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F1] 정보소극장 5개 극단 공동운영

“일년에 좋은 작품 하나만!”

김소연 편집장

지난 5월 27일 정보소극장에서는 <선착장에서>(박근형 작/연출)가 막을 올리면서 '제1회 정보연극전'이 시작되었다. <하녀들01>(장주네 작, 박정희 각색/연출), <똥강리 미스터리>(공동창작, 최용훈 연출), <한여름 밤의 꿈>(양정웅 작/연출), <여행>(윤영선 작, 이성열 연출)으로 이어지는 '제1회 정보연극전-다시多視'는 골목길, 풍경, 작은신화, 여행자, 백수광부 등 5개 극단이 정보소극장을 공동운영하면서 마련한 첫 번째 프로그램이다. 앞으로 이들은 개별 극단의 공연과 다섯 개 극단이 공동으로 기획하고 참여하는 페스티벌 등으로 정보소극장을 운영할 계획이다.

규모 있는 공공극장, 민간극장들이 잇달아 문을 열거나 개관소식이 전해지는 이때에, 대단한 시설을 갖춘 것도 아니고 화려한 개관식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극장의 비전과 미션을 표방하는 비장한 메니패스토를 발표한 것도 아닌, 본래 있던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운영자만 바뀐 채 다시 문을 연 정보소극장을 주목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제1회 정보연극전> 포스터우선 먼저 눈에 띠는 것은 이들이 대학로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극단들 중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들이라는 점이다. 중대형 극장 공연만이 아니라 대형 프로젝트 공연까지를 망라하는 극단 미추, 극단 연희단거리패 정도를 제하고 본다면, 한국연극의 인프라가 집중되어 있는 대학로 소극장 연극에서 이들이야말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극단을 꼽을 때 다섯 손가락을 먼저 채울 극단들이다. 박정희, 박근형, 최용훈, 이성열, 양정웅 등 극단을 이끌고 있는 연출가들 역시 한국연극의 동시대적 성취에서 최전선에 있는 이들이라 할 수 있다. 이번 페스티벌의 작품들이 올해의예술상, 한국연극평론가협회베스트3, 서울연극제 등 대표적 연극상 수상작들이다.

그러고 보면 대학로 소극장 연극에서 가장 왕성한 성취를 보여주는 극단 다섯이 공동운영을 맡고 나섰으니 대학로 소극장 하나가 운영자만 바뀐 것이라 볼 것만은 아니다. 개별 극단, 개별 연출가들의 연극적 성취가 극장 공동운영에서 또 다른 성취로 이어질지, 그것이 대학로로 대표되는 한국연극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자리 잡게 될지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분화'의 대세에서 방향키를 돌려서

하지만 사실 이들의 시작이 그닥 명쾌한 모습인 것만은 아니다.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연극 환경에서 이들의 자리가 그렇다는 것이다. 우선 개별 극단들의 입장으로 보자면 극장운영은 매력적인 일은 것은 아니다. 동인제 극단들로서 소박하게 연극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창작기반으로서의 극장이라는 꿈을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이들에게서는 그 절실함이 약화된다. 창작 활동 자체에 배가 고프다 할 이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각 극단을 이끌고 있는 연출자들의 일정에는 일 년에 7~8개의 작품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5개 극단이 함께 모여 운영회의라도 하려면 공연이나 연습이 끝나는 밤 11시나 되어야 시간을 잡을 수 있단다. 이들의 창작활동은 지금도 분주하다. 게다가 극장운영은 '꿈'만으로 벌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극장 운영의 제반 역할을 서로 분담해야 하고 게다가 권리와 책임을 함께 나누는 공동운영 방식이니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도 품을 들여야 한다.

비장한 선언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들이 표방하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상업극에 포위된 대학로에서 순수연극의 거점이 되겠다."는 이들의 포부가 이런 저런 지면에서 전해진다. 하지만 상업극이 그자체로 연극적 성취를 부정적으로 드러내는 언어가 아닌 것처럼 '순수연극' 또한 연극현실에서 그렇게 의미 충만한 언어는 아니다. 게다가 최근 문을 여는 공공극장들이 스스로 표방하는바 역시 상업극, 혹은 상업성을 안티테제로 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상업극';에 대한 대안으로서야 기존의 대관극장을 지양하고 기획 제작 중심 극장을 표방하고 있는 공공극장들의 역할에 더욱 관심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동인제 극단의 극장 공동운영은 근래 공연예술계에서 극장의 역할, 극장의 운영방식이 변화하고 있는 흐름과 일정한 거리를 가지고 있다. 창작과 기획 제작의 분화와 더불어 극장 경영도 별도의 영역으로 분화되어 가는 흐름이 뚜렷해지면서, 규모 있는 공공극장만이 아니라 대학로 민간소극장에서도 프로그래밍과 프로듀싱을 갖춘 극장 경영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 이제 극장은 단지 공연이 이루어지는 무대와 객석을 갖춘 물리적 '공간' 이상의 생산적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 대중극에서 좀 더 빠르게 가시화되고 있지만 이러한 분화와 전문화는 수익성의 문제만이 아니라 창작과 향수라는 예술활동의 두 축의 원활한 순환을 통해 창작의 토대를 어떻게 튼튼하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과 연관되는 것이다.

동인제 극단의 공동운영은 '분화'라는 공연예술 환경의 변화를 거스르는 구도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시각으로 보자면 역으로 '극장'의 확장되는 역할에 대한 또 하나의 반응이기도 하다. 이들이 말하는 바, "순수연극의 거점"이라는 것에서 극장은 비단 공연을 올리는 그릇이 아니라 '생산의 거점'으로서의 극장이다. 물론 이들이 말하는 '생산'은 창작과 유통, 관객개발과 제작시스템까지를 아우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에게 '생산'은 곧 '창작'이다.


대중연예물, 상업극, 명품연극의 틈바구니에서

'제1회 정보연극전-다시多視' 참가공연 <선착장에서>, <하녀들01>,<똥강리 미스터리>, <한여름밤의 꿈>, <여행>

동인제 극단 공동운영 극장으로서 정보소극장의 지향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우선 이들이 안티테제로 삼은 '상업극'의 의미를 현재 펼쳐져 있는 극장의 지형에서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불과 10년 전 서울의 극장 상황과 비교하면 지금의 연극공간은 놀랍게 팽창했다. 10년 전, 80년대를 지나면서 형성된 소극장 중심의 대학로를 제외하면 강 건너 예술의전당과 남산 중턱의 국립극장 그리고 민간극장으로 호암아트홀 정도가 연극을 올릴 수 있는 무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주제의 연극축제들이 연중 벌어지고, 공공극장 민간극장의 개관이 잇따르고 있다. 기초자치단체 단위의 공공극장 건립도 계속되고 있는가 하면 기존의 공공극장들도 프로그래밍 능력을 갖추고 직접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는 것이 대세라 할 만한 흐름이다. 이제 연극을 한다는 것이 퀴퀴한 지하 소극장에서의 지난한 싸움인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연극 환경의 놀라운 팽창에도 불구하고, 연극계의 위기감은 크다. 대학로만을 놓고 보더라도 대중연예물들을 올리는 극장이 점점 대학로 중심부를 포위해가고 대중극 상업극의 저변을 넓히기 위한 기획 제작 극장경영의 시도들이 그 옆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면 창작활동을 중심으로 한 동인제 극단들의 자리는 소위 대학로 강북이라 불리는 혜화동로타리 건너에 형성되어 있다. 대학로 극장 지도를 공연문화의 확대에 따른 유형별 블록화라고 보느냐, '상업극'에 점점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이 "밀려나" 있다고 보느냐는 시선의 엇갈림이 있지만, 창작자들이 이러한 대학로 극장 지도 앞에서 느끼는 위기감은 깊다.
 

대학로를 벗어난 공간들 역시 창작자들이 느끼는 위기감의 출구가 되기에는 다소 거리가 있다. 중극장 이상의 규모를 갖춘 공공극장들은 앞 다투어 '명품연극'을 표방하고 있는데, 공공극장의 '공공성'은 예술적 성취 못지않게 관객의 저변확대라는 미션이 부여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일정한 품격을 갖추면서도 불편하지 않은, '명작'이 아닌 '명품'이 관객개발이라는 미션의 수행에서 요구되는 것이다.


이윤과 정책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놀랍게 팽창하는 연극공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팽창의 동력이 이윤과 정책이라는 두 개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현실인 가운데 그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창작공간은 팽창의 속도에 비례하여 급속히 위축되고 있는 것이 피부로 느껴지는 현실인 것이다. 정보소극장 공동운영을 맡고 나선 5개 동인제 극단들이 말하는 '상업극' '순수연극'도 그러한 현실의 체감온도를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이윤과 정책이라는 두 개의 축으로부터의 자유로움. 그것이 이들이 말하는 '순수'가 아닐까. 물론 이들 역시 극장운영을 위해서는 티켓을 팔아야 하고 또 지원제도의 도움도 필요하다. 이윤과 정책이라는 엄연한 현실로부터 절대적으로 자유로울 수는 없을지라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창작의 공간이라는 점은 소중하다.

<제1회 정보연극전> 개막 후 있었던 고사 현장
이들의 극장운영 소식에 많은 이들이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를 먼저 떠올렸지만, 이들은 예의 '실험'과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혜화동1번지'가 신진들이 자유로운 시도를 용인하는 '성장'의 토대라면 정보소극장은 이들 극단들이 갖는 한국연극에서의 위상처럼 다른 지향, 다른 역할이 요구되는 것이다. 처음 극장운영에 대한 논의가 오갈 때 이들이 물색한 극장들도 예의 대학로 강북지역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의 정보소극장으로 극장이 결정되면서 극장의 지향도 조금 더 명료해졌다. 각 극단들, 연출가들의 위상처럼 한국연극의 최전선의 연극적 성취를, 뜨르르한 연극상이 아니라, 직접 대중들에게 어떻게든 설득해야 하는 것이다. 좀 과장하자면 한국연극 창작역량의 시험대라 할 만하다. 정보연극전 개막작이었던 <선착장에서>의 첫 공연이 끝난 후 있었던 고사에서 5개 극단 단원들과 삼삼오오 모여든 연극계 선후배들은 돼지머리 그림에 절을 하며 한 목소리로 "대박"을 기원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팽창하는 연극환경에서 이들의 극장이 뚜렷한 자리 자리를 잡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래도 이들에게 기대를 걸어보는 것은 역시 이들만의 자산이라 할 ';작품'; 때문이다. ';제1회 정보연극전'; 작품들이 대중성이든 평단의 호평이든 연극적 성취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5개 극단 공동운영은 5개 극단의 레파토리를 극장의 레파토리로 연결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수익? 관심 없다. 일 년에 좋은 작품, 한 작품만 나와도 된다."는 말이 '경영'에 무심하거나 무지한 창작자의 오만일까. 그보다는 이들에게 지워진, 스스로가 떠맡고 나선 '역할'의 무게라 할 것이다. "이렇게 모였는데도 안 되면 한국연극의 미래가 없다."는 과격한(?) 기대의 무게감 말이다.


김소연  

필자소개
김소연 편집장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다원예술소위 위원, [컬처뉴스] 편집장을 지냈다. 무대가 어떻게 세상과 소통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으로 연극평론을 쓰고 있다. '상업지구 대학로를 다시 생각하다''이 철없는 아비를 어찌할까' 등의 비평이 있다.



weekly 예술경영 . 정보라이선스 정보공유라이선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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