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제작 노하우② 계약

선택도 지키기도 프로듀서의 몫

김종헌 _ 쇼틱커뮤니케이션즈 전 대표

공연제작자의 역할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제 공연제작은 단순히 공연창작의 물적 조건(예를 들어 제작비)을 마련하는 데에 머물지 않는다. 소재발굴부터 작가. 연출, 배우를 비롯 창작그룹을 구성하는 등 창작단계에서부터 완성까지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우투'에서는 공연 제작자의 다양한 역할을 점검하고 실행방법을 살피기 위해 김종헌 쇼틱커뮤니케이션즈 전 대표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 제작 노하우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연재순서 ② 계약
애초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 계약조건에 대한 소신을 정확히 피력하는 것이 좋다. 당장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의미가 분명하지 않은 계약서를 쓰게 되면 두고두고 갈등의 시한폭탄을 안고 가는 셈이다. 강조하지만, 선택은 프로듀서의 몫이다. 단, 그 조건을 지키는 것 또한 프로듀서의 몫이다.

돈이 계약서를 만들었다. 좀 과격한 표현이긴 하지만, 계약의 주된 존재 이유는 돈이다. 거래액이 작을 땐 서면계약 대신 구두계약을 하기 십상이지만, 거래액이 커지면 서면으로 책임과 권리를 분명히 하게 된다. 심지어 보험까지 드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공연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 연극시장에서 계약서가 아직도 본격적으로 통용되고 있지 않은 것은 영세한 현실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의 뮤지컬시장은 계약서와 함께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뮤지컬컴퍼니는 주식회사로 시작했거나 주식회사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계약서의 등장은 시장의 규모에서 비롯되지만 이뿐만 아니라 투자사나 세무당국에 제출해야 할 비용 증빙 등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이다. 즉, 돈을 주고받는 당사자의 책임과 권리 그리고 돈의 쓰임을 인정 받기위해서도 계약서라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이다.

여기서 소개될 계약서 항목들은 현재 공연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항목과 함께 필자가 제안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 가지 밝히고 싶은 것은, 필자의 가치관은 프로듀서로서 살아온 내력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예술가의 입장에서 보면, 일부항목에 대해서 이견을 가질 수도 있고 또는 불공평하다고 생각 할 수도 있다. 표준계약서라고 하는 것은 어차피 끝없는 수정에 의해서 조정되는 것 아닌가. 그런 긴 수정의 여정의 첫 출발이라고 생각해주길 바란다. 이 글에서는 작가 그룹과 배우와의 계약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북뮤지컬 이후 창작자 권리 높아져

100여 년 전부터 쇼비즈니스를 발전시켜온 미국의 경우를 살펴보자. 19세기 말 영국에서 건너온 길버트&설리번의 작품들 이후 쇼비즈니스계에 저작권의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27년 뮤지컬 <쇼 보트>(Show Boat)의 공연부터 본격적인 저작권자의 요구가 수용되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쇼 보트> 이전의 공연들은 소위 일관된 스토리를 갖고 있지 않은, 다양한 액트(act)로 구성된 일종의 버라이어티, 보드빌(minstrel show), 그리고 민스트럴쇼(minstrel show) 등이었다. 강호동이 진행하는 방송프로그램 <스타킹>을 연상해도 무리가 없다.

당시 거의 모든 예술가들은 제작자로부터 주급을 받고 공연을 하거나, 음악과 촌극을 만들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몇몇 뛰어난 노래와 배우들이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프로듀서에 맞서 논쟁할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작사가, 작곡가, 예술가는 없었다. 미국의 영원한 쇼맨이자 위대한 프로듀서로 존경받으며 당대 최고 권력의 왕좌에 있었던 플로렌즈 지그필드(Florenz Ziegfeld)도 뮤지컬 <쇼 보트> 이후 창작자의 영향력에 많이 위축되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쇼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프로듀서의 영향력보다 (<쇼 보트>를 효시로 보는) 소위 북뮤지컬을 창조해내는 창작자들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렇듯 계약은 시대적인 상황변화, 그리고 힘의 균형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로 변천해왔다. 굳이 발전이나 진화라는 단어 대신, 변천이라는 용어를 쓰는 이유는 지금 통용되고 있는 것이 도덕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더 낫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계약은 당대의 사회상황과 대상자의 여건과 요구에 따라서 체결되는 것이다. 선대에 맺은 계약이 당대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고 비상식적이라 할지라도 일방적으로 비난하거나 비판할 수는 없다. 현재 우리가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계약도 후대의 상식에선 비정상적으로 평가될 수 도 있는 이치와 같다.


작가그룹과의 계약 유형

미국의 작가그룹과 프로듀서는 아래와 같이 계약유형의 변화를 겪어왔다.

1. 바이아웃피(Buy-out Fee; one time buying)

지금의 저작권양도계약 방식을 말한다. 최초 지급된 사례 외에는 더 이상 금전적 보상은 없는 셈이다. 과거에만 존재했던 낡은 구습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지금 대학로에서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오픈런 뮤지컬 중에도 저작권양도계약서를 쓴 경우가 있다. 이해관계에 따라서 이런 형태의 계약도 가능하게 된다. 큰돈 또는 돈이 급하면 어떤 조건인들 어떠랴. 후에 불공정 계약이니 뭐니, 하며 송사를 할 수 있겠지만, 당장은 가능하다. 예술가들도 공연이 오랜 세월동안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지각하고 최초 받는 금액을 조금 작게 받더라도 지속적으로 수익을 분배받기를 희망하게 된다. 그래서 나온 계약 유형이 수익분배이다.

2. 수익분배(Sharing of Net Profit)

저작권양도 방식이 공연의 수익과 관계없이 창작물과 그에 대한 권리를 일괄적으로 팔고 사는 것이라면 수익분배는 공연의 수익에 따라 개런티를 지급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공연이 자주 올라가기는 하나 흥행은 별로 신통치 않은 경우가 대다수라는 것을 경험한다. 수익배당이라는 권리는 있는데, 수익이 안나니 결국 받을 수 있는 것은 없는 셈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매출에서 배당을 해달라고 주장한다.

3. 매출분배(A portion of the gross box office receipts)

매출분배는 흥행과 상관없이 매출의 일정비율을 무조건 지급하는 것이다. 프로듀서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합의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조건으로는 공연이 활성화되기 어렵다. 새로운 작품이 제작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조건이 좋으면 뭐하나, 제작이 안 되면 다 그림의 떡 아닌가. 그래서 프로듀서와 작가그룹은 다시 한 번 새로운 계약형태를 만들어내게 되는 데, 바로 그것이 로얄티풀 개념이다.

4. 로열티 풀(Royalty Pool - the fixed costs)

로열티 풀은 현재 브로드웨이의 전형적인 계약방식으로, 수익을 내기 전까지는 고정비용, 즉 최소사례비를 적용하며, 매주 수익에 대해서 최대 50%까지 배당받는 방식이다. 단, 이 로열티 풀에는 프로듀서와 기타 디자이너까지 포함된다. 그리고 한국과 중요한 차이점 하나는, 그들은 전용관에서 오픈런으로 공연을 한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투자사 입장에서도 장기적인 수익모델을 감안할 때, 그리 나쁜 조건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몇 가지 보완된 점들이 있는데, 로열티 캡(Royalty Cap)이라고 해서 지나치게 높은 로열티를 제어하는 방안, 그리고 프로듀서 오피스 차지(Office charge) 명목으로 프로듀서의 몫을 챙겨주는 방안 등이다.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 제작 회의



작품 수정 기간, 사례 지급 방식 따로 정리해야

그렇다면, 한국에서 뮤지컬을 제작하면서 작가들과 어떤 형태로 계약을 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일까? 공연을 처음 만들고 나서 그 공연 덕에 밥 먹고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길 때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 상례다. 그리고 그런 기회가 누구한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작품이 캐시카우(Cash Cow)가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프로듀서 입장에선 가능한 마지막 순간까지 끊임없이 투자를 해야 하며 그리고 통상 수정작업도 병행된다.

우선 작품 수정, 개발(development) 기간에 대한 사례 지급 방식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초연 이후, 수정 작업이 이루어지는 기간과 더 이상 음악과 대본의 수정이 없는 공연 기간으로 나누어 생각해보자. 수정 기간에는 몇 차례의 단기공연이 계획될 수 있다. 그 때마다 작가들은 창의적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한다. 예를 들면, 없던 곡을 새롭게 작곡한다든지, 기존에 있던 장면을 새로운 장면으로 대체하거나 또는 새로운 캐릭터를 추가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대본, 가사 그리고 음악 전반에 대해서 많은 수술이 불가피하게 된다.

따라서 수정 기간 동안 행해지는 수정 작업에 대한 사례가 따로 필요한데, 이때는 추가적으로 원타임피(One Time Fee)를 주는 것이 좋다. 그리고 수정작업이 끝나면, 저작권자에게 매출에서 낮은 퍼센티지를 지급할지, 최소 개런티와 수익에서 높은 퍼센티지를 지급할지는 전적으로 프로듀서의 의지에 달렸다.

그러니까, 애초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 계약조건에 대한 소신을 정확히 피력하는 것이 좋다. 당장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의미가 분명하지 않은 계약서를 쓰게 되면, 두고두고 갈등의 시한폭탄을 안고 가는 셈이다.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의 저작권 분쟁은 매우 좋은 사례이다. 부실한 계약서 덕에(?) 결국 제작사S는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의 공연권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다만 제목은 같이 쓸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데, 내용 없는 알맹이가 어떤 힘을 발휘할지 모르겠다. 아래는 필자가 2009년 현재 추천하는 계약조건 요약표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선택은 프로듀서의 몫이다. 프로듀서가 정하면 된다. 단, 그 조건을 지키는 것 또한 프로듀서의 몫이다.
 

[표1] 추천 계약조건 요약



합병계약서의 중요성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음악과 대본의 합병계약서다. 지금 당장 아무리 사이가 좋더라도 사람일은 아무도 모른다. 죽고 못 사는 사이였던 관계가 나중엔 한사람을 죽여 버리고 말겠다고 덤비는 사이로 바뀌는 것을 간혹 본다. 또한 음악그룹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여럿이서 한 작품을 작곡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네 곡, 내 곡하며 싸운다. 이런 일로 인해 잘 나가던 작품이 망신창이가 되고 결국은 공연이 지속되지 못하던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머저(Merger) 계약서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예술가들의 의견차이로 인해 작품이 이산가족이 되는 것을 막는 합법적 문서인 셈이다. 브로드웨이에선 이런 머저계약서 없이 공연을 올리는 멍청한 프로듀서는 아무도 없다. 그런데 한국에선 머저계약서를 쓴 프로듀서를 필자는 아직까지 한 번도 본적이 없다. 한국도 이런 분쟁의 소지가 있는 공연이 제법 있는 것으로 안다. 송사로 번지기 전에 가능한 지금이라도 수정 보완 해놓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 생각한다.


내용 꼼꼼하게 챙기고, 조율 조율 조율!

이젠 배우들의 계약서다. 배우는 주역배우와 앙상블로 구분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배우들과의 계약서에는 배우가 지켜야 할 의무사항이 자세히 들어간다. 하지만 아무래도 어렵게 섭외하는 스타배우에게 배우가 지켜야 할 의무사항을 일일이 적용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또한, 요즘 스타배우들은 늘 매니저들과 함께 있어 여간 신경 거슬리는 일이 아니다. 일단 주역배우들과 접촉할 때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연습장면

주역들은 회당 지급, 주당 지급, 또는 전체출연료를 일괄 지급하는 경우로 구분할 수 있다. 또한 앙상블들은 최소 사례를 받는 배우를 기준으로 공연경력과 나이가 높을수록 좀더 많은 출연료를 지급한다. 아래는 앙상블 배우계약서의 주요 항목과 추천 계약서 양식 샘플이다. 주역배우 계약서는 아래의 항목 중 예민한 부분, 예를 들면 녹음, 방송홍보 활동 등과 관련한 부분은 사전에 조율을 하거나 서명 전에 조율이 어려우면 후에 따로 구두로 협의를 하게 된다. 또 한 가지, 패널티와 관련된 조항 역시, 특급스타가 특정 조항을 거절한다면 프로듀서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모든 프로듀서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반대로 특급스타 모든 배우들이 차별적인 대우를 요구하는 것 역시 아니다. 다만 대개의 경우 그렇다는 것이다.

 


구분 조항 세부조항
제1조 계약의 목적    
제2조 공연개요 공연명칭
공연기간
공연장소
제작사
제3조 기본일정 사전준비(제작발표회등)
리허설기간
공연기간
제4조 권리의 귀속     
제5조 '출연자' 의무규정     
제6조 계약기간 및 효력     
제7조 출연료의 내용 및 산출근거     
제8조 출연료의 지급     
제9조 출연자 관련 기타사항 지각규정
공연불참규정
홍보 및 프로모션 규정
초대권 사용 및 배우 할인티켓 구매 규정
제10조 제작사 의무규정     
제11조 계약의 해지     
제12조 계약 불이행에 대한 책임과 배상 범위      
제13조 불가항력     
제14조 계약의 양도 및 변경     
제15조 비밀유지      
제16조 분쟁해결 및 관할법원       
제17조 효력발생       
양측 서명            
 
[표2] 뮤지컬 배우 출연계약서의 주요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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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했으면 토 달지 말고

계약은 구두이든 서면이든 지켜야 한다. 그리고 기분 좋게 지킬 수 있는 조건이 되도록 서로가 사전에 조율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형평성이 기운 계약은 계약 당사자 간의 불신과 불만으로 인해 결국 서로에게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더욱이 공연은 오랜 시간을 통해 결과가 나오는 비즈니스이다. 이런 기나긴 레이스에서 파트너와의 신뢰는 그 어떤 요소보다 중요하다. 계약서명은 신중해야 하며, 조건에 대해선 상대방의 입장 또한 고려하는 노력과 함께 합리적인 선택이 나올 수 있도록 상호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서명 이후에는, 다소 불만족스러운 조항이 있더라도 제발 토 달지 말고 즐겁게 지켰으면 좋겠다.





김종헌  

필자소개
김종헌은 뮤지컬 프로듀서이자 목원대 성악뮤지컬학부 전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연극연출과 배우를 거쳐 (주)PMC의 뉴욕지사장과 상무이사를 역임했으며, 2006년 (주)쇼틱커뮤니케이션즈를 설립, 2009년까지 대표로 재직했으며, 창작뮤지컬 <컨페션><첫사랑><소리도둑><내 마음의 풍금><달고나> 등을 제작했다. 현재 한국뮤지컬협회,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의 이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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