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투] 한국 현대미술의 세계 무대 진출 전략 Ⅲ

글로벌 아트 무대와 한국 동시대 미술의 해외 진출을 위한 과제

박만우_플랫폼엘 현대미술센터 관장

공연 및 시각예술 분야 기획자를 위한 국제문화교류 역량 강화 교육프로그램(문화체육관광부 후원,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운영)인 ‘넥스트 아카데미(NEXT ACADEMY)’의 <시각예술 해외 진출 역량 강화 과정-미술시장을 바라보는 여섯 가지 시선>이 지난 11월 9일부터 24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살림터 2층 북세미나실에서 개최되었다. 국내외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미술시장 전문가들을 강연자로 초청한 아카데미는 통계를 통해 한국 미술시장의 지난 10년을 살펴보고(박수강 에이엠콤파스 대표), 한국 작가의 시장 가치를 높이기 위한 기획자의 역할을 논하거나(심소미 독립큐레이터), 해외 메이저 아트페어에서의 비즈니스 네트워크 구축 및 소통 전략(전민경 국제갤러리 대외협력 디렉터) 또는 한국 작품을 소장하려는 해외 콜렉터들과의 네트워킹(최선희 Choi&Lager 갤러리 디렉터), 아트 옥션을 통한 한국 미술시장의 전망과 해외 진출 전략(이현희 서울옥션 미술품 경매팀 근현대 팀장), 글로벌 미술 생태계 속의 한국 동시대 미술 위치(박만우 플랫폼엘 현대미술센터 관장) 등 총 6회에 걸쳐 한국 현대미술의 해외 진출을 위한 유익한 노하우를 관중에게 전달했다. 이에 따라 《Weekly@예술경영》은 당시 강연에 참석하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6회의 강연 중 3개의 강연을 지면으로 옮겼다.한국 현대미술의 세계 무대 진출 전략 Ⅰ ― 아트페어를 활용한 아트비즈니스 네트워크 구축/한국 현대미술의 세계 무대 진출 전략 Ⅱ ― 미술시장과 네트워크: 해외 컬렉터, 갤러리, 미술관, 한국 작가 연결하기/한국 현대미술의 세계 무대 진출 전략 Ⅲ ― 글로벌 아트 무대와 한국 동시대 미술의 해외 진출을 위한 과제/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의 1974년 작품 <글로벌 그루브(Global Groove)>는 동시대 미술이 향후 도달할 지점을 놀랄 만한 통찰력으로 예언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비디오 작업에서는 일본 《후지TV》의 닛산 블루버드 자동차, 펩시콜라 광고와 한국의 장고춤, 미국의 탭댄스, 첼로 연주 그리고 아프리카 원주민의 군무를 담은 영상이 백남준 자신이 고안해 낸 비디오 합성기(video synthesizer)에 의해 변조된 이미지들과 더불어 전개된다. 이 작품은 당시 문화적 상대성이나 다문화주의 등에 대한 의식이 전무했던 미국의 관객들에게 언어, 종교, 인종, 문화의 차이가 춤, 음악 등의 흥과 신명(groove)을 통해서 그 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할 때 서로 공존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동시대미술은 어떻게 글로벌 비전을 획득하는가?

1989년 서유럽과 북미의 동시대 미술계는 그 내부와 외부에서 중요한 사건들을 경험한다. 무엇보다 내재적인 사건은 1989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장 위베르 마르탱(Jean-Hubert Martin) 기획의 <대지의 마법사(Magiciens de la Terre/ Magicians of the Earth)> 전시이다. 이 전시는 서구 미술(Western Art)로 하여금 유럽중심주의(Eurocentrism)를 벗어나 최초로 서양 시각예술의 전통에 타자(the Other)를 통합시키는 발상의 전환을 촉발하였다. 외재적인 사건들은 거의 연속적으로 발생한 중국의 천안문 사태와 베를린 장벽 붕괴로 촉발된 소비에트 블록의 해체이다. 냉전 시대의 체제 종식을 야기한 이 사건들은 이후 지정학적 차원을 넘어 문화적으로도 엄청난 파급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스스로 세계의 중심이자 시각문화의 패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믿어 온 동시대의 주류 미술은 그 시야를 넓혀 변방의 미술적 전통과 실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론적 차원에서 미국의 문화제국주의 혹은 서구 중심의 시각문화 전통에 비판적 문제의식을 제기한 문화연구(cultural studies)의 영향 아래 신미술사학(New Art History) 방법론이 등장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변방의 미술로 간주되었던 지역 출신의 미술 작가들에 주목하는 미술 기관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런던의 ‘Institute of International Visual Art(INIVA, 1994)’나 뉴욕의 ‘Studio Museum in Harlem(1968/1987)’ 또는 ‘El Museo del Barrio(1970)’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서구 중심의 주류 시각예술을 다극화, 탈중심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100년 전통의 베니스비엔날레나 서유럽 동시대미술의 메카와 같이 군림하던 카셀도큐멘타 외에 국제적 차원의 새로운 현대미술 비엔날레들이 창설되는 현상이었다. 여전히 서유럽 중심이긴 하지만 1991년 창설된 프랑스의 리용비엔날레가 1997년 전설적인 전시기획자 하랄드 제만(Harald Szeemann)을 초청해서 ‘타자(L'Autre)’라는 주제로 동시대 미술의 글로벌한 사유를 제안한 것도 이에 포함시켜 볼 수 있다. 과거 제3세계라 칭해졌던 지역에서도 연이어 국제적 대형 동시대미술 전시들이 비엔날레 형식을 답습하며 생겨나게 되었다. 1987년 창설된 이스탄불비엔날레도 3회째인 1992년 큐레이터 바시프 코르툰(Vasif Kortun)에 의해 ‘문화적 차이의 생산(Production of Cultural Difference)’이라는 주제로 다문화주의 담론을 제기했다. 이 무렵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비엔날레 생겨났지만 한국 동시대미술의 관점에서 보자면 1995년 광주비엔날레 창설만큼 비엔날레 역사상 중요한 사건은 찾아보기 힘들다.


리용 비엔날레(1991)

▲ 리용 비엔날레(1991)

이스탄불 비엔날레(1987)

▲ 이스탄불 비엔날레(1987)


그러나 이렇게 연이어 대형 비엔날레들이 북미나 서유럽을 벗어난 변방 지역에서 설립되는 문화 현상을 경제적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경제적 관점이란 동시대 미술 내부에선 미술 시장의 발전 논리라고 할 수 있다. 1991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발발한 걸프전쟁은 국제 경제계에 심각한 재정 위기를 초래했다. 그 결과 91년에서 93년까지 서유럽과 북미의 미술 시장은 상당한 위축 국면을 직면하게 된다. 예컨대 그 무렵 수백 개에 달하던 파리의 상업 화랑들이 하룻밤 자고 나면 그 가운데 두세 개의 화랑들이 문을 닫는 상황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이런 위기 상황의 타개책은 단지 동시대미술의 소비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서유럽이나 북미 지역이 아닌 제3의 장소를 확보하는 것이었고 동시에 새로운 미술 시장의 확보를 넘어선 새로운 미술 상품의 공급처인 창작 기지를 물색할 필요가 있었다. 베니스비엔날레와 아트페어 아트바젤이 한 쌍을 이루듯, 아시아 지역에서도 도시 브랜드 이미지 제고를 외치는 신흥 도시에서 비엔날레와 아트페어들이 속속들이 설립되었다.

한국의 동시대 미술의 글로벌 무대 진입

한국의 동시대 미술이 글로벌 미술계에 등장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글로벌화라는 것이 일방적 소통이 아니라 상호 이해를 기반으로 하는 쌍방 소통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점에서 1993년 휘트니비엔날레의 서울 순회전은 한국 동시대 미술의 글로벌 무대 진입을 위한 전대미문의 역할을 했다. 이 역사적 사건에 백남준이 기여한 바는 결정적이었다. 그는 당시 휘트니미술관 관장이었던 데이비드 로스(David Ross)를 직접 찾아가 백남준 자신의 개인 부담으로 1993년 휘트니비엔날레 전시를 통째로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옮겨다 줄 것을 제안했다. 엘리자베스 서스먼(Elisabeth Sussman)이 큐레이터로 참가했던 이 전시는 다문화주의 담론의 정점을 제시했던 비엔날레 쇼였다. 이를 통해 한국의 관객들은 비디오아트, 설치미술 등 그들에겐 이전까지 낯설었던 예술매체(artistic medium)를 통해 그들 주변 동시대 사회의 삶에 얽힌 문제들이 미술에 의해 다루어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전시 행사는 20만 명이 넘는 역대 최다 동시대미술 전시 관람객을 유치한 기록을 남기게 된다.


1993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

▲ 1993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

광주비엔날레(1995) ⓒ광주비엔날레

▲ 광주비엔날레(1995) ⓒ광주비엔날레


<휘트니비엔날레 1993 서울전>을 계기로 비엔날레 문화를 처음 접한 한국의 미술계 인사들과 정책 입안자들은 1995년 광주비엔날레, 2000년 부산비엔날레 그리고 같은 해 서울미디어시티 등과 같은 대형 국제 동시대 미술 전시회 등을 설립할 계획을 구상한다. 이 비엔날레 전시들을 통해 국제 미술계의 거물급 큐레이터들과 작가, 평론가, 아트저널리스트들이 한국의 지역 작가들을 발견하게 되고 그 작가들은 북미나 서유럽 지역의 작가들만이 아니라 남미나 동유럽 작가들에게서 자신들과 동일한 문제의식과 사유의 궤적을 발견하게 된다.

한국 내에서 비엔날레 문화가 정착하게 된 것 이외에도 한국 동시대 미술 작가들이 국제무대와 교류할 수 있었던 통로는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제공되었다. 전시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1999년 뉴욕의 퀸스 미술관에서 ‘루이스 캄니처(Luis Camnitzer)’와 ‘제인 파버(Jane Farver)’ 등에 의해 기획된 < Global Conceptualism: points of origin(1950-1980)> 전시 중, 한국의 미술평론가 성완경이 기획한 ‘From local context: conceptual art in South Korea’라는 제목의 전시에 한국의 정치 참여적 미술인 민중미술의 주요 작가들을 소개했다. 이외에도 2000년 아트선재에서 당시 샌프란시스코 미술관 관장이었던 데이비드 로스(David Ross)가 기획한 <코리아메리카코리아(KOREAMERICAKOREA)> 전시도 다문화주의 담론과 관련된 문화적 정체성의 문제의식을 고취한 계기가 되었다. 서도호, 마이클 주, 바이론 킴, 차학경(Theresa Hakyung Cha), 권소원 등의 한국계 미국 작가들이 참여한 이 전시는 이후 한국 동시대미술과 ‘디아스포라’ 문제의식을 발전시키는 2002년 광주비엔날레 프로젝트2의 ‘한국의 이산’이라는 타이틀로 한국계 미국인 작가 민영순에 의해 전시로 실현되기도 했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한국 미술의 글로벌 무대 진입에 재미 교포 작가들이나 미국유학 이후 현지에서 활동하던 재미 작가 경력을 지닌 미술인들이 상당히 주도적인 역할을 했음을 알게 된다. 현재 디자인 전시기획자로 일하고 있는 엄혁은 캐나다 이민자이자 뉴욕에서 공부한 미술평론가로서 90년대 초 서울의 젊은 미술평론가 작가 그룹(미술비평연구회) 등과 긴밀한 소통 창구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당시 뉴욕에서 활동하던 박이소(Yiso Bahc, 1982년 뉴욕으로 유학을 떠나 94년까지 현지에서 작가 및 기획자로 활동, 브루클린에서 ‘Minor Injury’라는 대안공간 운영)를 미술비평연구회 멤버들에게 소개한 이도 엄혁이었다. 앞서 언급한 아트선재의 <코리아메리카코리아> 전시와 함께 열린 심포지엄에 참여한 재미 미술사학자 권미원(Miwon Kwon) 역시 초기 서도호에 대한 미술 평론을 기고하는 등 한국 미술 작가들의 글로벌 무대 진입에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그 이후 L.A의 레드캣(Redcat) 디렉터와 뉴욕 뉴뮤지엄에서 활동했던 주은지(Eungie Joo), 그리고 워커아트센터와 뉴욕의 MoMA를 거쳐 현재 홍콩 M+에서 활동 중인 정도련(Doryung Chung), L.A 레드캣과 워커아트센터를 거친 클라라 김 등이 보다 왕성하게 한국의 믹스라이스, 박찬경, 배영환, 양혜규, 임흥순, 임민욱 등을 주요 미술관, 비엔날레 등의 전시로 해외에 알리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들이 보여 준 문화번역자로서의 역할은 향후 한국 작가들의 해외 진출을 위한 많은 시사점을 제시해 준다.


박이소(1957-2004)

▲ 박이소(1957-2004)

박이소가 운영한 대안공간 Minor Injury, Brooklyn

▲ 박이소가 운영한 대안공간 Minor Injury, Brooklyn


이불, 김수자, 서도호, 장영혜중공업(YoungHae Chang Heavy Industry), 최정화 그리고 양혜규, 김성환 등이 현재 해외의 주요 미술관에서 빈번히 전시회를 통해 선보이고 있지만 그 외에도 한국의 많은 젊은 작가들이 국제미술계의 점증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앞서의 비엔날레나 국제교류 전시 등 이외에도 한국의 동시대 미술 무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국립현대미술관, 아트선재센터, 리움미술관 등과 국제 레지던시, 창작센터 등의 동시대 미술의 핵심적 인프라 시설을 통해 한국 동시대미술의 미래적 전망과 가능성이 크게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앞선 세대의 작가들은 자신들의 역량을 제대로 평가받고 보다 많은 노출의 기회를 찾기 위해 전략적으로 해외 진출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국제 동시대미술계의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유럽과 미국의 미술관, 상업 화랑 종사자와 큐레이터들이 한국의 젊은 미술인들을 주목하고 있다. 이곳 현지로 리서치 여행을 와서 작가들의 작업실을 방문하는 일들도 빈번히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의 미술이 이렇게 주목받은 적도 요즘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어찌 보면 우선적 과제는 우리의 작가들을 해외에 소개하기 위해 열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우수한 작가들을 발굴하고 그들이 튼실하게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기회는 늘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술관, 평론가, 큐레이터 그리고 상업 화랑 모두 자신들 본분의 고유한 책무에 충실하고 있는지 냉정한 자기 성찰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박만우  필자소개
박만우는 현재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관장이며, 이화여자대학교 정책과학대학원 겸임교수이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미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팡테옹-소르본느 대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2년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 2004년 부산비엔날레 현대미술전 큐레이터, 2006년 부산비엔날레 현대미술전 전시감독으로 일 했고 이후 아틀리에 에르메스 디렉터, 백남준아트센터 관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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