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감독은 사실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 직업이다. 공연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 중에도 무대장치를 만들거나 이에 관여하는 사람을 무대감독이라고 생각하는 등 무대감독이 정확하게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무대감독이 하는 일이 명확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 관여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하나의 공연을 완성하는 데 참여하는 다양한 스태프 중에 무대감독은 매우 핵심적인 스태프이며, 공연 준비과정부터 공연의 종료 때까지 공연장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진행을 원활하게 해주는 윤활유 같은 존재이다. 이를테면 모든 파트가 항상 최상의 컨디션으로 공연할 수 있도록 유지, 관리하는 사람인 셈이다. 물론 여기엔 기획자나 제작자들도 포함된다.
하나의 공연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그 공로는 일차적으로 창작자들에게, 이차적으론 배우와 제작자의 공로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스태프가 함께 만들어 이루어낸 결과임이 분명하다. 그 중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직책인 무대감독의 소중함을 인정하고 격려할 때 기획자는 다음 작업을 한결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기획자와 무대감독의 역할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이 두 영역의 소통은 공연제작 전반에 커다란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무대감독을 알면 돈이 보인다
공연을 위한 셋업과 리허설은 매우 촉각을 다투는 시간이다. 연습기간 동안 준비한 모든 것들을 실현하는 과정인 만큼 능률적이고 효과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은 물론 경제적으로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창출해내야 한다. 자칫 소홀하면 공연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특히 초연 작품들은 작품의 질적인 면이나 제작비 상승에 영향을 주는 많은 시행착오를 만나게 되는데, 이를 최소화하는 데 무대감독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설사 공연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관객과 약속한 공연 시간이 되면 막을 올려야 하고 일단 시작된 공연은 끝을 내야 한다. 연출가를 비롯한 공연 관계자들은 구상한대로 무대가 준비되지 않을 경우 몹시 당황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경험과 능력을 겸비한 무대감독이라면 악조건에서도 공연을 진행하여 피해를 최소화 시키고자 한다. 실제로 본인이 겪은 많은 사례 중에 뮤지컬 <명성황후> 뉴욕 공연에서 있었던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1997년, 뉴욕 링컨센터에서 어렵게 첫 공연을 올리던 날이었다. 무대장치의 핵심이 이중회전무대였는데, 당시 충분한 기술력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직접 제작해 간 회전무대가 1막이 끝나자 멈춰버린 것이다. 20분의 인터미션 동안 모든 기술스태프들이 매달려 수리를 시도했으나 수습되지 않았다. 2천여 객석은 관객으로 꽉 차 있었고, 국내외 매스컴들이 주목하고 있었다. 2막 시작이 10분간 지연되었고 모든 관심은 회전무대의 수리에 집중되어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2막의 대본을 살폈다. 무대 회전 없이 2막을 진행할 수 없는지를 점검한 것이다. 몇몇 장면의 조명과 배우들의 등·퇴장을 수정하면 2막 공연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섰고, 즉시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공연 재개를 알리고 막을 올렸다. 그리고는 조명감독과 조연출에게 수정될 장면을 전달했고 관객들은 수정된 부분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고 무사히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 만일 어떻게든 회전무대를 고쳐서 공연을 진행해야 한다고만 생각했다면 결국 공연은 진행되지 못했을 것이고 그로 인한 여파는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이처럼 라이브라는 공연 특성상 무대에는 많은 위험 요소가 있고 실제 공연 도중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래서 무대감독은 항상 냉정함을 유지하여 신속한 판단으로 사고를 수습하고 가능한 한 공연이 진행될 수 있도록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무대감독의 역량은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판가름되기도 한다.
신호등 없는 사거리의 교통순경
기획자는 무대 스태프들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을 두루 갖추기가 어렵다. 그래서 그들의 주장과 요구에 따라가야 할 일이 많다. 그런데 무대감독은 특별한 기술이나 지식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다른 무대 스태프들의 입장과 수준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입장이다. 그러므로 기획자는 무대감독을 통해 스태프들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통로로 이용할 수 있다. 무대감독은 신호등이 없는 사거리의 교통순경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통체증 없는 원활한 흐름을 원한다면 무대감독과의 소통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소통을 위해 기획자들은 최소한 무대감독의 임무와 역할에 대해서는 꼭 알아둬야 한다.
무대감독의 능력은 제작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직접 디자인을 하거나 제작에 관여하지는 않지만 무대감독은 공연장에서의 효율적인 셋업과 리허설 진행을 통해 제작비의 절감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늘 부족한 무대 셋업기간은 엄청난 극장의 대관료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야간작업이나 철야작업에는 상당한 대관료를 지불해야 하고 인건비도 몇 배 상승한다. 그래서 가능한 한 약속된 스케줄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무대감독의 무능과 악의는 정해진 시간 안에 무대를 준비하지 못하고 오버타임을 초래하고 그 결과는 결국 상당한 금전적인 손해를 유발한다. 따라서 기획자와 무대감독은 사전 스케줄 수립 과정에서 밀접하게 소통을 해야 한다. 물론 무리한 셋업일정을 잡을 경우 오히려 철야작업 등이 초래되어 실질적으로 더 큰 손해를 초래할 수 있다.
연출가나 안무가가 작품의 예술적 구현자라면 무대감독은 그들이 의도하고 약속한 바를 무대에서 실현, 유지시키는 사람이다. 연습 중에 무대감독은 연출부와 각종 디자이너들을 도와 작품이 무대에서 효과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조언하고 결정을 돕고, 공연이 시작되면 연출가로부터 무대를 인수받아 관리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또한 모든 공연 일정이 종료되면 공연장에서의 철수작업 시 무대감독은 작품의 재공연 계획 등을 확인하여 무대장치, 소품, 의상 등의 파손에 유의하여 철수하고 제작사의 효율적인 보관을 돕는다. 그리고 각 공연에 참여했던 각 파트의 자료를 체계화하여 남김으로서 차후 담당 스태프가 바뀌어도 재공연에 지장이 없도록 이를 구축하는 역할까지도 담당한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소통의 바탕
무대감독은 공연 중 객석과 무대의 중간에 위치한다. 어두운 무대 한쪽에서 화려한 무대를 시종 응시하며 큐잉을 하며 긴장감 속에 보낸다. 또한 공연장에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는 이도 무대감독이다. 공연의 모든 일정이 끝나고 무대를 정리하고 뒤늦게 쫑파티 자리에 가면 이미 파장 분위기에 슬그머니 발길을 돌리던 순간도 있다. 무대감독은 관객으로부터 박수를 받지 못하고 다른 분야의 스태프와 기획자와 마찬가지로 평론가나 기자들의 관심을 받지도 않는다. 자신을 드러내지도 않으면서 남들을 조율하고 소통시키는 역할을 주 임무로 하는 만큼 작업이 허무할 수 있다. 더군다나 공연장에서 다른 분야는 보통 여럿이 팀을 이뤄 작업을 하지만 무대감독은 대개 혼자 움직이므로 외톨이라는 느낌마저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무대감독은 다양한 파트에서 만들어진 것을 잘 조율하여 운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무대감독을 선택하는 기준에는 그 사람의 소양까지도 포함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모든 분야를 치우침 없이 존중하며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 역할이기에 무대감독은 기획자와의 소통 역시 중요하게 생각한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소통의 바탕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도록 하자.
필자소개
이종일은 (사)한국무대감독협회 부회장, (사)한국뮤지컬협회 이사이자 민중극단 대표로, 200여 편이 넘는 뮤지컬과 공연예술축제의 기술감독 및 무대감독은 물론 뮤지컬, 콘서트, 연극 등에서 연출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jongil@stageman.co.kr
NO.160_2012.01.11
덧글 1개
이지호
2012-01-12 오전 4:34:49
정말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한숨에 다 읽어내려갔어요. 해주신 여러 말씀들 잊지 않고 꼭 기억하겠습니다.[Del]