장이 있어서 ‘서울 데카당스’를 촬영하는 데는 큰 보탬이 되었다.
인천아트플랫폼의 공연장에서 촬영된 옥인콜렉티브의 ‘서울데카당스’는 법정에 전달된 한 최후진술에서 출발하였다. 사건의 당사자인 P는 북한의 트위터 계정인 우리민족끼리(@uriminzok)를 리트윗하고 ‘멘션’을 보내는 등 이적표현물을 취득, 반포했다는 이유로 2년간에 걸친 구속-수사-재판의 과정을 거쳐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법원의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그간 P와 P의 트위터를 지켜본 주변인들의 진술은 전혀 없었다. 당시 25세였던 P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사진관을 운영하면서 하루에도 수십 개의 트위터 멘션을 ‘반포’하며 또래 친구들과 농담하는 것이 일과였고, 북한 트위터의 계정 역시 ‘농담’의 소재로 삼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옥인콜렉티브는 극단적으로 상반된 주장의 자료를 살펴보면서 아마도 법원의 판결은 P의 진술이 문자 그대로 전달되지 못했거나 P의 태도나 몸짓 혹은 심지어 외모의 무언가가 대한민국 법정에 적합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서울 데카당스’는 P가 작성한 진술서를 어떻게 하면 원래의 뜻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하여 전문적인 연기 지도자의 도움을 요청하고 그 과정을 기록한 영상이고, ‘서울 데카당스’는 실제 P의 트위터 계정이기도 하다.
▲ 서울데카당스(2013) 퍼포먼스(싱글 채널 비디오)
옥인콜렉티브는 그해에 완성된 ‘서울 데카당스(2013)’ 작업과 더불어 ‘작전명-까맣고 뜨거운 것을 위하여(2012)’, ‘거리의 돈키호테(2012)’ 총 3편의 영상 작업을 소개하는 스크리닝 작업과 관련하여 비평가 토크의 자리를 기획하였다. 이 기획은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오픈 스튜디오 기간 동안 독립적인 스크리닝으로 진행되었는데 레지던시 기관의 연례 행사들의 포맷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그 기간을 활용한 독립적인 전시나 프로젝트를 꾸리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전 세계에는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봤을 잘 알려진 레지던시부터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레지던스들까지 셀 수 없이 많다. 창작공간 제공이라는 기본적인 조건에서부터 지역 예술 커뮤니티와의 네트워크, 작가 프로모션을 위한 전략적 레지던스 등등 각각의 레지던스들은 고유한 특색을 가지고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그 특색 그리고 장점들이 잘 들어맞는지에 대한 객관적 데이터는 찾기 힘들다. 지원자 스스로가 원하는 레지던스를 조사하고 그에 맞는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하나의 레지던스 참여 전과 이후의 활동 경로를 예측 혹은 마련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
▲ 인천아트플랫폼 입주 작가 프리뷰 전시 <2013 플랫폼 엑세스>에서 3월부터 5월까지 운영된 옥인 콜렉티브 ‘프리-오피스’ 모습
현재 국내의 레지던시 프로그램들은 작가들에게 창작공간 이상의 것들을 지원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그러나 가끔은 그러한 노력들이 ‘어떤 성과를 누구로부터 기대하는가?’란 의문을 들게 할 정도로 초점이 어긋날 때도 있다. 창작자가 고려되지 않은 건물이 지어지고 여러 단계의 절차를 통해 허락을 받아야 사용 가능하거나 일관된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 일들도 종종 발생한다. 경제적인 이유로 개인 창작 스튜디오를 운영하기 힘든 작가들에겐 임시로 제공되는 스튜디오는 그 자체가 큰 의미인 동시에 어떤 방법이 될 수 있기에 어쩌면 레지던시의 특색을 찾는 것이 무의미할지도 모르겠다. 그저 많은 경험과 그것이 가능한 조건들을 만들 수 있다면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것 또한 매력적인 일이다.
사진 제공_옥인콜렉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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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진시우는 국내외의 다양한 전시 기회에 참여하였으며 동시에 설치미술 작가로서 다양한 예술언어와 전시 방법론을 실험하고 있다. 2009년부터는 예술가 그룹인 옥인콜렉티브의 참여 작가이자 공동 기획자로 학제 간 장르 간 경계들 사이의 이질적인 것들의 만남에 대한 상호텍스트성을 참조하면서 여러 분야와의 협업 및 창작을 시도하고 있다. <스타카토 블랙>(개인전, 일민미술관, 2014), <터전을 불태우라: Okin Collective>(광주비엔날레, 2014), (백남준 아트센터, 2014), <토탈리콜: Okin Collective>(일민민술관, 2014), <서울 데카당스: Okin Collective>(페스티발 봄, 2014) 등의 단체전과 <임의적 착륙>(RM Gallery, 2009), <암호해독학-심화과정1: 기괴한 탄생>(브레인팩토리, 2008), <미확인 순수예술>가 갤러리, 2007) 등의 개인전 및 다수의 기획전에 참여했다. 이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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