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F1] ‘백남준아트센터’의 창조와 도약

국공립 미술관의 새로운 큐레이터십

강수미 _ 미술비평가

 

[프로젝트 F1]은 예술경영 분야의 주목되는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기획입니다. 예술환경의 흐름을 먼저 읽어내는 의미있는 기획력, 프로젝트의 실행에서 부딪치는 예술환경의 문제 등 프로젝트의 기획부터 실행까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 편집자 주


2008년 10월 8일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에 '백남준아트센터'(관장 이영철)가 개관했다. 이곳 바로 옆에는 경기도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는데, 물리적 거리도 무척 가깝지만, 체제 면에서 이 두 공간은 더욱 밀접한 관련성을 갖고 있다. 사실을 말하자면 비단 백남준아트센터와 경기도박물관뿐만 아니라 안산시의 경기도미술관, 광주시의 경기도자박물관이 모두 '공익 재단법인 경기문화재단'이라는 커다란 우산 밑의 한 가족이다. 지난해까지 경기도의 '도립' 박물관 · 미술관으로 개별 운영되던 네 곳이 올 3월 1일 '아시아 문화 교류의 활성화'를 목표로 선언하며 재단 아래 통합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경기문화재단의 통합 운영'은, 곧 도(道) 출연기관인 박물관 · 미술관의 '민영화'를 의미한다.

백남준아트센터 전경

[ 백남준아트센터 전경 ]


지자체 문화예술기관을 통합 운영하는 민간기구

재단의 권영빈 대표이사는 통합 체제 출범의 일성으로 "그 동안 문화예술진흥 지원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해온 경기문화재단이 앞으로는 도 문화예술의 허브 역할을 할 것"이라 다짐했다. 당시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빌려 그 구체적 역할을 뜯어보면, ①도 박물관과 미술관 등의 민영화로 도민들에게 보다 수준 높은 문화서비스 제공 ②문화예술 지원을 위한 지자체 협력 및 박물관 · 미술관을 통한 사회 · 문화 교육 역할 강화 ③박물관 · 미술관 통합에 따른 시너지 효과 제고, 국제 네트워크 구축 및 정책 개발을 위한 지역 문화예술 진흥과 국제화 추진 ④각 박물관과 미술관의 중장기 발전계획을 수립하는 일이다.

재단 휘하에 박물관 · 미술관이 통합된 만큼, 이러한 역할은 재단 측이 밝힌 것처럼, "박물관과 미술관의 독자사업 및 재단사업과의 연계와 사업 운영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때문에 이를 위해 경기문화재단은 내부 체제를 개편했는데, 기존 문화사업본부를 사무처로 변경하여, 도 박물관과 미술관의 업무를 지원하게 하고 담당 산하에 경영지원실과 문화협력실을 두었다고 한다.¹)

이 글에서 우리는 지자체의 문화예술 기관이 '어떻게 민간 기구에 의해 통합 관리, 운영될 수 있는가'에 대한 제도적 차원의 논의는 하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그 제도에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다. 예컨대 현재도 경기문화재단이 운영하기 때문에 '국공립인지 사립인지'에 대한 논의조차 정리되지 않은 상태라는 사실이 이 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²) 하지만 "도 조례를 개정해" 이미 시행되고 있는 처지에서, 이 글은 위와 같은 이유로 인해 애매모호한 정체성을 가진 '백남준아트센터'가 앞으로 어떤 큐레이터쉽을 펼칠 것인가에 논의를 집중할 것이다.


모순과 더불어 살기, 이곳이 왜 천국인가

개관을 기념하여 백남준아트센터가 기획한 첫 행사는 '백남준 페스티벌 Now Jump'이다. 이 페스티벌은 백남준의 작품을 비롯하여 그와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현대 예술가들의 활동을 미적 관점에서 역사적으로 지형화 했다. 동시에 현재 국내외 예술계에서 명성이 확고한 작가 및 떠오르는 작가들의 조형예술 ․ 퍼포먼스 · 미디어아트 · 사운드아트 등을 한 자리에 모아 프로그램화한 대형 이벤트이다.

그런데 수많은 작품과 자료, 공연 등으로 구성된 페스티벌에서 유독 우리의 관심을 끄는 작품이 있다. 이태리 출신 컨템포러리 아티스트 로메오 카스텔루치(Romeo Castellucci)의 <파라다이스(paradise)>라는 '설치-퍼포먼스' 작품이 그것이다. 이 작품은 벽 사이에 몸이 끼어있으나 자신이 몸을 빼면 그 틈으로 벽 배후에 있는 배수관에서 엄청난 물이 쏟아져 재난이 나기 때문에 이도저도 못하는 고통스런 상태를 '천국'으로 그리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역설적 내용의 작품이 '민영화된 국공립 미술관'이라는 특이한 시스템 속에서 전례 없이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예술'을 시도하는 백남준 아트센터의 현 상황과 유비된다는 점이다. 대파국을 막기 위해 벽의 누수를 온몸으로 막아내는 그 상황을 회피할 수도, 지속할 수도 없는 딜레마가 달리 생각하면 천국이라는 논리는 어떻게 성립하는가? 예술가의 실천적 정신을 다른 무엇보다도 중히 여기는 이영철 관장이 백남준아트센터의 큐레이터쉽을 카스텔루치의 설치작품이 함축하는 바에 빗댈 때, 그 진정한 지향성은 무엇인가?

① X-이벤트2 (작가: 아니 비지에& 프랑크 아페르테[레장뒤테르팡]) ② 소극장(작가:오렐리앙 프로망/2007) ③ 슈톡하우젠의 오리기날레(작가: 페터 피셔/1961)

 

 

① X-이벤트 2
(작가 : 아니 비지에 & 프랑크 아페르테 [레 장뒤
테르팡])
② 소극장
(작가 : 오렐리앙 프로망/2007)

③ 슈톡하우젠의 오리기날레
(작가 : 페터 피셔/1961)

백남준아트센터는 애초 이 문화예술 공간이 설립된 공공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기존 관료제도나 통상적인 전시관행과의 마찰과 갈등을 회피하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그러한 갈등 과정을, 마치 카스텔루치 작품의 퍼포머가 그렇듯이, 몸으로 겪어냄으로써 보다 자유로운 예술에 합당한 공간을 창출하고, 아직 어디에도 없는(u-topos) 창조적 예술을 현재시간에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점이 요컨대, 현대 예술가가 형상화한 '천국'에 기대어 밝힌 백남준아트센터의 지향이다.

이영철 관장은 국공립 예술 공간으로서 백남준아트센터가 출범하기까지 부딪힌 온갖 난제를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했다. "한국의 공무원 시스템은 문제가 있다. 그러나 민간 시스템 또한 문제가 있다." 이 관장의 진단은, 앞서 서두에 소개했던 통합 경기문화재단의 국공립 미술관 · 박물관 운영 체제를 염두에 두면 의미가 더욱 선명해진다. 즉 명목상 경기도립이지만 실제 운영은 민영기관에 의해 이뤄지는 이곳의 행정 시스템이, '국제적인 예술가 백남준의 예술세계를 지평 삼아 컨템포러리 아트 씬(contemporary art scene)의 창조적 동력 장치이자 허브가 되고자' 하는 학예 시스템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대체로 동의하다시피, 국공립 체제는 관료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때문에 김대중 정부 이후부터 꾸준히 진행된 국공립 문화예술 기관의 민영화는 하나의 대안처럼 여겨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간 민영화의 현실적 결과들은 그리 좋지 않다. 이 관장의 지적은 이런 모순적 맥락을 함의하고 있을 것인데, 그렇다면 백남준아트센터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어떠했으며, 어떤 예술 기획을 통해 문제에 답하는가?


행정체제와 큐레이터쉽의 분리를 넘어

일반적으로 널리 인정된 바와 같이, 비디오 아트와 퍼포먼스의 선구자로서 백남준은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전위적 예술을 실행했다. 상징적 사건이 된 작품을 예로 들자면, 그는 1963년 독일 북부 도시 부퍼탈의 파르나스 화랑에서 잘린 소머리를 내걸었고, 전시 작품으로 미술의 역사상 처음, '조작된 텔레비전' 13대를 내놓았다. 또 미국으로 이주해서는, 첼리스트 샬롯 무어만(Charlotte Moorman)과 상반신 노출 상태에서 <오페라 섹스트로닉(Opera Sextronique, 1967)> 공연을 펼쳐 '대중문화의 천국'이라는 외양과는 달리 청교도적 금욕주의 사회 미국의 내면을 뒤흔들었다.

그러나 그의 예술 실천은 단지 '예술을 위한 예술'이나 '전위를 위한 전위'가 아니다. 그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백남준은 인간의 당대 적 삶 과 자연, 기술의 관계를 '소외와 억압'으로 구체화한 서구 모더니티 전통을 해체해서, '즐거운 혼돈과 유희적 상호작용' 관계로 새롭게 창출해내는 데 자신의 예술을 투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백남준 예술의 저항과 도발'은 단순한 전통 파괴가 아니라 파괴적이며 생산적인 상상력의 정체성을 확보한 것이다.

이 글이 이렇듯 다소 길게 백남준 예술에 대해 소개한 것은, 이 예술가에 내재한 정신과 작품을 외화 시킨 실천성을 바로 백남준아트센터의 학예팀이 이어받고 확장시킬 의지를 갖고 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이 의지의 실현이자 구체화가 곧 백남준아트센터의 '기획'이다. 이 기획에 대해 살펴보기 전에,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백남준 예술 정신에 합당하게 아트센터를 작동시키고자 하는 학예팀의 의지를 잘 보여주는 한 가지 사건을 소개하겠다.

지난해 중반부터 경기문화재단은 산하 미술관·박물관의 보안과 직원의 근무 성실도를 확인하기 위해 신분 증명 체제를 '지문이나 정맥 인식기'로 만들었다. 기계장치의 센서에 지문 또는 정맥을 대고, 신분을 확인받아야만 출입과 업무를 할 수 있는 테크놀로지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백남준아트센터의 이 관장은 이 시스템이 의미상 백남준의 예술 정신―그의 1984년 작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가 예견한 정보산업사회의 디스토피아에 대한 반작용인 동시에 인간과 첨단기술의 창조적 관계를 제안한다―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이유로 재단 측에 격렬히 항의했다. 그리고 현재 재단 산하 다른 곳과는 달리 아트센터는 이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이로부터 우리는 통상 당연시해온 국공립 미술관의 행정 체제와 큐레이터쉽의 분리를 넘어 두 영역의 상호 공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생산적 일치가 얼마나 작고 현실적인 차원에서부터의 실천을 요구하는지 깨닫는다.

백남준아트센터의 학예적 지향은 개관 기념 페스티벌 를 통해 선언적이고 압축적인 형태로 첫 걸음을 내디뎠다. 국공립 미술관이 기획하는 전시 등의 예술행사가 대체로 '권위'와 '안정'을 추구하며 '격조(?)' 높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과는 달리 이 페스티벌은 '탈권위'와 '비약'을 기꺼이 긍정하고 '창조적 도발과 혼돈'의 공기를 뿜어낸다. 그렇다고 해서 미술사적 맥락이나 사회의 공공 논리를 무시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Now Jump〉에는 이제까지 상투적으로 전용된 측면이 없지 않은 '예술의 역사적, 공공적 성격'을 보다 높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해석한 큐레이팅의 면면이 두드러진다.

전시 공학 면에서만 봐도 이는 분명히 드러난다. 〈Now Jump〉의 Station 1, 2 전시 형태는 백남준의 일대기와 작품을 그와 심리적으로든 역사적 사건으로든 연결된 다른 지점들, 예를 들어 마르셀 뒤샹의 에서 이를 패러디한 중국 현대화가 왕싱웨이의 〈poor old Hamilton〉까지, 일제 강점기 조선의 문화예술에서부터 디지털 테크놀로지시대 전지구적 차원의 예술에 이르기까지를 전시 공간의 복층화, 관람 동선의 나선형화, 작품 · 도큐먼트 · 퍼포먼스의 혼융을 통해 재구조화한 것이다.

이런 전시 공간의 구성과 해석학적 문맥화는, 일테면 화이트큐브의 중립적 공간에 연대기적으로 작품을 나열해 놓는 기존 미술관 큐레이팅에서는 혼란스럽고 논리적 비약이 심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말의 바른 의미에서 '미술관 또는 아트센터'를 창조성의 공간, 즉 인간의 창조적 상상력이 집결하고 또 그것이 새로운 문화와 예술로 발전하는 역장(force-field)이라 할 때, 미술관이 정적인 분위기를 고집하고 변화와 도약을 꺼리는 것이야말로 모순이다. 특히 백남준 자신이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이라고 명명한 백남준아트센터의 경우, 그런 보수적 큐레이팅은 백남준의 이름을 걸고 백남준을 배반하는 일이다. 백남준아트센터의 관장 이하 학예팀은 이런 모순을 스스로 범하지 않기 위해, 〈Now Jump〉를 역동적 축제로 만들었다. 그리고 앞으로 더욱 학예팀의 편성을 정확히 함으로써 큐레이팅, 조사 연구, 실험, 교육 파트가 각각의 역할을 명확히 수행하는 동시에 상호 의사소통 관계 속에서 '지적, 예술적 시너지'가 발현되도록 할 것이라 한다.

우리는 아직까지 유명세만이 아니라 그 실체적 가치나 내용 면에서 '세계적인 미술관 또는 문화예술공간'을 갖지 못했다. 그것은 단기간에 체제를 바꾼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며, 갑자기 재원을 쏟아 부어 그럴듯한 건축물을 짓는 것으로 가능한 일도 아니다. 정작 핵심은 '예술의 정신이 사는 집, 그 정신이 현실이 되고 미래를 선취할 길이 열리는 집'을 꾸리는 데 있다. 아마 그것은 백남준아트센터가 첫 단추를 '도약(jump)'으로 끼웠듯이, 국공립 미술관의 큐레이터쉽이 도약을 감행하는 데서 시작할 것이다. [사진제공 _ 백남준 아트센터]


 

강수미

필자 소개


강수미는 홍익대 회화과, 대학원 회화과 석사를 거쳐, 동 대학원 미학과에서 『테크놀로지 시대의 예술 - 발터 벤야민 사유에서 유물론적 미학 연구』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미학연구자이며 미술비평가, 독립 큐레이터로 일한다. 또한 현재 홍익대, 한국예술종합학교, 동덕여대, 성신여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1) 2008년 3월 6일자 기호일보 정치면

참조. 이상의 인용은 전부 경기문화재단 권영빈 대표이사의 말로, 신문에 보도된 내용.
2) 경기문화재단의 통합 운영으로 예견된 문제는 이미 현실화됐다. 2008년 7월 14일 연합뉴스와 7월 15일
한국일보 사회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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