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가로서 따로 거주하는 집 없이 레지던시 생활을 한 지 3년이 지났다. 2012년 3월부터 인천아트플랫폼(제물량로218번길 3)에서 2년, 2014년 3월부터 현재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고골길 59-35)에서 살았다. 30년을 서울 생활만 하다가 처음으로 벗어나 살 수 있었다.
인천아트플랫폼
처음으로 머물렀던 레지던시인 인천아트플랫폼은 인천의 서쪽 끝, 구 도심에 속하는 지역이었다. 묘한 향취가 느껴지는 월미도와 공항이 있는 영종도와 가까운 위치였으며 인천 특유의 복잡한 이류 도시라는 열등감과 과열된 욕망이 기대감에 못 미쳐 식어가고 있었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속도감에 익숙해지면 커다란 착각을 하게 되는데 ‘내가 하루라도 일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감정이 그러하다. 내가 그랬다. 서울에서 벗어나 여러 생활을 정리하고 온 탓에 패턴이 완전히 바뀔 수 있었다. 한적한 동네에서 천천히, 그러면서 적잖이 끓어오르는 열망이 이 도시의 성향에 그대로 영향을 받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도시계획이나 주거 문화에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었던 세대,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하는 세대인 나는 늘 공간에 대한 열패감에 시달렸다. 서울에서 지낼 때부터 나는 나의 삶과 무관한, 경제 논리로 증축 및 신축되는 집들의 공사현장을 관찰하고 그 집이 완성을 앞두고 있을 때 공간이 필요한 사람들과 일시적 주거를 해오는 프로젝트를 이어나갔다. 실제 가혹한 경험을 통해 개인의 삶에서 주거 공간을 상실하고 나니 더욱 흥미로운 상상과 제안을 새로운 집들에 투영할 수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극단적으로 서울이라는 과밀화된 도시에서 모두가 벗어날 수 있는 구조를 상상하는 것,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하는 ‘렌트세대’가 비어 있는 지역으로 이동해서 공동체를 이뤄 살아가는 것과 같은 상상들이었다. 이러한 상상은 실제로 더 멀리까지 벗어나는 실험을 해볼 수 있는 단초가 되었는데. 백령도와 연평도, 멀리는 국내에서 사라지는 상황이 이어지기도 하였다.
▲ 필자가 인천아트플랫폼에 입주하면서 작업한 <new home_참여형 주거프로젝트_2014>
예술이 쌓아온 역사는 특정 현장에서 일시적 점유가 이뤄지는 현상의 목격담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품으로, 극장이건 화이트큐브건, 해프닝이 되건, 관객의 감상과 비평이 존재하는 현장, 그 현장을 책임지는 것이 작가만은 아닐 것이다. 현장 관련 내부자를 포함한 관객이 일시적으로 자리한 현장.
만일, 작가만이 자리한 (고립된) 현장에서는 어떤 상황이 발생할까?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경기도 고양시 일산과 고양시내 파주 사이의 한적한 동네에 자리한 레지던시이다.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지는 이곳에서 지낸지 벌써 1년이 되어간다. 고양레지던시는 대중교통이 불편하고 편의 시설 등이 동떨어져 있는 환경이라서 차량을 갖추지 못한 작가에겐 특별히 더 고립감을 불러일으킨다. 국내 레지던시의 내부 시설은 대부분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지만 그것이 꼭 집과 같은 안정감을 주는 것은 아닌데, 그것은 레지던시의 목적이 집이 아니기에 당연하다. 나는 어떤 반복적인 프로그램을 유지하고 있는 레지던시들의 현상을 가까이 목격하며 그렇다면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관들의 목적은 무엇이고 그곳에 지원하는 작가들의 목적은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기관들의 목적은 활성화, 지원, 네트워크 정도로 생각할 수 있고, 작가의 목적은 참여 경험과 이력, 예산 획득, 공간의 필요성 등으로 보인다. 1년 단위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꽤나 강박적인데 이것은 기관과 작가 모두에게 해당된다. 느슨하지도 팽팽하지도 않은 예민한 적정 거리와 균형이 필요한데 그러한 거리와 균형감이 한 해의 입주작가 프로그램, 한 기수의 입주작가들의 분위기에 영향을 미친다.
고양레지던시에서 지내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기관이 마련한 작가들의 발표 자리에서 어느 평론가가 고양레지던시 입주작가들에게 “작가들이 안전하게 작업하려 한다”라는 평을 했을 때였다. 작가들은 작가로서 감정에 손실을 입는 눈치였고 평론가는 작가들에게 어떤 행동을 바라는 눈치였다. 나는 그 현장이 흥미로웠다. 어쩌면 작가 스스로가 자문자답할 수 있는 문장이었고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익숙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나타내는, 그리고 당시 세월호 참사 직후의 시대적 무력감을 연상하게 하는 문장이었다. 나는 그 현장의 경험 이후에 어떤 질문이 들었다.
국공립기관(프로그램들을 포함)은 안전한가? 작가가 작업을 몰입하는 행위는 안전함을 위한 행동인가? 이것이 안전하다면 왜 안전함을 추구하는 것이고 그 안전함의 방향은 무엇일까?’
▲ 필자가 고양레지던시에 입주하면서 작업한 <창밖을 보지 않기 위해 커튼을 치세요>(왼쪽)와 <작업실에 벌레를 키워요>(오른쪽)
그 이후 나는 <국립적이지 못한 작가>라는 작업을 통해 레지던시에서 목격했던 작가들의 어떤 현상을 소설과 영상 설치, 온라인 공지를 통해 작업했는데 비디오 채널 1번의 문장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 필자가 고양레지던시에 입주하면서 작업한 <국립적이지 못한 작가_다채널 영상설치>
나는 고립감을 느끼게 하는 국공립기관과 흔들리고 영향받고 생존의 강박을 받는 작가들을 떠올리며 양측의 주인 의식 및 대화의 부재를 느낄 수 있었다. 예술가는 레지던시에서 주인 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 얼마만큼을 입주작가 기간 동안 요청하고 해낼 수 있을까? 이것은 작업실을 제공하는 것일까? 아니면 작가를 임대하는 것인가? 일시적 소유의 균형은 어느 쪽에 기울어져 있는가?
국립연대미술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