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투] 예술 유통의 보이지 않는 손 – 고미술 스페셜리스트

스페셜리스트의 ‘스페셜’은 무엇으로 완성되나?

이보름_서울옥션 미술품경매팀 한국 고미술 스페셜리스트

스페셜리스트로 활동하게 된 계기 혹은 경로는 무엇이었나?

대학 시절 교환학생으로 1년 정도 파리에서 공부하며 현지 미술품 경매에 몇 번 참관했다. 그곳에서 목격한 스페셜리스트는 상당히 권위 있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전문직이었기에, 향후 유학을 결심할 만큼 인상 깊었다.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가 2007년이었는데 당시 한국 미술시장은 최고의 활황이었다. 때마침 서울옥션은 옥션쇼를 개최하고 있었고, 경매 현장에 도슨트로 참여하게 되었다. 매번 치열한 경합이 벌어지는 뜨거운 분위기와 좋은 작품을 구매하기 위해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한국 미술시장도 유럽만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를 계기로 유학 준비를 접고, 이듬해 서울옥션에 지원하여 현재까지 한국 고미술 전문 스페셜리스트로 근무하고 있다.

전체를 조망하며 동시에 디테일도 점검

경매 준비 단계에서부터 마무리까지, 스페셜리스트 업무의 범위와 진행 과정, 역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부탁한다.

스페셜리스트는 A부터 Z까지 경매의 모든 과정에 관여한다. 제일 먼저, 경매를 기획하는데 경매 성격에 따라 주제의 범위, 작품 수집의 방향, 경매를 보완할 수 있는 섹션 마련 여부 등을 결정한다. 기획 과정이 끝나면 그에 맞는 적절한 작품을 수급하는 일에 매진한다. 수급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면 여러 단계를 거쳐 작품의 진위 및 출처(Provenance)를 면밀히 파악하고, 현재의 시장 상황에 맞춰 가격 평가를 내린다. 진위 및 가격 평가의 근거를 회사 내부에서 공유하고 설득하는 것도 스페셜리스트의 몫이다. 내용이 공유되고 나면 위탁자와 가격을 최종적으로 협의하고, 시작가와 추정가를 결정한다.

이러한 과정과 거의 동시에 진행되는 중요한 작업이 있는데, 바로 경매 도록 제작이다. 도록에는 작품사진을 비롯해 작가와 작품정보, 가격, 작품의 이해를 돕는 원고가 들어간다. 이 내용들이 오류 없이 기재되도록 작품 앞·뒷면을 꼼꼼히 체크하며 실측하고 몇 번의 검토 과정을 거친다. 도록 제작이 끝나면 프리뷰를 준비한다. 어떤 작품을 어디에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고객의 편의를 고려하여 결정하고 벽 색깔과 조명 방향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점검한다.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고객의 응찰을 유도하기 위해 전 직원이 노력한다. 스페셜리스트들도 물론 영업을 하며 다른 영업진을 위해 좀 더 세부적인 작품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프리뷰가 끝나면 드디어 경매가 시작된다. 경매 중에는 스페셜리스트로서 특별히 주어지는 의무는 없지만 각자 맡은 포지션에서 고객의 응찰을 돕거나, 진행 과정에서 생기는 돌발 상황들에 적절히 대응하면서 성공적인 경매를 위해 노력한다.

 

▲ 서울옥션이 진행했던 ‘2013 혼례 & KIDS 경매’ 전시 전경

보는 눈은 경험과 훈련으로 완성된다

일을 하면서 생기는 애로 사항과 그에 대처하는 노하우에는 어떤 것이 있나?

주로 발생하는 애로 사항은 고객과의 문제다. 경매 회사는 2차 시장이므로 최대한 고객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면서 회사의 수익도 놓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워낙 문제의 성격이 제각각이라 만병통치약 같은 대처법은 없지만, 5~6년 근무하며 쌓인 노하우가 있다면 최대한 침착하고 상냥하게 대응하면 손익을 떠나서 아주 당황스러운 경우는 많이 정리가 된다는 것이다.

담당자가 갖추어야 할 전문성, 요구되는 자질과 능력은 무엇인가?

본인이 담당하는 분야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가 전문성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한국 고미술 분야를 맡게 되면 그림, 서예, 도자기, 고가구, 불교미술 등에 전반적인 이해가 꼭 필요하다. 더 욕심을 낸다면 작품을 보는 날카로운 관찰력과 작품을 비교 대조하며 진위를 가려낼 수 있는 판단력이 있다면 더욱 좋다. 관찰력은 어느 정도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부분이지만, 진품을 알아보는 능력은 작품을 많이 접할수록 자연히 늘게 된다. 따라서 전시와 도록을 통해 작품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한다면 미술품 보는 눈을 많이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국내 경매와 해외(홍콩) 경매에서의 차이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고,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따로 있는가?

아무래도 작품 구매층의 기호와 생활문화가 국내와는 다르기 때문에 해외 컬렉션에서 선호되는 작품의 종류가 달라진다. 국내 컬렉터들은 강렬한 색감이나 그로테스크한 이미지, 150호 이상의 크기 등에 대해 거부감이 있는 편이지만 해외에서는 오히려 그런 작품이 인기가 있을 때도 있다. 따라서 홍콩 현지 컬렉터들의 성향을 분석하여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국내 작가를 해외에 소개하는 경우에는 가격을 정하는 데 있어 매우 민감하다. 접근하기 쉬운 가격으로 정하되 지나치게 낮으면 앞으로의 가격 형성에 차질을 빚을 수 있으므로 적절한 가격을 설정하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작업이다. 한편, 고미술 분야는 진위 문제가 생기면 회사의 신뢰도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몇 번의 필터를 거치며 작품 감정에 신중을 기한다.

 

▲ 블랙라이트로 도자기 수리 및 복원여부를 점검하는 ‘작품 컨디션 체크’(왼쪽)와 경매전화응찰 모습(오른쪽) ⓒ노컷뉴스

 

이 일을 하고 싶어 하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무엇보다 그림을 열정적으로 좋아해야 한다.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도 직업이 되면 반복되는 업무에 지루함을 느껴 슬럼프를 겪기도 한다. 이를 이겨내게 하는 것은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을 보고 싶어 하는 흥미와 열정이라 생각한다. 두 번째로는 거시적인 관점으로 미술사를 공부했으면 한다. 아무리 본인이 담당하고 싶은 분야가 정해져 있더라도 미술시장 전반에서 다방면으로 활동하려면 고미술, 해외 및 현대미술 등 모든 분야를 가리지 않는 관심과 지식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진제공_서울옥션

 
 
필자사진 필자소개
이보름은 중앙대학교에서 역사학과 불어불문학을 전공하고 2008년부터 서울옥션에서 근무하고 있다. 2010년부터 현재까지 <혼례·선비경매>, <조선 고가구 경매>, <혼례 & KIDS 경매> 등 다양한 기획경매를 진행했으며 이 외에도 <비움과 채움> 등 고미술과 근현대, 해외미술을 아우르는 다양한 전시를 기획했다. 이메일
 
weekly 예술경영 NO.303_2015.04.30 정보라이선스 정보공유라이선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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