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 티켓 할인정책
조용신 _ 공연칼럼니스트, 뮤지컬 제작감독
제목도 생소한 작품들이 한주에도 여러 편이 티켓 오픈을 알리고 잘 알려진 공연도 저마다 새로운 홍보 문구로 자신들의 존재를 알린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치열한 티켓 판매 경쟁의 시작이다. 공연의 마케팅과 홍보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스스로가 총탄만 날아다니지 않을 뿐 매일매일 피가 마르는 전장에 내던져진 전사와도 같다고 말한다. 몇 달 동안 힘겹게 준비한 공연이 티켓 오픈 첫날 기대 이하의 반응을 보이면 초조함은 극에 달한다.
이런 치열한 환경 속에 있다 보니 이들은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고도 표가 알아서 매진되는 이상적인 상황을 꿈꾸기도 한다. 물론 아주 가끔은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한다. 조승우, 시아준수가 출연한 뮤지컬의 경우 객석 규모에 관계없이 그가 출연하는 횟수의 좌석은 예매 개시 몇 분 만에 동이 났다.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남들이 다 한다는 할인정책을 쓸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이런 일은 그야말로 가뭄에 콩 나는 것보다 더 드물다. 티켓 파워가 큰 배우가 출연하는 경우, 그 자체가 가장 자극적이면서 섹시한 문구가 되어 티켓 구매 부동층을 공략하기에 유리하지만 절대 다수의 공연들은 티켓 판매에 어려움을 겪는다. 공연 마케팅은 재고 없는 채소장수와 같아서 그날이 지나면 아무리 비싼 공연이라도 가치는 제로가 된다. 쓰레기도 남지 않지만 재활용이 애당초 불가능한 재화가 바로 공연 티켓이다. 마케팅 담당자들은 옆 좌석 관객의 가방 받침대가 되기 전에 어떻게든 비어있는 좌석을 채워야 한다. 그것도 유료관객으로 말이다.
이러한 마케팅의 전장에서 티켓 할인은 모든 이들의 고민이지만 피할 수는 없다. 그리고 피할 필요도 없다. 왜냐면 관객은 그것을 절실히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매진시킬 수 없는 공연의 마케팅을 하고 있다면 할인 정책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면 되지 않을까?
웨스트엔드, 브로드웨이 평균 할인율 20% 내외
런던극장협회(The Society of London Theatre, SOLT)가 발표한 웨스트엔드의 2008~2009년 시즌 매출 집계에 따르면 티켓 평균 액면가(Average Ticket Price Asked)는 42.18파운드이다. 하지만 실제로 평균 판매가(Average Ticket Price Paid)는 34.82파운드로 액면가에 비해 21.1% 적다. 액면가가 프로듀서가 작품에 매긴 선언적인 가치라면, 판매가는 관객이 실제로 지갑에서 꺼낸 가치로, 결국 이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은 할인 티켓 정책이다.
대서양 건너 브로드웨이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극장·제작자 협회(League of American Theatres and Producers)가 발표한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2009~2010년 시즌의 브로드웨이 티켓의 평균 판매가는 85.82달러이다. 이 보고서가 티켓 평균 액면가를 공식적으로 집계하고 있지 않기에 정확한 할인율은 알 수는 없지만, 2009~2010년 시즌을 기준으로 전체 매출의 85%가 뮤지컬이고(15%는 연극) 뮤지컬 티켓의 최고가가 131달러까지 오른 점을 감안할 때 브로드웨이 전체 평균 액면가는 대략 110달러 내외가 될 것으로 가정한다면 대략 22% 정도의 할인이 이루어진다고 추정할 수 있다.
재고 없는 채소장사, 당일 할인티켓…온라인 쿠폰으로 진화
브로드웨이의 할인정책은 관광객이 많은 (전체의 63%-국내 39%, 해외 24%) 시장의 특성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관광객은 현지인에 비해 단기간에 여러 편을 구매하려 하기에 할인정책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당일 티켓 구매에도 적극적인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채소장사'인 티켓 할인 방식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당일 할인티켓을 현장에서 판매하는 창구인 TKTS일 것이다. 이곳에서 관광객들은 작품에 대해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며 이곳에서 제공하는 25~50%의 상대적으로 높은 할인율에 관심을 보인다. 극장가 중심에 위치한 TKTS(브로드웨이의 타임스퀘어, 웨스트엔드의 레지스터 스퀘어)는 접근성이 뛰어나고 관광가이드북은 물론 호텔에서도 이용방법을 충분히 공지하고 있어 관광객은 항상 예측 가능한 시스템 안에서 할인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
객석 등급을 3등급으로 단순화하여 빨리 예매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좌석을 배정하고 늦게 예매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나쁜 좌석을 배정하되 할인을 해주는 교과서적인 할인 마케팅은 한 세기 이상 매일매일 객석을 채워온 그들의 노하우가 집대성 된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 대형 뮤지컬 상연이 가능한 주요극장들은 대부분 여러 지역에 걸쳐 광범위하게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TKTS와 같이 어느 한 장소에 할인 창구를 만드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을 수 있다.)
TKTS에서 제공하는 높은 할인율은 최근 온라인에서 더욱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많은 브로드웨이 관련 포털사이트나 할인 정보를 모아둔 사이트가 활성화되어 할인된 가격으로 예약까지도 가능하게 한다. 대표적인 곳은 플레이빌, 시어터매니아, 브로드웨이박스 등이다. 이곳에서는 공연별로 특정 시기에만 쓸 수 있는 할인코드를 제공하는데 소비자가 이를 온라인 티켓 예매시 입력하면 자동으로 할인해주는 방식이다. 이러한 '온라인 쿠폰제도'는 스마트폰과 결합되어 현재 엄청나게 인기를 끌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할인코드를 저장해 극장 매표소에 제시하거나 전화로 불러주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공연은 스마트폰으로 직접 할인코드를 적용해 신용카드로 결제할 수도 있다. 전통적인 할인 방식으로는 TKTS를 운영하는 극장개발기금에서 활용중인 우편프로그램에서 출발한 제도로서, 학생·교사·공연종사자들에 한해 브로드웨이 작품을 최저 28달러 정도로 할인해주며 이 역시 인터넷으로 예매가 가능하다.
성향, 관람행태, 신분 등 다양한 관객층 겨냥한 할인정책
할인정책을 수립할 때 해외 사례에서 특별히 고려해야 하는 사항은 수수료 문제이다. 영국과 미국은 모두 티켓 구매시 수수료를 제작사가 아닌 관객이 부담한다. 이는 서비스 차지(Service Charge:Tip) 문화가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수용이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대표적인 티켓예매처인 티켓마스터나 텔리차지는 공연마다 독점판매를 진행하면서도 액면가 이외의 높은 수수료($7~11)를 관객에게 추가 부담시킨다. 이러한 서비스 차지는 TKTS에도 있는데 상대적으로 저렴한 장당 3달러가 추가된다. 수수료를 피하는 방법은 오로지 극장 매표소에 가서 직접 구매하는 방법뿐이다. 이 말은 관객이 극장에서 티켓을 구매하는 것만으로도 결과적으로 1차적인 할인효과를 볼 수 있다는 의미이다.
또한 대다수의 공연은 당일 러시티켓을 맨 앞줄 혹은 뒷줄, 시야장애석, 입석 등의 다양한 형태로 제공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러시티켓 평균 가격은 25달러 정도로 이는 최고가와 비교하면 60~80% 이상 할인된 가격이다. 러시티켓을 도입하려면 극장 하우스 측의 절대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브로드웨이의 경우 최근 대부분 추첨(Lottery) 방식으로 바뀌었지만 링컨센터나 카네기홀처럼 여전히 선착순으로 판매하는 경우에는 매표소 앞에서 장기간 노숙하는 관객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관공연이 많아 극장이 제작사의 티켓 판매에 이해관계가 없는 경우가 많고 극장 매표소도 공연 시간에 임박해서 오픈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오전 10시부터 저녁 공연시간까지 매표소가 계속 열려있는 이러한 러시티켓 방식은 도입이 어려울 전망이다. 지난해 <렌트: 오리지널 내한공연>에서 이 방식을 도입해서 마니아 관객이 높은 관심을 보였지만 선착순 라인을 형성한 대기자 관객을 관리하는 데 미숙하여 문제점을 노출한 적이 있다. 하지만 러시티켓의 취지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관람 기회를 주는 것이다. 관광객으로 방문해서 짧은 기간 동안이지만 꼭 보고 싶은 공연이 있을 때, 혹은 주머니가 가벼운 열혈 학생인 경우 그저 부지런하기만 한다면 저렴한 가격에 티켓을 구할 수 있는 서구의 러시 티켓 문화는 경쟁 속에서도 소수 애호가를 배려하는 제도적인 장치라고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어린 관객을 유혹하는 '하이 파이브';가 있는데 중고생들만 회원으로 가입이 가능하며 미리 준비한 일정량의 티켓을 단돈 5달러에 판매하여 미래의 관객에게 투자하는 제도이다. 더불어 매우 인기 있는 가족공연의 경우 비공식적으로 공립학교들에게 한정적이나마 할인 티켓이 배분된다. 매진행진을 기록하던 뮤지컬 <라이언 킹>이 처음 공립학교에 35달러로 풀렸을 때 학생 인솔자로 나서려는 선생님들과 학부모까지 경쟁했을 정도였다. 현재도 <위키드> <넥스트 투 노멀> 등 청소년에게 인기가 많은 공연과 <멤피스> 등 드물게 올라오는 흑인 소재 뮤지컬이 한정된 숫자의 티켓을 공립학교마다 순서와 날짜를 정해 돌아가며 저렴하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이 관객들은 단체라는 특징 덕분에 열화와 같은 객석 반응을 보여주는데 특히 제작자들이 공연 분위기를 띄우고 싶을 때 남몰래 선호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제값 내는 관객을 위한 '플러스 마케팅' 필요
우리나라의 공연 제작사들도 대부분 공식적으로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50%에 이르는 할인 마케팅을 실시하고 있다. 문제는 조기 예매, 신분, 비수기 할인, 단체 등 기본적인 할인 항목 이외에도 관람객의 나이, 관람 요일, 동행인 숫자, 신분증에 포함된 특정 숫자 제시 등의 기상천외한 이벤트와 결합된 '보물찾기식' 할인 마케팅이 만연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거침없는 할인 경쟁'은 오히려 제작사의 수익구조를 장기적으로 악화시킬 위험이 있다. 관객들의 가격저항을 할인의 상설화라는 제살을 깎는 '마이너스 마케팅'으로만 해결하려 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티켓 가격을 낮추고 제 값을 주고 사면 각종 혜택을 주는 '플러스 마케팅'의 비중을 높여가야 한다.
할인은 피할 수도, 피할 필요도 없이 공연 마케팅의 중요한 한 축을 차지해왔다. 결국 할인 정책은 가격 왜곡을 없애고 대중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공연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여정이 되어야 한다. 당장 여분의 좌석을 판매한다는 단순한 이익의 차원을 넘어서 새로운 관객을 개발하는 가장 매력적인 수단이라는 생각으로 접근한다면 제작사와 관객이 모두 행복할 수 있는 지점이 멀지않은 곳에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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