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투] 국제교류 무대의 열혈 기획자들 Ⅱ
김지명_안은미컴퍼니 제작감독
출발점출발은 무대감독이었다. 여전히 그렇지만 그땐 무대감독이라는 직업에 대한 이해가 훨씬 낮았다. 그나마 학교에서 연극을 전공했다면 프로덕션 핸드북에서 보았을 직명이었고, 감독이라는 표현 때문에[실은 director가 아니라 manager인데, stage manager를 일본에서 먼저 무대감독(舞臺監督)으로 번역했고 이를 우리가 받아들이면서 오해가 시작되었다] 연출과 혼동되고, 무대(stage)라는 표현은 같은 무대로 대표되는 무대 디자인(set 혹은 scenery)과의 혼동을 야기했다. 이 모두 서양연극 시스템을 일본을 통해 받아들인 결과로서 무대감독이라는 직명은 그 피해를 가장 크게 입은 경우 중 하나였다. 전환점공연 분야에 몸담은 지 10년을 넘기고 무대감독, 제작감독, 기술감독 분야를 넘나들며 활동 하던 차, 장기 공연과 전문 제작 시스템 안에서 기계적으로 임하는 작업에 염증을 느끼게 되었고 공연 단체와의 친밀하고 치열한 작업을 다시 하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그래서 만나게 된 단체가 안은미컴퍼니와 국악 팀 비빙이었다. 모다페나 페스티벌 봄:의 기술감독으로 일하면서 안은미컴퍼니를 만나왔으나 그때만 해도 필자에게는 행사에 참가한 여러 공연 단체 가운데 하나였고 안은미컴퍼니에서도 필자는 페스티벌에서 만나는 기술감독일 뿐이었다. 그러다 2008년 안은미컴퍼니가 해외 진출의 문을 열었고 해외교류 전문 스태프를 찾던 차, 필자의 욕구에도 맞아서 함께 일하게 되었다. 그리고 안은미 선생님의 소개로 국악 팀 비빙과도 작업하게 되었다.
▲ 안은미컴퍼니 프린세스 바리 2013 파리 여름축제 공연
무대감독으로 단체와의 작업을 시작했지만 실제로 공연, 특히 해외 공연을 진행하다 보면 기술적인 협의 외에 공연 환경에 대한 논의가 필요했다. 그리고 현장에서 공연 진행과 더불어 초청자나 공연을 보고 접촉해오는 인사들을 만나 회의를 하는 일도 많아졌다. 공연의 기술적 부분과 계약 부분 역시 서로 밀접하게 관련이 있어서 소통 채널을 하나로 두는 게 옳지 않은가 하는 판단이 섰다. 이른바 무대감독(SM)과 제작감독(PD)을 겸하는 식이 된 것이다.(어쩌면 호칭에 상당히 집착한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겠다. 허나 업무에 있어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직함 혹은 호칭에 따라 업무 영역이 명확해진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고 그래서 늘 호칭부터 정리한다.)
▲ 비빙_폴란드 바르샤바 5 Flavors festival
공연의 교류라고는 해도 결국은 서로의 문화에 대한 이해로 귀결된다. 그래서 공연 활동뿐만 아니라 관객과의 대화라든가, 심포지엄 등 주변적인 기회를 통해 그들과 만나고 소통하는 일도 더불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스스로 여유가 없었기에 주어진 일만 잘 해결하는 것으로도 만족했지만, 지원을 받든 안 받든 해외 공연에는 큰 비용이 들고 공연 단체에게는 큰 도전이요, 투자다. 운 좋게 교류의 기회가 잦은 단체와 일하게 되어 세계 유수의 페스티벌이나 마켓에 참가할 수 있었다(얼마 전 그동안의 해외 공연 참가 이력을 정리하게 되었는데 아비뇽, 에든버러 등 한때 내 삶에서 로망으로만 있었던 곳을 경험했고 미국, 중남미, 유럽, 호주, 인도, 바레인까지 많이도 누비고 다녔더라. 이게 나 한 사람만의 ‘좋은’ 경험이나 자산에 머무는 건 낭비가 아닐지…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백스테이지》라는 무대기술 전문 계간지를 발행했다. 이때 만일 나 같은 사람을 알았더라면 잡지의 내용이 훨씬 풍부했을 거라고 가끔 생각한다. 책으로 펴내든가 어딘가에 연재를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제는 한번 갔을 때 가능한 많은 것을 수확하려는 욕심이 생긴다. 그래서 공연은 물론, 다양한 활동을 통해 우리나라를 알리고자 노력한다. 이것이 공연 단체 한두 팀으로 가능하지 않다. 해외 공연 기회를 많이 가진 단체들이 모여서 각자 경험한 허와 실을 털어놓고 공통의 목표를 세우는 일이 필요하다고 본다. 내부적인 교류의 장이 형성되어야 할 시기가 왔다. 종착점오래전 기술통역 일을 처음하게 되었을 때, 공연 팀(로버트 윌슨의 <바다의 여인>)에 대한 욕심 때문에 무작정 달려들긴 했지만, 막상 일하려 하니 우리나라 교육제도에서 배운 영어가 전부였기에 덜컥 겁이 났다. 그때 전문 통역 일을 하던 친구에게 비법을 알려달라고 청했더니, "말을 하거나 들을 때 ‘나는 정말 너를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라."라고 대답했다. 신기하게도 그 말은 필자에게 마법을 부린 듯 큰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이후 통역할 때뿐 아니라 공연 분야, 특히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요, 상대와의 이해 형성이 필수인 교류의 현장에서 필자에게 그 무엇보다 커다란 지침이 되어주고 있다.
| |||||||
|
NO.309_2015.06.11 |
덧글 4개
파주포장이사 -파주포장이사
사무실이사 -사무실이사
파주이사짐센터 -파주이사짐센터
고양시이삿짐센터 -고양시이삿짐센터
3.5톤이사 -3.5톤이사
운정이사 -운정이사
금촌이사 -금촌이사
온라인마케팅 - https://blog.naver.com/rlatjseh09온라인마케팅 -온라인마케팅
[D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