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예술가 프로젝트 - CEPAIAP
장혜진_CEPA대표
류流
뱉어낼수록 멀게 느껴지는 단어가 ‘국제교류’다. 그럼에도 CEPA 연구소·플랫폼 이름에 바로 이 단어가 들어간 것은 이에 관해 CEPA가 하고 싶은 말이, 또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CEPA 국제교류 문화예술 융합연구소가 2016년 1월부터 3월까지 진행한 이민예술가 프로젝트(Immigrant Artist Project)는 이러한 국제교 ‘류流’의 흘러감 속에 던지는 몇 개의 짱돌과 같았다.
CEPA 국제교류 문화예술 융합연구소(Global Initiative for Embodied Culture and Performing Arts)는 ‘글로바디(Glo-bodied)’라는 모토와 함께 국제교류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2014년 안무가 장혜진이 시작하였다. CEPA가 그리는 국제교류는 게스트와 호스트 경계의 무너짐(Blurring the lines between guests and hosts), ‘몸’으로 체화된 문화와 공동체의 형성(Embodied Culture/Community), 또한 국제교류의 탈중심화 혹은 다중심화(Center is Everywhere)를 탐구하는데 주목적이 있다. CEPA는 설립자의 전공인 춤·무브먼트에서부터 네트워크가 시작되었지만, 다원적, 융합적 방향성을 추구하며 비선형적인 확장을 하고 있다.
동상오몽
CEPA는 예술경영지원센터 국제문화교류 연구활동 지원사업인 ‘NEXT STEP’을 진행하기에 앞서 국제교류는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져봤다. 이 과정은 증명이나 비판을 위한 도구라기보다는 발화적 언어행위를 위한 촉매제의 기능으로써 필요하다. 국제교류란 구성원의 다국적이면 그 조건을 가장 손쉽게 충족시키는 것인가? 프로젝트가 실제로 국경을 초월할 때 가장 성공적인 사례라고 보는 추세인가? 이때 국경을 초월하고 흘러가는 것은 예술가라는 사람인가, 아니면 작품 혹은 프로젝트라는 매체, 표현수단(medium)인가? 국제교류 기관에 의해 운영되는 경우 자동적으로 국제교류적 프로젝트가 되는가? 국제교류를 이미 달성한 현상으로 보기보다는 대신에 관심, 이상향, 아직 도달하지 못한 이정표로 삼는 목적형 프로젝트의 교육적 성격은 왜 장려되는가? 국제적 이슈에 대한 창작시민으로서의 사유와 반응의 흐름은 어떠한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을까?
CEPA IAP의 구성원들은 이주의 경험이 있거나 국제교류와 관련한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기획자·예술가이거나, 국제교류 혹은 국제무대에는 관심이 없더라도 이민·난민·표류 등의 개념에 동하여진 예술가들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5인의 동상오몽적 국제교류 프로젝트 CEPA IAP는 두 가지 포켓의 연구 및 기획 프로그램으로 운영되었다. 첫 번째 프로그램은 국내에 사는 외국인 예술가들을 설문조사하고 모임을 개최하는 CEPA Artist Gathering(연구원: 장혜진, Gillian Rhodes, 김이슬), 두 번째 프로그램은 최근 쟁점이 된 난민사태와 이에 반응하는 몸에 대해 개념적·창작적·은유적으로 연구하는 Drifting Body(표류하는 몸)(연구원: 장혜진, 김지원, 현지예)이다. 이민예술가프로젝트는 창작시민(Artistic Citizen)으로서 이주에 관련된 국제적 현상과 동시대적 이슈를 연구·고찰하는 “작가가 기획하는 작가를 위한 작가적 연구”이다.
또한 이 프로젝트는 뉴욕예술재단의 이민예술인 프로그램, Critical Refugee Studies의 미국 대학 정규과정 설립, 유럽의 Migrating Body 프로젝트, 서아프리카의 노마딕 익스프레스 멘토링 과정 등과 같이 표류하는 예술가를 위한 세계 예술계의 제도적 방향성을 고려한 한국에서의 발맞춤이자 인큐베이팅이다.
창조적 충돌 Creative Clash
창작자의 협업적 연구와 예술적 개입을 시도하는 CEPA IAP의 Cross-cultural Creative Clash는 3월 한 달 동안 두 차례 개최됐다.
우선 지난 2016년 3월 26일 서울무용센터에서 개최된 CEPA Artist Gathering에서는 국적, 장르, 인종을 초월한 다양한 주한 외국인 예술인들을 초대하여 서로를 소개하고, 움직임 워크숍에 참여하며 이주에 관해 토론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이 모임을 위해 약 한 달 동안 국내 거주 중인 이주예술가를 파악하는 조사가 시행되었고, 약 50명의 설문조사 참여예술인들이 한국에서의 지원시스템 구축과 네트워크를 위한 그들의 견해를 공유했다. 한국을 해외 삼아 떠나온 8명의 예술인과 교류하고, 서로의 경로와 움직임을 미러링하고, 표류의 교차점을 찾아나가는 경험과 토론은 what if where we are is who we are (곧 우리가 있는 이곳이 우리 자신이라면)라는 질문과 함께 흘러가는 국제교 ‘류流’ 속 현존하는 우리의 몸을 다시 상기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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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1일에는 서울대학교 미술관 렉처홀에서 Drifting Body 렉처 퍼포먼스 및 패널 토크가 있었다. 렉처 퍼포먼스의 핵심은 담화와 담론이다. 해상난민 사건과 관련 언론자료를 접했을 때 연구원들은 각자의 경험적 인식과 감각적 반응, 그리고 이에 반응하는 서로에 대한 반응들이 체화적 실험으로 발전된다. 난민의 몸이라는 모티브를 시작으로 형이상학적으로 생각하고 대화를 전개해 나가기도 하고, 각자의 프랙티스를 반영한 이론과 연관 짓기도 하는 동시에 재난에 반응하는 예술적 반응의 딜레마에 대하여 고뇌한다. 이 생각과 대화의 표류는 걸러짐 없이 기록된다. 이때 문서화 작업의 퍼포먼스적 재맥락화는 패널 토크세션에서 또 한차례 개입을 경험하게 된다. 함께한 패널리스트들(이두갑 교수님, 서현석 교수님, 장현준 안무가, 김소연 평론가)과 함께 표류하는 몸은 두서없이 거닐고, 비목적론적인 재난을 경험한다. 이렇게 표류하는 몸은 다양한 방식의 주의력을 허락하며 우리 모두를 이미 표류하는 것으로 동등하게 만든다.
Abun/dance
‘풍부’를 의미하는 이 단어 속에 춤(dance)이 들어가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CEPA IAP 의 지붕 아래 두 가지의 서브 파일럿 프로그램을 운영한 후 지금 내게 남아있는 단어는 바로 abundance이다. 교류, 순환, 분권도 결국은 이 풍요의 감각(sense of abundance)을 위함이 아닐까? 시간성, 공간성, 신체성을 논하는 공연예술 안에서 우리는 얼마만큼 풍요로운 시간과 공간, 사람을 가졌는지 고뇌한다. 또 이에 상응하는 교환가치를 지불하면서까지 교류를 꿈꾸기도 한다. 풍부한 표류를 경험한 CEPA IAP 이후 지금 나는 경계를 넘어선 교류 속에는 이러한 가치의 재해석 그리고 가짐의 재해석(sense of haveness), 그리고 줌의 재해석 (sense of giveness)이 있었으면 한다. 이러한 재해석은 이미 동시대적이고 국제적인 이슈들과 맞닥뜨려져 있음은 분명하며, 그러한 흐름 속에 풍부(abundance)를 포착하고, 가져도보고 내줘보기도 하는 것이 우리가 그토록 어렵게 부르는 바로 그 국제교류였으면 한다.
필자소개장혜진은 HeJin Jang Dance/CEPA의 대표이자 예술감독이다. 지난 13년간(2002-2015)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활동하면서 동시대 무용의 주요 네트워크를 창조해왔다. 미국 Hollins University 무용과의 Assistant Professor를 역임, New York Live Arts Fresh Tracks 상주 안무가(2014-15), 뉴욕예술재단 안무 멘토 및 심사위원 (2014), Movement Research의 상주예술가 및 faculty (2009-11), ImPulz Tanz의 댄스웹 선발자(2011) 등을 역임하였다.
국경 없는 마을, 원곡동에서 국제교류 다시보기 - LITMUser
신현진_비평가
벌써 십여 년 전 일인데 필자는 아시아의 30여 개 예술단체를 모아놓고 일종의 맞선자리를 만든 적이 있었다. 맞선이 본 행사는 아니었고 행사에 참여하는 예술단체장들보고 서로 친해지라며 식사시간마다 매번 다른 참가자와 짝을 지워주었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홍콩의 하워드 챈이라는 친구는 “사람들을 억지로 대화하게 한다고 갑자기 ‘뭔가 클릭!’ 하는 게 있어서 교류하겠느냐”는 점잖은 핀잔을 주었다. 당시는 의욕만 있었고 누구에게 물어 볼 만큼 똑똑하지도, 낯짝이 두껍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몇 년 뒤 다양한 나라의 예술인과 일을 하는 김선정 선생 밑에 있을 때의 일이다. 선생이 왜 그 말을 하셨는지 정확한 표현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대충 친분이 아니라 담론이라든가 “추구하는 바가 같아서” 함께 커나갈 여지가 있으면 “아무리 콧대 높은 기관이라도 같이 일하게 되어있다”는 내용의 말씀이셨는데 교류의 역학에서 클릭! 하는 무언가를 안 것 같아 무척 기뻤던 기억이 난다.
얼마 전에는 리트머스(LITMUser) 관계자들이 만든 스터디 모임에 한번 놀러오라는 초대를 받았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자고 해서 갔으나 정작 가서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어보니 이 모임은 리트머스의 세대가 바뀌면서 쇄신을 모색하던 중에 예술경영지원센터로부터(이하 예경) 지원금을 받아 꾸려오는 내공 쌓기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예경 지원금의 취지도 민간영역의 국제문화교류 활성화와 문화교류 전문가의 양성이라 하니 뭔가 클릭! 하는 이야기가 나올 법도 하다.
내가 아는 리트머스는 물리적인 국경을 넘나든다기보다 ‘국경 없는 마을’인 안산 원곡동 지역에 둥지를 틀고 지금까지 여러 나라의 문화에서 온 지역민과 교류하면서 다문화 예술 활동을 기획하는 비영리 공동체이다. 그런 리트머스가 설립된 지도 벌써 10년이 다 되어 이전 프로그램을 반추해보고 프로그램의 내용적 질을 높이며 더 잘 운영하기 위해 본격적인 연구를 한다니 존경스럽기 그지없다. 지금까지 진행된 내용은 니콜라 부리오의 관계미학, 오쿠이 엔위저가 연구한 탈식민주의가 가진 양가성의 맥락을 이론적으로 다가가 보았다. 탈식민주의는 민족 간의 갈등, 식민과 피식민자의 논리, 정체성의 정치를 다루는 학문영역이다. 그러니 이들의 연구란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과 관계맺음을 다룬 예술실천 중에서 성공 사례를 분석하고 스스로에 비추어보며 고민하는 일이었다. 또한, 한국의 민중미술 및 포스트 민중미술을 연구하면서 서구의 이론을 한국미술의 역사와도 비교한 것으로 보인다. 이어서 이들은 미디어시티 비엔날레 <귀신, 간첩, 할머니>와 이에 대한 비평문을 토론하면서 동시대 담론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리고 지원프로그램을 끝낸 지금은 리트머스의 차후 방향성에 대한 논의로 이어가고 있다 한다.
▲ 안대웅, 최도훈, 김태균, 구수현, 장근희 LITMUser 멤버(시계 반대방향)
리트머스의 스터디는 스스로가 헌신하는 분야의 질적 수준개선을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는 점에서 전문가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예경 지원금의 목표가 국제문화교류 활성화와 문화교류 ‘전문가의 양성’이라는 점을 상기해보면 활동내용은 리트머스에게 가장 적절하기도 했거니와 예경의 목표와도 잘 맞아떨어진 사례임이 틀림없다. 그렇지만 노파심에 한마디 하자면 ‘전문가’라는 괴물 같은 단어에는 뭔가 껄끄러운 게 있다. 특히 문화교류와 전문가라는 두 개의 단어가 함께 만났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과장을 하자면 국제교류 전문가는 리트머스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데로 옮겨가 국제교류의 진리를 설파해야 할 듯해서 그렇다. 전문가라는 단어는 너무나 유혹적인 단어여서 사회학자인 리처드 홀 같은 사람은 근대 이후를 전문가 사회라고 부르고 전문가가 계층의 역학을 뒤바꾼 장본인이자 이상적인 시민상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단체가 국제교류를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목적이 될 수 있을까? 국제문화교류 활성화와 국제교류 전문가 되기는 예경의 미션이지 리트머스의 미션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리트머스의 전략이다. 교류라는 것이 뭔가 클릭!해야 시작 가능한 것이라면 그것은 전문 업무의 영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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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1일 LITMUser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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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15일 김희진 큐레이터와의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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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트머스의 초창기 멤버 중 한 명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김월식 작가는 한때 “공동체라는 것이 임시적일 수밖에 없다”는 말을 했었다. 그처럼 사람 좋아하는 사람이 사람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 그런 말을 했을까? 오히려 그것은 그가 이데올로기 같은 개념이 개인보다 먼저 있어서 그것을 위해서는 희생을 해야 할 수도 있다는 관념론에서 벗어나 신념과 이해에 따라 뭉치고 흩어지는 다중을 믿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의 말은 하워드 챈이나 김선정 선생처럼 교류하고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업무가 아닌 뭔가 클릭!해서 일시적으로 우리가 된다를 말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리트머스의 멤버는 리트머스와 뭔가 클릭!한 사람들이니 이미 교류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지만 대부분 작가로 구성되어있어서 시각에 더 예민함에도 불구하고 문자로 된 이론을 학습하는 고생을 마다치 않고 있다. 왤까? 국제교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내가 모임에 가서 미션을 물어봤을 때 이들은 별 뾰족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들의 말없음은 리트머스가 운영팀이 새로 바뀐 데다 이전 세대는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나가서 노하우가 쉽사리 전수되는 것도 아니고 이전 프로그램에 반성하고픈 요소도 있어서 고민을 하는 이들의 조심스러움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리트머스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고 있었던 것 같다. 특기할 만한 것은 리트머스 멤버들의 스터디를 위해 족집게 강사로 안대웅이라는 별동대를 영입했다는 사실이다. 그가 함께 시도한 두 마리의 토끼는 정보를 함께 리서치, 연구하며 전문가가 되고 이어서 이미 뭔가에 클릭!해서 만난 서로의 내면을 언어화해서 공동체로의 일시적인 합의를 이끌어내려 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국제교류 활성화의 전문가는 리트머스 멤버가 성취해야 하는 종착지가 아니라 안대웅 씨가 소화해 낸 바로 그 직위인 것 같다. 그러니 예경은 단체를 전문가로 만들기 전에 전문가를 고용해서 뭔가 클릭!한 부분이 무엇인지 대내외적으로 공유하고 소통하기 쉽게 언어화하는 일을 도와줄 사람을 고용하는 방안도 고려해보면 어떨까 한다.
필자소개신현진은 권위를 뺀 미술비평의 내용을 담은 소설을 쓰겠다는 밀리언셀러 소설가 지망생이고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와 현대미술에 있어서의 제도적, 그리고 존재론적 관계를 고민하는 만학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