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라이선스 계약
지혜원 _ 프리랜서 프로듀서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의 작품이 국내에서 공연되는 경우는 형식적으로 크게 투어 공연(international tour)과 라이선스 공연(licensed production)의 형태로 나뉜다. 투어 공연은 미국이나 영국의 제작사가 자국민 혹은 호주 등지의 영어권 국가의 배우를 캐스팅하여 각 해외 시장의 로컬 프리젠터(local presenter)와 함께 공연을 올리는 형태로 진행된다. 이 경우 배우들은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 혹은 내셔널 투어팀과는 별도로 인터내셔널 투어만을 위해 따로 조직된 프로덕션인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구조에서 해외 제작사는 프로듀서가 되고 국내 기획사는 로컬 프리젠터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주로 국내 기획사는 해외 프로듀서에게 배우와 스태프의 보수를 포함하여 일정 금액을 개런티로 지불하고 공연 수익 중 일부를 취하는 형태로 계약하게 된다.
이에 비해, 라이선스 공연은 우리나라 제작사가 해외 프로듀서 혹은 작가로부터 공연권을 확보한 뒤, 제작에 직접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우리나라 배우와 스태프들에 의해 현지화(localization) 과정을 거쳐 제작되며 우리말로 공연된다. 오디뮤지컬컴퍼니가 제작한 <지킬 앤 하이드>, 신시컴퍼니의 <맘마미아>와 <시카고>, 설앤컴퍼니의 <오페라의 유령> 등 상당수의 국내 공연이 바로 이러한 경우에 해당된다. 이례적으로 지난 2006년부터 1년간 샤롯데 극장에서 공연된 <라이언 킹>의 경우는 우리나라 배우들이 공연한 라이선스 공연이기는 하지만 일본 극단 시키에 의해서 제작된 것으로 디즈니사와 시키 간의 라이선스 계약에 의해 국내 공연이 성립되었다.
해외 작품의 국내 공연의 구분은 이외에도 브로드웨이의 원작 프로듀서가 작품 제작에 직접적으로 관여되어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여부에 따라 구분되기도 한다. 미국 내에서의 공연은 크게 브로드웨이의 프로듀서-극장주 협회인 브로드웨이 리그(The Broadway League)에 가입된 프로듀서들이 제작하고 공연하는 '퍼스트 클래스 프로덕션'(First-Class Production)과 이들 이외의 제작사가 제작하는 '세컨드 클래스 프로덕션'(Second-Class Production)으로 나뉜다. 이러한 구분은 브로드웨이 작품이 원작과 동일한 수준으로 공연 되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른 구분인데, 인터내셔널 공연의 경우도 원작 프로듀서의 참여 여부에 따라 그 제작과정과 내용구성이 구분되기도 한다. 특히 라이선스 작품의 경우 이러한 구분에 따라 공연권 취득 절차나 제작방식이 달라진다.
퍼스트 클래스 레플리카
흥행작을 제작한 대형 프로듀서에게 그들의 공연 작품 하나하나는 브랜드이다. 따라서 흥행작 일수록 브랜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인터내셔널 라이선스 프로덕션 제작에도 직접 관여하며 많은 부분을 컨트롤하고자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원작 프로듀서는 제작사 선정은 물론 번역이나 세트, 의상 제작, 캐스팅에까지 직접 컨트롤하며 인터내셔널 라이선스 프로덕션이 원작에 가까운 양질의 작품이 제작될 수 있도록 관리한다. 대형 제작자(사)인 디즈니 시어트리컬 프로덕션(Disney Theatrical Productions)이나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리얼리 유스풀 그룹(Really Useful Group, 이하 RUG)과 같은 경우는 이들이 관여하는 인터내셔널 프로덕션이 오리지널 프로덕션의 복사본과 같은 '퍼스트 클래스 레플리카'(first-class replica)로 제작되도록 관리한다.
예를 들면, 인터내셔널 프로덕션 제작의 가장 기본이 되는 번역의 경우 국내 제작사에서 영문 대본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난 뒤, 이를 다시 영어로 옮겨 이들 프로듀서의 검토를 거치게 된다. 각 나라별 문화와 정서에 따라 번역시 약간의 수정이 가해질 수는 있지만, 작품이 전반적으로 원작의 의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의미 전달이 될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또한 원작 프로덕션의 크리에이티브 팀(브로드웨이 원작의 창작자들 혹은 그들의 협력/파트너 창작자) 중 감독, 안무가, 음악감독, 세트/조명/의상 디자이너 등이 각 인터내셔널 라이선스 프로덕션에 직접 투입되어 제작 전반과정을 아우르도록 한다. 이들은 주로 라이선스 작품의 리허설과 오프닝까지를 지켜보다 돌아가며 이후로도 지속적인 관리를 하게 된다.
뉴욕 브로드웨이 42번가에 본사를 두고 있는 디즈니사는 <미녀와 야수><라이언 킹><아이다><타잔><메리 포핀스><인어공주> 등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제작해왔다. 이들 중 상당수가 미국 내 타 지역은 물론 해외시장으로의 성공적인 진출을 진행해왔으며 <미녀와 야수>와 <아이다>는 각각 설앤컴퍼니와 신시컴퍼니에 의해 국내에서도 제작된 바 있다. 디즈니가 해외 프로덕션의 제작을 결정할 때 그들은 해외 프로듀서의 신뢰도, 시장의 안정성 등 각 해외마켓의 시장조사를 면밀히 거친 뒤 파트너를 선별한다.
라이선스 계약이 체결되면 해외 프로듀서는 오리지널 프로듀서에게 일정 금액의 선급금(Advance)을 지불하고 공연권을 획득하게 된다. 이 선급금은 후에 수입 중 일정 퍼센티지로 지불되는 로열티 중 일부를 먼저 지급하는 방식으로 로열티의 누적액의 총 금액이 선급금을 넘어서게 되면 추가 로열티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선급금이나 로열티의 책정 기준은 작품의 규모나 해외 시장의 상황 등 다양한 요소를 감안하여 결정되며, 디즈니사의 뮤지컬의 경우 (편차는 있지만) 대게 약 6~7억($500,000) 선에서 선급금이 결정되며, 티켓수입의 15~20% 정도가 로열티로 지불된다.
디즈니사의 국제업무 담당자는 인터내셔널 프로덕션의 제작과정에 서 번역은 물론, 캐스팅, 마케팅, 홍보에 이르기까지 라이선스 프로덕션의 전 과정을 컨트롤함으로써 원작과 동일한 양질의 프로덕션을 제작하기 위해 노력한다.
에이전시를 통한 라이선스 획득
공연권이 라이선싱 에이전시에 넘겨진 작품의 경우 해외 프로듀서는 원작의 라이선스를 관리하는 에이전시를 거쳐 원작의 대본과 음악 등의 사용권을 구입해야 한다. 전자와는 달리 해외 프로듀서가 라이선싱 에이전시를 통하는 경우에는 계약의 절차나 내용에 있어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라이선싱 에이전시는 쉽게 말해, 작가를 대신해 작품의 공연권과 대본, 음악 등을 제공하고 그 사용료와 로열티 등을 징수하는 중계업체이다. 미국 내에서는 지역 극장의 공연부터 학교나 작은 단체의 아마추어 공연에 이르기까지 이들을 통해 공연권을 획득한 후 합법적으로 공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 중 인터내셔널 라이선스를 취급하는 회사들은 대표적으로 엠티아이(MTI, Musical Theatre International), 브로드웨이 아시아 컴퍼니(Broadway Asia Company), 로저스 앤 헤머스타인 시어트리컬(R&H Theatricals), 시어터 라이츠 월드와이드(Theatrical Rights Worldwide), 탐스-위트마크(Tams-Witmark) 등이다. 이중 로저스 앤 헤머스타인 시어트리컬의 아시아 시장 판권은 브로드웨이 아시아에서 대행한다. 우리나라에서 공연되었던 상당수의 작품들이 바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공연되었다. <지킬 앤 하이드><알타보이즈><지붕위의 바이올린> 등은 모두 이들 중 한 곳을 통해 라이선스를 구입한 국내 프로듀서에 의해 무대에 올려졌다.
라이선싱 에이전시를 통해 공연되는 작품들은 브로드웨이 프로듀서가 직접 컨트롤하는 작품들과는 달리 작품의 제작 전 과정이 철저하게 현지 프로듀서의 책임이 된다. 따라서 현지 제작진의 의견이 좀 더 반영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작품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본과 음악의 사용권만을 허가받는 경우 프로듀서와 창작자들은 세트나 의상 디자인에서부터 안무, 연출에까지 우리 정서에 맞는 작품으로 새롭게 현지화 작업을 좀더 적극적으로 진행할 수가 있다. 하지만 보다 창의적인 프로덕션이 창출될 수 있다는 장점 이면에 창작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자칫 원작을 모방할 수 있다는 허점을 함께 지니기도 한다. 특히 점차 인터넷 상의 동영상이나 사진을 통해 보다 쉽게 오리지널 프로덕션을 접할 수 있는 채널이 다양해지면서 브로드웨이 프로듀서들은 원작의 창작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 부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실정이다. 라이선싱 에이전시를 통한 공연권 획득 절차 역시 선급금을 지불하고 후의 추가 로열티를 지불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선급금은 티켓 가격과 공연장 규모 등에 따라 차등 결정된다.
인터내셔널 프로덕션 제작을 원하는 해외 프로듀서는 해당 작품의 신청서를 접수하고 엠티아이의 심사에 따라 신청서가 통과되면 공연권을 획득하게 된다. 엠티아이는 원작자 대신 대본과 음악의 사용에 대한 대가를 지급받고 일정한 금액(agency fee)을 제외한 금액을 작가에게 전달한다. 대게 라이선싱 에이전시는 (오리지널 프로듀서가 해외 프로덕션을 다양한 방식으로 컨트롤하는 것과는 달리) 해외 프로덕션의 제작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작품에 따라 대본과 음악 이외에 광고 디자인 패키지, 연출 가이드라인 등 제작과 마케팅에 필요한 자료들을 별도의 계약을 통해 공급하기도 한다.
라이선싱 에이전시 중 엠티아이(MTI)는 규모면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관장하는 인터내셔널 라이선싱 에이전시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 공연되었던 <지킬 앤 하이드><컴퍼니><42번가> 등도 바로 엠티아이를 거쳐 무대에 올라간 작품들이다.
성공적 현지화 위한 파트너십 구축
우리나라 공연시장은 아직까지 해외 컨텐츠의 의존도가 높은 단계의 놓여있다. 하지만 무분별한 라이선스 작품의 제작은 오히려 빠르게 진화하는 창작인력과 관객의 안목에 역행하는 결과를 보이기도 한다. 이는 브로드웨이 히트 작품이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던 예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프로듀서즈>나 <컴퍼니>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우리 공연계에 보다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기 위해서는 프로듀서의 신중한 작품 선택과 적절한 절차를 통한 공연권 확보를 통해 보다 양질의 해외 작품을 수입하고, 우리 시장에 맞도록 현지화 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오리지널 프로듀서를 통해 직접 라이선스를 획득하고자 하는 경우라면 무엇보다 그들의 신뢰를 얻어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필자가 만나온 다수의 브로드웨이 프로듀서들이 공연작품은 로컬 시장에 맞도록 세심한 부분의 수정, 보안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를 맡길 만한 믿을 수 있는 로컬 파트너를 찾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고 하소연한다. 라이선싱 에이전시를 통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엠티아이 관계자는 해외 프로덕션의 프로그램이나 팸플릿에 원작가의 이름이 누락된다던가, 의상이나 무대 디자인 등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영역을 사용한다던가 하는 실수가 적지 않게 발견된다고 얘기한다. 한번 깨진 신뢰는 쉽게 회복될 수 없다. 상호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라이선스 작품을 들여오는 보다 합리적인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지금과 같이 100% 해외작품과 같은 복사본(replica) 혹은 대본과 음악만 수입해 들여오는 단순한 구조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원작의 뼈대를 유지하면서도 보다 경제적으로 현지화 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 보다 멀리 내다 볼 수 있는 파트너십의 구축이 필요하다.
필자소개 |
. |
덧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