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투] 독립큐레이터 입문지침

‘독립’을 위해 필요한 것들

이대범 _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참조이미지 - 페인팅 작품을 전시 중인 갤러리 사진
참조이미지 - 미디어아트를 전시 중인 갤러리 사진

미술현장을 살펴보면 '다양한 목적'으로 전시를 기획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그들을 '큐레이터'라는 표준화된 이름으로 부른다. 일반적으로 '큐레이터'는 학예연구를 담당하며 전시를 기획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하나의 이름으로 호명하지만, 그들은 '다양한 목적'에 따라 전시를 기획한다. '미술관' 큐레이터, '상업' 큐레이터, '비영리' 공간 큐레이터 등 그들의 전시는 공간에 따라 그 목적을 달리한다. 당연지사 단일한 이름인 '큐레이터'는 그들의 이질적 차이를 지우게 마련이다.

'큐레이터', 이름은 하나지만

컨템포러리 미술의 시기적 기준점은 제2차 세계대전이다. 어느 시기를 전문으로 다루느냐에 따라 큐레이터의 역할 역시 변모한다. 세계대전 이전의 미술을 다루는 큐레이터의 경우 소장품을 중심으로 자료를 정리하고 연구하는 학예직의 역할을 수행한다. 반면 세계대전 이후, 즉 컨템포러리 미술을 다루는 큐레이터의 경우 생존 작가와 자주 마주하게 된다. 이때 큐레이터는 작가와 협업을 기반으로 전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작가에게서 문제적 신작을 유도해야 한다.

상업갤러리 큐레이터의 경우는 예외적이다. 이들은 '큐레이터'라는 동일한 이름을 사용하지만, 그들의 권한은 매우 제한적이다. 왜냐하면 상업 갤러리의 목적인 이윤추구의 권한이 화랑주에 있기 때문에 큐레이터의 전시기획의 자율성이 제한적이다. 여기에 비영리 공간과 비엔날레가 미술제도록 급부상하면서 기관에 소속된 전업 큐레이터가 아닌 ';독립'; 큐레이터가 있다. 최근에는 한 직장에서 다른 직장으로 전직하는 과정의 무소속 상태를 가리키기도 한다.

그리고 미술사학과, 미학과, 미술이론과, 예술학과, 미술경영학과 등 미술이론 관련학과가 대학(혹은 대학원)에 증가했지만, 그들을 수용해줄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고, 근무 여건이 열악한 탓에 독립큐레이터를 자처하며 활동하는 이가 불가피하게 증가했다.

독립큐레이터 이은주는 "어떠한 공간의 이름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으로 기획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독립큐레이터로 정의한다. 여기서 방점은 '자신의 이름으로'에 있다. 다시 말해 전시에 필요한 제반여건(기획, 전시 공간, 예산, 홍보 등)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독립큐레이터에게 장점이자 단점이다. 공간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공간이 추구하는 목적에서 벗어나는 다양한 기획을 할 수 있다는 점은 독립큐레이터의 최대 장점이다. 하지만, 공간과 예산 등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고, 이러한 문제로 전시가 가변적이 된다는 것은 단점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을 필자가 독립큐레이터로서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해보겠다.

이미지로 발화하기

필자의 독립큐레이터로서의 시작은 아르코미술관에서 주관한 '2006 독립ㆍ신진 큐레이터' 공모에 당선된 후이다. 당시 월간 [아트인컬처]의 수석기자로 재직 중이었는데, 잡지 편집자로서의 경험은 전시기획자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작가의 이미지를 선택하고 그것을 정해진 지면에 리듬감 있게 배열하는 방식은 전시장 디스플레이 방식과 흡사하다.

많은 작품 가운데 어떤 작품을 선택할 것인지, 그리고 이 작업 다음에 어떤 작업이 올 것인지를 고민해야 했다. 특히 미술이론을 공부하면서 이미지는 글의 도판이었지만, 이미지 스스로가 생명력을 가지고 지면을 장악하는 지점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미지로서 작가와 자신의 담론을 발화하는 방식을 잡지사에 배웠다고 할 수 있다.

최선의 선택을 위한 인적 네트워크

또 다른 중요한 점은 작가들과의 인적 네트워크가 마련됐다는 점이다. 당연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기자들은 원로 작가이건, 선배 작가이건, 동시대 젊은 작가이건 그들과 쉽게 접할 수 있다. 대부분, 기획자들의 초기 전시는 친구, 또는 동문이라는 좁은 범위에서 이뤄진다. 그러다보니, 작품 선택에 있어서 최고의 선택이 아닌 차선의 선택인 경우가 많다. 결국 전시의 질은 차선의 선택의 종합으로 남게 마련이다. 이러한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작가 섭외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큐레이터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행위이다.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하고, 자신의 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상하관계가 아닌 동반자 관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준거집단 구성할 데이터베이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기자는 전시가 지닌 가치의 유무를 떠나 많은 전시를 봐야 한다. 작품 하나가 절대적 가치를 지니지는 못한다. 상대적 비교에 의해서만 한 작품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가 준거집단을 구성할 만한 데이터베이스를 가지지 못한다면 이 역시 우를 범할 수 있다. 끊임없이 전시를 보는 것이 이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친숙해서 낯선 풍경> 아르코미술관, 2006 필자의 첫 번째 전시로 독립- 신진 큐레이터 공모에 당선된 이 전시는 1980년대를 살아온 사람과 1990년대를 지나 2000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광장 혹은 도시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추적하는 작업이었다. 권순관, 노순택, 정재호, 김영은, 박영균, 조습, 최은경, 이제, 김보민 등이 전시에 참여했다. 뒤돌아 생각해보면 이 전시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으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전시이다. 이 전시를 관람한 문학평론가 친구는

돌발 상황에 마주설 때

독립큐레이터는 자유롭게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부가되는 제반 상황을 총괄해야 한다. 특히 공간과 돈을 어떻게 유통할지는 중요하다. 기금 신청을 하고, 전시장을 빌리고 하는 과정은 생각만큼 수월하지 못하다. 기금에 의존해 전시를 진행하다보니 전시는 예상과 달리 축소되고, 전시 진행에도 어려움이 따른다.

《소설 01: 이준호 ( )를 찾습니다》(2009, 테이크 아웃 드로잉 아르코)는 전시형태로 예상할 수 있는 것들을 제외한 전시로 기획되었다. 전시를 제외한 전시라는 기획 의도는 필자가 진행한 젊은 작가 발굴 프로젝트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사람들은 자기 집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다》(갤러리 175, 2007), 《그러나, 말하자면 두렵지 않다》(갤러리 175, 2008)는 졸업 후 작가 '되기'의 어려움을 겪는 젊은 작가들, 무분별하게 '소비'되어 사라져가는 젊은 작가들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진행했던 전시로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지만, 전시 준비할 때와는 또 다른 문제점을 발견한다. 즉 젊은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전시공간이 많아지고 상대적으로 기획전도 많아졌지만, 표면적 주제에 한정해 열리는 전시가 다수를 차지하면서 작가들은 기획전 자체에서 어떤 자극을 받는다기보다는 일정한 공간에 작품을 걸어 놓고 오는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시각예술가들에게 소설쓰기라는 과제를 제시했던 이 전시는 책 출간(혹은 낭독회, 출판기념회)으로 끝났어야 한다. 그러나 기금을 받는 과정에서 시각예술분야는 전시 형태로 이뤄져야 한다는 제한 사항 때문에 부가적인 전시의 형태가 가미됐다. 기획부터 미술에서 한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려 했으나, 종국에는 '전시'라는 일반적 형태로 귀결됐다. 그러기에 전시장을 찾은 관객은 전시도 아니고, 책도 아닌 어중간한 중간 지점을 바라봐야 했다.

모든 큐레이터가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독립큐레이터는 시스템에서 빗겨 있기에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가변성과 직접적으로 마주한다. 그 원인은 자금일 수도, 혹은 인력일 수도, 혹은 공간관련 문제일 수도 있다. 그 순간마다 '전시의 가치'를 잃지 않는 지점에서 적합한 선택을 해야 한다.



 

<소설01:이준호( )를 찾습니다> 테이크 아웃 드로잉 아르코, 2009 그간 시각이미지를 기반을 두고 작업을 전개한 작가들(참여작가는 남화연, 박윤영, 이미연, 이은우, 김영은, 김학량, 노순택, 조습, 이정민, 이득영, 현시원, 양아치, 김민애)에게 '소설'쓰기라는 새로운 과제를 제시했다. 기획자는 '이준호(혹은 준호)라는 이름이 한 번이라도 등장할 것'이라는 최소한의 제한만을 주었다. 어떤 대상(사물/사건/현상)을 지금까지의 창작 방법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가들에게 접근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이렇게 창작된 작가들의 소설을 묶어  필자가 만든 가상의 공동체인 'round about'에서 「본문 없는 주석」(2010, roundabout)으로 출간했다.

'자유'에 상당한 제약이 따른다 하더라도

독립큐레이터가 향유할 수 있는 '전시의 자유'에 상당하는 경제적 제약이 따른다. 독립 기획을 통해서 생계를 유지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최근 들어 기획 자체를 노동력으로 인정하려는 움직임도 있지만, 여전히 정당한 기획료를 주장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기에 대부분의 독립큐레이터가 대학 강사와 같은 직업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시스템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기획을 선택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여전히 독립큐레이터는 매력적이다. 즉, 독립큐레이터는 시스템과 시스템을 이동하며 자신의 자유를 누린다. 그러기위해서는 누구보다 빠른 발걸음으로 전시장을 찾아야 하며, 누구보다 많은 정보를 수집해야 하며, 누구보다 예민한 시각을 가져야 하며, 누구보다 비장한 수를 지녀야 한다. 그것이 당신에게 있기를 바란다.



참고 _ 독립큐레이터(혹은 큐레이터)와 관련된 최근 발표글
<한국 독립큐레이터의 오늘>,『월간미술』, 2010년 8월
이은주, <이동하는 기획자, 독립큐레이터의 세계>,『사립미술관협회 웹진』, 2008년 7월
임근준, <레이터와 평론가의 다양한 (현대적) 노릇>,『퍼블릭아트』, 2009년 11월



 
이대범 필자소개
이대범은 1974년 서울생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미술이론과를 졸업하고 200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에 당선되어 현재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포스트 민중미술, 무엇에 대한 포스트인가?' 등의 글을 썼다. 대표전시로는《친숙해서 낯선 풍경》(아르코미술관, 2006)《사-이에서》(원앤제이갤러리, 2010) 등이 있다. criticism74@gmail.com
 
weekly 예술경영 NO.112_2011.01.20 정보라이선스 정보공유라이선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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