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투] 전시 지원금, 제안서 작성 노하우

신뢰하고, 신뢰 받아라

오세원 _ 아르코미술관 학예실장

지나치게 전략적일 필요는 없지만, 제도권 내에서의 지원금을 원하는 만큼 제도권 언어에 익숙해져야 한다. 제도권 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대부분의 심의자들에게 진부하지 않고 흥미로운 개념을 선택하여야 한다. 지원서를 통해 새로운 언어를 이해시킬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한국은 공모의 홍역을 앓고 있다. 지금처럼 지원사업에 있어 공개모집 방식이 선호되는 이유는 널리 일반에게 공모의 기회를 열어놓는 것이 최선의 방식이며 지원금에 대한 투명성, 개방성, 공정성이 중요한 가치로 부각되고 전략화 되어있기 때문이다. 공모가 갖는 자유경쟁, 기회 평등이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선정에 있어 우수성을 따지는 한, 전문지식이 전혀 없는 일반인들이 지원금을 타게 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리고 주어진 짧은 시간에 몇 명의 심의자들에 의해 선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심의과정에서는 낯섦이나 생소함에 대한 모험을 최소화하게 된다. 여기에 개방성에 대한 약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문화예술을 경제적 기준으로 전환시켜 자유경쟁체제로 몰아가는 요즘, 공모가 압도적으로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지원금 분배 방식은 제도 및 시장의 앞날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는 경향에서 기인함이다.

 

 

파악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보를 구하라

전시나 프로젝트의 펀드레이징을 위한 제안/지원금을 받기위한 기본적 절차는 이미 알려져 있듯 기금을 다루는 기관의 미션과 기금의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 그리고 과거 기금수혜자들의 사례를 찾아보는 등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로비활동을 통해 최대한의 정보를 수집하고, 이에 따른 최적의 제안서(지원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정부, 기업, 일반관객 등 타깃에 따라 펀드레이징 방법과 제안서 작성은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적은 경험과 한정된 지면으로 이 모두를 아우르기엔 부족하기에, 여기서는 필자가 미술관 현장에서 지원서를 받으면서 경험한 것들, 특히 사건, 사례들을 위주로 효과적인 지원서 작성, 눈에 띄는 지원서들의 특징에 대한 몇 가지 의견들을 기술해보고자 한다.

우선 공고된 내용을 정확하게 꼼꼼히 읽거나 사업설명회를 통해 모든 정보를 습득한다. 그래도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공모사업 담당자에게 도움을 청해보자. 앞에서 언급한 절차 관련 모든 사안들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담당자이다. 특히 처음 지원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면, 서식에 맞는 작성 요령을 습득, 기입내용을 꼼꼼히 체크하여 불이익을 당하지 않아야 한다. 많은 문의를 해결해야 하는 담당자를 위해 공유 가능한 정보는 모두 습득해 두어야 한다. 도를 넘는 질문 및 행동은 피하고, 진정성을 가지고 예의를 갖춘다면 담당자는 당신편이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로비의 최우선 순위는 담당자와 친해지는 것이다.

참고사진 출처 아르코미술관

참고사진
출처 아르코미술관

두 번째, 심의자들이 전시 또는 프로젝트를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도록 사업내용을 작성하자. 전시 예상 이미지를 완벽하게 시뮬레이션 하여 보여주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전시가 실제로 구현되면 흥미롭겠다고 심의자들이 느낄 수 있도록 기술하는 것이 최선이다. 물론 컨텐츠 자체가 전시 공간의 성격에 맞는 기획, 새로운 감각과 작가 구성, 기획자의 사업 수행능력 등을 보여주어야 함은 기본이다. 말은 쉽지만 이것이 제일 힘든 부분일 것이다.

조금 거칠게 말한다면, 지나치게 전략적일 필요는 없지만, 제도권 내에서의 지원금을 원하는 만큼 제도권 언어에 익숙해져야 한다. 심의자들의 대부분은 제도권 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분들이기에 그들이 보기에 진부하지 않고 흥미로운 개념을 선택하여야 한다. 지원서를 가지고 전문가들에게 새로운 언어를 이해시킬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제도 내에서 논의되는 내용과 벌어지는 사건들에 예민하게 촉수를 세울 필요가 있다. 기금은 욕망의 크기만큼 제도권으로 진입할 것을 부추기면서 지속적으로 사람들을 길들이기 때문이다.

'프로페셔널함'을 어필

세 번째, 현실성 있는 적절한 예산안 작성이 중요하다. 한마디로 '초짜'인 것 같아 보이면 안 된다. 예산안을 보면 지원자의 전시 경험여부가 쉽게 구분된다. 따라서 담당자 외에도 지원금 수혜경험이 있는 동료에게 자문을 구해보는 것도 바람직하다. 비현실적이고 미진한 지원서는 1차에서 걸러져 버리기 때문에 사소한 것으로 어필할 수 있는 기회를 잃지 말자. 지원금으로 최대한 효과적인 전시경험을 하고, 우수한 성과를 내면 기회는 계속 주어진다. 이 때문에 일단 한번 지원을 받으면, 노하우가 쌓이고 두 번, 세 번은 더 용이해진다.

마지막으로 당연한 얘기 같지만, 서류심사에 통과하고 인터뷰를 하게 된다면 당신은 심의자들에게 진지하고 담대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만약 꼬투리 잡는 것 같은 심의자의 기막힌 질문이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평정심을 방해해도 동요함 없이 대처할 필요가 있다. 이는 심의자가 고의적으로 관심을 반대로 표현하여 당신의 대처방법을 시험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다.



지원서 작성 팁: 정보 파악 공고, 사업설명회를 통해 공유된 정보를 최대한 파악하라. 문의전화는 그 다음의 과정이다. 보편적인 개념과 언어로 작성 예술환경에 대한 촉수를 놓치지 말고, 심의자들의 특성을 파악, 이해가능한 언어로 작성한다. 현실성 있는 계획 제시 계획의 현실성이 지원자의 커리어를 드러낸다. 경험자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제안에 대한 확신 인터뷰 시, 곤란한 질문에도 당당하게 임한다. 진지한 태도 역시 중요하다.

신뢰가 심의 프로세스에 대한 전제


최근 필자는 한 전시기획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현재 공개모집하고 있는 지원 사업에 관해 사전 조율된 내정자가 있는지, 혹은 심사위원이 누구인지" 물어왔다. 이러한 질문 아닌 의심은 사실상 현장에서 활동해 본 사람들은 한번쯤 들어봤을, 말해봤을, 그래서 허탈한 마음이 들어봤을 종류의 것이다.

일단 이러한 말들이 회자되기 시작하면 효과적인 지원서, 또는 눈에 띄는 지원서 작성 자체는 사실상 그리 중요해지지 않는다. 함께 경쟁하는 선수들이 투명성이나 공정성이라는 측면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때 긍정적인 로비는 의심 가득한 짓거리가 되어버린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우리사회가 아직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 못한 사회임을 반증하는 사건이다. 이러한 사실을 직면할 때 우리는 효과적인 지원서 작성방안이라는 것이 과연 실체가 있는 것인지까지 의심하게 된다. 결국 모든 프로세스의 바탕은 신뢰를 담보한 성숙한 사회를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오세원 필자소개
오세원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 학예연구실장으로 재직하고 있다.《木3氏의出發》(이씨의 출발)《Greening Green 2010》《미디어 아카이브 프로젝트 2009》등 다수의 전시 및 프로젝트를 기획, 진행했다. 시카고미술대학에서 예술행정 석사학위를 받았고, 홍익대학교에서 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oksusu35@hotmail.com
 
weekly 예술경영 NO.118_2011.03.17 정보라이선스 정보공유라이선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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