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커니즘에 대항하는 ‘거리’에서의 리스크 매니지먼트
임인자 _ 서울변방연극제 예술감독
지난 4월 7일(수)부터 10일(일)까지 나흘 간 오후 5시 50분부터 오후 7시 10분 사이 광화문 세종로 일대에서는 어떤 사건들이 펼쳐졌다. 세종문화회관 앞 거리에 두 여자, 교보빌딩 앞 한 평 공간에 한 남자, 그리고 그 공간에 침범하려는 마스크를 쓴 어린아이, 거리의 악사, 청계천과 SK빌딩 사이 버스정류장에 낙서하는 여자, 다투는 커플, 청계천 난간에 매달린 한 남자, 코리아나 호텔 객실의 무언가. 사람들은 이것을 '도시이동연구 혹은 연극 <당신의 소파를 옮겨드립니다>'(연출 이경성, 제작 크리에이티브 바키ㆍ서울변방연극제)(이하 <당신의 소파>)의 공연이라고도 했고, '광화문 괴물녀'의 퍼포먼스라고도 했고, 누군가는 아무 일도 없었다고 했다.
연출가와 공연팀이 광화문과 시청 일대를 공연공간이자 재료로 삼을 때 거리의 매커니즘을 이해하는 일은 중요했다. 일회성 퍼포먼스나 해프닝으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며칠에 걸친 지속적인 공연을 통해 공연의 파장과 그 방식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했다. 주변 빌딩의 점심과 퇴근시간을 탐색했고 사람들의 행태에 대해 연구했고 그 결과 위의 공간들이 공연장소로 섭외되었다. 그 과정에서 아무런 경계도 없어 보이는 거리를 둘러싼 매커니즘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차원'들의 생성이었고, <당신의 소파> 공연은 이러한 모든 과정에 대해 집중하면서 사이의 경계들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거리'는 누구의 것인가 : 소유와 관리 주체
공연이 일반적인 공연장이 아닌 특정 건물 및 거리 등의 공간에서 진행될 경우, 먼저 각 장소별 소유 및 관리 주체를 파악해야 한다. 특히 공연이 진행되는 거리에서는 다양한 돌발상황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그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소유주체 및 관할 기관과 접촉할 필요가 있다.
인도 및 차도를 포함하는 '거리'의 경우 대부분 공공 영역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30센티나 1미터 간격으로 공공, 혹은 민간, 혹은 공공과 민간 공동 소유라는 여러 경우의 수가 있다. 공연 전에 반드시 공연 공간과 영역을 정확하게 살펴야 한다. 관할기관에 문의하는 방법도 빠르지만, 가장 정확한 방법은 법원의 등기 사이트에서 '지적도'를 열람 및 발급받아 확인하는 것이다. 이렇게 소유 주체를 확인하여 공간 사용의 목적과 방향에 따라 소유주에게 장소 사용 허가를 받게 된다. 또한 소유 관계를 넘어 관할 경찰청이나 경찰서 등의 공적 관할 주체가 있기 때문에 그 역시 확인해야 한다. 배우의 동선, 시설물 접촉, 무대 설치 위치 등에 따라 공연의 미학적 효과와는 별개로 실행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용하고자 하는 공간의 소유나 관리의 주체가 민간일 경우, 법률이나 제도의 규약에 따라 접근이 어려운 공공 영역과는 달리, 접근하기 쉽고 의사결정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공공의 영역'에 대한 책임이나 의무가 없기 때문에 개별 내부 방침을 보다 공고히 하고 있다는 역설적인 측면이 있다. 관리 규약이 없거나, 회사의 방침과 관리상의 문제, 혹은 공연이나 연극을 수용했던 경험이 없기 때문에 허가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사용 허가를 위해서 민간기업에 문의할 때에는 대체적으로 관료적 입장을 취하게 되는 관리운영 파트보다는 홍보나 기획파트처럼 문화예술에 대한 필요성과 효과에 대해 소통할 수 있고 적극적으로 공간을 발굴하고 이해할 수 있는 파트를 조사하여 접촉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공공의 경우, 사용하고자 하는 공간의 특성과 관리운영 주체에 따라 접촉 대상과 방법이 달라진다. 서울의 공원에서 공연할 경우에는 서울특별시 푸른도시국과 접촉해야 한다. 이곳은 서울 시내 공원을 통합 관리 운영하는 곳으로 온라인 혹은 방문으로 허가 절차를 진행하면 된다.(서울의공원 사이트) 공원 외 대부분의 공공시설 혹은 각종 시설물은 서울특별시 시설관리공단에서 관리한다. 광화문광장, 서울광장, 청계광장, 세운초록띠광장 등 서울시 주요광장 관리(실제 각 광장에 대한 관리업무는 개별사업소(광화문광장의 경우 서울시 도심활성화담당관실) 역시 이곳에서 담당한다.
공원 및 주요 시설이 아닌 공공영역은 서울시청 도시정책관련 부서 및 개별 구청의 건설관리과, 도시교통과 등의 행정관청에 문의해야 한다. 또한 관할 경찰청과 경찰서는 행정구역상의 매커니즘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이웃한 장소라도 관할 경찰서가 달라진다. 따라서 사전에 경찰청 등에 공연공간의 관할 주체에 대해 문의할 필요가 있다. 거리에서의 공연을 계획하고 행정관청에 문의할 때 문화예술과 등을 떠올리기 쉽지만, 허가 등의 행정절차와는 무관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문화예술관련 부서와는 행사나 공연에 대한 이해나 협조를 위해 접촉해 두는 편이 유리하다. 그 밖에도 지역의 시장연합회, 상인연합회 등의 지역 이해관계자와의 협력관계 역시 제도나 규정을 넘어 거리에서의 공연에 있어 중요한 협력 주체다.
<당신의 소파>의 경우 사전에 모든 행정절차와 협조요청이 끝났던 공간에서 공연 전날부터 화단공사가 시작돼 공연장소를 급박하게 수정하고 관계기관과 협의해야 하는 일도 있었다.
공간의 소유여부와 상관없이 '거리'라는 공적 공간을 둘러싼 여러 매커니즘 중에는 법률이라는 제도가 존재한다. 인도와 도로 등의 사용에 있어서 법률로 규정한 여러 요건들이 사용에 대한 허가뿐만 아니라, 사용 이후에 벌어진 행위나 결과에 대한 판단까지도 구속하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법적 제도들이 공연 공간 및 공연의 내용과 행위를 둘러싸고 있는지 파악하고 대처하는 것은 거리공연에 있어서 중요하다. 광화문 광장의 경우, 대체로 사용일로부터 60일전부터 7일전까지 ①사용신청서, ②행사계획서, ③사용위치도, ④시설물 설치내역 및 원상복구 계획서를 이메일로 접수하고, 유선으로 접수 사실을 알리면, 허가여부를 결정받게 된다. 광장의 사용은 사안에 따라 시민위원회 행사승인 심의회의에서 결정하는데 이때 허가의 기준은 「서울특별시 광화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 중 '시민의 건전한 여가선용과 문화활동 등을 위한 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필요한 사항'이다. 공원의 사용 역시「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및「서울특별시도시공원조례」에 따라 사용 허가를 결정한다.
'거리'의 사용은 도로교통에 방해가 되지 않는 한 경찰서 교통관련 부서에 신고하거나 허가를 받을 필요는 없지만 지역의 규모나 특성에 따라 제한의 여부가 다르며, 보도와 차도에서 어떤 행위를 하느냐에 따라 관리 및 허가 주체가 달라진다. 이를 둘러싸고는「도로교통법」상의 문제들에 대해 검토하면 된다. 걷는 행위, 바퀴(輪)를 동반하는 행위, 관객들이 이동하는 행위 등의 다양한 행위요소, 교통의 흐름에 대한 판단 등이「도로교통법」상 합법적 행위와 불법적 행위 사이를 가르게 된다.
무대 설치 및 각종 장비 등의 설치를 위하여 도로나 인도를 사용할 경우, 그 장소를 점용('도로점용')하는 것에 대한 허가를 받아야 한다. 기간에 따라서는 '도로영구점용' 혹은 '도로일시점용' 신청을 해야 한다. 이에 대한 관리주체는 국도의 경우 국토해양부, 국가지원지방도는 도나 특별자치도, 고속국도나 지방도 등은 해당노선을 인정한 행정청에서 관리한다. 도시의 소규모 거리의 경우 대체로 구청 건설관리과나 도시교통과 등에서 관리하는 경우가 많다. 시설의 관리와 사용 허가를 관장하는 것이「도로법」으로 '제4장 도로의 점용 규정'에 따라 신청, 허가, 제한 등의 모든 사항이 관장된다. 이때 허가에는 일주일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고, 사용하고자 하는 위치와 면적을 정확히 신청서에 표기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사전에 정확히 계획되어야 한다.
또한 공연의 성격에 따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반드시 검토해 둘 필요가 있다. 순수목적의 예술 활동의 경우 제약사항이 없지만 행위의 종류에 따라 문화예술활동을 집회로 볼 것인가의 여부와 적용은 해석에 따른 주관적 여지가 다양하게 개입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검토 숙지하고 대처 방안을 모색해둘 필요가 있다. 또한 광화문 광장을 둘러싸고 미국대사관과 같은 특수상황(치외법권 인정지역)의 경우 100m 반경 내로 활동에 제약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도 사전에 검토할 필요가 있다.
'거리' 누가 사용할 수 있는가 : 행위의 자율성
위와 같이 공연이 이루어지기 위한 공간의 소유 및 관리 주체와 해당 관련 법률과 제도들을 파악하고 나면 과연 공연에 대한 목적과 방향을 유지하면서 거리로 나설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발생하게 된다. 왜냐하면 앞서 살펴본 광장의 경우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 주최 행사'를 우선적으로 배치(「서울특별시 **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하기 때문에 순수문화예술활동을 하는 민간단체의 사용은 현실적으로 힘든 상황이다. 특히 광화문광장의 경우,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시의 중심 광장으로서 그 사용에 있어 국가의 행사, 국제급 행사, 시의 행사 등으로 정하고 있어 공공기관 관련행사가 아닌 민간단체의 문화예술활동에 대해 허가를 하지 않는다.
<당신의 소파>가 사용하려고 했던 시청광장의 경우, '설치된 무대 구역' 이외의 공간은 주최측에서 잔디보호대를 설치해야 공연이 가능하다고 하여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잔디보호대를 설치하는 비용은 천만 원에서 이천만 원에 이른다.) 또한 무대 및 장비를 임시로 보관하기 위한 일정 구역은 사유지와 공유지가 이어져 있어 허가 여부에 따라 사용 장소를 달리해야 했는데, 이때 일시도로점용을 위한 사용허가 역시 민간단체에게는 쉽지 않았다. 특히 건설공사 등은 상관이 없지만 행사 등의 모임은 국가기관의 행사만이 허가를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때문에 구청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같은 국가기관의 행사에 대한 보증(개런티)이 있어야 허가가 가능하며 이것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의 기관협조가 필요했다. 다행히 <당신의 소파>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다원예술분야의 지원선정작이었기 때문에 이를 통해 관계기관의 협조를 구할 수 있었다. 또한 공연 준비 기간 중에 이 공연이 동아연극상 새개념연극상 부분 후보작으로 선정되어 동아연극상을 주최하는 동아일보의 협조를 구하여 세종로 사거리의 일민미술관 등의 협조를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만일 이 공연이 각종 제도와 법률에 따라 내용상으로 문제가 있는 공연이라는 판단될 경우 전개는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거리에서의 행위와 관람자의 행위를 예술의 자율성, 표현의 자유로까지 연결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몇 가지 사건들 : '도시 괴물녀'와 '광화문 괴물녀'의 간극
공연관계자와 관람객의 안전 등의 문제를 위해 개별상해보험을 가입했다. 하지만 상해보험에도 관람객의 숫자나 불특정 다수의 안전에 대해서는 특별한 산정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고 불특정 다수에 대한 교통사고 등은 적용받지 못하는 형태였다.
공연 기간 중 급작스럽게 '광화문 괴물녀'가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며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또한 환경 이슈와 맞물려 퍼포먼스의 목적과 이유를 밝히려는 전화도 빗발쳤다. 공연의 '조사'를 위해 문화부가 아닌 사회부 기자들의 취재와 경찰의 전화가 이어지면서 우리들의 목소리가 무엇인지 밝혀야한다는 생각에 이르러 몇몇 언론에 접촉했다. 인터넷에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그 날 오후 카메라를 든 몇몇의 방송과 신문의 기자들이 공연장에 와서 '괴물녀'를 찾았고, 우리는 그날 현장에 등장하지 않는 '괴물'의 의미를, 우리가 공연을 통해 던지려던 질문은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하기에 바빴다. 이러한 소동 덕분에 세종로에 있는 수많은 전광판을 천만원을 호가하는 사용료 때문에 포기해야했던 제작자로서 공연에 관한 해프닝 뉴스가 전광판 한줄뉴스를 통해 전해지는 것을 보는 경험도 아이러니한 것이었다.
관객들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거리를 활보하며 공연을 보고 체험하면서 '숨겨진 차원'을 발견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발견의 의미는 관객의 몫이며 관객들이 발견하는 시선들이 된다. 이러한 미학적 방향을 함께 유지하고 지지하기 위해 어떻게 조화롭게 모든 과정을 운용할 것인가에 대한 리스크 매니지먼트(Risk Management)가 이 공연의 중요한 축이 되었다. 이러한 모든 행정절차상의 문제와 일어난 사건들을 해결하는 것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과연 작품의 미학적 방향성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이슈들로 전환되었다.
불법과 합법을 오고가는 혹은 허가와 불허 사이의 공간을 오가는 행위들, 실제 공간과 가상공간의 영역, 작품의 주제의식과 도시의 시스템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 보이지 않던 공간의 관리자들이 공연을 통해 현장에 드러나면서 극적 요소들로 편입될 것인가에 대한 문제들 그리고 도시에서의 해프닝이 어떻게 소통되고 있고 무엇을 소통할 것인지에 대한 창구와 방법론을 고민하는 모든 과정이 그것이다. <당신의 소파>가 경험한 모든 사건과 행위, 연구 과정에서 제기되는 이슈와 의문 그리고 도시 관객들의 모든 시선과 관점이 바로 이 공연의 미학이었다.
사진제공 크리에이티브 바키·서울변방연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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